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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89화 (89/1,270)

프랜차이즈 갓 089화

19장 둘째를 들이다(4)

정서희는 변호사와 함께 오후에 서락산 저택을 떠났다.

하수영은 프라임유통컴퍼니 직원들과 함께 간만에 술잔치를 벌였다.

"그러고 보니 사장이 바뀌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회식을 가져본 적이 없군요."

"사장님, 이참에 직원들 사기도 북돋우실 겸 한마디 해주시죠!"

회사에서 가장 오래 일했고, 나이도 많은 최고참 직원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다른 직원들도 분위기에 맞춰 박수를 치며 하수영의 연설을 재촉했다.

"다들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으신데, 제가 사장 자리 가지고 뭐라고 유세를 떨기는 좀 그렇고, 이거 하나는 약속드릴게요. 여러분 모두 일한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좋아!"

이미 술이 얼큰하게 취한 최고참 직원, 박수열 부장이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저 사람이 참 상사 기분을 제대로 띄울 줄 안단 말이지.'

하수영도 속으로 피식거리며 호응하듯이 술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자, 건배!"

"건배!"

"위하여!"

술이 들어가니 모처럼 흥이 돋았다.

하수영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직원들과 술을 마셨다.

"자, 새 사장한테 내가 이 말은 꼭 해야겠다, 뭐 그런 거 없어요? 이런 날이 흔치 않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뭐든지 물어보세요. 제 뺨을 때리는 것만 아니라면 절대 불이익 같은 거 주지 않습니다."

"가, 우리 사장님이 벌써부터 사장으로서의 자세가 제대로 잡혀 있으셔."

"암, 불이익 같은 거 없으니 아무거나 맘 편히 말해라, 이거는 사장으로서 꼭 갖춰야 할 필수 멘트지."

"아니, 진짜 불이익 같은 거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뭐든지 말해보라고요. 이 사람들이 속고만 사셨나."

"네에네에, 속고만 살았습니다."

가벼운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하수영은 답답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분들이 정말. 안 되겠네."

하수영은 벌떡 일어나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윽고 그는 5만 원짜리 현찰 뭉치를 손에 쥐고 와서 테이블 위에 턱 하고 올려놓았다.

현금다발을 목도한 이들은 삽시간에 술이 깨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 여기 상금 이천만 원이 있습니다."

"이, 이천만 원이요?"

"지금부터 '사장한테 말하다' 타임을 시작합니다. 괜찮은 질문이나 발언을 한 분들한테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300만 원까지 상금을 줍니다. '사장한테 말하다' 끝나는 건 상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저요, 저요!"

"네, 전태준 대리. 역시 젊은 직원답게 가장 행동이 재빠릅니다. 자, 뭘 물어볼 거죠?"

"연봉은 언제 인상되나요?"

"곧 해주려고 했는데, 별로 재미는 없는 질문이네요. 너무 레퍼토리가 뻔해요. 그래서 상금은 10만 원."

하수영이 5만 원짜리 두 장을 내밀자 전태준 대리는 신이 나서 얼른 받아들었다.

연봉 인상 질문에도 별다른 타박없이 상금이 쥐어지자, 직원들 사이에서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신입 사원은 언제 뽑습니까?"

"우리 회사도 대기업식으로 체제 전환 갑니까?"

"사장님이 전 사장님 사위 된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여자친구가 왜 없으십니까?"

"바보냐. 정서희 부사장님 같은 분이 옆에 있는데 다른 여자친구를 만들 생각이 나겠냐고."

거의 대부분은 10만 원의 상금만 타갔다.

일단 한 번 질문을 하면, 아직 질문을 하지 않은 이들이 전부 끝난 후에야 다시 질문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그리고 아직 한 바퀴를 다 돌려면 멀었다.

"우리 회사는 의료복지 지원은 없습니까?"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한 30대 후반의 남자 직원이 던진 질문이었다.

하수영은 턱을 괸 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습니까?"

의례적인 확인 질문임을 이제 알기에, 질문자는 당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추가했다.

"제 딸이 얼마 전 난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쌉니다. 전세금을 빼서 치료를 해야 할 처지입니다."

"저런, 치료비가 얼마나 나오는데요?"

"수술비와 입원 치료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1억 5천 정도는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보험은 안 들었습니까?"

"보험금을 제외하고 제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그 정도입니다."

다른 직원들은 그다지 놀란 눈치가 아닌 걸 보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본인 및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의 의료비 지원은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청구서 날아올 때마다 회사로 가져오세요. 1원도 안 빠뜨리고 100% 부담하죠."

"엇, 정말이십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을 꺼냈던 직원이 오히려 놀라서 반문했다.

한 달 동안 그를 끙끙 앓게 만들었던 문제가 이렇게 시원하게 해결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직원복지 비용으로 처리하면 되니 별로 부담 안 됩니다. 괘념치 마시고, 다른 분들도 병원비 때문에 끙 앓지 말고 회사로 가져오세요. 단, 성형수술 같은 건 당연히 안 돼요."

하수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폐뭉치를 대강 집어 들고 직원에게 내밀었다.

"아주 좋은 문의를 했어요. 상금 500만 원입니다."

"으억, 감사합니다!"

직원은 놀라서 지폐 뭉치를 받아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근데 대강 집어 드셨던데 이게 500만 원인지 어떻게 확신하시는 건지……?"

"손가락 끝에 센서 달았거든요. 이정도야 껌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돈을 세어본 직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 단 1장도 안 빠지고 정확히 100장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맙소사! 진짜 500만 원이야."

"뭐? 아니, 사장님이 분명 대충 집었는데 그게 어떻게 정확히 500만 원이라는 거야? 이게 가능해?"

