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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07화 (107/1,270)

프랜차이즈 갓 107화

23장 삼켜야 하나, 뱉어야 하나(4)

강훈은 기획사와 더 이상 지저분하게 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빌딩을 빨리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장이랑 워낙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에, 자기 빌딩에서 사장 애인이 술집을 운영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다.

"다른 멤버들도 비슷하게 약점 하나씩 잡혀서 계약 연장 강압 받고 있겠네요?"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 일이 아니라서요."

강훈은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하수영은 제대로 짚었음을 알 수 있었다.

'표정 관리가 안 되네, 이 친구.'

하수영은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어쨌거나 강훈이 한시바삐 빌딩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신에게 유리하다.

"그 술집 여자, 그러니까 사장 애인이라는 사람하고는 친한 편이세요?"

"누님 동생 하던 사이였죠. 이제는 뭐 돌 보듯 해야 하는 사이 됐지만요."

"의남매에서 하루아침에 죽일 놈되신 건가요."

"그래도 그 누나가 성격은 쿨한 편입니다. 애인 회사 일을 자기 일에 끌어들이진 않아요. 문제는 사장이죠. 워낙에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인 사람이어서요."

"쿨한 사람이면 이야기가 잘 풀리겠네요. 주인 바뀌었고 계약 끝났으니 나가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쿨하게 거부할 겁니다."

"그건 전혀 쿨하지가 않잖아요."

"그 누나도 세상 모든 걸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거든요. 여기서 장사하는 게 편한데 내가 왜 나가야 해?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그 여자한테 건물 팔려고 시도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운을 떼본 적은 있습니다만, 거절당했습니다. 임대료 장사할 것도 아닌데 뭐하러 큰돈 써서 빌딩을 사느냐고요."

"만약 제가 기어이 내보내려고 하면 그 여자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강훈은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매니저와 시선을 교환했다.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리라.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만 해도 구매 의욕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너무 사실대로 말하면 거래 자체가 파탄 날 수도 있으니.

"……쉽지 않을 겁니다."

강훈은 눈 딱 감고 계속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이제 와서 어설픈 거짓말로 상대를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기획사 사장이 정·재계에 인맥이 정말 넓어요. 친하게 지내는 부장 검사만 해도 제가 아는 것만 열 명이 넘습니다. 사장이 작정하고 마음먹으면 위생조사니 구조조사니 세무조사니 하면서 건물주 탈탈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돈만 좀 가진 일반인은 절대로 싸워서 이길 수 없어요."

하수영은 잠자코 듣기만 했고, 강훈은 열변을 토했다.

"차라리 그냥 술집 안고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래도 자기가 시세나 물가 맞춰서 먼저 월세 알아서 올려 주고, 밀리지도 않아요. 건물 주변도 깨끗하게 청소관리 합니다."

"흐음. 그거야 손님들 불쾌해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겠지만, 그래도 성실하긴 하네요."

"유흥술집이라는 것만 빼면 참 좋은 임차인입니다."

"그래도 제 빌딩에 그런 술집은 용납할 수 없어요."

강훈의 표정에 희미한 실망감이 어렸다.

결국 하수영이 매수를 포기한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그 건물이 이 사람하고는 인연이 없었던 거지.'

"제가 더 알아야 할 내용은 없나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요. 더 떠들어봐야 불필요한 중복일 뿐입니다."

"좋아요, 그럼 계약하죠."

반쯤 낙심했던 강훈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예? 뭐라고요?"

"제가 계약해서 새로운 건물주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계약 합시다."

강훈은 얼떨떨해서 할 말을 잊었고, 하수영은 중개사에게 들어오라고 연락을 했으며, 잠시 후 싱글벙글 웃는 중개사 앞에서 두 사람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서명을 마치고 나서까지도 강훈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저, 그 술집은 ……."

"내보낼 겁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죠. 제가 새 건물주니까요."

"사장님만 크게 다치실 수 있습니다. 밤문화 큰손을 얕잡아 보면 안됩니다. 퍽치기 같은 걸 당하실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저도 든든한 빽이 있거든요. 부장검사 따위는 백 명이 와도 상대가 안 되는 빽이 있죠."

그 말에 강훈의 표정에 의아함과 호기심이 어렸다.

날고 긴다는 권력을 자랑하는 검사들도 가볍게 여길 만한 그 빽이 대체 무엇인가?

"혹시 빽이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아, 제 아버지세요."

강훈은 잠시 하수영의 젊은 외모, 25억에 달하는 고급 캠핑 트레일러, 통장에 들어 있던 460억 원의 현찰을 떠올렸다.

대번에 모든 게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이거 제가 여태 괜한 걱정을 했군요."

"걱정해 주시고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수영은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수영은 은하신목에게 빌딩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전했다.

-……그렇구나. 그렇게 빌딩만 나날이 늘어가는구나.

은하신목은 하수영이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없다.

그가 직접 말을 건네거나, 혹은 의지를 집중해서 허락하지 않는 한은.

그래서 하수영이 자세히 말을 해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도 다 뻥일지 내가 어떻게 알아.'

물론 하수영은 절반만 믿었다.

"그래서 저한텐 든든한 아빠 카드라는 빽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해줬어요."

-내가 왜 빽이냐? 아니, 겨우 빌딩임차인 쫓아내는데 내가 나서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

"소중한 아들이 악성 임차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데 설마 도와주지 않으실 거예요?"

-악성 임차인은 무슨 문제 안 일으키고 세만 잘 내면 그것보다 더 좋은 임차인이 어디 있어?

"계약 기간 완전히 끝나서 그만 나가라고 하는데 안 나가는 게 악성임차인이죠. 별거 있나요?"

-아무튼 난 모른다. 네가 알아서 해라.

