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8화 (88/1,270)

프랜차이즈 갓 088화

19장 둘째를 들이다(3)

정서희는 변호사까지 대동한 채 서락산 저택까지 찾아왔다.

"인사드릴게요. 이분께서 마세라티차주 소송 건을 맡아서 진행해 주실거예요. 오늘은 위임장을 받으러 왔어요."

"먼 길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셨네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죠."

"근데 낯이 익으신데…… 혹시 서락산 저택 매매할 때 대동하셨던 그분 아닌가요?"

"맞습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중년 변호사가 웃으며 끄덕였다.

하수영도 어깨를 으쓱했다.

"참. 사람 인연 몰라요. 그쵸? 서락산 매매 끝나고 이제 다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얽히다니 말이에요."

"정말 그렇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쭉 오래 갈 것 같군요."

"그러게요."

하수영은 변호사가 요구하는 대로 위임장을 써주었다.

"마세라티 차주는 변제 능력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도 명의자는 부친으로 되어 있더군요."

"부친한테서 받아낼 수 있을까요?"

"부동산과 금융 자산을 합쳐서 대충 210억 정도 되더군요. 사실 마세라티 차주가 미성년자도 아닌지라 부친이 대신 변제할 책임은 없습니다."

변호사는 저번에 정서희가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했다.

"일단 조만간 부친과 이야기는 해볼 참이지만,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마세라티 차주나 조지죠. 평생 신용불량자로 살게 만들어줍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서희는 저택 한쪽에 쌓여 있는 박스에 힐끔 눈길을 주었다.

"저게 골든 트러플인가요?"

"네, 나중에 직원들 와서 가져가라고 쌓아뒀습니다. 최상급 품질로 정확히 322kg이에요."

"변호사님, 혹시 그거 아세요? 저기 쌓여 있는 박스들의 가치가 4,980억 원이에요."

"네?"

중년 변호사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고, 정서희는 그게 재미있어서 쿡쿡 웃었다.

"정말이에요. 골든 트러플이라고, 중동 왕족들이나 먹는 엄청 비싼 식자재거든요. 보통 킬로그램당 10억에서 30억까지도 가곤 해요."

"아니, 금도 킬로당 5천만 원밖에 안 하는데 그게 무슨 미친 가격입니까?"

"그러니까 중동 왕족들이나 먹는 거죠. 웬만한 부자들도 감히 먹어볼엄두를 못 내요."

"킬로당 10억 이상이면 10대 재벌들도 먹을 때마다 숟가락이 벌벌 떨릴 거 같은데요."

"그래서 원래 우리나라에는 유통자체가 안 돼요. 10대 재벌 총수들 생신이나 중요한 행사 때만 조금씩 알음알음 들여오는 수준이었죠."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이 안 됩니까?"

"원래는 그랬어요. 근데 여기 하수영 사장님이……."

"제가 철과 상관없이 송이와 골든 트러플이 자생하는 산을 가지고 있어서요."

"아, 그럼 이번에 교통사고로 입으신 피해가…"

"네, 55㎏의 골든 트러플이 못 쓰게 됐어요. 그래서 받아내야 할 피해배상금이 대충 천억 원인 거죠."

"어쩐지, 이제 이해했습니다."

변호사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연신 비비며 포장 박스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저 얼마 되지도 않는 박스들이 4, 980억 원이 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니.

"그럼 골든 트러플만 팔아도 엄청난 부자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골든 트러플 시장은 명백한 한계가 있어서요."

하수영은 피식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골든 트러플 시장은 파이가 딱 정해져 있어요. 일 년에 유통되는 물량이 1톤이 못 됩니다."

"생산량이 그만큼 부족해서입니까?"

"생산량 문제도 있죠.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가치 유지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골든 트러플은 사치 품이거든요."

실제로 세법에서 사치품으로 분류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사치품이다.

그것도 왕족이나 향유하는.

"광어 아시죠?"

"예, 압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횟감이죠."

"원래 광어가 그렇게 고급 횟감이었대요. 귀한 데다가 맛도 좋아서요. 근데 대량 양식에 성공하면서부터 가격이 확 떨어진 거죠."

