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87화
19장 둘째를 들이다(2)
황비버섯라면은 여전히 잘 나갔다.
다른 식품회사들은 진지하게 라면 시장에서 철수를 해야 하지 않는가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민 위에 묵직한 추를 더하는 이벤트가 발생했다.
"뭐라고! JM식품이 프라임컴퍼니와 제휴를 한다고!"
태양심 이정훈 사장은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체면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외쳤다.
"예, 그렇다고 합니다. 이미 업계는 그 이야기 때문에 떠들썩합니다."
"제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거야? 설마, 라면을……?"
"프라임컴퍼니와 JM식품이 각각 황비버섯과 자사 라면을 합쳐서 팔기로 했답니다. 그 영업이익은 각자 나누기로 했다는데, 정확한 비율은 아직 모릅니다. 아마 반반이거나 혹은 프라임컴퍼니가 조금 우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라임컴퍼니 그놈들은 왜 굳이다 죽어가는 JM식품에 호흡기를 달아주는 거지?"
이정훈은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대로만 가면 황비버섯라면이 시중의 모든 라면들을 퇴출시키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굳이 JM식품과 제휴를 한다고? 자기들의 이익까지 쪼개가면서?
"거기까지는 잘…… 아무튼 거의 확정된 사항이고 오늘 안으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서 발표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내부적으로는 이야기가 다 끝난 상황입니다."
"제휴를 할 거면 우리 태양심하고 해야지! 우리 윤라면에 황비버섯을 넣으면 소비자들이 얼마나 환장을 해서 사 먹겠냐고! 왜 JM식품 떨거지 따위들하고 제휴를 하는 거야! 대체 왜!"
한참이나 씩씩거리던 이정훈은 드디어 분노를 가라앉히고, 박전보 전 무에게 지시했다.
"지금 당장 프라임컴퍼니한테 연락해서 우리하고 사업 제휴 하자고 해! 황비버섯만 아니면 우리 윤라면이 최고의 라면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 어서!"
"네, 사장님."
실컷 깨진 박전보는 부리나케 사장 실을 나섰다.
* * *
프라임컴퍼니와 JM식품은 정식으로 라면 사업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제휴 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난관은 바로 '혼종라면'에 어느 회사의 로고를 달 것이냐였다.
각자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이 부분을 협의하는 데 제법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 제품들은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많습니다. 라면 이름과 회사 로고를 그대로 지켜야 기존 고객들을 무리 없이 끌어올 수 있습니다."
"로고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이 듬뿍 들어간 라면, 이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어느 회사 로고를 내세우느냐.
그런 치열한 대립과 다툼 끝에 마침내 결정이 났다.
"중요한 건 로고가 아니라 황비버섯라면이라는 브랜드 그 자체입니다. 한쪽의 로고만 내세우기보다는 양쪽의 로고를 동시에 내세우는 게 오히려 소비자들의 신뢰를 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서희가 내놓은 절충안에 JM식품도 받아들였다.
정서진은 최종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여동생에게 낮게 말을 건넸다.
"우리가 이런 자리에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난 알고 있었는데?"
"……많이 컸구나. 엄마하고 두진이한테는 어떻게 할 거야? 아버지는 아직 아무 말씀도 안 하신 듯한데."
"엄마하고 두진이가 언제 회사에 관심 두는 거 봤어? 내가 적당히 말할게."
"그렇게 해라."
최종 계약을 마친 두 회사는 오후에 기자회견을 열어 제휴 사실을 발표했다.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질문했다.
"그럼 앞으로 JM식품에서 생산되는 모든 라면에는 황비버섯이 들어가게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수익 배분은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사내 기밀인 관계로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만,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사실 수익 배분은 JM식품에 불리한 쪽으로 책정되었지만, 그 사실을 굳이 외부로 발설할 필요는 없었다.
라면시장의 빅3였던 JM식품의 자존심만은 지켜야 하니.
그러나 기자들은 집요했다.
"이번 제휴는 사실상 JM식품이 프라임컴퍼니에 굴복하고 라면 사업을 넘기기 위한 초기 절차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가 승리하기 위해 각자의 장점을 합쳤을 뿐입니다."
"프라임컴퍼니가 태양심이나 육뚜기를 놔두고 굳이 빅3인 JM 식품을 파트너로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빅 1, 2에서 서운한 조건이라도 제시한 건가요?"
다소 무례할 수 있는 질문까지 나왔지만 정서희는 의연하게 대응했다.
"JM식품과 제휴 이야기가 순탄하게 잘 풀렸고 많은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파트너가 되었을 뿐, 그 이상의 외부적인 요인은 없었습니다. 우리 두 회사는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면 소비자들은 사업 제휴를 자기 일처럼 반겼다.
-솔직히 황비버섯라면이 면발하고 스프만 보면 좀 심심하긴 하지. 다들 알잖아?
-그래도 윤라면은 상대도 안 된다.
-그게 사실 황비버섯빨이지, 면발과 스프 자체는 좀 구리잖아. 한 번 버섯만 빼고 끓여서 먹어봤는데 그냥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라면이더라.
-그래도 황비버섯이 듬뿍 들어갔으니 그 자체로 갓갓갓.
-솔직히 윤라면이나 다른 라면들에 황비버섯 넣어서 먹으면 원조보다 더 맛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이건 인정. 반박 불가다.
-JM식품에도 좋은 라면 많은데 잘됐다. 이제 더 다양한 맛으로 황비버섯을 넣은 라면을 즐길 수 있게 됐어.
-그냥 프라임컴퍼니가 태양심하고 육뚜기, JM식품 라면 사업부 전부 인수해서 통합하면 안 되냐?
