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6화
28장 꿩 대신 메추리알(3)
아트락 부지.
하수영의 영원한 4호기.
비록 지금은 잠시 대기업의 횡포아래 맡겨두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그때까지 4호기는 영구 결번으로 남겨놓으리라.
"이거이거, 우리 하 사장. 배포가 아주 크구먼. 뉴월드그룹을 통째로 사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아트락 부지를 되찾겠다니. 맘에 들었어."
긴장감이 사라지자 조일원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우리 하 사장이라면 언젠가는 뉴월드그룹도 자기 건물 임차인으로 받을 수 있을 거요. 꼭 그렇게 될 거야."
"조 사장님이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배포에 자신감까지, 젊은 양반이 벌써부터 거목감이야.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이미 친구 아니었나요, 우리?"
하수영이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조일원은 눈을 크게 떴다가 껄껄 웃었다.
"못 당하겠어, 정말. 내가 결혼 안한 딸만 있으면 정말 사위로 삼고 싶을 정도라니까."
* * *
전성렬이 오랜만에 서락읍을 찾아왔다.
트레일러 행렬이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싣고 멀어지자, 하수영이 맥주통을 흔들어 보이며 전성렬을 불렀다.
"오랜만에 한잔하고 가시죠."
"대낮부터 무슨 술인가.
"낮술로라도 제 속을 달래야겠거든요. 소중한 4호기를 그만 뺏기고 말았습니다."
"4호기?"
대충 짐작이 간 전성렬은 흘끗 시간을 확인하고는, 하수영과 함께 야외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한 잔 쭉 드시죠. 안주는 송이버섯하고 김치밖에 없습니다만……."
"이 정도면 낮술 안주로는 진수성찬이지. 잘 먹겠네."
숯불에 가볍게 구운 송이버섯에서 강렬한 향이 풍겨 나왔다.
시원한 맥주를 쭉 들이켜고 송이를 잘게 찢어 씹어 삼키자 절로 몸이 노곤해진다.
하수영은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저런, 하 사장 자네도 대기업의 횡포에 된통 당했구먼. 쯧쯧……."
전성렬은 몹시 안타까워서 혀를 찼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처음부터 뉴월드그룹한테 뺏긴 상황에서 헛되이 시간만 날린 게 아닌가.
"그래도 5억밖에 손해 보지 않아서 다행이야."
"처음부터 영 찜찜하긴 했어요. 그것도 안 넣으려다가 정보 탐색 비용이라 생각하고 넣은 겁니다."
"5,000억을 처음부터 집어넣었으면 지금쯤 아마 내가 복장 뒤집혀서 병원에 실려 갔을 거야. 그나저나 그럼 투자자들 돈 잃은 건 어떻게 되는 거지?"
"범인은 금방 잡힐 겁니다만, 돈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자네 돈은 찾아야지. 5억이 어디 보통 큰돈인가."
전성렬은 열의에 불타서 말했다가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얼른 덧붙였다.
"물론 자네 자산에 비하면 별거 아닌 돈이지만, 그래도 큰돈은 큰돈이야."
"못 찾아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못찾는 게 오히려 더 재미있을 겁니다."
하수영은 잔에 담긴 맥주를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최동주라는 그 사람, 5억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 테니까요."
"5억의 저주?"
"제 돈 훔쳐 가서 잘 된 사람이 없거든요. 5억 정도면 패가망신하기에는 충분하죠."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하수영이 그저 간절히 저주하는 것이라고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수영을 지켜봐온 전성렬 입장에서는 심상치 않게 들렸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은 그대로 다 이뤄질 것 같단 말이지. 그럼 그 최동주라는 사기꾼도…….'
전성렬은 사기꾼의 미래를 상상하고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너무 화가 납니다. 제 소중한 4호 기가 부정부패로 가득한 대기업의 발굽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될 걸 생각하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이미 팔려버린 거,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매물을 찾아봐야지."
"아니요, 전 이대로 포기 못 합니다. 4호기를 나중에 반드시 데려오고 말 거예요."
