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5화 (85/1,270)

프랜차이즈 갓 085화

18장 미끼인 듯 미끼 아닌 미끼같은(6)

"오천 배라고요?"

페라리 차주가 황당해서 눈을 크게 뜬 채 반문했다.

사실 그는 하수영에게 순전히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낡은 트럭을 몰고 다니는 거 보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 같았고, 괜히 교통사고 수습이나 배상에 휘말려서 이리저리 고생할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은 하루 쉬어서 허공에 날리는 일당도 매우 크다.

이천만 원이면 당장 트럭 수리하고 급한 치료 받고 생계를 이어 나갈 정도는 될 테니까.

"제가 차에서 내리면서 봤는데, 대충 1,000억 정도 피해를 입었더라고요. 마세라티 차주가 대물 보험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1,000억은 안 될 거 같은데."

"하하, 선생님. 농담도 너무 과하십니다. 무슨 1,000억이라니요. 혹시 짐바브웨 달러라도 말씀하시는 건가요?"

서글서글하게 대하던 경찰관도 그렇게 나섰다.

최초 원인 제공자, 마세라티 차주도 펄쩍 뛰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무슨 1,000억이야! 저 거지 같은 트럭이 무슨 금으로 만들기라도 한 거야!"

"여기 와서 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하수영은 트럭 뒤쪽으로 와서 엉망이 된 내부를 가리켰다.

수십 개가 넘는 박스가 이리저리 흩어져서 넘어져 있었고, 안에 담긴 내용물이 부스러진 채 널려 있었다.

황금색 가루가 사방에 흩뿌려진 모습에, 따라온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지?"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뭐지, 금덩어리라도 되나?"

하수영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골든 트러플 50kg이에요. 보다시피 사고 충격 때문에 못 쓰게 돼버렸죠."

"골든 트러플?"

역시 슈퍼카 차주들답게 이름만 듣고도 안색이 변했다.

심지어 벤틀리 차주는 말까지 더듬거리며 확인했다.

"골든 트러플 50kg이라고요? 이게 전부?"

"네, 모두 최상급이었습니다. 먹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이래서야 상품성이 없죠. 조금의 흠집도 용납이 안 되는 걸요."

"히, 히익!"

벤틀리 차주가 딸꾹질에 가까운 비명 소리를 냈다.

경찰관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서로 눈치만 살폈다. 마세라티 차주도 마찬가지였다.

"저어, 선생님들. 이게 그렇게 비싼건가요? 겉보기에는 그냥 금색 도는 돌덩이 같은데……."

"킬로당 10억에서 30억까지도 하는 고급 버섯이에요. 같은 무게의 금보다 훨씬 비쌉니다. 중동 왕족들이나 먹는 건데, 이게 어떻게……."

"한국에서 이만한 물량이 유통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이거 진짜 골든 트러플이 맞긴 한…… 아! 맞다! 서해호텔 별들의 만찬!"

의문을 제기하려던 벤틀리 차주는 말을 하다 말고 손뼉을 치며 놀라워했다.

하수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달라졌다.

"혹시 서해호텔 만찬을 준비했던 업체 소속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그때 우리 회사 농장에서 채취한 골든 트러플을 제공했죠."

"세상에, 이럴 수가!"

벤틀리 차주가 놀랍다는 듯이 나섰고, 경찰관들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며, 마세라티 차주는 이미 안색이 새카맣게 변한 뒤였다.

포르쉐 차주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저,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우리 나라에서는 자생도 안 되고 유통도 되지 않는다고, 진짜 중동 왕족들이나 먹는 엄청 비싼 식자재라고. 근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마케미야라는 분이 세계적 유명 인사들을 불러서 거하게 파티하셨다고요."

"네, 저도 그 호텔에 갔었어요. 물론 단순히 트러플을 운송하기 위해서였지만요."

"세상에."

람보르기니 차주가 어처구니없다는듯이 부서진 골든 트러플과 하수영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했다.

