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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09화 (109/1,270)

프랜차이즈 갓 109화

24장 라면과 기름 사이(2)

하수영은 건물 3호기라는 애칭이 붙은, 아이돌 가수 강훈으로부터 구매한 청담동 빌딩을 찾았다.

그는 가장 윗층 상가부터 차근차근방문하며 돌기 시작했다.

강훈으로부터 승계받은 임대차 계약서, 부동산등기부, 법인등록증 등 자신이 새로운 건물주임을 증명할 서류도 빠짐없이 챙긴 상태였다.

여기에 세입자들에게 돌릴 선물이 담긴 커다란 캐리어도 2개나 끌고 있었다.

가장 꼭대기 층인 10층에는 병원들이 입점해 있었다.

치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다양한 분야의 병원들이 입점해 있었다.

'이 정도면 종합 병원 수준이네.'

하수영은 치과를 제일 먼저 방문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이죠?"

"아, 어서 오세요. 처음 오셨나요?"

데스크에 있는 직원들이 생글생글웃으며 맞이했다.

"곧 점심시간이라서 진료를 받으시려면 1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이가 아파서 온 건 아니구요, 원장님 뵙고 인사 좀 드리러 왔습니다."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말에 직원들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저어, 저희 원장님은 따로 거래하시는 납품업체가 있어서요. 10년 넘게 한 번도 안 바꾸셨어요."

"아, 의료용품 장사하러 온 직원은 아니구요. 원장님께 말씀드릴 중요한 내용이 있어서요."

"여기서 먼저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듣고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이 빌딩 주인이 바뀌었거든요. 제가 얼마 전에 이 빌딩을 샀습니다."

"아, 그러시구…… 네? 뭐라고 하셨죠?"

직원들은 당황해서 하수영을 바라봤고, 하수영은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제가 얼마 전에 이 빌딩 샀거든요. 여기 부동산등기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주인이 바뀌었죠?"

"어머! 정말이네!"

부동산등기부를 확인한 직원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외쳤다.

등기부에는 새로운 소유주로 '하수영'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하수영은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제 이름하고 똑같죠?"

"어머, 진짜 그렇네요!"

"잠깐만요, 여기 주민등록번호가 다르잖아요?"

"예리하시네요. 그건 법인등록번호, 제가 임대사업하려고 법인을 냈거든요. 여기는 지분소유증명입니다."

여러 서류를 받아든 직원들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재빨리 한 명이 안에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치과의사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새 건물주시라고요?"

"네,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여기 원장님 되시죠?"

"아이고,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전 주인분한테서 주인 바뀌었다는 말들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하수영은 느긋하게 안에 들어갔다.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부탁합니다. 제가 이 건물 팔 일은 없을 테니, 아마 여기에서 퇴거하실 때까지 저를 보시게 될 겁니다."

"퇴거라니요, 저는 이 빌딩에서 70살까지 영업하다가 은퇴하는 게 목적입니다."

"이거 처음부터 코드가 잘 맞는 분을 만나서 너무 좋네요."

하수영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캐리어를 열어서 안에 담긴 물건을 하나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약소하지만 새 임대인이 된 선물입니다."

"헉! 이거 최상급 송이버섯 아닙니까? 아니, 이 비싼 걸 어떻게…… 선물은 오히려 제가 드려야 하는데 말이에요."

"에이, 임차인한테서 선물 뜯어내면 그건 건물주의 횡포고 갑질이죠. 앞으로 제 빌딩 잘, 그리고 깨끗하게 써달라고 제가 부탁드리는 겁니다."

"설마 그 캐리어가 죄다 송이버섯인가요? 그거 사시느라고 돈 엄청 들었겠습니다."

"산 거 아닙니다. 제 농장에서 캔거죠. 제가 송이가 나는 산을 하나 갖고 있어서요."

원장의 눈에 부럽다는 감정이 언뜻 스쳤다.

젊은 나이에 비싼 송이가 나는 산을 갖고 있고, 이 비싼 빌딩의 새주인이 되다니. 대체 얼마나 돈이 많기에.

"식사하셔야 하는데 시간 오래 뺏으면 안 되죠.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하수영이 몇 분도 안 돼서 일어나려고 하자 치과 원장이 당황해서 만류했다.

"이렇게 빨리 일어나시면 제가 죄송한데요. 그러지 마시고 같이 식사라도 하시죠."

"아닙니다. 여기 말고 다른 사무실도 전부 다 돌아봐야 해서요."

"아, 그렇군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송이 잘 먹겠습니다."

하수영은 10층을 차례차례 전부 돌았다.

병원장들은 건물주가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고, 하수영이 새로운 건물주라는 사실에 놀랐으며, 인사 선물이라며 받은 송이버섯에 좋아했다.

10층을 전부 돌고 난 하수영은 9층으로 내려왔다.

9층은 광고 회사가 입주해 있었는 데, 한 층을 전부 통째로 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사장님 좀 뵈러왔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사장님을 만나 시려면 미리 약속을 잡으셔야 하는데요."

어린 여직원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대응했고, 하수영은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여기 건물을 제가 샀거든요. 그래서 인사 돌리러 왔어요."

"네, 건물을 사셨… 네? 뭐라고요?"

"제가 새 건물주거든요."

"……!"

여직원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멍하니 하수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초점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게, 어지 간히 패닉에 빠진 모양이었다.

다른 남직원이 이상함을 느끼고 다가왔다.

"수영 씨, 무슨 일이야?"

"아, 이름이 수영이에요? 저도 수영인데. 하수영."

"저, 누구시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전 하수영이라고 하고요, 여기……."

