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86화
19장 둘째를 들이다(1)
"위약금이 3배라고요? 게다가 모두 선지급?"
하수영은 눈을 크게 뜬 채 놀라워 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럴 일은 없지만, 그럼 만약에 우리가 계약 이행에 실패하게 되면……."
-판매금이 4억 5,000만 달러이니까 토해내야 할 돈이 13억 5,000만 달러, 우리가 9억 달러의 손해를 보게 되는 거죠. 원화로는 9천억 원이에요.
"프라임컴퍼니에 그럴 돈이 있어요? 언제 그렇게 벌었다."
-남 회사 대하듯이 말씀하시지 말아 주실래요, 최대주주님?
"아니, 전 또 벌써 라면 팔아서 그만한 돈을 벌었나 해서 놀란 거죠. 우리가 그럴 돈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팟디서플라이에서 그런 제안을 한 건가 하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만큼 계약 이행에 문제가 없어야 하니까 철저히 임해달라는 당부겠죠. 일반적으로는요. 그래서 전액을 선지급하겠다는 거고.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거잖아요. 위약금이 좀 세긴 했지만, 그거야 우리가 계약 잘 이행하면 그만이고, 또 그런 의미로 붙인 조건이니까. 뭐가 찜찜하다는 거죠?"
-그냥, 저도 콕 집어 설명하긴 힘들어요. 아무튼 찜찜한 기분을 떨칠수가 없어요.
난처함이 깃든 정서희의 목소리에 하수영은 소리 없이 쿡쿡 웃음을 흘렸다.
"부사장님, 만약 팟디서플라이가 골든 트러플 최대 농장주만 아니었어도 그런 기분은 안 느끼셨겠죠?"
-……맞아요. 자꾸 그게 마음에 걸려요. 너무 좋은 조건인데, 받아들이는 게 맞는데, 왜 자꾸만…….
"콜을 받지 말지 애매할 땐, 그냥 주저 없이 콜을 하는 겁니다."
-사장님.
"왜냐면 우리 패가 질 수가 없는 패거든요.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들고도 콜을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 봤어요?"
-…….
정서희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패가 로티플이 맞긴 한가요? 지금 포카드 같은 거 쥐고 콜하는 건 아니죠? 상대는 스트레이트플러시 이상인 게 확실한데.
"로티플 맞습니다. 제가 포커 게임하면서 로티플만큼 흔한 패를 본 적이 없어요."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언제 저하고 포커 한 번 하실래요?
"그러다가 상속받으신 청담동 빌딩날아갑니다."
정서희는 잠시 웃다가 다시 물었다.
-우리가 쥔 로티플 패가 뭔데요?
"스페이드 로티플이죠. 절대 질 수 없는."
-그러니까 그 스페이드 로티플 패가 어떤 거죠?
"만약 계약을 최대한 서두른다면, 언제쯤 계약이 이뤄질까요?"
-빨라도 사흘은 걸리지 않을까요? 물론 계약 체결이요. 실제 인도 기간은 최소 한 달 정도로 넉넉하게 주겠죠. 그건 하 사장님 일정에 맞춰서 정해야 하니까요.
"골든 트러플 최상품 300kg은 내일 안으로 준비될 겁니다."
-……그런!
"계약 불이행이란 상황 자체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 절대 질수 없는 패라는 겁니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알고 계약 추진할게요. 참, 계약 당사자는…….
"걔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세요. 프라임유통컴퍼니로 하든, 프라임컴퍼니로 하든, 3자 계약으로 하든. 근데 제 생각에는 3자책임 계약으로 할 것 같네요. 불이행 시 회사 2개가 연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장님도 마냥 좋게만 보시는 건 아니군요.
"큰돈이 오고 가는 곳에는 언제나 큰 욕심이 얽혀 있습니다. 순수한 비즈니스 의도로만 접근한 게 아닐 수 있죠. 그것까지 생각해서 대비하는 게 경영자 책임이고요."
-알겠어요. 항상 주의할게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
둘은 적당히 대화를 나누다가 통화를 끊었다.
