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9화
29장 교수님? 회장님? 왕자님? (2)
"안살린 교수님이 한국 들어오셨어요?"
「……네, 왕자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지하크는 잠시 머뭇거렸다. 안살린을 '교수'의 직위로 대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 어디 계신 건데요?"
「서울 카르노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의외네요. 안살린 교수님이라면 인천공항에 정박해 둔 개인용 크루즈선에서 머무르실 것 같았는데. 서울은 넓은 별장 같은 거 짓기에 조금 애매하잖아요."
「카르노 호텔은 사실…….」
"아, 그 호텔이 별장 대신인 거군요? 별장으로 쓰려고 호텔 체인 사업을 통째로 구매하신 건가요? 아니면 0에서부터 차리신 건가요?"
「기존 호텔 브랜드와 개별 호텔들을 인수해서 통합한 호텔 체인이긴 합니다만, 그걸 어떻게 아셨죠? 언론에 보도된 적은 없는데 말입니다.」
"그냥 호텔 스위트룸에 머무른다고 하시니까, 해외여행 다닐 때 별장으로 쓰려고 구매하신 것 같더라고요. 저도 예전에 자주 그랬……."
「네?」
"아, 게임 이야기입니다. 온리안 게임 할 때 저도 자주 그렇게 했거든요."
하수영은 웃음을 지으며 얼른 말을 바꿨다.
"원래 현실이나 게임이나, 종이 한 겹 차이도 없어요. 사람 사는 곳은 가상이나 실제나 다 똑같습니다."
「……아무튼 왕자님께서 언제 농장을 방문하실 수 있는지 몹시 궁금해하십니다.」
"지금 농장 하나 때문에 방한하신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기다리시게 하는 게 실례죠. 지금 바로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장소는 제가 톡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카르노 호텔에서 30분 좀 안 되게 걸릴 겁니다."
「오, 그 정도로 가까운가요? 혹시 농장이 서울 내부에 있는 겁니까?」
"아뇨, 헬기 이동 시간을 말씀드린 건데요. 어차피 헬기 타실 거 아닌가요?"
「……」
"시간이 다이아몬드이신 분인데 설마 서울처럼 교통체증 심한 곳에서 차량 타고 이동하시는 건가요?"
「차량을 이용하실 겁니다. 헬기는 아무래도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서, 해외에서는 잘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하긴 지금 시대 기술 수준이 조금 불안정하긴 해요. 지금 시대가 언제인데 정비 불량이나 고장으로 헬기 추락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니, 쯧쯧……."
「…….」
지하크는 이렇게 말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생소한 경험을 맛보고 있었다.
"주소 보내드렸습니다. 차량 이용하실 거면 제가 조금 더 빨리 도착할 것 같네요. 저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뵙죠.」
하수영은 곧바로 인터넷에 들어가서 안살린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하지만 어떤 언론사도 안살린의 방한 일정을 다루고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서해호텔 만찬 때도 안살린의 방한은 비교적 조용히 넘어간 편이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정보가 느린 건지, 아니면 국제자원투자회사에서 보도 통제를 철저히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언론인들이 안살린에 대해 잘 모른다든지.
"그나저나 토양 조사해 봤자 나오는 것도 없을 텐데, 내가 괜히 미안하잖아."
토양이 특별해서 골든 트러플이 자라는 게 아니라, 엘릭서 덕분에 자라는 것이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안살린을 속이는 셈이 되는 것일까.
"양심에 찔리니까 나중에 골든 트러플이나 듬뿍 싸주자."
은하신목이 있는 본가는 수도권 외곽의 한적한 교외 지역에 있다. 서울과 서락읍의 중간 정도 되는 지점이다.
저택 뒤편에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도 하수영의 소유다.
정확히는 아버지의 소유물이지만.
하수영은 안살린에게 보여주기 위해 뒷산에 송이 농장과 골든 트러플농장을 작게 꾸며 놓았다.
