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97화
21장 선물은 상대가 마음에 들어 야지(1)
"정 이사, 저 사람은 대출하고 무관한가 보네."
하수영은 멀어지는 차를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프라임컴퍼니가 S은행에서 금리 0.19%에 받은 2,000억 원의 대출.
그것은 폭풍 같은 기세로 성장하는 황비버섯라면에 대한 야욕이 섞인 함정이었다.
태양심, 육뚜기, 혹은 그 밖의 다른 대기업이 군침을 흘리며 파놓은 올가미가 분명했다.
물론 전성렬은 2년 동안 0.19%에 싸게 잘 운용하고 난 다음 유유히 빠져나올 생각으로 받은 것이지만.
정준수는 프라임컴퍼니에 버섯을 납품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저 순수하게 감탄만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짓이 섞인 반응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대출 상담도 열심히 해주었다. 누가 봐도 정성과 열의가 느껴지는 태도였다.
"뭐, S은행에서도 이런저런 줄이 많이 있을 테니까. 은행 사내정치야 내가 알 바 아니고."
하수영은 기대감에 차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출이 얼마까지 나올까? 가능한한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한결같이 청담동을 향해 있었다.
* * *
뉴욕, 센트럴 지올로지 타워.
최신 현대 공법 기술이 아낌없이 적용된 초고층 마천루로, 현재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 1위로 당당히 꼽히는 빌딩이다.
특이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큰 지질 학자 스터디 그룹 사무실이 펜트하우스 바로 아래층에 들어와 있다.
지질학 그룹뿐만 아니라 화학, 생물학, 물리학, 고고학 등 다양한 자연 과학 학자 그룹들도 들어와 있다. 그 때문에 종종 '뉴욕 센트럴 공과대학'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센트럴 지올로지 타워의 주인은 바로 세계적인 위엄을 떨치고 있는 국제자원투자회사였다.
즉 이 빌딩은 안살린의 뉴욕 별장이라는 소리다.
복층으로 된 펜트하우스에서 안살린은 프린터로 출력한 논문을 읽고 있었다.
그가 앉은 선베드 앞에 설치된 커다란 실내 수족관에는 수많은 종류의 관상어들이 유유자적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왕자님, 프라임컴퍼니에서 대답이 왔습니다. 그런데……."
조용히 다가온 수행비서가 말을 흐리자, 안살린은 논문에서 눈을 떼며 돌아보았다.
"긍정적인 대답이 아닌 건가?"
"예, 비축해놓은 골든 트러플 양이 모자라다고 합니다. 그래서 100kg을 파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닌 거 같은데."
"대신 최상급 10kg을 사과의 의미에서 정중히 선물로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 왔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채취량이라고 합니다."
"사과? 선물? 마지막?"
안살린은 그 말뜻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꽤 제법인데."
"격식을 잘 아는 친구들 같습니다."
"그러게."
이쪽은 엄연히 왕족이다. 호화로운 삶의 정점을 누리고 있는.
100kg을 사고 싶다고 제안을 했는 데, 10㎏밖에 없으니 이거만 사가라고 대답을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불쾌함을 느끼는 왕족도 있다.
아니, 지금 아랍 에미리트의 왕족성향을 보면 백이면 전부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까? 자신이 모욕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상대는 능력 부족을 이유로 들어 거절하면서, 오히려 10kg을 선물로 보내왔다.
왕족과의 연을 트기 위해 평균 150억 원에 달하는 선물을 기꺼이 내민 것이다.
"싹싹 긁어모아서 겨우 10kg… 그게 진짜일까?"
"팟디서플라이에서 300kg의 골든 트러플을 구매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럼 10kg만 있다는 건 진짜가 아니겠군."
"아마 시세 하락을 우려한 결정이라고 생각됩니다. 팟디서플라이의 눈치를 본 것도 이유 중 하나일 테지요."
"눈치? 팟디서플라이가 압박을 한건 아니고? 자기들 통하지 않고 직접 중동 왕가와 골든 트러플을 거래했다가는 앞으로 재미없을 거라고 말이야."
"팟디서플라이가 설마 그렇게까지했을까요. 은근한 무언의 암시는 주었을 수 있지만요."
안살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수행비서 지하크는 그런 그의 옆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내가 왜 골든 트러플 100kg을 주문하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던가?"
"아닙니다."
"짐작은 가고?"
"전혀요."
"간단히 말해주지. 난 한국의 골든 트러플 농장에 흥미가 있어."
그 말에 지하크는 눈을 빛냈다.
"그건 지질학 교수로서의 호기심인가요?"
"뭐,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필경 대단한 자원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지금까지 왕자님께서 관심을 보이신 지역에서는 못해도 최소 천연가스는 나왔으니까요."
"……지하크,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그저 순수하게 한반도는 원래 트러플이 자생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낀 거라고."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항상 그러셨죠."
지하크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순수한 지질학적 호기심 때문에 땅을 연구하셨죠. 이 지역의 퇴적암은 왜 다른 곳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가? 이 지역에서 이런 화석은 절대 나올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이런 토양에서 이런 식물돌연변이가 나왔나? 항상 그런 지질학적 흥미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고, 궁극에는 국제자원투자회사라는 거대한 공룡 기업이 탄생했죠."
토양이 궁금해서 땅을 파봤더니 석유가 나오더라.
식물 생태계가 특이해서 조사를 해봤는데 금맥이 튀어나오더라.
존재할 수 없는 화석이 발견돼서 땅을 파헤쳐 보니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더라.
안살린이 지질학자로서 품은 의문은 반드시 그런 행운과 이어졌고, 덕분에 그는 세계에서 추정 기업가치 4조 달러가 넘는 국제자원투자회사의 유일한 주인이 되었다.
