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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23화 (123/1,270)

프랜차이즈 갓 123화

27장 다 함께 건물주(4)

-그러게 말입니다. 이 좋은 매물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지다니요.

저도 지금 당황하는 중입니다.

"그거 다 합치면 호가가 얼마가 되죠?"

-지금 나온 매물이 총 5개인데요, 전부 합치면 2,340억 원입니다. 현재 매도인이 부른 호가로만 따졌을 때 이야기입니다.

"……2,340억 원이라고요."

힘이 축 빠진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아트락 부지 단독 매수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좋은 매물들이 하필이면 이럴 때 쏟아지다니.

'어떡하지?'

하수영의 머릿속으로 온갖 고뇌와 갈등이 오갔다.

'눈 딱 감고 아트락 부지 단독 매수는 포기할까? 그냥 저 매물 다섯개 주워 담고, 남은 돈으로 아트락공동매수에 처음부터 들어가?"

부지 매입을 조건으로 5,0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약을 하긴 했지만, 특약조항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투자 방법 변경이 가능하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다른 투자 자들도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부 다 갖는 방법은 정녕 없나? 기어이 내가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런 건 너무 싫다.

어떻게 해서든 모두 다 가지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당장 큰돈이 필요하다.

하수영은 이번 삶을 시작하면서 세운 자신의 굳건한 원칙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 그냥 눈 딱 감고 반도체 사업하나만 해볼까? 한 10년쯤 앞선 아키텍처 몇 개만 설계해서 인텔이나 AMD에 권리 받고 팔면 될 거 같긴 한데.'

대신 CIA나 미국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겠지.

'허구한 날 찾아와서 미국으로 귀화해 달라고 징징거리는 거 들어주는 것도 이제는 못할 일이라고, 지겨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전성렬과 정서희가 국제자원투자회사의 도움으로 정유사업을 하겠다고 한 걸 찬성한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그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국내 정유회사들이 얼마나 독한 것들인데.

아무리 국제자원투자회사의 지원이 있어도, 기반 하나 없는 초보가 호락호락하게 침투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사장님, 그 매물들 계약이 당장 급한 겁니까? 지금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인가요?"

-그거야 제가 정확하게 알 수 없죠. 구매력 있는 잠재 수요층을 제가 전부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충 분위기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생각보다 입질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가격이 워낙 센매물들인 데다가, 지금 아트락 부지 때문에 강남 큰손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다 쏠려 있어서요.

아마 다들 하수영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트락 부지 때문에 실탄을 아끼고 비축해야 하는 이 판에 왜 저 매물들이 쏟아져 나왔나 하고 말이다.

-일단 아트락 부지 거래가 결론이 나야 그 매물들의 주인도 나타날 거라고 봅니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지금 죄다 자기들끼리 뭉쳐서 아트락 부지 투자를 준비하며 서로 눈치 게임하고 있거든요.

최동주가 투자자를 모아 법인을 세운 것처럼, 다른 개인 큰손들도 자기들끼리 협업해서 아트락 부지를 손에 넣으려는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어떤 생각인데요?"

-아트락 부지에 눈이 쏠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매물 다섯 개를 저렴하고 편안하게 쓸어 담을 수 있다고 봐요. 강남의 눈이 모두 아트락 부지에 쏠려 있으니까요.

"흠……."

-사장님이 냉정하게 아트락 부지를 혼자 집어삼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일단 이 매물들을 쓸어 담으시고 남은 돈으로 뉴프론트그린에 올인하시는 게 어떨까 하네요.

나쁜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합리적인 지적이자, 조언이었다.

다만 아트락 부지 같은 귀하디귀한 매물을 혼자 집어삼킬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에, 하수영의 망설임이 컸을 뿐이다.

"조금 생각을 해볼게요."

-네, 그러시죠.

하수영은 전화를 끊은 뒤, 다시 한번 냉정하게 자신의 재무 상황을 확인했다.

"어디 가서 수천억 대출이라도 받지 않는 이상, 몇 달 안에 뉴프론트그린을 나 혼자 넘어선다는 건 불가능해."

