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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12화 (112/1,270)

프랜차이즈 갓 112화

24장 라면과 기름 사이(5)

"네?"

정서희는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앞에 앉은 하수영의 눈치를 살폈다.

마침 하수영과 미팅하던 중에 마케미야한테서 연락이 와서 양해를 구하고 받은 것인데, 느닷없이 송이 농장 이야기를 꺼내다니.

대화 내용을 모르는 하수영은 별안간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뭔데 그래요?'

라고 묻는 듯한 몸짓이었다.

정서희는 괜히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송이버섯 농장 소유주 당사자를 앞에 놓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조금 민망했다.

"그건…… 제가 나중에 한 번 슬쩍 떠보거나 할게요. 일단 나중에 자세히 더 이야기해요."

-통화하기 곤란한 거냐?

"네, 조금."

-알았다. 그럼 나중에 이야기하자.

마케미야는 두말없이 전화를 종료했다. 어쩌면 하수영과 같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워낙에 감이 좋은 사람이니까.

"더 전화하셔도 되는데. 마케미야 대표님의 전화는 언제든지 환영이죠."

"아니에요. 아저씨도 바쁘신가 봐요."

"조카딸이 힘든 정유 사업에 진출한다고 이런저런 조언도 다 해주시고, 참 좋은 아저씨네요. 왜 저는 그런 키다리 삼촌이 없을까요."

"그러고 보니 사장님이 가족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야기할 대상이 없으니까요."

"……아."

정서희는 순간 멈칫했고,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은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피붙이 하나 없는 혼자입니다. 조부모도, 부모도, 형제도, 삼촌사촌도 없죠."

"죄송해요. 제가 괜한 이야기를 꺼냈네요."

"그럴 수 있죠. 별로 슬프지는 않습니다. 고독은 일상이 된 지 오래 거든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저리 말하니 정서희는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케미야 대표님이 뭐라고 조언하시던가요?"

"에스크오일 설비 인수를 너무 낙관하지 말라고 하시던데요. 자기가 SC이노베이션 오너라면 에스크오일인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는다고요."

하수영은 팔짱을 낀 채 끄덕거렸다.

"그렇죠. 그래도 마케미야 대표님이 시야가 좋으시네."

"안살린 구단주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요."

"그분이야 잘못되더라도 하나 새로 사주면 되지, 하는 생각이 기본 OS로 깔려 있는 분이시니까요."

"……."

"국제자원투자회사에서 압박을 넣는데 SC이노베이션이 설마 대놓고 위반하겠습니까? 국자투에서 알지 못하게끔 숨어서 교묘하게 방해하겠죠. 마케미야 대표님이 우려하시는 것도 바로 그겁니다.

"하 사장님도 같은 생각이세요?"

"네, 저는 마케미야 대표님 말에 수긍이 가네요. 뭐, 부사장님이 알아서 잘 해결하시겠죠?"

정서희의 귀에 그 말은 마치 이렇게 들렸다.

'나는 오너로서 네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한 번 지켜보고 냉정히 평가를 할 것이야.'

그래서 정서희는 바짝 긴장해서 각오를 굳혔다.

경영자가 되어서 주주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이에요. 문제없이 처리하겠어요. 사장님의 기대를 절대 저버리지 않을 거예요."

사실 하수영은 이런 의도로 말한 것이지만,

'곧 크게 한 대 얻어맞고 엉엉 울면서 포기하겠네. 정유 사업이 어디 그렇게 쉽나? 쉬워?'

정서희는 전성렬과 함께 정유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출할 각오를 품고 있고, 하수영은 그 둘이 곧 벽에 부딪혀서 포기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정유 회사 이야기로 돌아갔다.

"일단 사장님 지분은 80%로 시작하고, 나중에 사업이 안정되면 국제자원투자회사가 보유한 20%도 넘기겠다고 미스터 지하크와 이야기가 됐어요."

"개인적으로 그 20%는 영원히 국제자원투자회사 몫으로 남는 게 더 이익일 것 같은데요. 그래야 다른 재벌들이 무서워서 못 건드리죠."

