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5화
28장 꿩 대신 메추리알(2)
-네? 그럼 아트락 부지 투자는 어쩌시고요?
"그건 빠질 겁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게요. 아, 박 사장님 투자그룹에 통보할 필요는 없어요. 일단 그쪽에는 아무 말씀 하지 마시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하수영은 전화를 끊고, 다시 조일원에게 연락했다.
"조 사장님, 그거 사실입니까?"
-그렇다니까. 내가 확실하게 알아본 거야. 더 충격적인 게 뭔지 알려 줄까?
"뭡니까?"
-그 대리인이 최동주 그 새끼 친구였어. 최동주 그놈은 처음부터 다 알고 판을 벌인 거라고.
"그럼 그 대리인도 한패일 수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입증이 안 될 거야. 그 대리인 이 최동주 그놈한테 뭐라도 받아먹은 게 있지 않은 이상은. 그거야 검찰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일단 난 검찰에 그 이야기 제보는 했어.
대리인이 한패인가 아닌가, 그것은하수영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트락 부지는 완전히 물 건너갔구나.'
이미 뉴월드그룹에 팔렸다는데 어떡하겠는가?
새 주인이 정해진 이상,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갈 곳을 잃은 투자금이 미쳐 날뛰기 전에, 근래 시장에 나온 우량 매물 5개를 얼른 거둬들여야 한다.
-5개 모두 매도인과 연락 잡혔습니다. 오늘 당장 만나기로 했습니다.
시간은 이미 저녁 6시, 거래를 하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수백억이 오가는 거래에서 늦은 시간은 그리 큰 흠결이 못 된다.
'조일원 사장님이 거짓말을 했거나, 잘못 알았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만약 그런 거라 해도, 박 사장 투자그룹에는 금액을 조금 줄여서 들어가면 된다.
지금으로써는 가장 이득이 될 만한 가능성에 베팅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얼마 후 우형신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장님, 매도인 5명과 전부 약속을 잡았습니다. 지금 모두 사무실로 온다고 하네요.
"저도 바로 가겠습니다. 마침 지금 서울에 있어요."
캠핑 트레일러가 이럴 때는 참 요긴했다.
약속 시간이 되자 하수영은 트레일러를 나서서 중개사 사무실을 찾았다.
5명의 매도인들은 이미 도착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서로 안면이 없는 듯 데면데면 한 분위기였다. 우형신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아, 오셨습니다. 저분이 매수인입니다."
"누구 매수인인가요?"
"그럼 제 매수인은 언제 오시죠?"
5인의 매도인들은 하수영이 누구손님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눈치를 살폈고, 우형신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사장님들, 매수인은 이분 혼자입니다. 이분이 사장님들 매물을 전부 사실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매도인들은 화들짝 놀라서 하수영을 다시 바라봤다.
평범해 보이는 이 젊은 청년이 자신들의 매물을 전부 쓸어 담겠다니.
"제가 청담동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아서요. 이렇게 좋은 매물들을 얻게 돼서 기분이 좋네요."
"자, 죄송하지만 먼저 오신 사장님 들부터 차례차례 계약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하수영은 그들과 차례차례로 계약을 했다.
늦게 온 매도인들은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진귀한 경험은 다시 못 겪을 거라며 재미있게 여겼다.
"은행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이거 뭔가 우습네요."
"에이, 조금만 더 일찍 올걸. 이거 내가 마지막이잖아."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하수영은 계약을 마쳤다.
먼저 계약을 마친 매도인들도 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며 구경했다.
50대 중년 여성 매도인이 신기해 하며 물었다.
"그럼 이분은 오늘 하루 얼마 치를 계약하신 거예요?"
"그건 영업상 비밀이라……."
우형신은 그렇게 말하며 하수영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발설하면 영업 윤리 위반이지만, 하수영이 직접, 그것도 개별금액이 아니라 총액을 말하는 것은 아무 문제 없다.