서락산을 보여줘도 되겠지만, 그럼 산을 구매한 시기가 문제가 된다.
시기상으로 송이버섯을 출시한 것은 서락산을 구매하기 이전이었으니.
"한 농장에서 송이와 트러플이 같이 난다고 말을 해뒀으니까, 이렇게 해야 앞뒤가 맞지."
어차피 엘릭서로 키우는 것이니만큼, 토양을 조사하다고 해서 안살린이 얻을 수 있는 수확은 없을 것이다.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후에 지하크로부터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저 멀리 흰색 롤스로이스 리무진 한 대가 검은 밴 4대를 거느린 채 위풍당당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누가 봐도 높은 사람의 행차로 보이는 광경이지만, 안살린의 지위를 생각하면 오히려 한참 검소한 의전이다.
"호위 경찰 수십 명 정도는 거느리고 올 줄 알았는데, 저 사람도 생각보다 소탈한 편이구나."
차 행렬이 멈춰 섰고, 밴에서 정장차림의 경호원들이 내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듯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게 자연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안살린이 리무진에서 내렸다.
그는 어디 농장 체험이라도 가는 것처럼 편안한 캐주얼 차림에, 밀짚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심지어 신발은 야외 작업용 고무 장화였다.
"어서 오세요, 교수님."
"반가워요. 여기가 그 신비한 골든 트러플 농장이 있는 곳인가요?"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제 본가이기도 하고요."
"멋진 본가를 가지셨군요. 마치 그림 같은 저택입니다. 지하크,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이런 느낌으로 하나 지어 봐."
"예, 왕자님."
"음, 그럼 한번 구경하시겠어요? 별거 없습니다만."
"그래 주신다면야 기꺼이."
하수영은 안살린에게 저택 내부를 구경시켜 주었다.
안살린은 정원 구석구석까지 닿아있는 장인의 손길을 느끼고 연신 감탄했다.
"이 집을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연륜과 정성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나도 꽤나 많은 별장을 갖고 있지만, 그 어떤 별장도 이 집에는 비하지 못할 것 같아요."
"아버지가 그 말을 들으면 무척 좋아하실 것 같네요."
"혹시 수영 CEO 아버님께서 지으신 집인가요?"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벽돌 하나 하나까지 전부 아버지가 쌓아 올리 신 거라고요."
'주신의 권능을 듬뿍 써서 지었으니 당연히 잘 지었겠지. 물론 건축자재는 원래 있던 것들을 가져다가 썼지만.'
특별히 비싼 고급자재를 쓴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진 부분의 사소한 마감까지 전부 완벽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도 균열이나 결로 같은 게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그걸 한눈에 알아보는 것도 보통 눈썰미가 아니라는 건데.'
안살린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다.
뒤뜰에 온 안살린은 은하신목을 보고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이건 대체 무슨 나무입니까? 처음보는 품종 같은데요."
"저도 잘 몰라요. 아버지가 심으신 거라서요."
"이것도 수영 CEO의 아버님께서? 혹시 아버님께서 이 나무에 관해서 뭐라고 말씀해주신 게 없나요?"
"그냥 유산이라고만 하셨어요. 그 외는 특별히 별로 들은 말이 없네요."
하수영은 태연하게 말을 흘려 넘겼다.
안살린은 은하신목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 보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연신 이리저리 살피며, 손으로 나뭇결을 만져보기도 하고, 가지를 쓸어보기도 했으며, 잎사귀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제가 식물학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질학을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식물학과도 일정 부분 공유하는 부분을 갖게 되죠."
"아무렴요. 지질학 자체가 다른 자연과학들과 연관되는 부분이 많잖습니까."
"그래서 웬만한 식물품종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품종은 정말 처음 봅니다. 혹시 나중에 이 나무 품종을 연구해 봐도 될까요?"
하수영은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산이어서요. 아, 물론 돌아가신 건 아닙니다. 지금은 멀리 떠나셔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요."
