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91화
19장 둘째를 들이다(6)
에드거는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하수영을 따라 호텔 정문을 나왔다. 현금수송차량에 실린 골든 트러플을 남김없이 확인했다.
상자마다 하나같이 완충제에 감싸인 골든 트러플이 빽빽하게 담겨 있었다.
"차량 한 대마다 50kg씩 실었습니다."
"물량이나 품질은 아무 문제가 없겠군요. 그렇지요?"
"당연한 말씀을. 이게 얼마짜리 거래인데 그런 실수를 저지르겠습니까?"
에드거는 그 말이 마치, '너희도 제대로 실수 없이 인도해야지?' 라는 반 경고처럼 들렸다.
그 자리에서 에드거는 꼼꼼하게 물량을 확인했다.
모든 차량에 실린 박스를 하나하나 전부 열어서 내용물이 이상 없는지를 확인했다.
그것은 하수영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수영에게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틀림없이 현장에서 전수검사했으므로, 나중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모두 확인했습니다. 전혀 이상 없군요."
"그럼 어디로 싣고 가면 될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에드거는 어딘가로 전화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 차림의 외국인 남자 둘이 로비 밖으로 나왔다.
"확인은 전부 내가 했으니, 그냥 가져가기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미스터 하, 이 친구들이 어디로 가져갈지 안내할 겁니다. 바로 항공기를 긴급 수배해야겠군요. 이거 덕분에 무척 바빠지겠습니다."
에드거의 부하 직원들은 곧바로 차를 끌고 와서 출발했고, 현금수송차량들도 그 뒤를 따랐다.
"일정이 당겨졌으니 전용기 파일럿들도 정신이 없겠어요."
"미스터 하? 우리 회사에는 전용기가 없습니다만……."
"아, 그럼 전세기를 구해야겠군요.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전세기가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전세기라니요. 300kg 골든 트러플정도면 그냥 특수 화물편으로 보내면 그만입니다. 보험 문제만 잘 처리하면 됩니다."
"……."
하수영은 오히려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팟디서플라이 정도면 B747 같은 전용기 서너 기는 굴리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유통사업에서 원가 절감은 미덕입니다. 전용기 같은 사치품은 어울리지 않아요. 회사 경영진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왠지 갑자기 힘이 빠지신 듯합니다. 혹시 몸이 어디가 안 좋은 건 아닙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갑자기 잠깐 어지러웠었네요.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
"미스터 에드거, 부디 남은 방한 일정도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농장 관리 때문에 이만 실례해야 할 것 같네요. 부사장님, 미스터 에드거를 불편함 없이 에스코트해 드리세요."
"네, 대표님."
에드거는 멀어지는 하수영의 모습을 가만히 주시했다.
"미스 정, 대표님 걸음걸이가 왠지 불편해 보이지 않습니까?"
"저도 그래 보여요. 갑자기 왜 저 러시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일반 항공편으로 골든 트러플을 보낸다는 것 때문에 저러시는 건 아닌지…"
"설마요.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 * *
"아버지, 이게 말이 돼요? 팟디서 플라이 같은 덩치 큰 놈들이 전용기 하나 없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그렇게 아끼는 게 몸에 밴 애들이니 지금처럼 회사를 크게 키우지 않았을까?
"부자의 검소는 미덕이 아니라 죄악입니다. 아니, 돈 많은 놈들이 돈을 많이 써야 그만큼 경제가 활성화되는 거잖아요. 당연한 이치 아닌가요?"
-그거야 전체로 봤을 때 그런 거고, 개별 구성원 입장에서는 최대한 움켜쥐고 있는 게 이익 아니겠니? 나도 우주를 통치하면서 그것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었다.
"고작 버섯쪼가리 사는 데 그런 큰 돈을 쿨하게 쓰는 놈들이 정작 전용기 한 대도 없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얼마 받았니?
"45억 원이요. 입에 간신히 풀칠은 할 수 있게 됐죠."
