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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16화 (116/1,270)

프랜차이즈 갓 116화

25장 내 임차인에게만 따뜻한 청담동 건물주(3)

하수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수치와 오욕을 무릅쓰고 신어의 권능을 발동시키기 위한 주문을 읊었다. 이 같지도 않은 인간말종을 향해 온갖 찬사를 덕지덕지 붙여서 찬 양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

"이 새끼가 뒤질라고, 진짜."

백호열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타구니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참으며 어떻게든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그는 하수영이 자신을 향해 비아냥거린 거라고 생각했다.

아까 같은 상황에서 느닷없이 기괴한 찬사를 늘어놓고 있으니, 누구라도 반어법이라고 여길 것이다.

'뭐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수영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생각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지금 저런 거 따위에 정신을 할애할 여유는 없었다.

'설마 사람한테는 아직 안 통하는 거야? 내 정신적 소양이 부족해서?'

'아니면 멘트에서 정중함이 모자랐나? 아닌데, 멘트 자체는 너무 극진해서 더 이상 깔 게 없었어. 그 정도면 바위를 열 번은 가르고도 남을 정도의 정중함이었어.'

'잠깐? 혹시 <해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지 않고 <청합니다>라고 해서 부탁이 아닌 걸로 간주된 건가? 아니야, 바위를 부술 때도 <청합니다>라는 식으로 말했었잖아. 그럼 이게 문제는 아니라는 건데.'

'가만있어 봐?'

하수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백호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에 담긴 불신과 경멸, 분노가 또렷하게 보인다.

'이놈이 근본부터 싸가지가 없는 인간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

생각을 해보자.

백호열은 인간말종이다. 싸가지가 전혀 없고, 예의도 없고, 배려심 같은 것은 당연히 전혀 없다. 아마 그의 유전자는 이기심과 자기애로만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아까 상황은 객관적으로 보면 자신이 백호열을 대놓고 조롱한 것이다.

당연히 그는 비꼬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분노하는 것이고,

'대상이 어떻게 해석하느냐,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진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판정하는 거야? 그래서 신어의 권능이 발동하지 않은 거고?'

이거 그럴 듯한 추론인데?

'나중에 아버지한테 물어봐야겠어. 지금은 일단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룸이 벌컥 열리며 건장한 가드 넷이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백호열의 비명과 고래고래 외치는 소리에서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야! 저 새끼 잡아! 꿇려!"

백호열이 버럭버럭 외쳤다.

하수영은 그 순간 빠르게 사고회로를 돌렸다.

상대는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남자 가드 넷. 그에 비해서 자신은 혼자. 가진 무기는 호신용 스턴건뿐.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엘릭서를 꾸준히 먹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육신이 단련된 상태가 아닐까?'

까짓거 단련 좀 안 됐으면 어때?

'내가 전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적군을 몇이나 잡았는데! 단련 안된 맨몸으로도 저런 네 명쯤이야!'

엘릭서로 충분한 육체 강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해도 별로 상관없다.

영원한 삶의 윤회 속에서 겪은 무수한 전투 경험, 그것은 영혼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니.

"으라차!"

"아니, 저놈이?"

"안 돼! 네놈이 감히 사장님을!"

하지만 하수영은 그들 넷을 제압하기 위해 덤비는 대신, 곧장 백호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빈 양주병을 거꾸로 쥔 채 테이블에 힘껏 내리쳤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병의 아랫부 분이 떨어져 나갔다.

하수영은 부서져서 날카롭게 변한 부분을 백호열의 목 부분에 갖다 댔고, 가드들은 곧바로 경직되었다.

백호열은 분노와 공포로 범벅이 돼서 외쳤다.

"너, 너 이놈 자식! 지금 뭐 하는 거……!"

"지금부터 둘씩 마주 보고 선다. 실시."

하수영이 가드 넷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목소리에 담긴 사나운 기세에 가드들은 뱀 앞의 개구리처럼 움찔했다.

"반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실시."

하수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깨진 양주병으로 백호열의 목을 지그시 눌렀다.

