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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15화 (115/1,270)

프랜차이즈 갓 115화

25장 내 임차인에게만 따뜻한 청담동 건물주(2)

번호는 홍윤주가 맞는데, 목소리는 처음 듣는 남자의 것이다.

'백호열.'

강훈의 소속 기획사 대표, 백호열.

목소리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일 것이다.

물론 하수영은 아는 체를 하진 않았다.

"누구십니까? 번호는 홍윤주 임차인님 같은데요."

-윤주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말고, 지금 바로 가게에서 보자니까.

사람을 노골적으로 하대하는 태도가 풀풀 넘친다.

말 한 마디를 섞어보면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있다고, 하수영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눈에 잡힐 듯이 선했다.

"혹시 홍윤주 임차인님 남편 되는 분인가요?"

-윤주 이름 부르지 말라니까. 그 이름 아무나 부를 수 있는 이름 아냐. 지금 바로 보자고.

"바로 가죠."

하수영은 태연히 대답했다.

술집 가드들에게 그러했듯이, 반말을 했다고 곧바로 반말로 받아쳐 주지는 않았다. 이런 인간은 그런 식으로 요리했다가는 만족스러운 결과 물을 얻기 어렵다.

하수영은 스턴건을 챙겨 안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담동 상가 3호기에 도착한 하수영은 곧장 지하로 내려갔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낯익은 가드둘이 그를 바로 알아보고,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무표정함을 애써 유지하는 그들의 눈빛에서 묘한 비웃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 한번 혼나 봐라, 그런 벼름이 담긴 눈빛이었다.

하수영은 저번에 홍윤주와 이야기를 나눴던 그 룸으로 안내받았다.

룸에 들어서자 이미 풀세팅이 된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백호열로 추정되는 남자는 상석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홍윤주가 차분하게 앉아 안주를 챙겨주고 있었다.

'ㄷ'자 형태로 된 테이블의 좌우측 좌석에는 홀복을 입은 아가씨 4명이 나눠 앉아 있었다.

백호열은 하수영을 보고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새 건물주?"

"네, 그런데요."

"앉고 싶은 데 앉아. 마음에 드는 쪽으로."

하수영은 먼저 좌측을 바라보았다.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여자 둘이 자기들 사이에 앉으라는 듯 빈자리를 탁탁 두드리며 생긋 웃어 보였다.

다시 우측을 바라보았다. 늘씬한 몸매와 타이트한 원피스가 도드라지는 여자 둘이 앉아 있었다.

하수영은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여기 앉죠."

"오, 날씬한 게 취향이었군. 오케이. 홍 마담, 잘 입력했지?"

"그럼요."

홍윤주가 맞장구를 쳤고, 두 여자 앞에 선 하수영은 씩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비켜요."

"네?"

"나 혼자 앉기에도 좁으니까 비키시라고."

늘씬한 미녀 둘은 당황해서 어떡해야 하나 하고 홍윤주를 바라보았고, 홍윤주는 작게 손짓을 보냈다.

두 여자는 서둘러 일어나서 룸을 나섰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 둘도 뒤를 따랐다.

하수영은 빈 우측 사이드에 태연히 앉았다.

이제 룸에는 하수영과 백호열, 홍윤주만 남게 되었다.

"뭐야, 게이야?"

"아뇨, 마누라 무서워서 여자 끼고 술 안 마십니다."

"젊은 친구가 그새 결혼했어? 근데 사내자식이 그렇게 여자를 무서워해서 어떻게 큰일을 해내? 내가 동생 같아서 말해주는 거니까 새겨들어.

여자 별거 없다."

홍윤주가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하수영은 피식거리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 몸짓을 알아차린 홍윤주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하수영이 유부남인지 아닌지는 백호열에게 큰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으니.

"이야기 들었어. 훈이한테 이 건물 샀다며?"

"전 건물주 말씀하시는군요."

"훈이가 누군지는 알지? 설마 모르고 샀을 리는 없을 테고."