"아, 그런가요?"

"도미 종류 중에서는 광어보다 맛이 떨어지는데도 희소하고 양식이 안 된다는 이유로 열 배 이상 비싼것들도 있어요."

변호사는 그제야 하수영이 말한 '가치 유지'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 했다.

"사실 골든 트러플이 너무 흔해지는 것은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 모두요. 소비되는 물량에 맞춰서 적당히 생산되는 게 바람직하죠."

"그래서 가치 유지라고 말씀하신 거군요."

"네, 흔해지면 그만큼 가격이 떨어지고, 그럼 아무리 맛과 향이 좋아도 중동 왕족들이 더 이상 찾지 않을 겁니다. 후추 꼴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 향신료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값비싼 사치품 취급을 받았던 후추.

하지만 이제는 1달러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흔한 재료가 되었다.

"골든 트러플이 맛과 향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이 떨어지는 순간 중동 부자들은 외면할 겁니다. 그러니 물량 조절을 신경 써야 하죠. 비싸다고 좋아서 마구 캐서 팔다가는, 아, 잠깐."

말을 하다 말고 하수영은 탄성을 내며 정서희를 바라보았다.

"팟디서플라이 이놈들도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요?"

"혹시 우리가 골든 트러플을 마구내다 팔아서 시장 가격을 훼손할까봐 미리 관리한단 말씀이세요?"

역시 정서희는 말을 하자마자 곧바로 이해했다.

"네,300kg이나 주문한 게 어쩌면 그런 의도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연간 소비량이 1톤이 못 된다.

그런데 팟디서플라이는 300kg이나 주문을 넣었다.

서해호텔 만찬에서 수십㎏이 넘는 골든 트러플을 접대한 것을 보고 무엇을 느낀 모양이다.

"아, 참. 어제도 태양심에서 찾아왔었습니다. 그래서 최종 통보했어요."

하수영은 이상원 부장에게 한 거짓말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했고, 정서희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근데 프라임컴퍼니에서 농장 자금지원받았다는 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아요? 사장님이 곧 프라임컴퍼니나 다름없으시잖아요."

최종적으로 지분의 85%를 소유하게 될 사람이니, 하수영이 곧 프라임컴퍼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양심 직원 표정 볼만했겠네요. 안 그래도 어제 서울 사무실에 태양심 전무까지 찾아와서 읍소했었는데."

"아, 그랬어요?"

"네, 사장님이 말씀 안 하셨나 봐요."

"요즘에 전 사장님이 저한테 회사 이야기 잘 안 합니다. 농장 관련 문의만 주로 하시죠.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에요."

"그거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그냥 그렇다고요."

하수영은 골든 트러플이 포장된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골든 트러플 판매로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쉽게 뚫릴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요. 벌써 너무 큰 부자가 되셨어요."

팟디서플라이는 거래 계약을 맺는 즉시 선금을 전액 지불한다고 약속했다. 그 돈이 무려 4억 5,000만 달러. 원화로는 4,500억 원이다.

"그래 봤자 청담동 빌딩 좋은 거한 5개만 사면 끝이죠."

"어머, 5개라니요. 10개는 살 수 있을 걸요?"

"세금도 생각해야죠."

"아, 맞다. 그렇구나."

"4,500억 원이면 소득세가 국세, 지방세 합쳐서 2, 078억 6, 106만 원이에요. 저한테 떨어지는 건 2, 421억 3, 894만 원 정도죠."

"그게 바로 암산이 되세요?"

"이게 암산이 안 되세요?"

"……."

"……."

정서희는 하수영의 연산 능력에 순수하게 놀랐고, 변호사는 엄청난 금액이 오고 가는 것에 놀랐다.

서락산 매매 계약 때 봤던 순박한 시골 청년 같았던 이가 그런 큰돈을 갖게 된다니.

"어…… 서희 양.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 좀 해줄 수 있습니까?"

"저 골든 트러플들, 이미 팔린 거나 다름없거든요. 킬로당 150만 달러에요."