"이미 뉴월드그룹 소유물이 되었는데 무슨 재주로? 뉴월드그룹이 망하지 않는 한은 시중에 다시 나오기 힘들 걸세. 잠깐, 망하게 한다라……."
전성렬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뺨을 긁적거리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프라임컴퍼니가 뉴월드그룹보다 더 큰 대기업이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정유사업이 잘 되면 그걸 기반으로 화학, 통신, 건설 같은 곳으로도 영역을 넓히는 거야. 하 사장, 어떻게 생각하나?"
"알아서 하십시오. 제가 회사 경영은 처음부터 두 분에게 일임했잖습니까."
"프라임오일컴퍼니가 자네 회사니까 하는 말이지. 오너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지 않으면 우리 같은 월급사장들이 간이 떨려서 어떻게 진행하나?"
이 양반, 은근히 욕심이 크다.
하수영은 속으로 피식거렸다. 종합대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게 어디 보통 어려운 일인가.
직접 된통 당해 봐야 정신이 번쩍 든다고, 그래서 둘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도록 판은 깔아 주었다.
'아직 정유 사업도 제대로 시작 못했는데, 뉴월드그룹을 잡는다는 상상까지 하고 계시네.'
"제 생각에는 식품사업을 엄청 키워서 돈을 많이 벌어서 뉴월드그룹을 사버리는 게 더 현실성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서 싸움을 벌여야지, 적진으로 들어가서 적군의 방법대로 싸움을 벌이는 건 페널티가 크죠."
"설마 하 사장, 자네……?"
"네, 농사 열심히 지어서 농작물팔아서 돈 많이 벌고, 그걸로 뉴월드그룹을 사서라도 4호기를 되찾고 말 겁니다."
"……."
"4호기 소유주의 소유주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죠."
"뉴월드와 경쟁해서 뺏는 것보다 더 현실성이 없는 상상인 거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이쪽이 더 현실성이 높은데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전성렬은 적당히 취했다.
"시장 점유율은 85%를 넘어섰어. JM식품에서 나오는 제품들까지 포함한 수치일세."
"역시 다양성이 중요한 법이죠. 아무리 맛있어도 너무 한 가지만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에요."
"JM 식품에는 좀 비싼 라면 제품들도 있어서 수익 증가에는 좀 더 유리한가 봐. 우리도 그 덕을 보고 있고."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JM식품은 판매이익을 나누기로 했다.
JM식품의 매출과 이익이 증가할수록 프라임컴퍼니도 이득을 보는 구조가 된다.
"좋군요. 그럼 이제 JM식품 라면 사업부를 가져오는 일만 남은 건가요?"
"그렇지. 라면 사업부를 가져오는 일만 남았지. 하지만 아직은 좀 더 잠식해 들어가야 돼."
프라임컴퍼니가 출시한 황비버섯라면은 분명 그 자체로 보면 최강의 라면 식품이다.
하지만 황비버섯을 빼면 면발과 스프는 그럭저럭한 수준이다.
처음에 소비자들은 황비버섯이 듬뿍 들어갔다는 사실에 환호했지만, 언젠가부터 황비버섯을 빼서 다른 라면에 넣어 먹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황비버섯라면의 점유율 상승이 어느 순간부터 정체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좀 더 다양한 라면 맛을 추구한다!'
JM식품과의 라면사업제휴는 그런 소비자들의 욕구를 맞춰주는 방향이었다.
업계 빅3 라면 업체답게 JM식품은 다양한 라면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었고, 여기에 황비버섯이 추가됨에 따라 소비자들은 굳이 라면을 2종류나 사서 섞어 먹을 필요가 줄어들게 되었다.
태양심이나 육뚜기의 라면을 선호하는 이들이 황비버섯만 빼서 넣는 믹스 라면을 섭취하고 있지만, 이미 두 회사는 라면사업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
이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두 회사는 결국 라면 사업 철수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에 컵밥 제품을 출시하기로 했어. 연구개발부서에서 신제품 라인업을 몇 가지 완성했나 봐."
"빠르네요. 그런데 컵밥이라고요?"