"걱정 마세요.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이 정도 일로 99개밖에 없는 아빠 찬스를 쓰는 것은 너무 아깝죠."

-당연히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을 해야…… 그런데 아빠 찬스가 99개라는 건 무슨 소리냐? 난 그런 거 약속한 적이 없다만.

"아, 199개였나요? 제가 요새 과로에 시달리다 보니 기억력이 가물가물하네요."

-이놈의 자식이 진짜!

은하신목은 대노해서 호통했고, 하수영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제가 위험에 처하면 나서 주실 거잖아요? 퍽치기 같은 거라도 당하면 말이에요. 그렇죠?"

-네가 그런 걸 당할 일이 뭐가 있어. 꾸준한 엘릭서 섭취 덕분에 이미 인간을 초월한 육신을 얻었는데.

그간 섭취한 양을 생각하면 이제 핵폭탄이 눈앞에서 터져도 머리카락하나 다치지 않을 거다.

"……."

지금까지 얻은 엘릭서 대부분은 송이 키우고, 황금비단우산버섯 키우고, 골든 트러플 키우는 데 거의 다 썼는데?

-그러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거라. 인간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지금의 너에게 해를 끼칠 순 없단다. 아, 그렇구나. 엘릭서도 내가 준 것이니 결국 아빠 카드를 쓴 거나 진배없군. 그렇지 않니, 아들아?

하수영은 불현듯 엘릭서를 꾸준히 복용하지 않은 게 살짝 후회되었다.

-이렇게 겁을 줘놨으니, 앞으로는 그래도 좀 더 성실하게 엘릭서를 복용하겠지?

본가 뒤뜰에서 쓸쓸히 바람을 맞으며, 은하신목은 혼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엘릭서를 무제한으로 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충분히 섭취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아픈 걸 싫어할 줄이야.

아픔을 줄이거나 없애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성장통 또한 주신이 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아픔 없이 그저 쉽게 강한 힘을 얻는다면, 주신으로서 정당한 권능을 행사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아들이 얕은 잔꾀를 부리는 걸 느긋하게 지켜봐 주는 것은 다 깊은 이유가 있었다.

모든 것은 아들을 올바르게 주신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배려 된 것이다.

-아들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지금까지 먹은 것 정도만 해도 어디 가서 칼 맞고 죽을 일은 없을 거다. 그나저나 겁을 좀 줬으니 이제 섭취량을 10배, 아니, 5배 이상은 늘리겠지?

고대 주신은 아들의 입신 준비 덕분에 오늘도 머리가 아프다.

* * *

계약을 하고 나흘 뒤, 하수영은 잔금을 치렀다.

강훈은 골치 아픈 빌딩을 처분해서 마음을 한시름 놓으면서도, 완전히 근심을 떨치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시네요."

"……하하, 건물이야 어떻게 잘 처분했다지만, 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부디 계약 종료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좀 알아봤는데 그 기획사가 질이 나쁘긴 하더군요. 대형 기획사 중에서 가장 악질이라던데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기획사하고 계약을 하셨어요?"

"데뷔하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 하겠어요? 악마한테 영혼도 팔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랬어요."

하수영은 가볍게 끄덕거리다가 슬쩍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이건 대답해 주셔도 되고 안 해주셔도 되는데, 빌딩 지하에 있는 그 술집, 혹시 마약도 유통하나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강훈은 안색이 살짝 변한 채 바로 부정했다.

하지만 하수영은 희미하게 떨리는 속눈썹에서, 그가 진실을 감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강훈을 안심시켰다.

"아쉽네요. 마약도 유통한다면 내보내기 더 쉬웠을 텐데. 마약수사반에 신고하면 끝이니까."

강훈은 잠시 망설였다.

공권력의 힘을 끌어들이지 않는 게 나을 거라는 조언을 해줘야 할까 싶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아빠 찬스를 쓸 거라고 했지? 이 사람 집안도 만만치 않은 것 같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문득 계약서를 훑어보던 강훈은 비로소 자신이 놓쳤던 조항을 발견했다.

단순 매매계약이고 매니저가 확인 했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의외의 조항이 발견된 것이다.

"이거 사장님 주민등록번호가 이상한데요?"

이름은 하수영으로 되어 있는데, 정작 주민등록번호는 1로 시작하는 기괴한 넘버링이었던 것이다.

"아, 그건 법인 사업자 번호라서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법인분할하면서 정리 깔끔하게 했거든요. 안그러면 비업무용 부동산 매입이라고 취득세 2% 낼 걸 10%나 내야 해서요."

"네? 하지만 성함에는 하수영이라고……."

"법인 이름이 하수영이거든요. 제 이름을 따서 법인명을 만들었죠."

"……."

하수영은 프라임유통컴퍼니를 두개의 법인으로 분리하면서, '하수영' 이라는 별도의 법인을 만들었다.

'법인 하수영'은 바로 임대사업법인이다.

하수영컴퍼니, 하수영부동산컴퍼니, 하수영프로퍼티 같은 형식으로 지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자기 이름 세글자로만 임대사업법인명을 만든 것이다.

'토지대장마다 내 이름이 적혀 있으면 참 멋질 거야.'

사업자등록번호를 보지 않으면 사람 이름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상호다. 물론 하수영이 의도한 것이지만.

"그, 그렇군요. 큰 문제는 아니겠죠?"

"제가 100% 지분을 가진 제 법인의 명의로 대표이사인 제가 매매계 약을 한 건데요. 문제이고 말 것도 없죠."

"……아무튼 하시는 일 잘 풀리시길 빌겠습니다."

"네, 좋은 매물 싸게 팔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수영은 그렇게 강훈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인연이 없으면 그와 다시 연락이 닿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세입자만 내보내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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