다른 대기업들이 나서는 경우는 따질 필요도 없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뉴프론트그린을 절대로 못 이긴다. 가슴 아프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어디까지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다는 말이지."

하수영은 굳게 결심을 하고 스마트폰 연락처를 뒤졌다.

[S은행 박행식 지점장]

[S은행 정준수 이사]

두 번호를 번갈아 바라보던 하수영은 정준수 이사 연락처에 통화를 시도했다.

-네, 고객님. 정준수 이사입니다.

"안녕하세요, 하수영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제가 연락을 자주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번 주에도 연락 주셨잖아요."

-네네, 별일은 없으신가요? 저번에 주신 송이버섯은 정말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가족들이 너무 맛있다고 참 좋아하더군요.

"나중에 놀러 오시면 또 드리죠. 저희 집에 송이 같은 건 워낙 넘쳐 나서요."

-아이고, 나중에 뵈면 이번에는 제가 대접을 해야죠.

일상 잡담을 조금 나눈 후, 하수영은 본론에 들어갔다.

"제가 S은행에서 대출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회사 주식을 담보로 해서 말입니다."

-대출이라고 하셨나요?

정준수의 목소리에 다소 긴장감이 실렸다.

그는 하수영의 통장 잔고를 알고 있다. 4억 5,000만 달러를 원화로 환전한 사람이었으니까.

심지어 2주 후에 환전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에서 금리 인하를 발표한 일도 겪었다.

'우리 고객님이 대출을 원하신다면 몇백억대 수준은 절대 아닐 텐데.'

그런 생각 때문에 자연히 긴장감이 붙었다.

-일단 금액은 어느 정도를 원하시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저야 마음 같아선 1, 2조 원 정도는 받고 싶죠."

역시 우리 고객님이셔!

시작부터 조 단위를 거침없이 내지르시다니!

정준수는 하수영이 너무 큰 금액을 부르자 기가 막히기는커녕, 오히려 야릇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고객님 회사는 워낙 매출과 이익률이 높으니 주식을 담보로 한다면 대출 한도가 꽤 높게 나올 겁니다. 혹시 대출 목적이 무엇입니까?

"부동산 투자요."

-아…….

순간 정준수가 바람 빠진 듯한 소리를 냈다. 불길한 느낌을 받은 하수영이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시죠?"

-고객님, 구체적으로 어떤 투자를 하려고 하시는지 먼저 여쭤 봐도 될까요? 대출 실행 가능성을 점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라서요.

"그게 말이죠. 청담동에 아트락 타운이라고 매물로 나온 부지가 있는데……."

대강 이야기를 듣고 난 정준수가 죄송함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어렵겠습니다.

"네? 왜요?"

-부동산 투자 목적이라면 대출이 안 됩니다. 특히 법인이라면 더욱 규제가 심합니다.

"……아."

하수영은 낮게 탄성을 냈다. 정준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환매조건부로 주식을 파시는 건 어떨까요? 저희 은행에서 사드릴 수도 있고, 아니면 살 만한 다른 기관을 소개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니죠. 원래 거점은 끝까지 지켜내는 겁니다. 담보로 잡는 거라면 모를까, 일시적이라고 해도 파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이에요."

-그러시다면 지금으로서는 도와드릴 만한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준수는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듯이 거듭 말했다.

"혹시 상황이 달라지면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도 다른 수단이 정말 없는지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전화를 끊은 뒤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

나라에서 법인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거야 당연한 것이지만, 막상 불가능하다고 하니 많이 아쉽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네. JM식품은 어떨까?"

하수영은 JM식품을 떠올렸다.

이제 라면사업 제휴를 계기로 한 배에 탄 사이다.

JM식품에 넌지시 말을 꺼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는 곧바로 정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사장님, JM식품 말인데요."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JM식품에 지금 여유 자금이 얼마나 있을까요? 쓸 데가 없어서 통장에 처박혀 있는 현금 말이에요."

-꽤 될걸요? 그래도 3,000억 원정도는 여유 자금이 있을 거예요. 워낙 현찰을 많이 만지는 업종이다 보니까요.

"…겨우 3,000억."

하수영은 정서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작게 중얼거렸다.

