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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94화 (94/1,270)

프랜차이즈 갓 094화

20장 어느 은행의 VIP(2)

지점장은 본사 녀석들의 허술한 일처리를 욕하며, 이체 한도 제한 설정을 풀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다행히 고객이 빠짐없이 전부 챙겨 온 터라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자신이 직접 찾아가서 서류를 받아올 것이다. 이런 귀중한 고객이 두 번 걸음 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겨우 이 정도 용무로 지점을 방문하게 만든 것 자체가 이미 담당 지점 녀석들은 시말서 감이야.'

계좌 발급 내역을 확인하니 서울 지점이었다.

그 지점 녀석들은 대체 VIP 관리를 어떤 식으로 하는 건지 묻고 싶었다.

이 정도면 서울 지역에서도 절대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객인데.

'어디 보자. 프라임유통컴퍼니……. 유통회사이고 작년 매출은 90억 정도로군. 그런데 원화로 200억 이상, 미화로는 4억 5,000만 달러가 있다고?'

주주 내역을 확인한 지점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입안이 저절로 바짝바짝 말라왔다.

'소유 지분 100%, 1인 주주라니…….'

그 말인즉슨 이 천문학적인 돈의 처분 권한이 모두 이 스무 살 청년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 됐고, 이제 본사 승인만 기다리면 되겠군."

보통 본사 승인이 필요한 건은 1~2일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고객들 이야기다.

외화 계좌에 4.5억 달러를 넣어둔 특별 고객한테 절차 때문에 하루 이틀을 기다려달라고 통보한다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지점장은 승인을 올리자마자 곧바로 본사에 연락을 취했다.

"정준수 이사님, 저 서락군 지점장박행식입니다."

-어, 박 지점장. 무슨 일인가?

"다름이 아니라 본사 승인이 필요한 일이라서 제가 1분 전에 결재요청을 하나 올렸는데, 지금 바로 확인하셔서 처리해 주십사 하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자네가 나한테 다이렉트로 그럴만한 일이 있어? 뭔데?

"법인계좌 이체 한도 해제 건입니다."

-아니, 그런 자잘한 걸 왜 나한테까지 전화를 걸어서… 이거 뭐야??

계좌주의 '스펙'을 이제야 확인한 모양이다.

박행식 지점장은 마치 자신이 계좌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괜히 의기 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저희 지점에 오셔서 이체 한도를 풀어달라고 하셨더라고요."

-아니, 외화 계좌에 사억오천만 달러를 갖고 있다고? 이런 거물이 왜 서락군 지점을 찾아가? 가만, 입금날짜도 얼마 되지 않았네?

"그런 거물 VVIP인데 본사에서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것들이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이런 건수가 있으면 즉각 찾아내서 내게 보고를 올렸어야지!

일정 금액 이상의 입출금은 시스템이 자동으로 알려주게 되어 있을 텐데, 아직까지 정준수 이사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니.

아마 본사 직원들이 일처리에서 누락이 있었거나, 아니면 정준수 이사가 정보에서 고의적으로 제외되었거나…….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아무튼 바로 처리 좀 해주십시오. 지금 고객님께서 엄청 따분한 표정으로 제 사무실에 앉아 계십니다."

-알았어, 이건 내가 전결로 지금 즉시 처리해 줄게. 5분, 아니 3분 안에 처리해 줄 테니까 그 고객 단단히 붙들고 있어. 내가 지금 서락군으로 내려가지.

"고객님은 용무 끝나면 바로 돌아가실 분위기인데요?"

-자네가 어떻게든 붙들고 있어 봐. 계좌 개설도 얼마 되지 않은 거 보면 아직 주인 없는 금광 같은데 내가 어떻게든 안면이라도 터야 할 거 아닌가.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일단 지금 내려갈게.

허둥지둥 대는 정준수 이사의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4.5억 달러의 외화를 예치해 둔 고객이니,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라도 만사를 제쳐 두고 당장 내려왔을 것이다.

* * *

전화를 끊은 정준수 이사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대체 일처리를 어떤 식으로 하는 거야!"

거액의 입출금은 전산 시스템으로 샅샅이 관리된다.

금융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목적도 있지만, 큰돈을 움직이는 주요 VIP들을 세심히 관리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아무리 법인이라지만, 올해 개설한 신규 외화 계좌에 4.5억 달러가 입금되었다면 당연히 자신에게도 보고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없이 잠잠했다니.

"이강식! 너, 일을 무슨 이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정준수는 곧바로 부하 직원을 찾아 호통을 쳤다.

"예? 이사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거 말이야, 이거!"

정준수는 서락군 지점에서 팩스로 전송된 결재서류들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계좌 내역을 확인한 이강식의 표정이 변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여기 보면 며칠 전에 4억 5,000만 달러가 입금되었어요. 그런데 외화팀에서 전혀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게 말이 돼?"

"이사님, 그게 말이죠……."

"변명은 됐고 빨리 해명이나 해봐. 이런 건수를 내가 왜 여태 모르고 있다가 서락군 지점에서 결재 요청들어오고 알게 됐, 아니, 아니지. 일단 너 이거 이제 한도 해제부터 빨리 실행하고 와라. 고객님 기다리신다."

"앗, 네."

이강식은 서류를 들고 후다닥 달려 갔다가 승인 처리를 모두 마치고 돌아왔다.

"헉헉, 이사님. 전부 마쳤습니다."

원래 그의 업무 소관은 아니지만, 이 분위기에서 꺼낼 말은 아니었다.

"자, 설명해 봐. 왜 내가 여태 이걸 모르고 있었지?"

