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9화
26장 환전은 정수리에서(3)
속보를 자신만 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본사의 정준수 이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박행식은 얼른 받았다.
「행식아, 방금 속보 봤냐? 미국이 금리 인하 발표했다.」
"네, 봤습니다."
정준수 이사가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놀라고 당황했다는 뜻이다.
「와, 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2주 동안 조금씩 올라서 환율 100원 올랐는데, 어떻게 우리 고객님이 환전 끝내자마자 미국이 금리 인하발표하지? 이러면 내일부터 바로 환율 도로 복귀하게 되잖아.」
"그렇겠죠. 오히려 1,000원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분명히 고객님이 2주 뒤에 남은 금액 전부 환전해달라고 하셨었지?」
"네, 그랬습니다. 원래는 10%도안 하시려고 했는데 계약금이 필요해서 일단 10%는 어쩔 수 없이 환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리 예측을 하셨다는 건데, 이렇게 하루도 안 틀리고 정확히 날짜까지 맞춘다는 게 가능한 걸까?」
박행식은 지난 2주 동안 느낀 의구심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는 정준수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환율이 꾸준히 오르긴 했지만 이거다 싶은 정확한 이유는 없었어요. 다들 왜 환율이 오르는지 잘 몰라서 이런저런 말만 엄청 늘어놨어요."
「오늘 깜짝 발표 보니까 알겠네. 이거 월가에서 교묘하게 장난 친 거야. 금리 인하 결정 발표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실컷 재미 좀 보려고.」
"확실히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고객님이 백지 상태에서 이걸 정확히 예측한다는 건 역시 불가능하겠지?」
"물론이죠. 불가능합니다."
「그럼 고객님이 사전에 이 정보를 어디에선가 입수했다는 건데…」
"……."
논리적인 추론 끝에 나온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박행식은 정준수의 추측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생각이다.
하수영, 서락읍 지점에서 으뜸가는 VVIP는 분명히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게 틀림없다.
"이사님은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음, 얼마 전에 서울 서해호텔에서 별들의 만찬 열려서 떠들썩했던 거 기억나지? 한국계 일본 재벌 마케미야 대표가 국제 유명 인사들만 초청해서 파티 열었잖아. 2박3일 동안 서해호텔 아예 대관해서 일반 손님 발도 못 들이게 하고.」
"아, 기억납니다."
「우리 고객님이 프라임컴퍼니에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납품한다고 하셨으니, 뭔가 정보를 주워들은 건 아닐까?」
"프라임컴퍼니와 마케미야 대표가 관계가 있습니까?"
「마케미야 대표가 프라임컴퍼니에 꽤 큰돈을 투자했다는 말이 있어. 프라임컴퍼니에서 송이버섯을 100억 원 넘게 구매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느 정도 접점은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얼추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거 같다.
「아무튼 우리 하수영 고객님 인맥장난 아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진짜 그들만 사는 세상이네요."
「환전수수료는 안 받았지?」
"네, 전액 무료로 해드렸습니다. 대신 고객님께서는 예금을 우리 은행에 계속 두겠다고 하셨고요."
「이거 내가 조만간 서락읍 한 번 내려가야겠는데. 저번에 받은 송이 버섯도 너무 잘 먹었다고 답례도 해야겠고 말이야. 선물로 뭐가 좋을지 박 지점장 자네가 한 번 조사 좀 해봐. 우리 고객님이 선호하는 기호품이 뭔지 알아내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네.」
전화를 끊자마자 초조함이 밀려 들어왔다.
"뭘 좋아하실까? 뭘 드리면 되지? 근데 우리 고객님이 부족하신 게 있기나 할까?"
부족한 게 없는 이에게 줄 선물을 고른다는 것은, 항상 머리가 빠지게 만든다.
박행식은 선물을 뭘로 할지, 하수영이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아낼지 등을 고민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간 탄창 텅텅 비어서 마음 졸였는데, 실탄 다시 채워졌고."
얼마 전 환전을 완벽히 마친 터라, 현재 통장에는 원화가 가득히 들어있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12자리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서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4,050억 원이라. 이 정도면 3호기 같은 빌딩을 6채는 더 살 수 있겠는데?"
4,000억 원이 넘는 거액이지만, 3호기 같은 빌딩을 몇 채 사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청담동 토지시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알려주는 방증이다.
"청담동에서 제일가는 건물주가 되려면 정말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겠구나. 백날 라면만 팔아서 언제 돈을 버나."
한해 매출 2조 원을 찍어도 기대 할 수 있는 영업이익은 1,200억 원정도.
그중 하수영의 몫은 1, 080억 원정도.
배당시 발생하는 소득세를 제외하면 약 580억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다.
"뼈 빠지게 라면 2조 원어치 넘게 팔아봤자 일 년에 겨우 580억 원들어오네. 와, 진짜 돈 벌기 힘들구나."
골든 트러플 300kg을 팔아서 4억 5,000만 달러라는 큰돈을 만지긴 했다.
하지만 그건 지속성이 없는 일발성이벤트일 뿐이다.
골든 트러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팍팍 팔아대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그러다가 골든 트러플이 광이 꼴이 나면(양식에 성공해서 가격이 폭락, 싸구려 횟감이라는 이미지 얻은것), 황금알을 낳는 거위배를 가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해외시장 진출하면 못해도 라면이 20조 원 어치는 팔리겠지? 해외시장은 이익률을 한 4%로 잡고, 그럼 대충 세금 떼고 한 3,800억 원 정도 들어오려나?"
하수영은 빠르게 계산을 해보았다.
"라면 시장은 중국하고 홍콩이 압도적으로 큰데, 근데 거기는 진출하려면 공장을 지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많은 걸 언제 한국에서 실어 나르고 있어? 이거 초기 설비투자비용이 장난 아니겠는데."