"황비버섯이 들어간 국물 컵밥으로 우리 회사 정체성을 확실히 하려는 거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무기를 적절히 활용해야 하지 않겠나?"
"좋은 생각입니다."
"순두부찌개, 부대찌개, 김치찌개, 알탕밥, 이렇게 해서 네 가지 컵밥식품을 시중에 내놓을 거야. 컵밥마다 황비버섯 80그램씩을 잘게 썰어서 넣을 거고, 가격은 2,500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네."
"그 정도 가격이면 컵밥에 든 황비버섯만 빼서 다른 데 쓰지는 않겠네요."
"버섯만 다른 요리에 쓸 거라면 황비버섯라면을 사서 그 안에 든 걸 빼는 게 낫지."
"차근차근 종합식품회사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참, 지금 사장님 월급이 세전 600만 원이었나요?"
"그렇지. 정서희 부사장도 나와 같아."
경영진 치고 월급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각 프라임컴퍼니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이기도 하다. (전성렬은 아직 10%가 넘지만, 최종적으로 10%만 남기고 지분을 양도해야 한다) 연매출 2조 원에 예상 이익률 6%로 잡으면, 6억 원의 배당금을 기대 할 수 있다. 100% 배당한다는 전제하에서다.
"가져가시는 월급은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요. 내년에는 배당금까지 합쳐도 세전으로 7억이 채 안 되네요."
"대신 지분 가치가 있잖나."
"지분이야 어차피 팔 수도 없잖아요. 월 600만 원으로 빠듯하지 않으세요?"
"예전에 벌어놓은 돈으로 충당하고 있지."
"안 되겠습니다. 제가 가슴이 아파서 못 봐주겠어요. 지금 당장 월급을 백 배…… 아차차, 나도 모르게 그만 옛날 버릇이."
하수영은 당황해서 얼른 말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침착하게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수영아, 수영아. 넌 지금 지구도 몇 번 샀었던 그때 그 사람이 아니란다. 가진 거라고는 라면 가게 하나하고 싸구려 상가 빌딩 몇 채가 전부라는 걸 명심해야지. 백 배 이상이라니, 그런 거 남발하다가는 지금 네 처지에 쫄딱 망해요.'
"백 배 인상? 아이고,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구만. 하지만 그냥 넣어 둬. 아무리 우리 회사가 지금 잘나 간다지만 사장 월급으로 6억은 너무 과해."
"그럼 열 배… 아니, 다섯배… 아니아니, 네 배 정도로 올리시는 건 어떨까요?"
"네 배라고?"
전성렬은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의 네 배면 세전으로 2,400만 원이다.
개인 유통업자를 하면서 평균적으로 벌었던 돈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
여기에 지분이 가지는 자산 가치와 기대 배당금까지 더하면…….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
경영진 월급 인상은 아무래도 오너의 의중에 달린 것이다 보니, 전성렬은 괜히 조심스러워 졌다.
"그럼요. 그 정도는 받아가셔야 일할 맛이 나겠죠. 정서희 부사장님도 똑같이 네 배로 인상해 주시고요."
"사실 자네가 제공하는 황비버섯이 회사를 유지하는 원동력인데 우리만 그렇게 가져가면 너무 민망해서……."
"저야 프라임컴퍼니가 제 것이나다름없고, 또 버섯도 공짜가 아니라 돈 받고 제공하는 건데요, 뭐."
"그래도 자네도 이참에 경영진에 이름만 올려두는 게 어때? 출근은 안 해도 되니 월급만 가져가고, 다른 회사들도 다들 그렇게 한다네."
"그거 배임죄입니다. 안 돼요. 나중에 걸려요."
"자네가 자네에 대해 배임을 하는 게 죄가 되나?"
"두 분 사장님에 대해서도 배임죄가……."
"우리가 괜찮다고 하는데 그게 왜 배임이 되지? 어차피 우리 셋 말고 다른 주주는 더 없는데?"
"……."
하수영은 잠시 말이 없다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경영책임 같은 피곤한 일에는 이제 엮이기 싫어서요. 처음 말한 것처럼 그냥 주주로만 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