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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27화 (127/1,270)

프랜차이즈 갓 127화

28장 꿩 대신 메추리알(4)

-여보, 묻고 싶은 게 있어.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바라보던 남자가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내가 이 많은 징징 글들을 일일이 읽고 코멘트를 달고 결재 사인을 해줘야 하는 거야? 내가 이러려고 그 많은 전투를 한 게 아닌데…….

흰 피부와 화려한 금발의 미녀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간단하지. 당신은 우주의 패자잖아.

-그놈의 우주의 패자.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당신의 권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우주의 만물이 모두 당신의 영지인걸. 우주에서 유일한 왕이자 패자로서 시민들의 아우성에 보답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어?

-그럼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1분이면 오고 가는 이 시대에 대체 왜 원시적인 종이서류 결재서를 사용하는 걸까?

-어떻게든 튀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이해해 줘. 전자문서로 상소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직접 손으로 정성 들여 쓴 상소문을 보내는 게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덕분에 쓸데없는 종이 낭비가 이뤄지고 있어. 이오나 위성은 어쩔 거야? 지금까지 전 우주에서 날아온 상소문이 이미 위성 하나를 가득 채웠다고!

-그렇다고 소각할 거야? 그럼 당신을 사모하는 시민들이 몹시 슬퍼할 텐데?

남자는 다시 상소문으로 눈을 돌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상소문.

그것은 책상 위에 가득 쌓여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관저 뒤편에 있는 공터에서 하나의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힘내. 나라…… 아니, 우주를 경영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그래도 시민들과 언제나 소통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뿌듯해? 당신은 우주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유능하고 자비로운 군주로 남게 될 거야.

-다음 생에는 꼭 평화롭게 농사나 지으면서 살겠어. 그래야 이런 고생을 안 하지.

* * *

하수영은 눈을 떴다.

시간을 확인하니 늦은 밤이었다.

전성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술자리는 간단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전성렬이 남긴 톡 메시지가 있었다.

[난 먼저 가네. 직원 불렀으니까 음주운전 걱정은 말게나.]

자리에서 일어난 하수영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무수한 별들의 향연.

저 무한한 공간 너머 어딘가에는 또 다른 지성체들이 살고 있겠지?

"갑자기 우주여행이나 하고 싶어지네."

-아들아. 프랜차이즈 갓이 된다면 우주여행쯤 원할 때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단다. 그러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엘릭서도 먹고, 정신 수련도 하고…….

"에이, 신어를 배우는 게 아니었어요. 아버지 잔소리에서 단 한 시도 멀어질 수가 없으니, 이거 원……."

그냥 혼잣말이었는데 무심코 은하신목한테 자기 의사가 전달이 된 모양이다.

큰 대자로 벌러덩 누운 하수영은 차가운 밤이슬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주신 노릇 하는 건 어땠나요? 많이 힘들지 않았어요?"

-거짓말은 하지 않으마. 힘들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보람이 있단다.

"아버지는 제가 주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10조 분의 1의 확률이라는 가능성을 지닌 너라면, 반드시 훌륭한 주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대체 어떡하면 산술적으로 그런 계산이 되는 거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10조 분의 1, 생각보다 너무 높아서 벗어나긴 글렀다고 말이다.

"……."

하수영은 말문이 막혔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거쳐 왔던 무수한 인생 중의 한 자아는, 저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10조 분의 1? 그건 내게 있어서 100%와도 같지. 당첨 확률이 3억 200만 분의 1인 메가밀리언 복권에서 2연속 당첨될 가능성이 얼마인지 알아? 9경 1,204조 분의 1이라고. 난 그것도 어렵지 않게 해냈지.'

그리고 또 다른 자아는 이렇게 말을 할 것이다.

'무한한 우주에서 10조 분의 1의 가능성이란 인간의 인지와는 달리 매우 높은 실현율이다. 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성공하기 위해 겨우 16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성공률은 10조 분의 1보다는 훨씬 낮았지.'