게다가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국은 돈을 벌어도 해외반출이 어렵잖아. 공산당 정부가 웬만해서는 돈을 못 꺼내가게 하니까.
게다가 공산당 고위직한테 이것저것 뒷돈도 먹여줘야 하니까… 생각보다 남는 게 없을 거 같은데."
중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것은 아무래도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하나?
"진짜 라면만 팔아서 청담동 건물 수집하는 건 힘들겠는데. 빨리 종합식품회사로 변신을 해야겠어."
조만간 JM식품에서 생산한 라면에 황비버섯이 포함돼서 시장에 출시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국내 시장의 파이 일부를 나눠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은 점유율이 상승하고 라면의 다양화도 이뤄지겠지만, 곧 한계에 부딪친다.
"5,000만 인구가 라면을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냐고."
사실 한국은 인구수에 비하면 라면을 많이 소비하는 편이다.
라면 소비량 순위에서 한국보다 1순위 앞서 있는 미국하고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심지어 중국, 홍콩의 소비량도 한국의 10배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에이, 경영은 일단 두 사람한테 맡기자. 알아서 잘하겠지. 그나저나 고춧가루 말고 적당한 게 없을까. 당장 시장에 내놓을 만한 거……."
하수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현재로서는 레시피나 공정기술보다는 식재료 그 자체에 상당량 의존하는 식품을 내놔야 한다.
그러면서도 황금비단우산버섯의 가격처럼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강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뭐가 좋지? 어떤 게 괜찮을까?
"콩과 깨를 한 번 키워보고 싶긴한데, 이 나라는 땅이 너무 좁아서 뭘 하려고 해도 이것저것 제약이 많네. 이 좁은 서락읍에서 콩과 깨를 어떻게 키워."
하수영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왜 나는 이번 생에도 미국 대농장주의 장손으로 태어나지 못한 걸까. 그 나라라면 농사짓는 데 땅이 좁아서 제약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
콩과 깨는 버섯과 달리 활용도 폭이 넓다. 종합식품회사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답답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서 중개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 사장님. 안 그래도 전화드리려. 었는데.」
"우리 빌딩 지하 들어온다는 임차인 좀 있던가요?"
「문의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옵니다. 거기가 워낙 노른자 땅이고 상권도 잘 발달이 돼 있으니까요. 문제는…」
"왠지 불안한데요. 뭐죠? 빨리 말씀해 주세요."
「전부 다 유흥업이에요. 룸사롱, 클럽, 뭐 그런 것들만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헐."
「전에 나간 그 술집이 10년 가까이 거기에서 영업했잖습니까. 아주 유명하죠. 술 팔기에 터가 좋다고 탐내는 사장님들이 엄청 많습니다.」
"유흥술집은 안 됩니다. 클럽도 안돼요. 펍이라면 모를까요."
「네, 알고 있어서 그런 건 다 쳐내고 있습니다. 제가 사장님 의중을 챙겨드려야죠.」
"근데 좀 전에 안 그래도 전화 하려고 했다는 건 뭐예요?"
「매물이 하나 나왔는데 이야기는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매물이요?"
하수영은 귀를 쫑긋 세웠다.
중개사는 보통 '좋은 매물이 나와서 말하는 겁니다'라는 화법을 주로 썼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매물이라고만 했다.
"별로 좋은 매물은 아닌가 봐요?"
「나쁜 매물은 아닌데, 이게 참 애매합니다. 아트락 타운 아시죠?」
"잘 알죠. 왜 몰라요. 와, 설마 그게 매물로 나온 거예요?"
아트락 타운.
청담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청담동에서 가장 오래 된 복합미술관으로, 23,000제곱미터라는 큰 넓이를 자랑하는 곳이다.
강남지역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이 전부터 어떤 이름 모를 부호가 개인용 창고로 사용하다가, 후에 미술관을 지어 개인적으로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했다.
"아니, 아트락 타운이 매물로 나왔단 말입니까? 지금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농담 아닙니다. 덕분에 지금 청담에서 부동산 좀 했다는 사람들은 난리가 났어요.」
"그게 대체 왜 매물로 나와요? 천년만년 그 자리에 붙어 있을 것 같더니."
하수영이 놀란 것은, 절대로 시중에 나올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겨졌던 매물이기 때문이다.
대충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10대 재벌 총수 일가가 3대를 이어 살아온 한남동 저택이 시중에 매물로 나올 일이 있을까? 절대 없다.
집안이 바닥까지 망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아트락 타운 오너가 청담에서도 알아주는 부자 집안 아닌가요? 근데 그걸 내놨다고요?"
「국내 기반을 정리하고 이민을 간다는 말이 지금 돌고 있어요. 탈세문제로 현 정권에 제대로 찍혀서 탈한국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와…… 이거 정말 제대로 정신이 번쩍 드는데요."
「거기 시세 아시죠? 3.3제곱미터(기존 1평)당 1억 1,000만 원 정도 합니다. 땅값만 7,500억 원이에요.」
"……근데 거기는 땅 산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땅 사고 나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죠.」
아트락 타운은 미술관으로 유명하지만, 시설 자체는 오래되었다. 땅자체는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지만 빌딩은 거의 가치가 없다.
아트락 타운을 탐내는 이들은 그곳을 싹 허물고 상가나 호텔, 고급 빌라 같은 것을 지어 분양할 생각으로 원하는 것이다.
즉 아트락 타운에 제대로 투자하기 위해서는 땅값 외에도 철거비용, 새시설 준공 비용 등도 쥐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은행 대출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어때요, 생각 있으세요?」
"생각이야 많죠. 돈이 없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