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20화 (120/1,270)

프랜차이즈 갓 120화

27장 다 함께 건물주(1)

'이민 때문에 재산을 다 정리한다고?'

하수영은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매도인의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평소라면 절대로 시중에 나올 수 없는 매물인 것은 확실하다.

사실 일반적인 청담동 상가 빌딩은 때만 놓치지 않으면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대로 이어온 부자 집안에서 소중히 간직해 온 미술관 부지 같은 것은 돈이 있어도 못 구한다.

그 집안에서 절대로 매물로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종갓집에서 선산을 매각하는 일이 좀처럼 없는 것처럼.

'탈세 때문에 정부에 찍혔다라…….'

대대로 이어온 큰 부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재벌이 아닌 부자는 의외로 사회적으로 큰 힘을 쓰지는 못하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다.

'땅값만 최소 7,500억 원.'

3.3제곱미터당 1.1억인 데다가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가격도 엄청났다.

'그 자리에는 진짜 뭘 지어도 잘될 텐데 말이야. 하다못해 미니 코엑스몰 같은 거라도 지으면…… 근데 그러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지?'

기존 건축물을 철거하는 비용, 새로운 시설을 설계하고 준공하는 비용까지 더해서 계산을 해야 한다.

'일단 1조는 확실히 넘어갈 테고.'

땅만 사서 묵혀둘 게 아니라 활용을 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니, 예상 소요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지금 내 통장에 있는 건 달랑 4,050억 원인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돈이 없다는 게 이처럼 사람을 미치게 만들 줄이야.

'차라리 대출이라도 알아봐?'

"제가 체크해야 할 조건 같은 건 없나요?"

-매도인이 속전속결을 원하고 있어서요. 계약 체결하고 석 달 안에 잔금을 지불하는 조건입니다.

"또 속전속결이네요. 그래도 이번에는 2주는 아니고 석 달이나 넉넉하게 주는군요."

-매도인이 이거 말고도 다른 국내자산을 처분 중이라는 말이 있어요. 정말 이 나라를 뜨려는 게 맞는 듯 싶습니다.

"매물은 진짜 탐이 나는데, 하……."

-그래서 제가 좋은 매물이라고는 말씀을 못 드린 겁니다. 너무 덩치가 커요. 개인이 삼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중개사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변했다.

"뭐죠?"

-혹시 공동구매 의향은 없으신가 해서요.

"……흠."

-지금 청담에서 중개사 한다는 사람들도 눈이 뒤집혀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어요.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매물인데, 개인이 소화하기에는 버겁죠.

사실 버거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런 매물을 소화하려면 적어도 손꼽히는 부동산 재벌은 되어야 한다.

-지금 투자를 희망하는 큰손들은 여럿 있거든요. 그래서 중개사들 단톡방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서로 뭉쳐서 법인을 세워서 투자하는 형식으로 가는 게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단순하지만 좋은 발상이었다.

-이런 매물은 아무래도 법인의 소유관리로 들어가야죠. 뉴월드와 라테 그룹에서도 탐을 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투자자들은 더더욱 빨리 움직이려 하고요.

"대기업에서도 탐을 내고 있다면 서두르긴 해야겠네요."

-다행히 대기업들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 죠. 최소 1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큰 사업 아닙니까. 개인투자자들은 그 점에서 유리합니다.

"공동투자를 원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지금 몇 명 정도나 됩니까?"

-20명이 조금 안 될 겁니다.

"너무 많네요."

-그 정도는 모여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예상 투입액이 1조 원이 넘어가니, 사실 근 20명이라는 숫자도 많은 것은 아니다. 한 명당 최소 500억원 이상은 각출을 해야 할 테니까.

'이거 고민이네, 고민이야.'

하수영은 가벼운 신음을 흘렸다.

마음 같아서는 골든 트러플을 한 1톤 정도 팔아서 그 돈을 조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1톤을 다 판다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그렇게 물량을 쏟아내면 골든 트러플 자체가 광어 꼴이 날 수도 있다.

골든 트러플의 가치를 받쳐주는 것은 중동 왕족 등 최상류층 부호들인데, 그들이 실망을 하는 순간 일반트러플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어떻게, 한 번 미팅이라도 해보시겠어요?

"……그러죠. 한 번 날을 잡아주세요."

물론 하수영은 그들과 공동으로 구매할 마음은 없었다. 애초에 이번 생에서 세운 목표가 뭔데.

하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번 싸워서 백번 하드 캐리하는 법이니까.'

잠재적 적군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전략을 세우는지는 알아둬야 할 거 아닌가.

얼굴도 보지 못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본래 사업이란 비정한 법이다.

'의사결정만 빠르게 이뤄지면 한 달 안에라도 계약이 이뤄질 수 있어. 결국 내가 한 달 안에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건데…… 진짜 어디가서 빌리기라도 해야 하나?'

"진짜 살아오면서 돈 걱정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거 같은데, 이번 생은 별걸 다 신경 쓰면서 사는구나."

투덜거림과 달리 하수영의 눈은 웃고 있었다.

"뭐, 이런 게 재밌는 거지."

* * *

아트락 부지 개인투자 희망자들이 모이기로 한 일정이 잡혔다.

일정 장소는 청담의 어느 부동산중개사 사무실이었다.

하수영과 몇 번 거래를 한 우형신 중개사가 같이 이동하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강남에서 가장 오래 부동산을 해온 분이에요. 강남 개발에 굉장히 애착이 큰 분이죠. 본인도 50억 정도 하는 상가 하나 갖고 있습니다."

"알부자시네요."

"직접 부동산 중개업 뛰면서 수집한 정보 같은 걸 잘 활용해서 그만큼 부자가 된 거죠. 사실 이제 그만 편히 살아도 될 법한데 아직도 현역에서 치열하게 사시는 분입니다."