"인기 아이돌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TV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요."

"왜? 우리 훈이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CF도 엄청 많이 찍고 돈쓸어 담았지. 내가 엄청 키워줬는데 이제 와서 배신하는 배은망덕한 놈이긴 하지만."

"제가 TV를 전혀 안 봐서요. 연예인은 장효주 같은 사람 말고는 잘 몰라요."

"장효주, 톱배우지. 솔직히 훈이가 장효주한테 비빌 만한 급은 못 되지."

백호열은 빈 잔에 손수 술을 따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하수영에게 술을 따로 권하지는 않았다.

"이 빌딩 사면서 훈이한테 들은 거 없어?"

"별로 없습니다."

"진짜야?"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죠."

백호열은 차분히 하수영을 응시했다. 마치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탐색이라도 하듯이.

"스무 살이라고 들었는데, 배짱이 제법 있어. 깡다구도 보통 아닌 거 같고."

"어디 가서 맞고 다닌 적은 없어서요."

"집안에 돈 좀 있을 테고, 부족함없이 컸을 테고, 그러니 세상 무서운 거 모르고 자랐을 테고,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간이 붓고, 그래서 배짱만 커지고, 맞지?"

하수영은 차분히 백호열의 시선을 받아냈다.

백호열은 다리를 꼬며 한 손을 홍윤주의 어깨에 올렸다.

'60 같지가 않네.'

백호열은 곧 60세가 된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50세 정도로 보인다. 몸도 탄탄한 편이고 피부도 말끔하다.

그래도 홍윤주가 워낙 관리를 잘한 탓에, 언뜻 보기에는 아버지와 딸처럼 보인다.

살짝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폭력적이라는 느낌은 조금도 뿜어내지 않는다.

"윤주한테 들었지? 계약서에 없는 조항."

"대충은요."

"그럼 이야기 끝났네. 그대로 가면 돼. 아, 혹시 위약금 10억 내고 나가라고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 우리 윤주한테 10억 그거 돈 아니야. 가게 접는 것은 언제든 윤주 마음이야."

백호열은 홍윤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훈이한테 월세 얼마씩 줬다고 했지?"

"1억 1천이요. 오천은 계좌로 보냈고, 6천은 따로 현금으로 챙겨줬고."

"건물주 바뀌었으니까 1억 3천으로 줘. 너도 성의를 보여야지."

"그렇게 할게요."

"그럼 결정 났네. 이제 마시자."

백호열이 양주병을 들며 하수영에게 눈짓을 보냈다.

"뭐해? 잔 들어야지?"

하수영은 풀썩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지만, 백호열의 심기를 자극하는 데는 충분했다.

"웃어? 지금 내 앞에서?"

"당사자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두분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게 재미있어서요."

"뒈지고 싶냐? 너 내가 누군지는 알아?"

"원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아닌가요?"

"훈이한테 들었군."

"아뇨, 얼굴 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이라서요."

"언제는 TV 안 본다더니?"

"매도인이 가수라는 말에 신기해서 검색을 해봤죠. 검색하다 보니 백호 열 씨 얼굴도 나오더군요. 근데 설마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백호열 씨? 지금 나더러 씨라고 한 거야?"

백호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짓다가 험악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순간 홍윤주마저 표정이 경색될 정도로 그의 기세는 날카롭고 흉흉했다.

"이 친구, 진짜 겁 없네. 꼴랑 건물 하나 갖고 있다고 지금 세상 무서운 게 없어? 이봐, 내가 평범한 연예기획사 사장으로만 보이나?"

"그냥 원칙대로 하자는 건데요. 이 가게 임대차는 곧 만료되고, 전 연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어요."

"잔말 말고 연장해. 내 말 안 들으면 너 죽을 때까지 강남에서 술 못마신다. 여기 전부 내 구역이야."

"거절합니다."

"하, 이 친구 이거 안 되겠구먼."

백호열은 다시 술을 따른 뒤 단숨에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서 홍윤주에게 던지듯이 내민다.

