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22화
27장 다 함께 건물주(3)
"네, 맞습니다. 5,000억을 투자할 의향이 있습니다. 방금 말한 그 조건대로라면요."
하수영은 시원스럽게 말했고, 우형 신은 더욱 패닉에 빠졌다.
'5,000억이라고?'
우리 사장님이 그렇게 돈이 많은 분이었어?
최동주도 금액에 놀라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정리하자면 토지 매입이 되면 그때 가서 5,000억을 들고 한 번에 참여하시겠다, 이거군요."
"네, 토지 매입할 때에는 굳이 제 출자금이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하 사장님이 초반에 참여 안 하셔도 토지 매입은 문제없을 겁니다. 하지만 토지 활용을 하려면 하 사장님이 말씀하신 5,000억이 매우 간절해지겠죠."
"그 돈이면 웬만한 공사비는 커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은행 대출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하수영이 내건 투자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초반에 500억으로 참여하느냐.
중반에 1,000억으로 참여하느냐.
종반에 5,000억으로 참여하느냐.
투자금을 가능한 많이 확보해야 하는 최동주 입장에서는 세 번째 선택지가 가장 좋다.
하지만…….
"왜 굳이 이렇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5,000억을 들고 참여하시는 것은 안 됩니까?"
"부지 매입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5,000억을 일시에 쏟아붓기에는 리스크가 커요. 그리고 지금 당장 5,000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지 매입 이후에는 확보가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확실합니다."
"그래도 너무 큰 금액이라……."
최동주가 조금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투자자의 투자 능력을 확인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정말 그런 돈이 있나요?'라고 확인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금액이 커도 너무 크다.
5,000억 원이라니.
개인이 정말 조달 가능한지 의심쩍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금액이다.
"음, 잠시만요."
하수영은 흔쾌히 확인시켜 주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모바일뱅킹에 접속한 그는 법인계좌에 예치돼 있는 금액을 보여 주었다.
"한 번 보시겠어요?"
반신반의하며 계좌를 확인한 우형 신과 최동주는 눈이 찢어질 듯이 놀랐다.
"사, 사천억!"
"법인 돈이긴 합니다만, 법인 소유주가 저 혼자이니 제 개인 돈이나 마찬가지죠."
통장 잔액을 확인시켜 준 효과는 컸다.
최동주의 눈빛에는 더 이상 우려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든든한 물주가 어떻게든 투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결심만이 가득했다.
"그럼 500억 원 정도만 먼저 투자를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몇 달 동안 자금 운용을 해야 할 게 있어서요. 그래서 토지 매입이후에 참여하겠다는 겁니다."
현재 파악된 투자 견적은 1조 350억 원.
하지만 이것은 하수영이 '한 달 안에는 500억까지 가능하다'라는 전제 하에서 낸 견적이다.
하수영이 초기 투자에서 빠지면 9,800억 원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그 돈으로는 투지를 매입하고 난 후 빌딩이나 시설을 지을 자금을 충당할 수 없다.
하수영의 5,000억 출자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음… 그러시면 상징적으로 5억정도만 일단 출자하시는 건 어떨까요?"
"5억이라……."
"사장님 입장에서 그리 큰돈은 아닐 겁니다. 사장님이 투자에 참여한다는 상징성은 필요합니다."
하수영은 최동주를 빤히 바라봤다.
'이 양반 느낌이 살짝 쎄한데? 에이, 5억이면 날아가도 전자노예들이 버섯 몇 박스 더 포장하면 되니 뭐. 귀찮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말로만 나중에 5,000억 투자한다고 하고 나중에 말을 바꿀까 봐 걱정되시는군요. 이해합니다. 그럼 일단 말씀대로 5억 정도는 상징적으로 투자할게요. 투자계약서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는 해줘야 다른 투자자들도 믿고 함께 할 것이다.