하수영은 조용히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뭐, 10조 분의 1이 크게 높은 건 아니죠. 우주의 무한한 인과율에 비하면야……."

-그렇단다, 아들아. 영원한 0은 없는 법이지.

"그럼 아버지, 제가 주신이 되면 아버지는 그 뒤에 어떻게 되는 거예요? 우주에 주신이 둘일 수가 있나요?"

-그건 비밀이란다.

"설마 그대로 소멸하신다든가……."

-그럴 일 없으니까 내 소멸 핑계 대면서 후계자 수련을 게을리할 생각은 말 거라. 자, 역사 수업을 이어가자꾸나. 어디까지 했었지? 아! 아무튼 그렇게 격노한 주신은 결국 하위 신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신의 권능 프랜차이즈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단다.

"김범석이가 아주 큰 일을 했네요. 덕분에 아버지가 프랜차이즈 갓 브랜드를 전 우주에 시작할 수 있었잖아요."

-기, 김범석이? 그게 누구냐?

"누구긴요, 감히 간 크게도 고대 주신을 상대로 사기를 친 프랜차이즈 유통 브랜드 창업주요. 그러고 보니 만기출소일이 얼마 안 남았던데."

-…….

생각지도 못한 맹공이었는지 은하신목은 당황해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너, 언제 그놈 신상을 조사했어?

"그날 아버지한테 말씀 듣고 나서 곧바로 찾아봤죠. 돈 조금 쓰니까 별로 어렵지도 않던데요? 그나저나 사건 개요문하고 판결문 읽어봤는 데, 정말 난놈은 난놈이더라고요."

-그런 사기꾼더러 난놈이라니!

"근데 사기 친 금액이 큰 건 맞는데 잔챙이 피해자는 전혀 없던데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은 피해 본 거 없고 혹해서 달려든 부자들 돈만 털었던데. 그것도 꽤나 청결하지 못한 그런 부자들만 골라서 털었더라고요. 아버지 말씀하고 좀 다르던데요?"

-그래서, 뭐? 내가 청결하지 못한 그런 부자였단 말이냐? 그래서 그놈한테 홀라당 털렸다고?

"아무튼 고대 주신도 사정없이 턴걸 보면, 그놈이 난놈은 난 놈이더라고요. 제가 비슷한 친구를 예전에 한 명 알았는데, 심지어 이름도 같네요."

-예전에 알긴 뭘 알아! 네 친구들은 내가 죄다 꿰고 있는데 어디서 거짓말이냐!

"아버지, 속고만 사셨…… 으니까 그렇게 불신할 수도 있겠네요. 이해 합니다."

-네 이놈! 어디서 감히 하늘과도 같은 아버지를 놀려 먹는 것이냐!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하수영은 캠핑트레일러를 이끌고 서울 청담동으로 향했다.

이제 자신의 소유물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 5호기, 6호기, 7호기, 8호기, 9호기를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아직 잔금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계약이 파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도금 지불일을 바로 다음 날로 해두었기 때문이다.

중도금까지 지불된 이상, 매도인은 계약을 포기 못 한다. 포기하면 배임죄까지 더해진다. 심지어 잔금일은 내일이었다.

하수영은 먼저 5호기 빌딩을 찾았다.

"역시 청담동이야. 빌딩들 주차장입구가 시원시원하게 높아서 캠핑트레일러도 잘 들어가겠네."

캠핑 트레일러가 주차장 입구를 향해 다가가자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제지했다.

"이봐요. 여기는 그런 큰 화물차는 못 들어갑니다."

하수영은 차창을 내리고 물었다.

"이 차는 저기 있는 진입 금지 높이에 안 걸리는데요?"

"그거야 택배 차량 같은 거 허용하는 거고요. 단순 방문자분은 그런 차 끌고 못 들어갑니다. 차 뒤로 빼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건물의 안전을 위해서 작은 위험도 꺼려 하시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네요. 전 새 건물주입니다."

"네? 뭐라고요?"