"대체 이 비싼 걸 왜 이런 트럭에 대충 실어서 가지고 다니는 겁니까?"

경찰관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천 억짜리 물건이면 현금 수송 차량 같은 거에 실어서 가지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제가 갖고 있는 차가 이거밖에 없어서……."

"지금 천억을 날려 버린 거잖아요. 당신 고용주가 이거 알면 뒷목 잡을 텐데, 괜찮겠어요? 이봐요, 당신 이거 물어줄 능력은 돼요?"

손가락으로 지적당한 마세라티 차주가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천억이라니! 내가 그런 말도 안되는 큰돈이 어딨어요! 이, 이 차도 아빠 몰래 12개월 할부로 겨우 산 건데!"

"오빠? 이거 현찰 일시불로 산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럼 대물 한도는 얼마나 들었어요? 한 10억 이상은 안 들었을 거 같은데."

"5, 5억 정도……."

"5억 가지고는 우리 차 수리비도 못 댄다네, 이 친구야."

벤틀리 차주가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찼고, 람보르기니 차주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롤스로이스 차주가 그냥 떠나준 것이나 감사해요. 당신 평생의 행운 오늘 다 썼네."

"내, 내 책임이라는 법도 아직 없잖아요!"

"블랙박스 보니까 딱 견적 나오더만, 당신, 행여나 이거 가지고 소송걸 생각하지도 말아요. 나중에 소송비용하고 지연이자배상까지 다 물어 내려면 상상 초월할 테니까."

가장 어린 포르쉐 차주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래도 가장 돈 많이 들 롤스로이스 차주가 필요 없다며 떠나줘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페라리 차주가 어림없다는 듯이 단호히 말했다.

"가장 돈 많이 들어갈 사람은 여기 남아 있는데요?"

"골든 트러플 50kg……."

"저거, 감당이 안 될 텐데……."

1,000억 원의 배상금을 선뜻 물어줄 수 있는 부자가 과연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애초에 그만한 현금을 가진 이도 없다.

그때였다.

"사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폴리스 라인을 뚫고 정서희가 현장에 들어왔다.

현장 경찰관이 당황해서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제 삼자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돌아가 주세요."

"제삼자 아니에요. 트럭 차주 분 직원입니다."

"직원이라고요?"

그 말에 경찰은 물론이고 다른 차주들까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지어 마세라티 차주는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다가 여자친구한테 정강이를 차이기도 했다.

"오빠! 지금 어딜 보는 거야!"

"미, 미안…"

여배우 못지않은 화려한 정서희의 외모에 다들 놀라워했다.

그저 예쁘기만 해서 놀란 게 아니었다. 이런 공교로운 상황에 저런 미모의 여자가 직원이라며 들어오니, 더 놀랄 수밖에.

"직원분이시라고요?"

"아, 잘됐네. 부사장님, 지금 제가 최상급 골든 트러플 50kg을 싣고 있었는데 추돌 사고 때문에 모두 못쓰게 됐어요."

"정말이에요? 골든 트러플 50kg이라고요?"

"근데 제가 농장 일 때문에 바빠서 여기 오래 붙들려 있을 수가 없네요. 이 부분은 부사장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시겠어요?"

"그럼요. 어서 돌아가세요."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재배하는 하수영이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게 되면, 황비버섯라면의 유통에도 차질이 생긴다.

정서희는 두말할 것 없다는 듯이 하수영을 돌려보냈다.

"그래서, 가해자가 누구라고요?"

정색한 그녀의 표정과 맞닥뜨린 마세라티 차주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누가 가해자인지는 알 수 있었다.

정서희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와주셔야 할 일이 생겼어요. 네, 최소 천억 원대의 대물피해 사건이에요."

마세라티 차주의 안색이 더욱 경직되었고, 벤틀리 차주가 그의 어깨를 짚으며 진심으로 딱하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자네 아버지 뭐하시는 분인가?"

* * *

늦은 저녁, 서락산에 돌아와서 내일을 위한 포자를 뿌리고 있는데(물론 스마트폰으로 로봇들에게 지시만 내렸다), 정서희로부터 연락이 왔다.