하수영은 거리낌 없이 0을 두 개나 빼고 말했다.
-그래도 제법 큰돈을 벌었구나. 그 돈이면…….
"저번에 계약한 청담동 건물 중도금은 겨우 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쬐끄만 상가 빌딩이요."
-다행이구나. 중도금, 잔금 합쳐서 32억을 어떻게 마련할지 내가 다 눈앞이 캄캄했는데. 역시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어요.
"그렇죠. 죽으란 법은 없더라고요."
-그럼 오늘은 걱정 없이 교육에 정진할 수 있겠구나.
* * *
"어, 그래. 화물편은 잘 수배됐다고? 다행이군. 보험 내용 한 번 더 확인하고, 그래 포장도 한 번 더 단단히 해서 넣어. 4억 5,000만 달러짜리 상품 아닌가."
에드거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면서 꼼꼼하게 골든 트러플 배송 건을 챙기고 있었다.
위험 분산을 위해 비행기 1기에 모두 넣지 않고, 30kg씩 10기에 나눠서 배송을 하도록 했다.
보험을 들어놨으니 사고가 나더라도 문제는 없지만, 그보다는 귀중한 골든 트러플을 잃지 않는 게 중요했다.
전화를 마치고 한숨을 돌리는데, 는 하이힐 소리가 다가왔또기다.
"에드거 이사님."
"아, 소피아. 어서 앉아."
소피아라 불린, 늘씬하고 큰 키의 금발 미녀가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설마 계약 첫날에 300kg을 바로 가져올 줄은 몰랐네요."
"일이 조금 틀어졌네. 어쩔 수 없지."
"오히려 잘된 거 아닌가요? 생각보다 질 좋은 농장을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잖아요."
"그러게. 구매 문의 넣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300kg을 채취했는지. 놀라워."
"이 나라의 좁은 땅 면적을 생각하면 농장도 그리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좁은 농장에서 며칠 만에 300kg을 채취할 정도면 대단한 거지. 아마 단위 면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토양 품질을 자랑하는 농장일 거야."
팟디서플라이는 세계 최대의 골든 트러플 농장을 갖고 있다.
물론 단일 농장은 아니다.
여기저기 인수해서 긁어모은 농장개수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가는 상황이니.
그 면적을 다 합치면 300만 헥타르, 대충 300x100㎞의 직사각형에 해당하는 넓이다.
그 무시무시한 크기의 트러플 농장에서 일 년에 채취 가능한 골든 트러플은 겨우 400~500kg 남짓한 수준.
버섯 탐지를 위해 수백 마리가 넘는 훈련받은 탐지견이 하루도 쉼 없이 농장 지대를 샅샅이 수색한다.
"우리 회사 농장은 60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서 일 년에 1kg이 간신히 생산되고 있지."
"하지만 프라임유통은 열흘도 안돼서 300kg을 가져왔죠."
"우리 농장보다 11만 배 가까이 효율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지. 물론 저 친구의 골든 트러플 농장 면적이 60제곱킬로미터라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야."
"그런데 조금 이상하긴 해요. 저 정도면 화이트나 블랙트러플도 아주 많이 생산될 텐데, 그런 건 전혀 팔고 있지 않네요. 설마 골든 트러플만 나오는 농장이기라도 한 걸까요?"
소피아가 제기한 의문에 에드거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당치도 않아. 골든 트러플만 나는 농장이라니,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어."
300만 헥타르의 트러플 농장.
그 거대한 자생지에서 당연히 골든 트러플만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골든 트러플의 수십 배 이상 가는 화이트, 블랙트러플도 생산되고 있다.
골든 트러플의 자생 요건이 매우 까다롭기는 하지만, 골든 트러플만 자라는 농장은 있을 수 없다.
골든 트러플이 잘 자라는 지대는 당연히 다른 트러플들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껏 준비한 방해 계획은 일단 전부 멈춰야겠네요."
"다음을 기약하면 되지."