"그게, 저희도 갑자기 거액의 외화가 입금돼서 원인 파악 중이었습니다. 계좌주한테 여러 방향으로 연락을 취했는데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전화도 안 받고 문자 메시지는 일절 답변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업장에 연락까지 취해봤는데 직원들은 자기들은 모른다, 알 수 없다, 사장한테 왜 연락하느냐, 그런 식으로만 나오더라고요."

"……."

"4.5억 달러 입금한 곳에서 뭔가 잘못됐다고 철회 연락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고요. 이래저래 상황 파악하고 있었는데, 일단은 문제없는 합법적인 거래 같았습니다."

"이 친구야! 그래도 이런 큰돈이 오고 가면 일단 보고부터 하고 자세히 알아보던가 해야지!"

"죄송합니다."

이강식은 고개를 푹 숙였다.

"금감위에 신고는 했어?"

"네, 그건 일단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보고가 없었다고?"

"저기, 외화관리부서에서 김현태상무님한테는 따로 정식 절차 밟아서 보고가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그제야 정준수 이사는 상황을 파악했다.

'그럼 그렇지.'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느라고 이런 큰 건의 보고가 지체되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시 김현태 상무의 보이지 않는 견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놈이 설마?'

정준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강식을 주시했다.

그 살벌한 시선에 이강식은 조용히 얼굴을 떨어뜨리기만 했다.

혹시 그쪽 라인에 붙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가슴을 맴돌았다.

"강식이,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돼. 알았지?"

"죄송합니다."

"넌 지금 바로 나 따라와. 출장이다."

"예?"

"출장이라고, 말 못 들었어?"

"아, 알겠습니다!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자그마치 4억 5,000만 달러짜리 고객이다.

대놓고 당당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재벌 기업의 불법적인 돈 세탁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해외에서 크게 사업을 벌였고, 그게 잘 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렇게 거리낌 없이 돈을 주고받았겠지.

'내 실적으로 만들어야 해.'

정준수 이사는 이글이글 불타는 마음을 안고, 서락군으로 차를 몰라고 지시했다.

"네? 서락군이요?"

"그래."

"그 촌동네는 왜 가시는 겁니까?"

"당연히 고객이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지."

그제야 이강식은 승인요청 서류가 발송된 지점이 서락군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더 황당했다.

"그 촌동네에 계좌주가 살고 있다고요? 인적사항에는 그런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요?"

"그거야 주소이전을 안 했으니까 그렇지."

"아, 그래서 계좌주 행적 파악이 여태 안 됐던 거군요."

전화 연결은 안 되지, 사업장 직원들은 모른다고만 하지, 주소지에서 떠나 있지,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은 게 당연했다.

"계좌주, 계좌주 하지 마라. 외화계좌에 4.5억 달러를 쌓아두고 있는 초우량 고객이시다. 그런데 프라임유통컴퍼니? 이건 대체 뭐 하는 회사야?"

"알아보니까 농수산물 유통회사입니다. 창업한 지는 꽤 됐는데 얼마 전에 주인이 바뀌면서 상호도 바뀌었더라고요."

"주인이 바뀌어?"

"네, 원래 전성렬이라는 사람의 1인 회사였는데, 하수영이라는 사람에게 주식을 전량 매도했습니다. 지금은 그분이 회사 오너일 겁니다."

"농수산물 유통회사?"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헷갈림이 짙어진다.

국내에서 영업하는 농수산물 유통회사가 해외에서 4.5억 달러를 받을만한 일이 뭐가 있지?

"심지어 작년 매출은 90억 정도였어요. 수십 년간 한 번도 매출 100억 원을 넘어본 적이 없습니다."

"……90억 원이라고?"

"네, 사업소는 서울에 있는데 계좌내역을 보면 올해 들어 입출금 내역이 무척 활발해졌습니다. 사업 규모가 갑자기 대폭 증가한 것 같습니다."

"연락은 왜 안 되는 거야? 설마 하수영 사장님의 연락처가 없는 거야?"

"연락처는 제대로 등록이 돼 있는 데,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아요. 문자도 답이 없습니다."

"전화기를 꺼놓은 거야?"

"그런 건 아닙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정준수는 계좌와 회사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확인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불법적인 것에 연루된 기업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올해 들어 어떤 초대박 아이템을 발굴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업규모가 갑자기 증대된 것이다.

그것만이 이 상황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었다.

"김현태 상무님은 어떻게 하고 계시지?"

"계좌주, 아니, 고객님하고 어떻게든 연락이 닿으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근데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신 모양입니다. 며칠 내로 아예 사업장을 찾아가실 것 같습니다."

"저런, 상무님이 초조한 나머지 엉뚱한 결심을 품었네. 밑도 끝도 없이 사업장을 찾아가면, 그런 VIP가 과연 좋아할까? 오히려 귀찮게 방해 받았다고 짜증이나 내지 않으면 다행이지."

"……."

이강식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사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는 걸 필사적으로 삼켰다.

* * *

"다 됐습니다."

지점장이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은 채 다가와서 말했다.

모바일 뱅킹으로 법인 계좌에 접속한 하수영은 이체 한도 옵션을 확인하고 끄덕였다.

"문제없네요.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지…"

"해결됐습니다. 이만 가봐야겠어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보니."

하수영이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처럼 굴자 지점장은 당황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정준수 이사가 내려올 때까지는 어떻게든 붙잡고 있어야 했다.

"고객님! 호, 혹시 괜찮으시면 투자에 적합한 최고의 금융 상품을 소개해드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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