"그럼 그분도 이번 아트락 부지 투자에 달려드실까요?"

"한 40억 정도 쏟으시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진 현금 다 탈탈 털고, 상가 담보로 대출까지 받는대요."

"1조 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인데 40억이라…… 다른 분들에 비해서 작긴 하네요."

"그래도 군말 없이 끼워줄 겁니다. 그 투자자들도 이분하고 오래 거래를 했으니까요."

"일종의 구심점 역할이군요."

"뭐, 그렇습니다."

하수영은 그 구심점 중개사가 운영한다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우형신의 사무실보다 넓이가 네 배정도는 컸다.

투자자로 보이는 이들은 10명이 조금 넘게 도착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분위기가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그들끼리도 이미 오랜 안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강남 부동산 투자 오래 했으면 서로서로 잘 알겠지.'

하수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한 자리에 앉았고, 우형신 중개사도 그 옆에 앉았다.

"형신이?"

"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아이고, 왔으면 나부터 찾지. 그냥 그러고 조용히 앉으면 왔는지 안 왔는지 내가 알 수가 없잖아. 잘 왔어."

백발이 성성한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희끗한 머리카락에 비해 피부는 비교적 탄탄하고 주름도 적은 편이었다. 날씬한 편은 아니지만 나이에 비해서 배가 적게 나오고 체격도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

얼굴만 보면 50 정도 되어 보이지만, 흰 머리카락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백발 남자의 시선이 하수영을 향했다.

"여기 이분이 형신이 네가 말한 그 투자자분?"

"네, 맞습니다. 사장님, 여기 이 분이 제가 말씀드린 최동주 중개사님입니다."

"반갑습니다. 최동주라고 합니다."

최동주는 명함을 꺼내 하수영에게 내밀었다. 명함을 간단히 확인한 뒤 하수영도 인사했다.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명함은 따로 만들지 않아서요."

"나중에 형신이한테 물어서 연락처받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최동주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면서 하수영을 가볍게 탐색했다.

'경기도에서 농사를 한다고…….'

나이는 스무 살. 직업은 농업 종사자.

약 80억짜리 상가 빌딩, 그리고 430억짜리 상가 빌딩을 구매할 만큼 현금 동원력이 뛰어난 청년.

'얼마나 투자할 수 있을까?'

아트락 부지 건은 지금 강남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는 큰 건수였다.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너 나할 것 없이 이 거래에 뛰어들고 싶어 한다.

힘을 합쳐서 아트락 부지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그룹은, 여기 말고도 더 있을 것이다.

'뉴월드그룹과 라테그룹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까.'

현금 동원 능력이 뛰어난 부자는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는 게 좋다.

최동주는 옆에 앉아 대화를 시도했다.

"아트락 부지는 아주 좋은 건수입니다. 사실 이런 건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귀한 거래예요. 보통 이런 매물은 시중에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트락 부지 오너라도 이런 식으로 처분하지는 않을 거 같네요. 쫄딱 망한 게 아니라면 말이죠."

"쫄딱 망한 건 아니고, 한국 생활을 정리하면서 전부 처분하시는 거죠. 그래서 가격 자체를 가지고 협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 말고도 입질하는 곳이 많을 테니까요."

"7,500억 원이라는 거죠? 토지 가격이."

"시세는 그렇습니다만, 어디 시세대로 거래가 되나요."

"물건은 하나인데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원래 당연히 가격은 올라가는 법이죠."

"하하, 납득이 빠르시군요. 역시 크게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서 식견이 남다르십니다."

'당연한 걸 가지고 너무 추켜세워 주네. 사람 민망하게.'

손주뻘 되는 손님한테 과장되게 좋은 말을 주워섬기는 것. 자본주의의 생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정도가 필요할까요?"

"최소로 잡는다면 토지 매입 비용만 조달하면 투자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철거 비용과 준공 비용은 대출로 조달하나요?"

"그렇죠. 물론 최소 투자로 잡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안정적으로 투자하려면…… 적어도 1조 2,000억 원이상은 모여야겠죠. 땅값이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니 말입니다."

"1조 2,000억 원이라……."

"사장님까지 포함해서 스물두 분이 참여 의사를 나타내고 계시니, 한 분당 545억씩 출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동주 사장님도 투자하신다고 들었는데."

"저야 숟가락만 살포시 얹는 거죠. 40억이나 겨우 만들 수 있을까 말까 합니다, 허허."

어느덧 22명의 투자자 전원이 모였다.

최동주는 그들을 상대로 능숙하게 브리핑을 했고, 그들은 집중해서 설명을 들었다. 뜨거운 열의가 풍기는 강연 분위기는 한편으로 숭고한 느낌마저 있었다.

"따라서 각자 조달 가능한 자금을 출자하여 법인을 세우고, 그 법인으로 하여금 이 거래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물론 대표이사는 일반적인 주주의결 절차를 따를 겁니다."

주식회사법인을 설립하는 것이기에, 결국 지분율에 따른 의결로 대표이사가 선임될 것이다.

투자자 중에 한 명이 대표이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주도적으로 모집과 사업을 시행한 최동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오랫동안 부동산 중개업을 해온 사람으로 신망이 높은 인물이었으니.

여기 모인 이들은 다들 최소 몇 번 이상은 최동주를 통해 부동산 거래를 해봤던 이들이었다.

"먼저 조달 가능한 자본금을 확인하겠습니다. 각자 어느 정도의 금액까지 출자하실 건지 편하게 적어서 여기에 넣어 주십시오. 금액 외에 다른 것은 발표하지 않겠습니다."

직원이 나서서 투자자들에게 설문지를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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