하수영은 5억 출자, 그리고 토지 매입 이후 4,995억 원을 추가로 출자하기로 약속을 했다. 투자계약서는 법인 설립 시에 쓰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형신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큰돈을 굴리시는 분인 줄미처 몰랐습니다."
"별로 큰돈 아닙니다. 3호기 같은 빌딩 몇 개 더 사면 다 없어질 돈이에요. 청담동 땅값이 어디 보통 땅값인가요. 대충 3.3제곱미터당 평균 7천이라 치고, 2.33제곱킬로미터에서 절반만 사려고 해도 24조 7,000억 원은 있어야 해요."
"……?"
"땅값만 따졌을 때 이야기고, 또 사다 보면 나중에 프리미엄도 붙을 테고, 돈이 있어도 땅을 사지 못하게 될 거예요. 어휴, 상상만 해도 갑갑하네."
하수영은 투덜거렸다.
"청담동을 송두리째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1경 달러를 버는 게 더 쉬울 걸요?"
"청담동을 송두리째 산다고요?"
"몇 번 말씀드렸잖아요. 청담에서 제일가는 건물주가 되는 게 제 꿈이라고요."
"그게 어떻게 해서……."
제일가는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청담에서 가장 부동산을 많이 가진 뭐 그런 땅 주인이 되려는 건 줄 생각했다.
그런데 청담동을 송두리째 사들이는 게 목표인 모양이다.
"불가능할 겁니다. 상가만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주택도 있어요. 집주인들이 절대 팔려고 안 할 겁니다."
수십억대, 백억대 이상의 초고가 저택에서 사는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알아주는 부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자기 집을 팔 리가 없습니다."
"50억짜리 주택을 500억에 산다고 해도 안 팔려고 할까요?"
우형신은 말문이 턱 막혔고,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걸 갖고 있지만 팔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가 제시한 가격이 너무 적은 건 아닌지 생각을 해봅시다."
"그야 50억짜리 집을 500억에 산다면 아마 죄다 팔려고 하겠지만, 그럼 사장님이 너무 손해잖아요. 그런 식으로 청담동을 송두리째 살 거라면, 정말 천문학적인 돈이 있어야 할 겁니다. 국가 전체 예산 정도는 되어야 할 거예요."
"그래서 말했잖아요. 일단은 꿈이라고요. 꿈을 꾸는 건 자유 아니겠어요?"
우형신은 말문을 열 수 없었다.
덤덤히 말하는 하수영의 표정에서는 한 올의 농담기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언젠가는 이루고 말겠다는 진지한 의지가 느껴졌기에, 우형신은 그저 마른침만 삼켰다.
"그리고 바로 안 지른 건 다른 이유도 좀 있습니다. 사실 이게 가장 크죠."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음, 아트락 부지를 저 혼자 먹고 싶거든요."
"……."
우형신은 이 바닥에서 나름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 말에서 대번에 하수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정보 습득을 위해 일단 발을 담그신 거군요."
"네,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공동투자 형식으로 참여해야겠지만, 최대한 제가 혼자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지 매입 이후에 몰아서 돈을 넣는다고 한 거예요."
법인이 하수영보다 한발 먼저 부지 매입에 성공한다면, 그는 법인을 통해서 투자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최선책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를 대비해서 차선책을 남겨둔 것이다. 그 비용이라 생각하며 5억은 그다지 비싼 게 아니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 투자는 근데 무리이지 않겠습니까? 토지 매입에만 최소 7,500억 원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대기업들도 그 부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땅 주인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테니, 가격이 더욱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전부지처럼 평당 4억 넘게 받으려고 하지는 않겠죠. 만약 그렇게 되면 진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한다.
우형신은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어진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불로장생초라도 키워서 재벌 회장하고 딜 들어가야겠죠. 이거 줄 테니까 나한테 되팔라고."
"……네?"