"아마 300kg 주문이니 하는 이야기가 그럼…"

"네, 내일 곧바로 계약하고 돈 받고 버섯 넘길 거예요."

"세상에나…"

변호사는 다시 한번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그런 큰돈을 단번에 쥐게 되었는데 남 일처럼 아무렇지 않은 하수영의 태도가 더 놀라웠다.

"청담에서 탑티어 건물들은 평당 1억이 넘을 텐데, 2,421억 가지고는 탑티어 빌딩 5개나 겨우 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 3개 정도 사려나?"

하수영은 생각만 해도 암울하다는듯이 한숨을 쉬었다.

"심지어 그런 매물들은 시장에 잘나오지도 않는데. 일단은 돈 쥐고 있어야겠네요. 아, 어차피 세금은 내년에 내니까 일단 상관없겠구나."

"프라임유통컴퍼니 이름으로 계약을 하시면 크게 절세하실 수 있을 거예요. 법인세가 최대 25%밖에 안하거든요. 거의 절반 가까이 세금을 절약할 수 있어요."

"네? 개인소득세하고 법인소득세가 서로 달라요?"

"당연하죠. 설마 모르셨어요?"

오히려 정서희가 당황했다. 저렇게 빠른 연산이 되는 사람이 그런 간단한 상식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수영은 진짜 몰랐다는 듯이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다가 허탈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 차이점이 또 있었네. 마지막에 살았던 한국은 그런 게 없어서 몰랐는데."

'마지막에 살았던 한국은 또 뭐야?'

정서희는 하수영의 중얼거림을 언뜻 듣고 의문을 품었다.

"제가 공부를 좀 더 해야겠네요. 그런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고 있었다니, 하마터면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어요."

어느덧 프라임유통컴퍼니 직원들이 차량을 여럿 끌고 도착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보통 차량들이 아니었다. 바로 다수의 현금수송차량을 끌고 왔던 것이다.

"자자, 다들 조심하라고, 이게 엄청 비싸다고. 이래 봬도 킬로당 수십, 수백만 원씩 하는 거란 말이야."

"아니, 뭔데 그렇게 비싼 겁니까?"

"송이야, 송이. 그것도 최상 등급."

"밀봉을 한 거 같은데도 향이 여기까지 엄청 진동하네요."

책임조장이 직원들에게 한껏 기합을 주며 박스를 현금수송차량에 실으라고 지시했다.

작업을 다 마친 책임조장이 하수영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사장님, 전부 실었습니다."

"그럼 차량 전부 놔두고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출발해요. 손님용 방 마련해 놨으니 거기서 주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술 한잔해도…"

"밤 10시에는 무조건 끊고 주무세요. 그래야 내일 오전 운행에 지장없습니다."

"알겠습니다. 10시 되면 칼같이 정리하겠습니다."

본래 성렬유통의 직원이었던 그들은 이제는 프라임유통컴퍼니 직원으로서 하수영의 밑으로 들어왔다.

거래처 젊은 사장이 하루아침에 고용주가 된 셈이지만, 불협화음은 전혀 없었다.

저번에 하수영이 대대적으로 벌인 승진 면접에서, 모든 직원들이 하수영의 기량과 시야를 확실히 느낀 덕분이었다.

정서희가 물었다.

"송이버섯이라고 거짓말하셨군요."

"저기 실은 게 4,500억짜리라고 말해 봐요. 손이 떨려서 제대로 운전이나 할 수 있겠어요?"

하수영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덤덤하게 말했고, 정서희는 그의 배포에 조용히 감탄했다.

내일이면 이제 4억 5,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만지게 될 텐데, 마치 게임 머니를 대하듯이 아무렇지 않은 태도라니.

"부사장님이 가진 빌딩이 600억인가 한다고 그랬죠?"

"네, 지금 시세가 그 정도 할 거예요."

"혹시 그거 저한테 파실 생각은……."

"주식으로 주시면 팔게요."

하수영은 쿨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지인 할인도 해드릴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칫."

하수영은 지분율 방어에 성공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