하수영은 시선을 느끼고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말해달라는 분위기네요. 대충 2,200억 정도 됩니다. 개별 금액은 비밀이에요."
"와…… 겉으로만 봐선 몰랐는데 엄청난 현금 부자셨구나."
"혹시 자수성가하셨나요?"
"반반입니다. 물려받은 게 좀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돈을 좀 불렸죠."
그 말에 다들 끄덕거리면서 수긍했다.
저런 젊은 나이에 저런 큰돈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속증여 말고는 답이 없다.
60대 남성 매도인이 그제야 털어 놓듯이 말했다.
"사실 얼떨떨했습니다. 오늘 여기저기서 갑자기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동안은 입질 한 번 없더니 계약을 하자고요."
"그거 아마 아트락 부지 때문일 거예요. 강남 큰손들이 거기 투자한답시고 죄다 돈을 꽁꽁 묶어두고 있었거든요."
"돈 풀린 거 보니까 아트락 부지 주인이 오늘 최종적으로 결정이 났나 보네요."
"오늘 하루만 제안이 네 개가 왔는 데, 여기 젊은 사장님이 잔금일을 무조건 맞춰주겠다고 하셔서 결정했어요. 내가 지금 당장 현금이 급하거든."
매도인 중 세 명은 아트락 부지 때문에 돈이 묶여 있던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앞뒤 사정을 아는 우형신은 쓴웃음을 지었고, 하수영도 피식거리며 털어놓았다.
"사실 저도 아트락 부지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공동투자 형식으로 참여하려고 했었죠. 실탄도 잔뜩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저런, 잘 안 되셨나 보네요."
"사기당했어요. 투자자들 모집중개사가 법인 설립하고 출자금 전부 들고 해외로 튀었어요."
"아! 그 이야기 저도 들었어요. 피해 금액이 거의 1조 원 가까이 된 다던데."
"그럼 사장님도 엄청 손해 보셨겠네요?"
하수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예, 손해 좀 봤습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운이 없었다 생각해야죠, 뭐."
"와, 정말 대단하시다. 저라면 그런 큰돈 날리고 열 받아서 잠도 못 잘거 같은데, 표정이 너무 온화하세요."
"어쩜 젊으신 분이 이렇게 화통하시고…… 혹시 여자친구 있어요? 없다면 내 아는 처자 소개라도 시켜드릴게."
하수영은 매도인들과 20분 정도 더 이야기를 한 뒤 자리를 마쳤다.
매도인들이 돌아가고 난 뒤 우형신 중개사가 물었다.
"사장님, 정말 아트락 부지 주인이 정해진 겁니까?"
"네, 그렇다네요."
"갑자기 계약 추진하셔서 짐작은 했습니다. 그럼 누가 아트락 부지를 산 겁니까?"
"뉴월드그룹에서 진작 계약했었답니다. 최동주 그 인간이 투자자들 모집하기 전에 이미. 부지 소유주대리인이 최동주 절친이었다네요."
"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우형신은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최동주 그 인간을 소개한 덕분에 사장님만 큰 피해를 보셨네요."
"그게 어디 중개사님 탓인가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살다 보면 다 이런 일도 겪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하수영은 냉수를 한 컵 마시고 말을 이었다.
"조일원 사장님이 알려주시더라고요. 뉴월드그룹에 부지 이미 팔렸다고, 지금 대리인도 최동주와 공범이 아닌가 하고 검찰에 제보했대요."
"공범일까요?"
"공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근데 저한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수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창밖을 노려보았다.
우형신은 그가 어디를 보는가 생각하다가, 이내 아트락 부지가 있는 방향임을 깨달았다.
"문제는 제 4호기가 될 수 있었던 귀염둥이를 빼앗겼다는 거죠. 이런게 바로 대기업의 횡포가 아니고 뭐겠어요? 아, 진짜 양심이 있으면 그런 대기업들은 골목상권은 탐내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우형신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겨우 말했다.