3,000억이라고 하니 뭔가 맥이 빠진다. 그래도 식품업계의 빅3 기업이니만큼 좀 더 많을 줄 알았는데.

'하긴, 제조업이니 어쩔 수 없겠지. 이익률이 한 4%나 되려나?'

일 년에 매출 3조 원을 찍는다고 가정하면, 남는 것은 1,200억 원 정도다. 제조업 특성상 이익률이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언제든 쓸 수 있는 여유자금이 3,000억 원이나 있다는 것은 재무 상태가 괜찮다는 뜻이다.

배당할 거 배당하고, 쓸 거 쓰고, 투자할 거 투자하고 난 뒤에도 3,000억 원이나 상시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혹시 제가 JM 식품에서 돈 좀 빌릴 수 없을까요?"

-사장님이 부탁하면 흔쾌히 빌려 줄 걸요. 아니, 그럴 필요 없이 황금비단우산버섯 대금을 미리 땅겨받는 식으로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3,000억 원 전부 다요."

-네?

정서희는 그런 대답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잠시 말이 없다가, 이윽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 정도면 버섯 대금 선불로 받는 식으로는 힘들 거예요. JM식품도 리스크가 있으니까요. 차라리 담보와 보증을 세우고 빌리는 식이라면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데요.

"뭐가 됐든 저는 돈을 빌릴 수만 있다면 좋습니다. 주식을 파는 게 아니라면요."

-사장님이 가진 회사들 지분을 담보로 잡겠다고 하면 이야기는 될 것 같은데, 한 번 말이라도 꺼내볼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 * *

며칠 후 정서희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일단 이야기는 잘 됐어요.

라면 시장에서의 재기를 바라는 JM식품은 하수영과 끈끈한 연을 맺고 싶어 했다.

3,000억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좋은 조건으로 빌려달라는 것이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 확실한 담보와 채무이행을 요구했다.

-근데 3,000억 전부는 무리고 2,600억까지 가능하대요. JM식품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여유 자금은 어느 정도 남겨놔야 하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할게요.

그렇게 하수영은 정서희의 중재를 통해 JM식품으로부터 2,600억 원이라는 돈을 빌릴 수 있었다.

JM식품은 1.5%라는 상당히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주었다.

라면 사업제휴 파트너를 지원한다는 분명한 취지가 있었기 때문에, 배임죄를 물고 늘어질 이유는 없었다.

"일단 돈을 마련했지만, 나는 아직 배고프다. 이거 가지고는 아트락 타운을 혼자서 집어삼킬 수 없어."

아트락 타운도 먹어야 하고, 근래 쏟아진 크리스일 타워 등 5개의 우량 매물도 주워 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돈이 모자라다.

또 어디서 돈 나올 구석이 없나 궁리하고 있을 때, 우형신이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사장님, 큰일났습니다!

"설마 저번에 말씀하신 그 매물 5개가 일제히 다 팔렸나요? 아니면 아트락 부지를 누군가가 낚아챘나요?"

-아닙니다! 최동주 사장, 아니, 최동주 그 새끼가 튀었습니다!

"뭐라고요?"

-투자자들 돈 다 들고 튀었단 말입니다! 맞다, 사장님은 5억밖에 안넣으셨죠?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에휴…… 어쩐지 느낌이 쎄하더라니. 결국 이렇게 됐네요. 내심 내 느낌이 틀리길 바랬는데."

-네? 짐작하고 계셨습니까?

"그냥 느낌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토지 매입되면 제대로 투자한다고 했던 거고요. 어쩐지 5억 넣는 것도 아깝더라."

하수영은 우형신이 바로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서늘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 사람도 참 바보네요. 겨우 5억에 자기 인생을 내다 버렸잖아요."

-네? 겨우 5억이라니요?

"제가 말입니다. 천부적으로 재물운이 좀 있어요. 근데 이 운이라는 게 어떤 때는 반대로, 그러니까 저주나 불운으로도 작용을 하더라고요."

하수영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 돈 먹고 튄 애들치고 패가망신 안 하는 사람 못 봤습니다. 제가 굳이 안 건드려도 저절로 자멸하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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