"여기 건물 새 건물주라고요. 정확히는 건물주가 될 예정입니다. 내일부터요."

"……."

관리인의 표정에 수십 번이 넘는 변화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이 미친놈은 뭐지, 라고 웃어넘기 기에는 하수영의 태도가 너무 당당했다.

그리고 캠핑카가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기도 했고…….

"사장님한테 건물 팔린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계약한 지 며칠 안 됐거든요. 조만간 소유권 이전 절차 들어갈 겁니다. 사장님한테 전화 한 번 넣어보세요."

"잠시만요."

관리인은 반신반의하면서 건물주에게 연락을 취했다.

잠시 통화를 하고 난 관리인은 마이크 부분을 막은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사장님 성함이……?"

"하수영입니다."

"아, 맞으시군요. 어서 들어가십시오."

하수영은 가볍게 웃음을 보내고는, 주차장 입구로 캠핑 트레일러를 진입시켰다.

5호기는 3호기에 비해서 가격 대비 토지 면적이 좁은 편이었다.

'대신 그만큼 목이 더 좋고, 건물도 더 신축이고, 마음에 드네.'

아트락 부지 대신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아프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수집한 보람이 있는 좋은 건물이다.

"앞으로도 수고해 주세요."

"옙!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관리인은 군기가 제대로 든 동작으로 경례했다.

비싼 건물치고 관리실 직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는데도, 건물은 깨끗하고 질서정연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하수영은 남은 6호기부터 9호기까지 차례차례 둘러보며 임차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어차피 내일 잔금을 치를 예정이라, 새삼 매매가 취소될 일은 없었다.

새 빌딩들을 다 둘러본 하수영은 서락읍을 향하는 대신 캠핑 트레일러를 몰고 청담동 거리를 돌아다녔다.

고급 캠핑카로 알려진 퍼포먼스 하이엔드 모델은 여러 모로 사람들의 눈을 띠었다.

아무래도 도심에서 캠핑 트레일러를 볼 일이 없다 보니, 운전자나 행인들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들은 이 모델이 어지간한 슈퍼카보다 비싼, 25억짜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기가 청담동 명품 거리구나."

이미 몇 번 와봐서 익숙한 거리였다.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고급 백화점 그 자체를 거리로 이식해 놓은 듯한 풍경.

"여기 있는 브랜드 사옥들도 언젠가는 싹 사들여야 할 텐데 말이야."

명품 거리를 한 바퀴 돈 하수영은 이번에는 청담동 주민센터 인근 지역으로 진입했다.

올림픽대로 넘어 한강이 보이는 강변의 고급 아파트와 고급 빌라들의 모습이 보인다.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지역.

청담의 모든 권력과 영향력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저기 사는 주민들을 다 내보내려면 라면을 대체 몇 개를 팔아야 하는 걸까……."

수십억에서 백억이 넘는 초고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다. 웬만한 웃돈으로는 그들을 내보낸다는 게 불가능하다.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니고.

"일단은 상가 빌딩부터 전부 싹 접수하자고, 주택 접수는 나오는 매물만 거둬들이는 게 현재로써 최선이야. 재개발 강제수용 같은 건…… 아직 한참 멀었어."

청담동 유일한 땅 주인이 된다는꿈.

언뜻 불가능하게까지 보이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과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 정서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수영 사장님, 전성렬 사장님께 이야기 들었어요. 저희 월급을 네 배로 올리라고 하셨다면서요. 너무 감사해서 인사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뭘요. 회사를 위해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시는데 월급이라도 올려드려야죠."

감사 인사를 시작으로 근황을 가볍게 이야기하던 중 정서희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참, 마케미야 대표님이 혹시 송이 농장을 파실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요? 가격은요?"

어차피 팔 수도 없는 '가상의 농장'이지만, 하수영은 마케미야가 얼마를 불렀을까 궁금해서 한 번 물어보았다.

-일단은 백지수표라고, 원하시는 가격을 적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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