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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24화 (124/1,270)

프랜차이즈 갓 124화

28장 꿩 대신 메추리알(1)

-네?

우형신 중개사의 목소리에 당황함이 묻어났다.

큰일이 나서 호들갑을 떨었는데, 정작 구름 위로 붕 뜬 듯한 대답이 돌아왔으니.

내 돈 먹고 튄 애들치고 패가망신 안 한 놈이 없다고 5억이 날아간 상황에서 그런 태연한 대답을 들으니, 황당할 만도 할 것이다.

'사장님한테는 5억이 별로 큰돈이 아니라서 저렇게 느긋하신 건가?'

그런 생각도 잠깐 해봤지만, 하수영의 대답을 곱씹어 보면 그건 아닌 듯하다.

"두고 보세요. 제가 가진 재물운이 엄청 큰 불운으로 작용해서 그 사람 인생을 저주할 겁니다."

-그,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면야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금 투자자들이 검찰 고소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국제 지명수배 조치도 시행할 예정입니다. 사장님도…….

"아, 물론 저도 고소장에 이름은 적어야죠. 그나저나 아트락 부지 공동투자는 이제 물 건너간 셈인가요?"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뉴프론트그린에 돈 넣으신 투자자분들, 여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낸 것일 텐데요.

"그래도 패가망신하는 분들은 없겠죠?"

-여윳돈 넣은 거라서 그거 때문에 당장 망할 분들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너무 큰돈이라서 울화병이 심하게 날 수는 있어요.

"아트락 부지는 결국 저 혼자 개인 플레이해야 하는 걸까요?"

-가능하시겠어요?

"일단 6,700억까지는 이번 달 안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래처에서 2,600억 정도 빌려주기로 했어요. 근데 겨우 이 돈 가지고 개인 플레이할 수 있을지는 좀……."

-그, 그러시군요.

우형신은 할 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당황했다.

무슨 2,600억 원 빌리는 걸 친구한테 점심값 빌리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다.

"아트록 부지에 관련된 정보는 더없나요? 물밑에서 오가는 거래 이야기라던가, 뭐 그런 거요."

-대리인이 다양하게 접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실은 저도 만나기 위해서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터져 버렸으니…

최동주가 돈을 들고 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짜 그분, 아니, 그 새끼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청담에서 부동산 중개업만 몇 년을 했는데, 청담에 모든 기반이 있는 새끼인데, 이렇게 배신을 때릴 줄이야.

"9,805억 원입니다. 1조 원이 조금 못 되는 돈이에요. 충분히 눈이 돌아갈 수 있죠."

-그 새끼 반드시 잡아서 돈 토해내게 만들어야 합니다.

"글쎄요, 이 나라가 경제범죄에 관대한 걸 보면 돈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도 제 돈 5억을 넣어둬서 그나마 다행 아닙니까?"

-5억밖에 안 넣어둬서 다행이라고 해야 올바른 맥락 같은데요.

"그 5억의 저주 때문에 그 사람이 패가망신 당할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5억 넣어둬서 다행이라는 뜻입니다."

-…….

우형신은 하수영의 말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 * *

하수영은 검찰에 출석해서 고소장에 이름을 올렸다.

최동주 사기 사건이 배당된 수사부는 피해자들의 눈물과 통곡, 고성으로 아비규환이었다.

본래라면 거들먹거리며 시퍼렇게 날을 세울 검사들도, 수백억을 날린 사람들 앞에서는 차마 권위를 떨지 못했다.

"그 새끼 꼭 잡아주십쇼, 검사님!

그거 우리 딸 시집보낼 혼수 자금이었단 말입니다!"

"내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최동주 그 새끼 뒈지는 꼴은 꼭 보고 가야겠소!"

조서를 작성하고 나오던 하수영은 조일원이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생각보다 안색이 나쁘지 않았다.

"하 사장도 조서 쓰러 왔어?"

"네. 그래도 할 건 해야죠."

"하 사장은 참 재물운이 따르는 거 같아. 결과적으로 하 사장은 손해 거의 안 보고 끝났잖아."

"조금 어처구니가 없긴 하더라고요. 감히 제 돈을 먹고 튀다니, 신선하긴 했어요."