"으아아악!"

날카로운 통증이 파고드는 느낌에 백호열은 비명을 질렀고, 하수영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피 안 났습니다. 왜 이렇게 겁이 많습니까?"

그러면서 하수영이 서늘한 눈으로 슬쩍 바라보자, 가드 넷은 움찔해서 시킨 대로 각자 둘씩 마주 보고 섰다.

"염색머리, 금목걸이, 각자 앞에 선 친구의 명치를 있는 힘껏 주먹으로 가격한다. 실시."

"……."

"……."

둘이 머뭇거리자 하수영은 주저 없이 날카로운 병 끝으로 백호열의 목을 지그시 눌렀다.

"끄아아악!"

둘은 사색이 돼서 앞에 선 동료를 바라봤다. 동료도 얼굴이 일그러진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쳐.'

'그래도 돼?'

'어쩔 수 없잖아?'

'미안하다.'

눈빛으로 생각을 교환한 뒤, 둘은 주먹을 쥔 채 눈을 질끈 감고 동료의 명치를 힘껏 쳤다.

"크윽!"

명치를 제대로 얻어맞은 둘은 가슴을 움켜쥔 채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서 부들부들 경련했다.

"염색머리, 금목걸이의 명치를 힘껏 가격한다. 실시."

"……."

"……."

어쩔 도리가 없다.

금목걸이는 어서 하라는 눈짓을 보냈고, 염색머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동료의 명치를 힘껏 쳤다.

금목걸이는 입에서 게거품을 뿜으며 눈이 풀린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역시 본보기를 보여주니까 말을 잘 듣네."

하수영은 씩 웃으며 빈 병을 휘리 릭 던져 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볍게 몸을 풀며 다가갔고, 염색머리는 움찔해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염색머리, 내가 왜 너를 마지막에 남겼을까?"

"모, 몰라."

"젤 만만해서야."

하수영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씩웃었고, 염색머리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보통 아닌데?'

처음 허약한 도련님이라고 생각한 것은 명백한 오해였다.

주먹으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까 네 명이 다가오자 주저 없이 몸을 날려 백호열부터 인질로 잡은 것만 봐도, 상대가 지닌 노련함을 알려준다.

'저게 여기 건물주라고?'

맙소사.

혹시 무슨 삼합회 간부가 한국에서 낳은 현지 아들이기라도 한 건가?

"이야아아!"

염색머리는 비명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하수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주먹을 힘껏 휘두르며 하수영의 턱을 노렸지만, 그는 가볍게 슬쩍 움직여 피해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 한,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해낸 회피였다.

동시에 그의 주먹이 명치를 향해 정확히 날아왔다.

흉부에서부터 찌르르 울려 퍼지는 통증이 뇌를 감쌌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는 환영을 봤다. 그리고 의식이 끊어졌다.

하수영은 손을 탁탁 털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싸움은 최대한 힘 덜 쓰고 끝내는 게 최고라니까."

넷을 상대로 달려들어도 이길 자신은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갈고닦은 체술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뭐하러 굳이 힘을 빼는 짓을 하나?

이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백호열은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방금 하수영이 보여준 과감한 퍼포먼스를 통해, 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저거 혹시 사람도 죽여본 거 아니야?'

하수영의 눈빛을 보고 든 생각에, 백호열은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하수영은 살짝 창백해진 홍윤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홍윤주 임차인님, 우리 이러지 맙시다."

"……."

"극단적인 방법 말고 깔끔하게 대화로 해결 봅시다. 나도 이제 손 씻고 조용히 살고 싶다고요. 월세나 받아먹으면서 평온하게 지내고 싶은데, 이런 식으로 방해할 겁니까?"

"……처음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네요."

"그건 홍윤주 임차인님이 날 한참 잘못 본 거고요."

"……."

"남자친구가 빽이 좀 든든한 건 알겠는데, 나도 아버지 빽이 좀 있거든요? 굳이 누구 빽이 더 단단한지 부딪치기 놀이하는 건 우습지 않아요? 이 나이 먹고 할 짓이 아니죠."