* * *
황금비단우산버섯 생산 과정은 모든 게 자동화되어 있다.
굳이 하수영이 특별히 지령을 내리지 않아도, '슬레이브 로봇'들이 매일 일정한 물량을 생산해서 포장 상자에 넣어둔다.
하수영이 할 일이라고는 회사에 연락해서 트레일러와 직원을 보내라고 지시하는 것 정도다.
그것도 이제는 스케줄화가 되어 있어, 특별한 말이 없는 이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인력이 와서 빈 포장상자를 내려놓고, 또 버섯을 채취한 포장 상자를 가져간다.
하지만 골든 트러플은 다르다.
골든 트러플은 하수영이 필요할 때마다 일일이 슬레이브 로봇들에게 생산 지시를 내린다.
대량으로 판매할 물품이 아니기에 생산량을 계획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300kg…… 아니지, 넉넉하게 350kg 정도 생산하라고 해두자. 이놈들은 바보들이라서 생산량 가늠을 잘 못 하니까. 아직 오차가 너무 크단 말이야."
엘릭서에 적신 골든 트러플 포자 용액을 일정량 뿌릴 때마다 얼마만큼의 생산될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생물은 정확한 게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오차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기술의 한계라고 할까.
"한국대 로봇공학 기술 수준이 아직 이 모양이니 어쩔 수 없지. 정답답하면 내가 뛰든가 해야겠지만…… 에이, 이번 생은 그렇게 안살기로 했으니."
슬레이브 로봇들에게 주문을 넣자, 곧바로 생산 현황 정보가 서버에 표시되기 시작했다.
생산이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하수영은 빠른 도착을 위해 액셀을 밟았다.
[내일 골든 트러플 가져가세요.]
하수영은 정서희에게 그렇게 톡 메시지를 남겼다.
집에 도착한 하수영은 씻고 간단히 식사를 한 뒤, 정갈한 몸가짐으로 경건히 거실에 앉았다.
-아들아, 준비됐느냐.
"예, 아버지. 불초 소자는 우주에서 가장 훌륭하신 아버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오늘도 우주사 과정부터 시작하나요?"
-역사를 잊은 지성체에게 미래는 없다. 이것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교훈이지.
"저도 좋아하는 격언이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다른 능력을 좀 받고 싶은데요."
-그러기에는 아직 너의 신체 발전이 더디구나. 엘릭서를 꾸준히 먹고 있기는 한 거니?
"그럼요. 어제도 제가 자지러지게 비명 지르는 거 보셨잖아요. 정말 죽다 살아나는 줄 알았어요."
하수영은 양반다리를 하고 경건히 앉은 자세 그대로 어깨에 힘을 꽉주었다.
"불초 소자는 갓 바디를 얻기 위한 수행을 절대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고대 주신은 하위신들을 단단히 휘어잡고 통제할 효율적인 지배구조를 모색하던 중…….
"아! 그래서 하위신들을 프랜차이즈 브랜드처럼 만든 거군요!"
-아니, 아들아? 어떻게 그걸 알았니?
"10조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아버지의 선택을 받은 몸입니다. 그 정도 눈썰미는 기본 소양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역시 나답다.
"그래서 주신이란 이름을 바꾼 건가요?"
-그래, 고대 주신은 하위 신에게 과하게 분배했던 권한을 모두 회수하고,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관할 구역을 수동적으로 다스리도록 만들었지.
"자율성은 많이 줄어들었겠네요."
-물론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각종 부패가 줄어들었다. 살을 한 점내주고 뼈를 왕창 취한 셈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완전하지 않아. 그래서…….
하수영은 어느덧 은하신목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대 주신은 어느 행성에 도착하게 되었단다. 과학과 종교, 미신, 증오, 화합, 전쟁, 박애, 그 모든 폭발적인 감정들이 공존하는 신기한 행성이었지.
"지구와 비슷하네요."
-……신기한 마음에 그 행성에 잠시 눌러앉았던 고대 주신은 심심풀이로 어떤 사업을 하게 되었단다. 굳이 지구와 비교하자면 편의점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구나.