"우리 하 사장은 이런 경험이 처음인가 봐?"

"뭐, 이번 생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조 사장님은 괜찮으신 건가요?"

하수영이 알기로 조일원은 200억원 정도를 이번에 날렸다.

그가 아무리 재력가라 해도 적은 돈이 아닐 텐데,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니.

"괜찮을 리가 있나. 지금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최동주 그 새끼가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당장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목소리 톤하고 말하는 내용하고 전혀 매치가 안 되는데요?"

"화난다고 얼굴 붉히고 목소리 쥐어짜고 그래 봤자 나만 스트레스받는 거지. 이럴수록 더 평온함을 유지해야 돼."

조일원은 주머니에서 조그만 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마셨다.

"최동주 그 새끼, 처음부터 작정한 거야. 투자자 모으기 전에 이미 상가하고 집하고 죄다 처분한 상태였다네."

"그랬습니까?"

"자산 조회만 해봤어도 그 새끼가 튀려고 벼르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하긴, 설마 청담에서 오래 장사한 새끼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 칠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지."

조일원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9,800억이면 영혼도 팔 수 있는 돈인데, 최동주 그놈이 눈 돌아갈거라고 아무도 의심 안 한 게 병신 짓이었지. 다들 아트락 부지에만 눈이 멀어 있었으니까."

"그 사람은 얼마 못 가서 패가망신할 겁니다. 그 돈 가지고 잘 먹고 잘살지는 못할 테니까 그거 하나는 위안 삼으세요. 돈을 되찾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뭘 믿고 그렇게 장담하는 겐가?"

"글쎄요, 권선징악?"

"이 사람아. 세상에 권선징악 같은 게 어딨어? 세상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칙으로 돌아간다네."

"나중에 제 말대로 되면 한턱 쏘시는 겁니다."

"자네 말대로만 된다면 한턱이 아니라 백턱도 쏘지. 아우, 그나저나 내 돈……."

조일원은 다시 울화가 치미는 듯 가볍게 이를 갈았다.

그래도 200억을 날리고도 저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그나저나 아트록 부지 투자는 물건너갔구먼."

"이 와중에 투자 실패를 걱정하시는군요."

"아깝잖아. 큼지막한 먹이였는데. 혹시 하 사장은 아트록 부지에 계속 달려들 생각 있어? 돈도 거의 안잃었으니 여유가 제법 될 텐데?"

하수영이 차후 5,000억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을 기억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왜요, 같이 하시게요?"

"여윳돈 다 쥐어짜 내서 이제 투자 크게는 못 해. 그래도 20억 정도는 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소액이라서 하 사장이 받아주려나 모르겠어."

"아직 완전히 손을 턴 건 아닙니다."

"5,000억이 적은 돈은 아닌데, 그래도 그거 가지고는 힘들 거야. 뉴월드그룹에서 지금 제대로 달려들려고 하나 봐."

뉴월드그룹과 라테그룹이 부지를 탐낸다는 이야기는 이미 하수영도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대기업인 까닭에 의사 집행이 늦고, 부지 소유주는 하루빨리 땅을 처분해야 하는 입장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개인투자자들이 대기업들보다 앞서서 투자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인데.

"어때, 받아줄 텐가?"

"죄송하지만 너무 소액이라서 곤란하네요."

"역시 그렇지?"

조일원은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던듯이 피식 웃다가 표정을 진지하게 잡고 물었다.

"제대로 달려들 거면 내가 옆에서 좀 도와줘도 될까?"

"돕는다면, 어떤 식으로요?"

"정보 같은 거 물어주고 사람도 소개해주고 뭐 그런 거지. 이래 봬도 내가 청담에서 평생을 살았어. 아, 최동주 꼴 나는 거 아닌가 걱정은 말게."

"그런 걱정은 안 합니다. 그냥 왜 그러시는지 궁금해서요."

조일원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왕 망한 거, 하 사장 통해서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보려는 거지, 뭐. 하 사장이 잘 돼서 아트락 부지 손에 넣으면 나중에 내 지인이 거기 소유주다, 뭐 이렇게 자랑이라도 하고 다닐 수 있지 않겠어?"