백호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하수영은 따지 않은 양주병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40도가 넘는 양주병을 단숨에 비워버린 뒤 옆으로 휘리릭 던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병이 깨졌지만 술은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

백호열이 그걸 보고 속으로 기겁했다.

저 독한 양주를 원샷으로 마셔 버리다니.

"당신들이 이렇게 나온 이상 나도 계약 기간 못 지켜드립니다. 한 달안으로 정리해서 나가세요."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되죠?"

"직접 겪어 보시던가요."

"……."

하수영은 백호열은 안중에도 없었다. 말문이 막힌 홍윤주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씩 웃어 보였다.

"그럼 이만. 아디오스."

그가 나간 후, 홍윤주는 비로소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백호열을 살폈다.

"오빠, 괜찮아?"

"저 새끼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나도 몰라. 주인 바뀌고 저번에 딱 한 번 본 거야."

"집안에 돈 많은 스무 살이라며?"

"그런 줄 알았지. 근데 그 이상이 있는 것 같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문 쪽을 바라보던 백호열이 홍윤주에게 눈을 돌렸다.

"윤주, 너 가게 바로 정리해. 내일이라도 당장."

"어떻게 그래. 하루 쉬면 손해가 얼만데."

"스키아빌라지 거기서 장사해. 세팅은 다 돼 있으니까 내일이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이대로 물러나려고?"

"미쳤어? 저 새끼 저거 본때를 보여줘야지."

"보통 아닌 거 오빠도 봤잖아."

"그러니까 네가 가게를 빼야지. 너 여기 인질로 잡혀 있으면 마음껏 팰수가 없잖아."

백호열의 눈빛이 차갑게 이글거렸다.

"저놈 저거, 내가 반드시 패가망신 시킨다."

그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인맥을 떠올렸다.

연예기획사를 하면서 그는 정·재계에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그간 고위공직자나 기업가들에게 아이돌 지망생, 신인 연기자 등을 향응으로 제공하며 단단히 구축한 인맥. 그중 몇 개만 추려내도 저런 놈 하나 골로 보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청담에 꼴랑 빌딩 하나 있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 절대 가만 두지 않겠어."

* * *

하수영은 유료 주차장에 주차해 둔 캠핑트레일러로 돌아가며, 은하신목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신어가 전혀 안 통하더라고요."

-글쎄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나도 잘 모르겠구나. 부탁의 형태로만 신어가 발동하는 경우는 없었거든.

"짐작 가는 것도 없으세요?"

-목적 대상자가 부탁을 들어줄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상관이 없는거 같고, 그럼 신어의 의미가 없으니까. 아마 네 부탁에 진정성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진정성이라……."

하수영도 아까 그 비슷한 추측을 했다.

-네가 표리부동했던 거지. 말과 속이 따로 노니까 신어가 제대로 발동하지 않은 거야.

"하지만 바위는 갈라졌는데요?"

-그 기획사장이란 친구가 순순히 네 말을 들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않지 않았니? 아마 그래서 그런 거 같구나.

"까다롭네요. 항상 진심을 담아서 말을 해야 한다니."

-말 한 마디로 별을 창조하는 권능이다. 어디 그리 쉽게 다룰 거라 생각했니?

"지금까지 주신 건 엘릭서 말고는 별로 소용이 없는 것들이네요. 다음에는 부디 좋은 걸 주시면 좋겠어요."

-이놈이?

"아, 졸리다. 빨리 차에 들어가서 자야지."

하수영은 가까운 유료 주차장에 주차해 둔 캠핑 트레일러로 돌아가 안에서 잠을 청했다.

당분간은 서울에 머무르며 3호기 빌딩의 분위기를 점검할 참이었다.

적어도 그 유흥 술집이 나갈 때까지는.

어차피 황금비단우산버섯 재배야 원격으로 얼마든지 제어가 가능하니까.

다음 날, 오전 일찍 빌딩을 찾은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뭐야? 벌써 짐 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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