-상상만으로도 지릴 것 같음. 이 세상 라면 회사가 아니다…….
* * *
사업 제휴를 발표했을 뿐인데 JM 식품 계열사들 주가는 전날에 비해 껑충 뛰어올랐다.
그에 비해 태양심과 육뚜기의 주가는 전날에 비해 대폭 떨어지는 불행을 겪었다.
태양심 박전보 전무는 어떻게든 기자 회견이 열리기 전에 전성렬을 만나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했다.
그가 한창 연락을 시도할 때, 이미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멍한 눈으로 발표 내용을 보던 박전보는 두 뺨을 때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하수영을 설득해서 독점권을 따내는 것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비독점으로라도 버섯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상원 부장? 응, 지금 곧바로 하수영이 그 친구 찾아가서 전에 말했던 조건 더 올려서 불러. 굳이 독점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 그냥 버섯을 팔기만 해도 그대로 해주겠다고 전해. 그래! 프라임컴퍼니하고 계약 파기 안 한다고 해도 돼!"
전화로 지시를 마친 박전보는 급히 차에 올라 프라임컴퍼니 서울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프라임컴퍼니 서울 사무실은 사당동에 있었다.
내년에 라면 하나만으로 매출 1, 2조 원을 찍을지 모르는 회사가 10층짜리 상가 빌딩의 한 층만 임대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박전보는 여기까지 와서야 가까스로 전성렬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연락이 안 되더니.'
사무실에 찾아와서 만나니 별로 바빠 보이지도 않는다.
"대표님, 우리 윤라면은 명실공히 업계 최고의 빅히트 상품입니다. 여기에 귀사의 황비버섯이 더해지면 감히 대항할 수 있는 경쟁자가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예능 같은 곳에서도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넣은 윤라면이 수차례 나온 적 있습니다.
"윤라면이 황비버섯만 빼고 보면 라면계의 황제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박전보는 희미한 기대감을 품었다.
JM식품과 맺은 제휴를 굳이 이제와서 깨라는 것도 아니다.
하는 김에 태양심과도 제휴를 맺자는 것이다.
물론 가장 베스트는 이상원이 하수영을 설득해서 황비버섯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는 거지만.
"죄송하지만, 태양심하고 제휴를 맺는 것은 어렵습니다."
"……대체 왜죠? 태양심에 혹시 안좋은 감정이라도 갖고 계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육뚜기도 마찬가지이니까요."
"빅1, 2는 안 되고, 빅3만 된다? 이런 말씀인가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빅3라서 되는 게 아니라, JM식품이라서 가능했던 겁니다."
"그게 무슨……?"
박전보는 전성렬의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전성렬은 의도적으로 연출된 미안한 표정을 한껏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우리 부사장 말입니다. 기자회견에 나갔던."
"아, 네. 아주 미인이시더군요."
"그분이 회사 창업할 때 100억 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대주주 겸 부사장이기도 하지요."
주주가 3명뿐이니, 뭐 대주주라는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가장 적은 지분을 갖고 있긴 하지만…….
"100억 원이나요?"
박전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은 아가씨가 100억 원을 선뜻 투자할 정도라면, 어지간한 재벌가 따님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자신의 전 재산도 100억 원에는 절대 미치지 못하는데, 현금 100억원을 투자하다니.
"그 돈이 어디서 나왔을 것 같습니까?"
"설마……."
"그분이 JM식품 정재민 사장님 딸이에요."
박전보는 정수리에 벼락이 내리꽂히는 듯한 충격을 느끼고 몸이 굳어버렸다.
'처음부터 JM 식품으로 정해져 있었던 거야…….'
"이렇게 먼 길을 찾아주셨는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허허……."
박전보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힘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차에 오르는 순간 그의 눈빛은 다시 살아났다.
'아직 모른다.'
지금 이상원 부장이 회심의 카드를 쥐고 하수영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이전의 조건은 그대로 유지한 채, 그저 버섯을 '우리에게도' 팔아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
납품가격의 보장, 윤라면의 수익쉐어, 여기에 300억 원의 계약 감사금까지.
프라임컴퍼니와 계약을 파기하지 않아도 되니,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다.
'자산을 1조 원 이상 늘려준다는 보장이 말이나 돼?'
전성렬이 하수영에게 큰소리를 쳤다는 내용. 그 조건 때문에 일전에는 거절을 당했다.
박전보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전성렬이 세 치 혀로 사기를 쳤거나, 아니면 하수영이 거절하기 마땅한 이유가 없어서 대충 둘러댔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느 세월에 버섯이나 라면만 팔아서 하수영의 자산을 1조 원 이상 만들어준단 말인가.
그때 이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전보는 벨이 한 번 울리자마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오, 이 부장. 어떻게 됐어?"
-……죄송합니다, 전무님.
"……뭐야? 이 부장도 실패했어?"
-네? 설마 전무님도요?
"……."
-…….
어색하기 그지없는 침묵이 잠시 동안 흘렀다.
박전보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태양이 저리 눈이 부시게 내리쬐고 있는데도.
"하수영이 그 친구가 이번에는 뭐라고 하면서 거절했는데?"
-프라임컴퍼니와 원래 독점 계약을 했다네요. 산 매입, 버섯 농장짓는 거, 그 모든 기반 자금을 프라임컴퍼니에서 제공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줄곧 거절해 온 거라고…….
"처음부터 줄곧 거절한 건 아니었잖아! 우리말을 귀담아듣는 척 한건 그럼 뭔데!"
-그때는 독점 파기하고 우리로 갈아탈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었다고 합니다. 근데 양심에 걸려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이이익! 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