"얼마나 고대 주신이 할 게 없었으면 편의점 사업 같은 걸 했을까요. 설마 가맹점주로 한 건 아니었죠?"
-……가맹점주 맞다.
"맙소사."
하수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그거야말로 진짜 재능 낭비 아니에요?"
-아들아,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같은데?
"아버지, 저는 착실하게 저의 재능을 적재적소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아무튼! 프랜차이즈 편의점사업의 전체 그림을 보고 한눈에 반한 고대 주신은 자신도 그처럼 하위신들을 키워봐야겠다는 야심을 품고, 경험을 쌓기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단다.
"그 프랜차이즈 브랜드 창업주가 그 사실을 알면 참 감격했을 텐데, 고대 주신이 자기 사업 스타일을 벤치마킹해서 우주 관리역 하위 신들을 키울 생각을 했잖아요."
-그런데 그 창업주 놈이 사기꾼이었어요. 아주 못된 놈이었지.
"네? 사기꾼이요?"
-그래, 말도 안 되는 조건, 폭리를 내세워서 가맹점주를 착취하고 자기 배를 불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단다. 그놈이 참 난 놈은 난 놈이었어. 아니, 한낱 인간이 고대 주신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는 게 말이 되니?
하수영은 진심으로 놀라워하며 감탄했다.
"정말 난 사람이었네요. 제가 데려다가 한 번 일을 시켜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들아? 사기꾼이라니까?
"고대 주신한테 사기를 칠 정도의 머리가 좋은 친구잖아요. 설마 고대 주신이 머리가 나빴을 리는 없고요."
-인마, 명문대 교수들도 사기를 당해요. 원래 똑똑한 애들일수록 더 속여먹기가 쉬운 법이란다.
"어쨌든 대단하잖아요. 아, 어느 우주, 어느 별에 살다가 죽은 친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광활한 우주는 아까운 인재 하나를 잃어버렸네요."
은하신목은 하수영의 반응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크크크…… 데려다가 일을 시켜? 아마 네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을 합법적으로 홀라당 집어삼킬걸?
"그건 고대 주신의 그릇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그럼 어디 해보든가. 만기출소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다. 그놈, 원래 수십 년은 감방에 있어야 하는데 합의도 잘 보고 재산도 잘 빼돌려서 어떻게 형을 1/10 이하로 팍줄였어요. 진짜 난 놈은 난 놈이지.
"어? 지구인이었어요? 그 사기꾼?"
-…….
순간 은하신목은 깊은 침묵에 빠졌고, 하수영은 제대로 물었다는 듯이 놓아주지 않고 캐물었다.
"다른 행성 옛날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설마 지구에서 최근에 일어났던 일이었어요?"
-침착하거라, 아들아. 네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내가 모든 걸 차근차근하게 설명해 주마. 그게 말이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말한 그 고대 주신이 그럼 아버지였어요? 계속 아버지 전대주신인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전부 아버지 이야기였던 거예요?"
-아들아. 침착하거라, 침착해. 왜 이렇게 흥분을 하고 그러니.
"지금 침착하셔야 할 건 아버지인데요? 아버지, 왜 갑자기 목소리를 떨고 그러세요? 설마 분신도 추위를 타나요?"
-아들아, 그러니까…….
"아, 그래서 아버지가 한남동 대저택 사시다가 그거 정리하고 여기 외진 시골로 내려오신 거구나. 마음만 먹으면 수억 톤의 금도 만들어내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 한낱 피조물한테 사기를 당했다는 정신적 충격이 크셔서 휴양하러 오신 거죠?"
-하, 한남동에서 살았던 건 어떻게 알고 있니?
"옛날에 아버지 주민등록초본 떼봤는데 나오더라고요. 저 입양하시기 전에 한남동에서 사셨더라고요. 지금 시세 보니까 90억이 넘는 대저택이던데."
은하신목은 한참 뒤에야 말했다.
-오늘 수업은 그만하자. 엘릭서나 먹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