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31화 (131/1,270)

프랜차이즈 갓 131화

30장 신장개업(1)

이 빌딩이 자기 것이란다.

그 간단한 말에, 이택진은 지금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혼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가게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많은 직원, 그리고 인건비.

패기와 도전 정신이 넘쳐나는 가게 컨셉과 정체성.

요식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하수영의 이미지.

그 모든 혼란이 일거에 해소되는, 놀랍고도 마법 같은 주문.

'이 빌딩이 제 겁니다.'

이 정도 빌딩이면 시세가 4~500억원은 하겠지?

그런 빌딩을 가진 건물주가 자기 건물 1층에서 분식집을 차리고 라면 한 그릇에 2, 3만 원을 받는다 한들,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젊은 건물주 사장이 소일거리로 하려는 거구나.'

이택진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하수영이 몹시 부러웠다.

이익이 전혀 남지 않을 게 뻔한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가게를 오픈할 수 있다니.

'근데 연봉을 왜 이렇게 많이 주는 거야? 가만, 혹시 세상 물정을 몰라서 저게 적당하다고 여긴 건 아니겠지?'

불현듯 불안한 마음이 든다.

만약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면, 나중에 '인건비 시세'를 알게 되면 월급을 인하하려고 하지 않을까?

현 직장에서 받던 수준으로 월급이 인하될 예정이라면, 굳이 이직을 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5성 호텔 쉐프라는 경력은 나중에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지만, 이런 분식집 같은 음식점에서 일한 경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이거 처음부터 솔직히 말을 해야겠어. 나중 가서 시세 알고 연봉 조정하자고 하면 나만 손해잖아.'

"저, 사장님. 혹시 호텔 쉐프, 아니, 요리사들 연봉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알고 계십니까?"

"대충은 알아요. 2,400만 원 받기도 힘들다면서요? 호텔에서 10년 일해봤자 연봉 3,000만 원 넘기도 힘들다고."

이택진은 의아해하는 한편 놀랐다.

지금 한 말을 보면, 하수영은 인건비 시세를 알면서도 저렇게 파격적인 연봉을 처음부터 제시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제가 제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오픈하는 음식점입니다. 저는 이 가게가 오래 갔으면 좋겠고, 그리고 직원들이 내 가게처럼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좋겠어요. 저 돈 벌려고 가게 하는 거 아닙니다. 이런 가게 차려서 오래오래 운영하는 게 오랜 꿈이었어요."

"……사장님."

"직원 한 명 한 명이 내 가게처럼 여기게 만들려면 한 가지 방법뿐이죠. 바로 숫자로 대우해 주는 겁니다. 전 이런 방법밖에 알지 못해서요. 혀 길게 뽑아서 말로 잘 구슬려서 가족처럼, 내 가게처럼 여기게 만드는 건 잘 못 하거든요."

이택진은 감동해서 눈시울이 살짝 뜨거워졌다.

"직원을 넉넉하게 쓰는 것도 근무시간을 여유롭게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또 직원이 많아야 휴일도 넉넉하게 쓸 수 있고, 여차하면 서로 대타해 주기도 쉽잖아요. 직원풀을 빠듯하게 굴리면 근무 일정이 피 말리게 짜이고, 사람 피폐해지는 거 순식간입니다. 그래서 그래요."

"그랬군요. 제가 그릇이 작아서 사장님의 그런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실 수 있죠? 아, 가게 오픈을 내일부터 하는 건 아닙니다. 출근하셔서 오픈 준비하셔야죠. 메뉴도 개발하셔야 하고요."

풋 하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직 메뉴도 제대로 짜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에, 왠지 모르게 우스웠던 것이다.

"네, 그럼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오늘 가서 사표 던지고 오겠습니다."

후임자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그동안 호텔에 착취당한 피와 땀을 생각하면 하루도 더 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주방보조 한 명은 쉐프님이 직접 채용하세요. 아무래도 쉐프님이 데리고 일해야 할 테니까 그게 효율적이겠죠?"

"네, 알겠습니다."

하수영은 이택진이 돌아간 뒤에도 차례차례 면접을 보고 요리사를 전부 채용했다.

다들 호텔 요리사 출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실력과 경력이 뒷받침되는 요리사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그들은 호텔 근무 경력보다는 당장 7,200만 원이라는 연봉이 필요해서 지원을 한 이들이었다. 이택진을 제외한 둘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다음 날, 채용된 직원 전원이 가게에 출근했다. 주방보조 3명은 아직 미채용 상태였다.