정서희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수영도 그 부분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 그래서 핑계를 이리저리 대면서 질질 끌려고요."

"만약 국제자원투자회사 경영진이 아니라 안살린 교수가 직접 이제 하산해도 충분하다면서 20%를 턱 던져주면 어떻게 하실래요?"

"……아, 그건."

말문이 막힌 정서희는 순간 아까 마케미야가 했던 조언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친구가 선의로 뭔가를 베풀려고 할 때, 그러니까 딜이 아니라 자기가 해주고 싶어서 베풀때, 그냥 군말 없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 한다.

-괜히 체면 차린다고 예의상 거절이라도 하면…….

-엄청 삐진다고. 그거 풀어주려면 골치 아프다.

"바, 받아야겠죠?"

"땡, 절반만 맞았습니다."

"그럼요?"

틀린 게 아니라 절반만 맞았다. 이게 무슨 뜻이지?

"이거 우리가 받으면 국제자원투자 회사와 프라임오일컴퍼니가 이제 멀어지는 거냐고 물어봐야죠. 그럼 그분이 마음이 약해져서 뭐라도 얹어 주실 겁니다. 아니면 의결권 없는 우선주로 전환해 주실 수도 있고요."

하수영은 마치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고, 정서희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안살린 교수가 뭐 해주려고 할 때 거절하거나 빼지 마세요. 묻고 더블로 갈 자신 없으면 그냥 얌전히 받으세요. 그게 최선입니다. 아시겠어요?"

"아저씨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그분이 뭔가를 주시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시라고요."

"역시 같은 천상계 유저라서 통하는 게 있네요."

"근데 지금 사장님도 그분들하고 통하신 거 아니에요?"

"저야 고인 석유…… 아니, 아니지. 아무튼 또 이야기할 거 있나요?"

정서희는 지하크와 나눈 사업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보고했다.

하수영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기만 했다.

특별히 더 조언을 첨가할 부분은 없는 모양이었다.

'참 신기한 분이야. 나보다 어린데, 경영 수업 같은 것도 안 받은 것 같은데, 재벌들 마음에 관해서 너무 잘 꿰뚫고 있어.'

정서희는 그가 스무 살의 껍질을 뒤집어쓴 노련한 사업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임유통컴퍼니, 얼마 전에 법인 분리하셨다면서요."

"네, 임대사업법인을 따로 둬야 절 세하고 관리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근데 새로 만든 법인 이름이……."

"하수영입니다."

설마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정서희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될지 몰라서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정말 본인 이름으로 회사명을 지으셨네요. 뒤에 컴퍼니 정도는 붙이 실 줄 알았는데."

"토지대장 열람했을 때 소유주 이름으로 제 이름 세 글자가 박혀야 의미가 있는 거죠. 아, 그리고 얼마 전에 450억짜리 상가 빌딩 급매로 나온 거 하나 샀습니다. 덕분에 지금 원화는 빈털터리 신세입니다."

"그새 또 사셨어요?"

"너무 좋은 매물이라서요. 계약하고 잔금도 바로 치르고 소유권 이전 받았죠. 원래 530억은 받아야 하는 건데 80억이나 깎아서 내놓은 거예요."

"그렇게 좋은 매물을 80억이나 깎아서 내놔요? 매도인이 자금 사정이 안 좋았나 보네요."

"그건 아니고, 거기 큰 임차인 하나하고 사이가 틀어진 모양이에요."

"……임차인하고 사이가 틀어졌다고 건물을 팔아요?"

정서희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건물주와 임차인이 틀어졌으면 당연히 임차인이 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

건물주가 근데 80억 원이나 깎아서 오히려 급매로 처분한다고?

"유흥술집이더라고요. 근데 술집주인이 강남 밤문화 큰손하고 가족이래요. 그래서 겁먹고 처분한 거랍니다."

사실관계는 조금 다르지만, 하수영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정서희가 깊이 관여할 건수도 아니었으니.