"홍윤주 임차인님, 이게 임차인님의 의사인가요?"

"전 결정권이 없어요. 남편이 다 알아서 하죠. 그러니 남자들끼리 이야기하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백호열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180이 넘어가는 키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다부진 어깨.

젊었을 적에 몸으로 한가락 했을게 분명해 보이는 체격이었다.

"좋은 신고식은 거절했으니 나쁜 신고식 한 번 하자."

백호열은 다짜고짜 왼손을 내밀며 하수영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오른쪽 주먹을 쥔 채 얼굴을 향해 빠르게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하수영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가볍게 피한 뒤, 물 흐르듯이 무릎을 빠르게 찍듯이 올렸다.

무릎은 곧바로 백호열의 사타구니를 걷어찼고, 급소를 얻어맞은 그는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축 늘어졌다.

하수영은 그가 넘어지기 전에 낚아채서 앉아 있던 자리에 걸치듯이 내려놓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죠?"

홍윤주가 싸늘하게 물었고, 하수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거 뒷배경이 좀 있나 보네. 강훈이 왜 그렇게 벌벌 떨었는지 알겠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자신은 새 건물주고, 홍윤주는 임차인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 건물의 시세는 55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백호열은 요구 조건이 거절당하자 아무렇지 않게 손찌검을 하려고 했다.

그의 인성이 악질인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도 절대 탈이 없다'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서 나온 행동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시세 550억짜리 건물의 소유주한테 임차인이 대놓고 하대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게 당연하다고?

이건 개진상 임차인을 아득히 넘어섰다.

"친한 부장검사만 열 명이 넘는다더니, 그 이상인가 보네. 검찰총장하고 의형제라도 맺었나 봅니다?"

"……."

"겨우 건물 하나 가진 소시민은 언제든 찍어 누를 수 있다 뭐 그런 건가요? 배경이 만만치 않으신가 보네. 여당 총재라도 뒤에 업고 있으신가? 아니면 대통령? 10대 재벌회장?"

하수영이 빈정거리듯이 말하자 홍윤주는 입을 다물었다. 그를 노려보는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내가 마음이 약해서 나가는 날까지 월세라도 좀 부분 면제해 주려고 했는데, 그럴 마음이 싹 사라지네요.

그냥 당장 이번 달에라도 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하수영은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백호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이, 그냥 흔해빠진 졸부 양아치잖아. 재미도 없을 것 같으니 빨리 치워야겠다.'

"오랜 옛날부터 이 나라의 예능계를 수호해 오신 원스타엔터테인먼트백호열 대표님, 감히 이 미천한 새임대인의 정중한 계약 종료 통보에 진노하신 것에 가슴으로 깊이 사과 드리며, 그러나 이 가난한 임대인은 여기 지하에 신혼집을 만들어 무서운 마누라와 함께 알콩달콩 살림을 꾸리려 합니다."

"……?"

"……?"

"이렇게 엎드려서 땅에 머리를 박은 채 간절히 청하옵고 또 청하오니, 부디 이번 달까지 상가를 빼주시기를 원합니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해야 겨우 발동되는 신어.

심지어 부탁도 얼마나 정중한가에 따라서 효과가 달라진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제한에 실망해서 쓰지 않으려 했지만, 말 한 마디로 악질 임차인을 치워 버릴 수만 있다면, 어째서 세 치 혀를 아끼겠는가.

하수영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백호 열을 응시했다.

홍윤주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저거 미친게 아닐까?'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말 한 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남는 장사인데? 이득이잖아?

"미친,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나 조롱하냐?"

"네?"

"나 조롱하냐고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진짜 뒤질래? 내가 너 강남에서 영원히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어준다."

하수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야? 왜 신어가 발동 안 돼? 혹시 나의 정중함이 모자랐나?'

"이 우주의 모든 성스러운 기운을 한 몸에 품은 채 이 땅의 예능계를 수호하기 위해 친히 강림하신……."

"닥쳐, 미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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