하수영을 중심으로 그들은 처음으로 낯을 익히며 인사를 가지는 시간을 보냈다.

"홀 매니저 박지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박지현은 날씬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20대 여자였다. 그리고 서빙 직원 중 둘은 남자였고, 하나는 여자였으며, 3명의 쉐프는 모두 남자였다.

저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뒤, 하수영이 포부를 밝혔다.

"사실 제가 가게에 자주 붙어 있기는 어렵습니다. 본업이 따로 있거든요."

직원들은 하수영이 빌딩 오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당연히 임대사업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제 본업은 농사입니다."

"……네?"

"사장님?"

전혀 뜻밖의 말에 다들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씩 반문을 던졌다.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잡다하게 기르고 있, 아니 기를 예정인데요. 그래서 제가 직접 기른 농작물들을 우리 가게에서도 아낌없이 쓰려고 합니다. 재료비도 아끼고 좋겠지요?"

"그, 그렇군요."

"혹시 주종목이 어떻게 되시나요?

벼나 채소류도 기르십니까?"

"일단은 송이버섯, 황금비단우산버섯, 트러플, 그리고 고추가 생산 가능합니다."

"……."

"……."

하나같이 다들 표정이 볼만했다.

뭐지? 저 말도 안 되는 기괴한 조합은? 이라는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어때요, 쉐프님들? 이 네 가지를 이용한 특선 메뉴 개발이 가능하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송이버섯을 이용한 각종 구이와 찜 요리가 가능할 테고, 황금비단우산버섯이 넉넉히 조달된다면야 거의 모든 국물 요리가 가능합니다. 트러플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고추 역시 거의 대부분의 요리에 사용할 수 있으니……."

이택진은 대답을 하면서도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니, 천국김밥 같은 가게를 추구한다며?

'그런데 조달한다는 재료들이 무슨 다 고급 식자재뿐이야? 그 와중에 고추는 또 왜 끼어 있는 거고.'

"그리고 라면은 반드시 있어야 해요. 제 특제 고춧가루의 진미를 알기 위해서는 라면 요리가 필요합니다."

"사장님, 라면 요리는 그냥 황비버섯라면을 사서 조리하는 게 단가를 맞추기 더 낫지 않을까요?"

"저도 동의합니다. 라면은 황비버섯라면을 단가에서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요."

"사장님이 가져오시는 황비버섯 단가나 양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마진을 맞추려면 황비버섯라면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안에 든걸 쓰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네, 실제로도 많은 음식점에서 그런 식으로 라면 요리를 팔고 있습니다."

황비버섯라면이 출시된 이후, '황비버섯이 들어가지 않은 라면'은 거의 멸종하다시피 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라면을 먹을 때 황비버섯라면을 끓여 먹거나, 아니면 다른 라면에 황비버섯만 따로 넣어서 먹었다.

음식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음식집은 99% 이상이 황비버섯라면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조리해서 내놓는다.

"제가 가져오는 모든 식자재들의 물량과 단가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각 메뉴의 가격은 제가 결정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가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요리를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메뉴 개발을 시작해볼까요? 일단 너무 튀거나 복잡한 거 말고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합시다."

이미 쉐프들은 오전에 장을 잔뜩 봐두었다.

하수영도 송이, 황비버섯, 블랙&화이트 트러플, 엘릭서 고춧가루 등을 충분히 가져온 상태였다.

쉐프들은 저마다 세 개씩 자신 있는 요리를 만들었다.

송이, 황비버섯, 트러플을 활용한 요리, 이렇게 각각 세 개씩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9개의 메뉴가 완성되었다.

"저는 살짝 구운 송이를 곁들인 안심구이를 만들어 봤습니다. 가장 기본에 충실했으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향과 맛으로 쉽게 사로잡을 수 있는 메뉴죠."

"황비버섯하면 역시 전골이죠. 황비버섯으로 우려낸 육수에 꽃게와 다양한 야채를 썰어 넣은 꽃게해물전골입니다."

"블랙 트러플로 향을 살린 황비버섯찜입니다."

홀 매니저를 비롯한 서빙 직원들은 저마다 요리를 맛보고는 무척 황홀한 반응을 보였다.

"맛있어요!"

"진짜 너무 맛있어요! 이런 요리라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거 같아요!"

"최고인데요?"