"아니면 반도체나 에너지 산업체 차려서 돈을 긁어모은 다음에 그 회사들을 압박해야죠. 나한테 다시 되팔지 않으면 너네 회사 망하게 할 거야, 뭐 그렇게요. 사실 이번 생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냥 조용조용하게 숨어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단 말입니다."
우형신은 농담을 너무 리얼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수영이 진심으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걸 새카맣게 몰랐다.
'농사나 지으면서 힐링 농촌 삶을 보내고 싶다고. 반도체 같은 거 잘못 건드렸다가는 또 CIA 삽질하는 걸 봐야 하니까. 이번에는 별로 미국 눈에 띄고 싶지 않은데.'
* * *
법인 설립은 빠르게 이뤄졌다.
투자자들은 저마다 동원 가능한 자금을 출자해서 임대업 법인을 설립했고, 최동주 중개사가 만장일치로 대표이사직을 맡게 되었다.
감사와 이사 등은 주주, 혹은 적당한 외부인을 영입해서 경영진 구색을 맞췄다.
총 출자금은 9,805억 원이었다.
그중 5억 원은 하수영이 출자한 돈이었다.
일부 투자자들은 겨우 5억을 투자 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처음에는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토지 매입의 성공을 정지조건부로 4,995억 원을 추가로 출자한다는 말에 불만은 싹 없어졌다.
추가적인 외부 투자는 이사회 의결로 결정하되 주주총회 승인을 받기로 했다.
토지 매입이 성공하면 하수영은 단독으로 5,000억 원을 출자하는, 가장 큰 사원이 된다.
'뉴프론트그린'
회사는 그렇게 정식으로 출범했다.
* * *
프라임컴퍼니가 한 달에 사 가는 황금비단우산버섯은 대략 130억 내지 160억 원 정도 된다.
농산물이기에 부가가치세는 내지 않으며, 필요경비는 한 달에 5억 정도 공제한다.
그마저도 세무사가 눈물겹게 쥐어 짜 내서 만든 경비 내역이었다.
"도저히 경비로 깔 만한 내역이 없습니다. 더 이상 경비 처리를 하면 국세청에서 조사 들어올 겁니다."
50명가량 되는 직원들의 월급, 각종 복지비용,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필요 지출.
그것들을 다 까고 까서 만든 게 5억이라는 비용이었다.
"이거 내년에 법인세 폭탄 좀 맞을 겁니다."
"원래 세금 폭탄은 크면 클수록 기분 좋은 겁니다. 내가 이만큼 쩔어 준다는 증거거든요."
"……한국 모든 부자들이 사장님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한결 살기 좋아질 것 같네요."
"어차피 내는 세금인데 기분 좋게 내죠, 뭐. 아, 그리고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절세와 탈세의 구분이 모호할 때는…"
"네, 칼같이 법대로 하라고 하셨죠.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책잡히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표적 세무조사 들어와도 먼지 한 톨 안 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표적 세무조사를 왜 걱정하는지 세무사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오가는 돈이 워낙에 크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국세청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국세청은 합법적으로 오가는 큰돈의 흐름은 귀신같이 찾아내서 지켜 본다.
"지금 가진 돈으로 어떡하면 뉴프론트그린이나 다른 대기업들을 제치고 내가 아트락 부지를 꿀꺽할 수 있을까? 정말 방법이 없으려나?"
하수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다른 투자자들과 공동으로 아트락부지의 땅 주인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결과다. 어떻게든 자기 이름 석 자만 토지대장부에 올리고 싶었다.
그때 우형신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네, 하수영입니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니, 이게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도 솔직히 헷갈립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크리스일 타워 아시죠? 그게 지금 급매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S캐슬 빌딩도 매물로 나왔고요. 또 퓨리마스카이 타워도 매물로…….
"뭐라고요?"
진중하게 점찍어둔 매물 이름이 줄줄이 나오자 하수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돈 나갈 데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지금 쏟아져 나오는 거래요? 조금만 참고 있다가 나중에 시장에 나오면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