지하크는 그 점이 언제나 안타까웠지만,
"지금이라도 자산 공시를 제대로 한다면 진짜 본연의 가치로 회사를 평가받을 수 있을 겁니다, 왕자님!"
"됐어, 뭐 그럴 필요가 있나."
"4조 달러라니요! 세상이 왕자님의 재산을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알고 있습니다! 저 지하크, 어려서부터 왕자님을 보필해 온 충신으로서 이 어이없는 오해 앞에서 분노를 느낍니다!"
"진정해, 지하크."
"4조 달러라니요! 제대로 자산 내 역만 공개해도 10조 달러 이상으로 가치가 껑충 뛰어오를 겁니다! 아프리카에서 매입한 금광과 다이아몬드광석의 채굴량만 제대로 공시해도, 아니, 동호주 연안 유전 가채매장량만 다시 올바르게 표시해도……!"
"지금도 왕가에서 충분히 견제받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어디 있다고."
안살린은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왕위 계승권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는데, 형님들은 왜 그렇게 긴장해서 난리들인지 모르겠어. 어차피 내 계승권은 3번째밖에 안 되는데."
왕위 3계승권자.
거창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왕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순위와 2순위가 갑자기 비명횡사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무엇보다 안살린은 왕위에 관심이 없었다.
모래만이 가득한 그 좁은 땅덩어리에 갇혀서 지내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살린은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신기해. 한반도는 골든 트러플이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구조라고. 기후, 지역, 토양 자체가 골든 트러플과 맞지 않아. 그렇다고 양식 재배가 성공한 것은 아닐 텐데……."
"왕자님이 이상한 점을 느꼈다면, 필경 어마어마한 것이 그 밑에 묻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심은 전혀 없어. 그 친구의 골든 트러플 농장 아래에 석유가 묻혀 있는 아니든 내가 알바 아니라고."
"오, 이번에는 석유인 겁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한국은 원래 석유가 거의 없기로 유명한 땅이잖나."
"하지만 왕자님의 그런 지목에서 항상 모든 것이 출발했습니다. 그 트러플 농장에도 분명히 커다란 게 묻혀 있을 겁니다."
안살린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하크가 저런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그러려니 넘어갔다. 저런 반응에 일일이 신경 쓰면 자신만 피곤하다.
"또 모르는 일이지. 농장에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라, 농부 자체가 뭔가 있다거나."
"조사해 보니 확실히 범상치 않은 친구 같았습니다. 특히 황금비단우산버섯 재배기술 개량에 성공한 점이 놀라웠습니다."
"처음 듣는 버섯 이름이군."
"국물 요리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식자재입니다. 제퍼드 쉐프는 국물맛을 살리고 버섯은 건져서 버리기 때문에 왕자님은 직접 드셔보신 적이 없을 겁니다."
"그런가."
안살린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은 골든 트러플이 자생하는 한반도 농장만을 떠올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골든 트러플 100kg을 주문한 것도, 일단 상대와 친분을 쌓기 위해서였다.
'트러플 농장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니, 경계심이 보통이 아니야.'
안살린은 하수영의 마음을 이해했다.
재물에 탐닉하는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 황금을 낳는 땅의 위치를 들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살린은 순전히 학술적 호기심 때문에 트러플 농장을 보고 싶은 것이었다.
"매출이나 올려주면서 천천히 친해 지려 했더니, 그것도 쉽게는 안 되는군. 알았네, 그럼 그쪽에서 정중히 선물한 10kg을 받는 것으로 일단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내가 적당히 답례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야겠군. 가만있자, 뭐를 주면 그 친구가 좋아할까?"
"국제자원투자회사가 한국에도 상당한 분야에 걸쳐 진출해 있습니다."
"그런가? 그 외진 곳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줄은 몰랐군. 어떤 게 있지?"
"섬유, 화학, 정유, 가스, 전기, 통신, 금융, 로봇공학, 반도체, 보험등 거의 모든 영역에 발을 뻗치고 있습니다. 왕자님은 그냥 적당한 거로 아무거나 고르시면 됩니다."
"농사를 짓는 친구니까…… 아무래도 정유 쪽이 낫지 않을까? 여기 미국에서 농사짓는 친구들 이야기를 듣자니, 비행기 띄우는 기름값만 해도 상당하다는 말을 들었네."
"미스터 캘리브론 말씀이시군요.
작년에 유가 폭등만 아니었어도 흑자폭이 더 커졌을 거라고 엄청 투덜거리셨지요. 비행기로 약 뿌리고 하다 보면 아무래도 기름을 엄청 잡아먹지요."
"그럼 정유로 하지. 200만 배럴 정도만 지원해 주면 올 한해 농사는 무리가 없겠지?"
"200만 배럴이면 그 나라 전체의 하루 소비량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뭐라고? 겨우 그 정도밖에 안 쓴 단 말인가?"
명색이 국제자원투자회사의 유일한 오너다.
수십, 수백억 배럴 단위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한 나라의 하루 소비량이 그거 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작지 않은 충격을 느꼈다.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농장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200만 배럴은 그 친구한테 너무 과한 양입니다."
"그래도 줘. 남는 건 알아서 두고 두고 쓰라고 하고."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좁은 땅덩어리다 보니. 왕자님이야 좋은 마음에서 답례를 하셨는데, 그쪽에서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안 되지. 선물을 불편하게 여기는 일은 없어야지."
안살린은 잠시 궁리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 나라 석유회사에서 200만 배럴을 무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권리 같은 걸 설정해 주면 어떨까?"
"좋은 생각이십니다. SC이노베이션에 말을 해두겠습니다."
SC이노베이션. 한국 최대의 정유회사.
참고로 국제자원투자회사는 그 회사의 지분 15%를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