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일부러 상대의 수확이나 운송을 방해해서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제삼자를 통한 철저한 비밀 엄수는 기본이다.
그럼 상대는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부담하지 못해 결국 가진 전 재산을 내놓게 된다. 골든 트러플 농장도 당연히 팟디서플라이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지금껏 그런 식으로 손에 넣은 골든 트러플 농장만 해도 50만 헥타르는 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작하기도 전에 헛발질을 한 셈이 되었다.
"농장이야 천천히 손에 넣으면 되고, 아니면 아예 인수를 해버려도 되지. 일단 그건 그리 급한 건 아냐."
"그래도 직거래는 막을 수 있어 다행이네요. 아부다비 왕가에서 한국에 직접 주문을 넣으려고 한다고 해서 회사가 발칵 뒤집어진 게 어제일 같은데요."
"300kg이나 쥐어짜 냈으니 더 이상 팔 물량이 남아 있지 않을 거야. 마침 지금은 골든 트러플 수확량이 바닥을 칠 때가 아닌가. 환절기잖아."
파산으로 몰아넣어 농장을 뺏는다는 목적은 일단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골든 트러플 시장에 직접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는 부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프라임유통에 문의해서 물량이 없다는 걸 알면 다시 우리에게 연락이 올 거라고, 안심해."
"다행이에요. 가장 큰손을 뺏기지 않게 돼서."
"절대 안살린 왕자를 한국 같은 변두리 국가에 뺏길 순 없지."
에드거는 각오를 다지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4억 5,000만 달러를 긴급 지출하는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이번 거래를 성사한 이유 중에는, 안살린 왕자를 뺏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컸다.
골든 트러플 유통은 팟디서플라이가 꽉 쥐고 있어야 한다.
생겨난 지 1년도 안 된, 변두리 국가의 신생업체 따위가 끼어들 틈을 줄 수는 없다.
"이 짧은 시간 동안 300kg을 수확했어. 아주 위험해. 반드시 우리가 집어삼켜야 해."
"이번에는 농장을 망치게 되는 일은 없기를 바랄게요."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 버려야 한다. 그리고 들키지 않고 농장을 망치는 방법은 다양하다.
성장을 방해하는 고농도 화학물질을 적당히 뿌려서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 식으로 제거된 경쟁자 수도 상당하다.
"농장 위치는 아직 찾지 못했죠?"
"아직. 황금비단우산버섯 농장밖에 노출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황금비단우산버섯도 우리가 매입해서 팔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재배단가 인하에 성공했을까요?"
"그것도 천천히 진행하면 돼. 지금 급한 것은 그 친구가 갖고 있는 트러플 농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거니까."
* * *
큰 계약을 마친 정서희는 산뜻한 기분으로 복귀했다.
프라임유통컴퍼니에서 커미션 명목으로 5억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프라임유통에서 이번 계약 체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중재했으니까.
두 회사 모두 하수영의 것이나 다름없지만, 별도의 법인이기에 회계 처리는 깔끔하게 해야 한다.
정서희는 외화계좌로 받기로 했다.
굳이 환전을 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달러 가치는 조금씩이지만 계속 오르고 있고, 훗날 해외 시장진출도 할 예정이니까.
"정 부사장, 팟디 거래는 잘 됐나요?"
"네, 그 자리에서 돈 받고 물건 바로 넘겼어요. 이제 더 이상은 신경쓸 거 없어요."
"다행이네요. 그놈들이 시커먼 생각이 있는 거 같다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그래서 한 큐에 끝냈잖아요."
업무가 잔뜩 밀려 있지만, 정서희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한창 숫자에 몰두하고 있는데, 영업부장이 조심스럽게 사무실에 들어왔다.
"저, 부사장님. 해외에서 이상한 구매 요청이 왔는데요. 골든 트러플 100kg을 사고 싶다고……."
"100kg이나요? 대체 어디죠?"
"국제자원투자회사라는 곳입니다."
안살린의 회사, 정서희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빨리 요청서 이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