안살린은 은하신목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표정 가득 아쉬운 감정이 묻어난다.
"자, 이제 농장을 보러 가시죠."
하수영은 안살린 일행을 뒷산으로 안내했다.
뒷산에는 특별히 울타리나 철조망같은 것을 치지 않았지만,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은 많지 않았다.
울창한 숲을 지나치자 여기저기 무성하게 자라난 송이버섯들이 나타났다.
거의 1제곱미터당 송이버섯이 3개 이상은 자라나 있었다.
"바로 이곳입니다. 여기가 저의 비밀 농장이죠. 송이버섯과 트러플이 자라나는."
"오, 여기가 그 신비한 한반도의 토양이로군요."
안살린이 손을 내밀자, 수행원 중 한 명이 재빨리 가방을 열어 금속탐지장비 같은 것을 꺼내 내밀었다.
하수영이 호기심을 품고 바라보자 지하크가 대신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저걸로 트러플을 탐지하는 겁니다. 향을 감지하는 초정밀 센서가 달려 있지요. 수색용 돼지나 개의 역할을 기계로 재현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런 것도 가능했군요. 다른 트러플 농장들은 아직까지도 수색견을 써서 트러플을 채취한다고 들은 거 같은데."
"원래 버섯 수색용으로 만들어진 장비는 아닙니다. 땅속에 있는 특수한 시료들을 찾기 위해 개발된 전문장비죠. 이번에는 센서 조정을 통해 트러플을 찾을 수 있도록 개량을 했습니다만…"
"그럼 꽤 비싸겠네요?"
"저 장비 하나가 1,000만 달러가 넘습니다."
금속탐지장비 같은 게 100억 원이 넘다니. 전성렬이 들었다면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산에서 송이와 트러플이 나고 있으니, 교수님한테 마음껏 연구·조사하시라고 전해주세요."
"가시렵니까?"
"네, 토양 연구조사 하는 데 제가 특별히 더 도움 드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여기는 제 땅이니 다른 거 신경 쓰실 거 없이 편하신 대로 연구·조사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갈까 싶었지만, 안살린은 이미 주변 토양을 조사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할 것 같은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참 좋을 때다.'
자신도 저렇게 뭔가에 순수한 열의를 품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계산적이고 칼같이 재단하는 그런 열의가 아닌.
하수영은 안살린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흘끔 바라보고는 등을 돌려 산을 내려왔다.
안살린은 산 아래 아예 장기 숙영을 위한 임시 거점을 지었다.
대형 텐트를 여럿 치고, 조명을 설치했으며, 숙영 지원을 위한 대형 트레일러까지 여럿 데려왔다.
트레일러는 침실용, 조리용, 샤워용 등 다양한 목적 달성을 위해 개조된 모델들이었다.
하수영의 모델이 종합 패키지라면,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개별 기능을 극대화한 모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동형 연구소 트레일러까지 세 대나 갖추고 있었다.
"저거 한 대에 수백억이 넘는다는 그 모델 아니야?"
오다가다 지켜본 하수영은 안살린의 장비욕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래, 남자라면 저 정도 장비 욕심은 있어야지.
"근데 조사해 봤자 나오는 거 없을 텐데. 그냥 평범한 흙이고 산일 뿐인데."
헛되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듯해 안타까웠지만, 안살린이 직접 깨닫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흙을 아무리 조사해 봐야 별다를게 없다는 사실을.
그러는 사이에 3호기 1층 음식점인테리어 공사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하수영은 음식점 사장으로서 거 듭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메뉴도 정해야 했고, 직원도 고용 해야 했으며, 음식점 사업자도 따로 내야 했다.
3호기 빌딩 음식점 오픈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안살린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몹시 흥분해서 외치듯이 말했다.
「수영 CEO, 여기 농장은 기적의 흙으로 온통 뒤덮여 있군요!」
"네? 뭐라고요? 기적의 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