"그럼 사장님도 나중에 난처해지시는 거 아니에요? 유흥술집 같은 거 임차인으로 함부로 받으면 안 되는데."

"당연히 저도 내보낼 생각입니다.

계약 기간 만료도 이제 멀지 않아서요."

"그래도 괜찮은 건가요? 전 주인도 겁을 먹고 80억이나 낮춰가면서 급매로 처분할 만한 사람들인데……."

"제가 세상에서 무서워하는 건 딱 하나, 우리 마누라밖에 없어요."

"결혼 안 하셨잖아요."

"무서운 게 전혀 없단 뜻이죠."

"……놀랐잖아요. 오해할 뻔했어요."

정서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자신을 깨닫고는 살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마누라'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미팅 결과 알려주신다고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냥 전화나 메일, 톡으로 하셔도 됐는데."

"오너이신데 이 중요한 내용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보고해요. 말도 안 되죠."

"그래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건 정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 봐요."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하수영은 뭔가를 주섬주섬 싸 와서 내밀었다.

"이게 뭐죠?"

"고춧가루예요."

"……네?"

1리터쯤 되어 보이는 투명한 용기 안에 든 붉은 고춧가루를 받아든 정서희는 당황했다.

"제가 농장 한쪽에 만든 텃밭에서 심심풀이로 소소하게 키운 고추로 빻은 가루예요. 라면 좋아하시죠?"

"좋아하긴 해요. 근데 고춧가루라니……."

"황비버섯라면에 뿌려 넣어서 먹으면 아주 맛이 그만입니다. 제가 먹어봤는데 괜찮더라고요. 꼭 라면만이 아니라 다른 요리에 뿌려서 먹어도 괜찮아요. 계란프라이에 뿌려 먹어도 맛있더라고요."

"그, 그렇군요."

정서희는 표정 관리에 힘을 썼다.

계란프라이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니, 상상만으로도 재채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꼭 한 번 계란프라이에 뿌려서 먹어 보세요. 삼겹살이나 소고기에 뿌려 먹어도 괜찮아요."

"……알겠어요."

일단 그렇다고 하니, 정서희는 더 말을 하지 않고 공손히 고춧가루를 받았다.

"맛도 좋은데 기력 회복에도 아주 좋아요. 우리 부사장님은 회사를 위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격무에 시달리시니, 제가 이런 영양제라도 챙겨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춧가루가 기력 회복에 좋은 영양제?

물론 몸에 좋은 음식인 건 맞지만, 정서희의 상식과는 상당히 빗나가는 말이었다.

"요즘 피로감 많이 느끼시죠?"

"조금요. 어떻게 아셨어요?"

매일 하루에 4시간만 자고 열심히 일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가.

정서희는 조금 감동했다.

"얼굴 피부가 많이 까끌까끌해지셨어요. 화장으로 감추고 있지만 다 보여서 아무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제가 회사 대주주, 오너 아닙니까."

지금 싸우자는 거 맞지?

"이거 챙겨 다니시면서 식사하실 때마다 뿌려 드세요. 그냥 맨밥에 뿌려 드셔도 감칠맛을 돋워줍니다. 기력 회복에 큰 도움 되니까 꼭 잘챙겨 드세요."

"……감사해요. 그런데 제 피부가 그렇게 심해요?"

"네, 처음 봤을 때에 비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격무에 시달리시는 게 눈에 훤히 보여요."

왠지 더 말을 섞으면 혈압이 터질 것 같아서 정서희는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그래도 여자다. 과로 때문이라고 하지만 피부가 많이 상했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울적해졌다.

운전하다가 신호에 걸려 정차했다.

괜히 심통이 난 정서희는 조수석에 대충 던져둔 고춧가루통을 휙 노려봤다.

빤히 들여다보니, 불현듯 고춧가루알갱이가 참 작고 곱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색도 빨려 들어갈 듯이 맑고 투명한 붉은색이다.

이렇게 가슴이 청량해지는 색을 가진 고춧가루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정서희는 저도 모르게 뚜껑을 열어 용기를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 그 안에 담긴 향을 맡았다.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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