-변호사 불러서 사건 접수했어요. 민사 소송도 준비 중이고요. 그런데…….

"천억을 다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거 물어줄 능력 되는 친구가 왜 마세라티 같은 걸 타고 다녀요. 100%순금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죠."

정서희는 순간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래도 나름 부친이 알짜배기 자산가더라고요. 주택도 2채 있고, 상가 빌딩도 2채 있더군요. 청담동에도 한 채 있던데요?

"청담동이요?"

-목소리 달라지는 거 봐. 내가 사장님이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정서희는 쿡쿡 웃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금융 재산은 모르겠지만 그 부동산들 4개만 다 합쳐도 180억 원은 될 거예요. 청담동 상가 빌딩이 80억, 사당동 상가 빌딩이 40억, 아파트 2채가 각각 30억 정도씩 하는데한 채는 아들한테 증여해 줬었네요.

"괜찮아요. 제가 진짜로 천억을 손해 본 것도 아닌데요, 뭐."

골든 트러플 50kg은 천억 원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하수영이 투입한 것은 약간의 전기료와 엘릭서 몇 방울뿐이다.

남들에게는 천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재화지만, 그에게는 부친의 유산이라는 치트 카드를 써서 만든 것.

-근데 제 생각에는 부친이 대신 물어줄 거 같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어줘야 할 돈이 천억이나 되는 걸 알았으니, 물어주기보다는 그냥 아들을 채무불이행자로 만들고 배째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거예요. 그럼 신용불량자로 만들어서 괴롭혀주려고요.

"효과가 있을까요?"

-사실 돈 제법 있는 집안이니까 아들이 신용불량자 되더라도 사회생활하는 아무 지장 없죠. 카드는 부모님 거 쓰면 되고 핸드폰도 요즘은 선납하면 신용불량자도 만들어주니까 큰 문제 없고요.

"그래도 나중에 자기 명의로 뭐 사업 같은 거는 못하겠네요."

-그게 좀 크죠. 그래도 천억 물어주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할 거예요.

막말로 가진 재산을 다 털어서 배상하더라도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결과는 같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한 푼도 내놓지 않는 것이, 계산적으로는 현명한 판단이다.

정서희도 하수영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참에 차부심 넘치는 친구 신용 불량자 만들어서 쏠쏠하게 괴롭혀나 주지, 뭐.'

-그 문제는 그렇게 될 거구요, 아까 말씀드리려다가 사고 때문에 미처 말 못 한 거 말인데요.

"아, 골든 트러플 발주 주문 들어온 게 찜찜하다는 그거요? 무슨 이상한 조건이 붙었기에 부사장님이 찜찜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물량이 300kg이나 되잖아요.

"아랍 왕족이 쟁여뒀다가 두고두고 먹으려나 보죠. 마케미야 대표님처럼요."

-근데 사려는 업체가 팟디서플라이라는 글로벌 식품유통업체예요.

"팟디라고요?"

갑자기 하수영의 목소리가 달라지자, 정서희도 의아해서 반응했다.

-원래 팟디서플라이를 알고 계셨어요?

"이래 봬도 제가 골든 트러플 키워, 아니, 캐서 파는 농부인데 팟서플라이를 모를 수가 있나요. 당분간은 최고의 파트너, 나중에는 최악의 경쟁상대가 될 텐데요. 세계 최대의 골든 트러플 자생지를 갖고 있는 회사잖아요."

하수영이 팟디서플라이를 잘 알고 있는 눈치다.

정서희는 그 사실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부사장님, 혹시 계약불이행 시 줘야 할 위약금이 좀 세게 걸려 있나요?"

-보통은 2배 정도인데, 3배를 거론했어요. 기간도 촉박한 편이고요. 그만큼 자기들도 일정이 중요하다고요.

"대신 매입가는 후한 편이고요?"

-네, 전액 선지급하겠다고 하네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