"아트록 부지가 골목상권 수준은 아닌데요?"
다음 날.
박 사장 투자그룹에 연락을 해보니, 이미 그곳은 발칵 뒤집혀져 있었다.
그들도 아트락 부지가 이미 대기업에 팔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조일원이 헛된 정보를 알려준건 아니었다.
-……그래서 투자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해야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투자해야 할 대상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니."
-사장님은 출자하기 전이라 그나마 다행이네요. 투자금 반환 절차를 겪으실 필요 없으니. 지금 다른 분들은 하루라도 빨리 출자금 돌려달라고 난리입니다.
"그거 며칠 걸리죠?"
-네, 아무래도 신탁을 해놓은 상태라 여러 가지 법적 절차가 필요해서요. 법인 해산도 해야 하고, 지금 투자자분들 모두 멘붕에 빠진 상태입니다.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혹시 다음에 좋은 기회가 생기면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얼마든지 연락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박 사장과 투자 건을 그렇게 정리한 하수영은 곧바로 조일원에게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았다.
-나야 지금 당장에라도 좋지. 어디서 볼까?
"지금 저 있는 곳으로 오실래요? 청담동입니다."
-주소 보내줘.
빌딩 3호기(아이돌 가수 강훈으로부터 사들인) 1층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하수영은 톡으로 주소를 보냈다.
약 20분 후 조일원이 동네 산책을 나가는 편안한 차림으로 도착했다.
"이거 무슨 아이돌 가수가 주인이라는 빌딩 맞지?"
"그랬죠."
"내가 하 사장한테 뺏긴 그 매물이구만. 이렇게 좋은 빌딩인 줄 알았으면 무리해서라도 살걸, 괜히 망설여가지고."
"와보지도 않으셨나 보네요."
"나이가 있어서 이제 발품은 잘 안팔아. 돌아다니는 게 힘들어서, 그냥 중개사 말 듣고 토지대장하고 사진 같은 거 보고 정한다네. 그나저나 하 사장 건물이라서 여기로 부른 거구만."
"아마 한동안은 여기에서 머무르게 될 거 같습니다. 집에 들어가도 딱히 할 게 없거든요."
편안하게 앉은 조일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카페 젊은 여사장이 이쪽 테이블을 유독 신경 쓰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임차인이 하 사장 눈치를 너무 보는 거 같지 않아?"
"제가 뭐 주문하려나 보는 겁니다. 조 사장님 오시기 전에 벌써 다섯잔이나 마셨거든요."
"커피를 다섯 잔이나? 그러다가 건강 해치면 어쩌려고."
"제가 원래 당과 카페인은 달고 살아서요. 건강 해칠 걱정은 없어요. 아버지가 워낙에 튼튼한 몸을 물려 주셔서요."
정확히는 몸이 아니라 엘릭서를 물려준 것이지만,
"조 사장님께 제가 크게 백턱 내야겠어요. 아트록 부지 끝난 거 일찍 알려주신 덕분에 다른 좋은 매물들을 주워올 수 있었거든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야. 그래도 하 사장 자네가 아트록 부지 사고, 나도 옆에서 대리만족 좀 느끼려 했는데 아쉬워."
조일원은 커피와 빵을 시켰고, 둘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아니, 그런 대기업이 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런 골목상권까지 탐을 내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게 나라입니까?"
"어쩔 수 없지. 근데 1조가 넘는 사업인데 골목상권이라고 하기에는 좀……."
"아무튼 제 4호기는 영구 결번입니다."
"4호기? 영구 결번?"
"네, 지금은 우리 4호기를 뉴월드그룹에 맡겨두지만, 나중에 다시 찾아올 겁니다."
하수영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조일원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고 마른침을 삼켰다.
"뉴월드그룹을 통째로 사들이는 한이 있더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