"사장님 말씀 못 들었어? 손가락 끝에 센서 달렸다잖아,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잖아."

"우와, 우리 사장님. 진짜 재물운은 타고 나신 거 아닐까?"

"그러니까 황비버섯라면이 그렇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지."

사장으로서 중요한 자격 요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재물운과 사업운은 절대 빼놓을 수가 없다.

일단 사업이 잘 풀리고 회사가 번 창해야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보장이 되니까.

유통바닥에서 오랫동안 구른 직원들에게 있어 방금 하수영이 보인 기행은 깊은 인상을 새겨놓았다.

'치료비 전액 지원이라니…….'

'앞으로 병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저번 달에 아버지 수술비로 삼천만 원 깨졌는데, 혹시 그것도 보전해주시려나?'

"사, 사장님! 저번 달에 아버지 암수술비로 삼천만 원을 지출했는데, 혹시 그것도 복지 대상이 됩니까?"

"영수증만 제대로 가져오세요. 보험사하고 건강보험공단 빼고, 본인이 부담한 게 삼천만 원이라는 거 맞죠?"

"네, 맞습니다. 영수증 내일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휴, 살았다. 그거 사실 우리 큰애 시집보내려고 모은 돈으로 막은 거라 어떻게 결혼시킬지 난감했었거든요."

"병원비 때문에 직원들이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죠. 그게 사장으로서 제 신념입니다."

"우리 사장님, 너무 멋있으셔!"

"사장님, 최고입니다!"

우연찮게 열린 단체 회식은 10시가 아니라 11시에 막을 내렸다.

다음 날.

하수영은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에야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전날 과음하면 자고 일어나도 핏속에 알콜이 남아 있어요. 아무리 잠을 잤어도 그게 다 해독되지 않았으면 음주운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푹 쉬고 이동합시다."

하수영은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출발 지시를 내렸다.

막을 타고 올라갔다.

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장소는 서해 호텔이었다.

극소수 VIP를 위해 골든 트러플만찬이 열린 장소이다 보니, 미팅장소가 그곳으로 정해졌다.

다수의 현금수송차량이 호텔에 진입하자, 주차관리직원들이 일제히 긴장한 빛을 띠었다.

하수영이 차에서 내리자 어느 직원이 바로 알아보고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검문 통제가 없군요?"

"전체 대관이 아니니까요. 여느 때처럼 누구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전의 일이 생각난 직원은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다가, 현금수송차량들을 돌아봤다.

"근데 저 차들은 현금수송차량 아닙니까? 혹시 현금이라도 수송하시는 중인가요?"

"네. 놀라지 마세요. 지금 저 차들에 4,500억 원의 현금이 실려 있습니다."

"예?"

직원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다시 차량을 돌아봤다가, 장난치지 말라는듯이 말했다.

"농담하지 마십시오. 현금 4,500억원이 어떻게 저 안에 다 들어갑니까? 부피가 절대 안 나옵니다."

"사실은 곧 4,500억 원으로 바뀌게 될 녀석들이 실려 있거든요."

"혹시 골든 트러플입니까?"

"맞습니다. 킬로당 15억 하는 골든 트러플 300kg이 실려 있어요. 그러니 누가 차에 접근하지 않는지 신경써서 지켜봐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사실 직원들에게 그런 의무는 없지만, 4,500억 원이라는 말에 그는 바짝 긴장했다.

"수영 씨 고용주는 정말 떼돈을 벌겠군요. 골든 트러플 300kg이라니…… 정말 엄청납니다."

육중하고 긴 차체를 자랑하는 현금수송차량이 대체 몇 대인지.

직원은 그저 혀를 내두르기 바빴다.

"그래 봐야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나갑니다. 거의 46.2%가 세금이라고 보면 돼요."

"와, 세금이 정말 엄청나네요."

* * *

하수영은 미팅 장소로 향했다.

장소는 바로 서해호텔 프레스티지 스위트룸이었다.

1박에 400만 원이나 하는 고급 객실이지만,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그 비용을 지출했다.

룸 앞에는 두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하수영이 다가오자 그들은 뭐야 하는 시선으로 쏘아 보았다.

"안에 계신 정서희 부사장님한테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정서희를 언급하자 그제야 경호원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혹시 하수영 대표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경호원들은 얼른 문을 열어서 하수영을 안으로 안내했다.

푹신한 실내화로 갈아 신은 하수영은 짧은 복도를 지나 넓은 거실로 나왔다.

화사한 정장 차림인 정서희가 중후한 느낌의 백인 중년 남자와 마주보고 앉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서희의 발음은 상당히 유창했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 같았다.

"아, 사장님. 어서 오세요."

"이분이 팟디서플라이 담당자이신가요?"

"네, 그래요."

정서희는 우아한 웃음을 띤 채, 백인 중년 남자에게 영어로 하수영을 소개했다.

"미스터 에드거, 이쪽은 하수영 대표님이에요. 귀사가 구매할 골든 트러플이 자생하는 농장을 가진 분이죠."

"오,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귀한 분을 뵙게 되네요. 저는 팟디서플라 이의 유통망 담당이사, 코만리 에드거라고 합니다."

정서희가 통역을 하기 직전, 하수영이 자연스러운 영어 발음으로 대답했다.

"평소 귀사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하수영입니다. 작은 농장 몇 개를 경영하고 있어요."

그의 발음에 놀란 정서희가 얼른 물었다.

"대표님, 원래 영어 하실 줄 알았어요?"

"요즘 세상에 농사지으려면 영어는 기본이죠. 농업 공학 관련된 논문이나 연구자료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나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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