"재미있겠네요. 그럼 도움 좀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제가 인맥이 거의 없어서 조금 힘드네요."

"알았어, 그럼 내가 도와주지. 수고 비는 안 줘도 되네."

"나중에 잘 되면 백턱이는 천턱이든 사겠습니다."

"멘트가 시원해서 좋군."

* * *

JM식품이 빌려주기로 한 2,600억원은 일단 보류했다.

대신 언제든 바로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양해는 구해 놓았다.

'느낌이 너무 안 좋은데."

JM식품에서 빌리기로 예정한 돈까지 합치면,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은 6,700억 원 정도.

하지만 아트락 부지는 토지 매입가만 최소 7,500억 원.

여기에 경쟁을 통한 프리미엄까지 붙으면 1조 원은 가뿐히 넘어설 수도 있다.

'너무 돈이 없어. 이거 곤란한데…….'

S은행에서 대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회사 주식의 담보 가치는 충분하지만 목적이 부동산 투자이기 때문에 대출이 거절되기 때문이다.

'진짜 돈 나올 데가 더럽게 없네.'

라면을 팔아서 번 이익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지만, 올해 매출 1조원을 찍어봐야 600억 정도다.

그중 하수영의 몫은 540억 원 정도, 배당시 세금을 제하면 290억이 조금 넘을까?

'진짜 차세대 CPU 몇 개 설계해서 윈텔에 팔까? 아, 근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만들어야 하나?'

이번 생은 못 다한 귀농 라이프에 충실하겠다는 꿈과 조금 타협을 해야 하는 것인가?

가슴 속에 번뇌가 가득하다 보니,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자 로봇들이 알아서 채취, 수확, 포장을 하도록 자율화 시스템을 갖춰놓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라면 생산에도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사장님, 저번에 나온 그 매물 5개 아직도 주인 못 찾았죠?"

"네, 여전히 계류 중입니다."

"그렇다는 건 강남 부동산 큰손들이 여전히 아트락 부지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뜻인데……."

"그렇죠."

최동주와 엮이지 않은 다른 큰손들이 물밑에서 한창 교섭 중일 것이다.

"대리인은 만나보셨나요?"

"아직 일정을 못 잡았습니다. 당최 연락이 안 됩니다."

"이거 안 되겠어요. 다른 투자자들 사이에 끼어서라도 아트락 부지 투자에 참여해야겠어요."

"안 그래도 제가 말을 터 둔 곳이 있습니다. 거기도 투자금이 8,000억원 이상 모였다고 하네요. 사장님이 참여하신다면 아마 좋아할 겁니다. 지금 바로 연락할까요?"

"오, 그래요? 좋습니다. 바로 자리 잡아주세요."

어쩔 수 없다.

시간은 촉박하고 당장 혼자서 부지를 집어삼킬 수 있는 돈을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이런 식으로 투자하고, 후일을 도모할 수밖에.

하수영은 다른 투자그룹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도 투자 참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최동주 그 양반이 돈 들고 날랐다지요? 우리는 그럴 일이 없습니다. 철저히 신탁처리를 해서 운용하니까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첫날은 일단 미팅을 하고, 다음 날 만나서 정식 투자 계약 및 출자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날 저녁, 조일원한테서 연락이 왔다.

-하 사장, 결국 박 사장 투자자그룹에 끼기로 했다면서?

"네, 개인플레이는 도저히 안 되겠네요. 돈이 너무 없어요."

-아직 출자는 안 했지?

"내일 정식으로 투자 계약하고 출자하기로 했습니다."

-하지 말게. 그럴 필요 없어.

"설마 그쪽도 문제가 터진 겁니까?"

-그건 아니고, 내가 알아봤는데 아트락 부지 이미 예전에 팔렸어.

"네? 뭐라고요?"

-최동주 그 새끼가 첫 모집하기도 전에 이미 팔렸더라고. 뉴월드그룹에서 샀대.

"잠시만요. 금방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하수영은 곧바로 우형신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 계류 중인 매물 5개, 지금 빨리 계약할게요. 당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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