세 명의 쉐프들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수영도 만족해서 말했다.

"최고의 식재료와 좋은 요리 솜씨가 결합했으니 당연히 맛이 좋을 수밖에요."

"근데 이거는 가격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 거죠?"

"지역이 청담이니만큼 너무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 빌딩에 부유한 분들도 많이 드나드시는데. 저는 최소 2만 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수영은 그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가격을 정했다.

그렇게 해서 9가지 요리들의 가격은 2만 원에서 5만 원 사이로 정해졌다.

"근데 요리 종류나 가격으로나, 이미 천국김밥하고는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벌어졌는데요?"

"우리 가게 정체성은 뭐로 내세워야 하는 걸까요?"

"이 정도면 그냥 퓨전 레스토랑인데…… 인테리어도 그렇고요."

원래 하수영은 막연히 음식점을 하고 싶었지, 구체적인 컨셉은 딱 정해두지 않았다.

다만 느긋하게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가게가 아니라,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바로 일어나는, 그런 회전율이 높은 가게를 생각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추구하면서 일부러 의자는 딱딱한 재질로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빨리 먹고 얼른 일어나. 다른 손님 받아야 하니까.

이런 마음이 담긴 배치였던 것이다.

그렇게 활기차게 주방과 홀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무한한 전생에서 쌓인 피로감을 휘발시키고 싶었다.

"그럼 이제 라면을 만들어 보죠."

"굳이 라면을 메뉴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만든 메뉴하고 너무 이미지가 안 맞는데요."

"안 됩니다. 라면은 반드시 있어야 해요. 가장 기본적이고 친근한 음식이잖아요."

쉐프들은 은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고 싶었지만, 하수영이 완강하게 거절하자 더 이상은 권유하지 않았다.

"라면은 한번 제가 끓여보겠습니다. 이래봬도 라면 인생만 30년입니다."

"오, 그럼 부탁합니다."

이택진 쉐프가 자신만만해서 나섰고, 하수영이 얼른 말했다.

"라면은 딱 하나만 팔 생각이에요. 메뉴판에도 만두라면, 해물라면, 치즈라면, 이런 잡다한 이름 없이 그냥 '하수영라면' 이라고만 쓸 겁니다."

가게에서 내놓는 라면 메뉴는 오직 단 하나.

"재료는 절대 아끼지 마시고, 가격도 생각하지 마세요. 라면 맛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는 레시피대로 만들어주세요."

"단 하나의 라면…… 알겠습니다."

하수영의 진지한 당부에 이택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라면하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가게에서 내놓는 유일한 라면이다.

그만큼 힘을 빡 줘야 하리라.

이택진은 어깨 가득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지금 택진 쉐프, 주메뉴 만들 때보다 표정이 훨씬 더 진지하고 무서운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거 어떤 라면이 탄생할지 긴장되네요."

한참 후 이택진은 펄펄 끓인 라면 8개를 가져왔다.

하수영을 포함해서 전원이 한 그릇씩을 먹을 수 있도록 끊여온 것이다.

"황비버섯으로 우려낸 꽃게 육수를 기본 국물로 썼습니다. 면발은 시중 라면이 아니라 수제면발을 이용했고요, 분말스프는 JM식품 쿠라면 것을 썼습니다."

"쿠라면 분말스프가 최고죠. 분말스프라면 쿠라면을 따라갈 게 없습니다."

다른 쉐프가 맞장구를 쳤고, 이택진은 계속 설명했다.

"잘게 썬 대파와 양파, 약간의 콩나물, 계란으로 포인트를 주었고요. 맛의 조화를 해치지 않기 위해 만두나 떡 같은 다른 재료는 더 이상 넣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송이버섯을 넣어 향을 첨가해서 완성했습니다. 드셔 보시죠."

다들 군침이 도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쥐었고, 한 입 먹자마자 저마다 맛있다고 연신 칭찬을 했다.

"근데 이 라면은 얼마나 받아야 하는 거예요?"

"이 정도면 진짜 만 원 넘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들어간 재료좀 봐요."

다들 칭찬하며 라면을 먹는 걸 이 택진이 흐뭇해서 바라볼 때, 하수영이 조그만 통을 하나 꺼냈다.

"잠시 젓가락질 멈추시고, 이걸 한번 뿌려서 드셔 보실래요?"

"그게 뭔가요?"

"특제 고춧가루입니다. 맛이 좀 더 살아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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