"새, 새 건물주래요. 그래서 사장님 만나러 오셨다고 하시네요."

가까스로 침착함을 되찾은 여직원이 겨우 입을 열었다.

남직원은 황당하다는 듯이 여직원을 보다가, 다시 하수영에게 시선을 돌려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뭐야, 이건?'이라는 감정이 여실히 실린 눈빛이었다.

"여기 건물주 바뀐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요?"

"전달이 제대로 안 됐을 수도 있죠."

'무슨 건물주가 이렇게 어려?"

남직원은 의심의 눈길로 하수영을 바라봤다.

이런 건물을 저렇게 젊은 나이에 절대 자기 돈으로 살 수 없다. 집안에서 사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금수저가 건물주 됐다고 직접 인사를 하러 온다고? 보통 이런 경우는 명의만 아들에게 넘겨주고 관리는 부모가 직접 하지 않던가?

'보통 이런 상황에서 모자란 것들은 내가 누군지 아냐고 화를 내겠지. 하지만 나는 내 임차인에게 누구보다 따뜻한 청담동 건물주라고.'

"이걸 한번 보시겠어요?"

하수영은 미소 한 번 잃지 않은 채, 부등산등기부 등 증명 서류를 보여 주었다.

얼핏 서류 내용을 확인한 남직원은 깜짝 놀란 눈으로 하수영을 다시 보았다.

적어도 며칠 전에 건물 소유주가 바뀐 것은 분명했다.

저 등기부가 위조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남직원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조회 한 번 해보면 대번에 나오는데 이런 뻔한 사기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

건물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선 안돼!

"아, 그러시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직접 사장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남직원은 얼른 하수영을 사장실로 안내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서자 다수의 모니터와 씨름을 하고 있던, 40대 초반의 남자가 무슨 일이야 하는 듯이 돌아봤다.

남직원이 얼른 다가가서 귓속말로 상황을 설명했고, 사장은 놀라서 하수영을 바라봤다.

"건물주가 바뀌었다고요?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아, 전 건물주가 전달하는 걸 깜빡했나 보네요. 지금 전화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때요?"

"……실례합니다."

사장은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짧게 통화를 하며 놀란 눈이 되었다.

"……네, 문자는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요즘 연락 오는 데가 너무 많다 보니 제가 놓쳤나 봅니다. 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사장은 강훈의 매니저가 보냈던 문자를 찾아보았다.

과연 며칠 전에 보낸 장문의 문자가 남아 있었다.

수차례 전화 연락이 되지 않자 강훈의 매니저가 빌딩 매각 사실을 문자로 통보했던 것이다.

사장은 문자에 남아 있는 새 건물 주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하수영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정말 건물주가 바뀌었군요. 제가 바쁘다 보니 연락을 제때 받지 못했습니다."

전화 연결까지 확인한 사장은 얼른 통화를 종료했다.

"확인해 본 것 가지고 너무 마음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하루 아침에 갑자기 들은 이야기다 보니."

"전혀요. 한 층을 통째로 빌리신 고급 임차인분한테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요즘같은 불경기에 이런 큰 고객이 어디 있다고요."

"고, 고객이요?"

"그럼요. 임차인분들은 제가 판매하는 임대 서비스 상품을 구매해 주시는 소중한 고객분들 아닙니까. 아무튼 소유주 바뀌었으니 앞으로 잘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사장은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임대 서비스 상품을 구매하는 소중한 고객?'

세상 모든 건물주들이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사무실 빌려서 장사하기 참 편할 텐데.

"조금 당황스럽네요. 임대 서비스상품 구매라니요. 제가 사업을 오래 해왔지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임대인분은 처음 봤습니다. 아무리 친절하고 사람 좋으신 임대인들도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분은 없었어요."

"임대업도 결국 장사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고 기본적인 거 아닐까요?"

하수영은 캐리어에서 가져온 선물을 꺼내 사장에게 주었다.

"이건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선물입니다. 제가 직접 딴 최상품 송이입니다."

"아니, 이렇게 비싼 걸……!"

하수영은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섰고, 사장은 문 앞까지 배웅을 나왔으며, 그새 소식이 꽉퍼진 사무실 직원들은 진풍경을 보듯이 몰래 구경했다.

하수영은 8층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아, 혹시 저번에 지하 술집 물어보셨던 그분 아닌가요?"

"하하, 맞습니다. 기억하시네요."

"워낙 이미지가 강하셔서 잊어버리 기가 힘들더라고요.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사실 오늘은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제가 이번에 이 빌딩을 샀거든요."

"네? 뭐라고요?"

하수영은 그렇게 빌딩에 입주한 상가들을 쫙 돌며 명의자가 바뀌었음을 알려 주었다.

대부분은 매각 사실을 통보받아서 알고 있었지만, 열에 하나 정도는 건물주가 바뀐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 경우도 이전 건물주 강훈이 통보를 누락한 것보다는,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았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렇게 1층까지 상가를 돌면서 인사하고 나자 어느덧 점심시간을 살짝 넘겼다. 가져왔던 송이버섯 선물은 모두 동이 났다.

"이제 하나 남았구나."

하수영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하 1층을 통째로 빌려서 쓰는 유흥술집, 아직 인사를 하지 않은 유일한 임차인이다.

"전 건물주가 매각 사실을 알려줬으려나."

강훈한테 굳이 물어보진 않았지만, 통보했든 아니든 자신 입장에서는 굳이 상관없을 것 같다.

하수영은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을 찾아가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술집이 막 오픈할 시간이 되었을 때 상가 빌딩으로 돌아왔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입구에서 건장한 남자 두 명이 가로막았다.

"길 잘못 들었습니다. 돌아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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