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83화
18장 미끼인 듯 미끼 아닌 미끼같은(4) 부동산 중개인은 당황해서 반문했다.
-물건도 안 보시고 계약부터 하시게요?
"물건 따로 안 봐도 됩니다. 예전에 이미 자주 봤었어요. 제가 그 상가만 한 수십 번 넘게 방문했을 겁니다."
-어쩐 일로 그렇게 많이…….
"제가 부동산 쪽 공부를 하고 있어서요. 특히 청담동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평소에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죠."
-아, 그러시구나.
그제야 중개사는 납득한 눈치였다.
"지금 나온 매물도 원래 눈독 들이고 있던 겁니다. 굳이 매물 컨디션본다고 시간 낭비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네요. 매물번호 11310101번은 사실 이 세상에서 오직 딱 하나뿐이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부동산이라는 것은 원래 유일한 거죠. 공산품하고 달리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근데 많은 고객이 그걸 잘 모른단 말이에요.
"그러니 빨리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잠시만요. 그래도 매도인 분하고 이야기는 해야 돼서. 제가 다시 전화 드려도 될까요?
약 5분 뒤에 중개사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네, 햇살부동산입니다. 매도인분하고 이야기가 됐어요. 계좌번호 알려드릴까요?
"네, 알려주세요."
-그 전에 중요한 거 다시 알려드릴게요. 이미 사이트에 올려놨으니 확인하셨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요.
"네네. 빨리요, 빨리."
-매도가는 80억 2,000만 원이고요. 전체 세입자 보증금이 25억 3,500만 원이에요. 그거 끼고 사시는 거고, 1금융권에 담보 40억이 잡혀 있어요. 계약금, 중도금 합쳐서 40억 원을 지불하셔야 하는 조건이에요. 물론 중도금 들어오고 일주일안에 근저당 말소될 거고요. 그리고…….
중개사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하수영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요 조건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상입니다.
"네, 이미 다 아는 조건들이네요. 빨리 계좌번호나 불러주세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오늘 20시까지 가계약금 2억 입금해 주시고, 계약서는 편하신 날에…….
"가계약금 지금 입금하고 바로 달려갈 테니까 오늘 오후에 계약서까지 작성하기로 하죠."
-오, 오늘이요?
"매도인에게 한 번 물어봐 주세요."
-잠시만요.
중개사는 10분 뒤 다시 전화해서 콜을 외쳤다.
하수영은 얼른 가계약금을 입금한 뒤 신분증과 인감 등을 챙겨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갖췄다.
"버섯 가지러 언제 오는 거야. 좀 빨리빨리 왔으면."
마음이 급해서인지 직원들이 평소보다 굼뜨게 느껴진다.
드디어 직원들이 트레일러를 끌고 도착했고, 버섯 포장박스를 차곡차곡 차에 실었다.
"사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오늘따라 표정이 너무 신나 보이시는데요?"
"저의 오랜 꿈의 집을 짓기 위한 '주춧돌 하나'를 드디어 오늘 올리게 됐거든요."
"주춧돌 하나요? 뭔지는 모르지만 축하드립니다."
"이거 우리가 빨리빨리 작업 끝내드려야겠네. 지금 사장님 한시라도 빨리 주춧돌인지 뭔지 놓으러 달려가고 싶으신 표정이야."
"다들 서두르자고."
버섯 적재를 마치고 차량이 빠져나가자마자 하수영은 서락산 출입문을 닫았다.
애지중지 타고 다니는 낡은 트럭에 오른 하수영은 안전벨트를 매고 결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청담동아, 드디어 내가 간다."
햇살부동산은 상대적으로 청담동에서 구석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구석진 곳이라 해도 청담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리는 깨끗하고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는 눈에 띄지 않고, 하수구 악취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낡은 트럭이 지나가자 지나가던 주민들이 다소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편의점 트럭 같은 거 많이 봤을 거면서 뭐 저리 쳐다본대."
하수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햇살부동산이 있는 건물 앞에 차를 멈췄다.
1층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중개사가 일어나서 맞이했다. 물론 하수영은 중개사의 시선이 바깥에 있는 낡은 트럭을 향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전화했던 매수인입니다. 조금 전에 가계약금 2억 원 넣었던 사람이요."
"아, 하수영 사장님. 어서 오세요."
그제야 중개사의 안색이 환해졌다.
하수영은 자리에 앉으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제 차가 좀 많이 그렇죠? 이런 동네에는 별로 안 어울리는……."
"아이고, 아닙니다. 진짜 부자 중에는 오히려 저렴한 국산 차 타고 다니시는 분들 많아요. 돈 많은 티 내면 주변에서 달라붙는다고 싫어하시죠. 그럴 필요도 못 느끼고요."
"제가 농업에 종사하다 보니 아무 래도 주로 트럭을 많이 타고 다녀서요."
"아아, 농장 하시는 분이셨군요. 농장 잘만 하면 돈 엄청 되죠. 저 아는 분도 제주도에서 목장 크게 하시는데, 소만 400마리인가 키우시더라고요."
중개사는 서글서글하게 대응했다.
매물을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바로 당장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8억 정도는 상시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뜻, 그렇다면 젊은 나이에 정말 알짜배기 부자란 소리다.
"매도인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그러게요. 그다지 멀리 사시는 분도 아닌데, 조금 늦으시네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매도인이 도착했다.
"아, 지금 오시네요. 저분이 매도인이세요."
하수영은 중개사의 속삭임에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매도인은 깐깐한 인상을 가진 70대 노인이었는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투덜거렸다.
"누가 저런 고물 트럭을 밖에 대놨어? 저런 거 눈에 보이면 동네 품격 떨어지는데 말이야."
"저거 제 차인데요."
"젊은이는 누구?"
"오늘 최수만 씨와 계약할 매수인입니다."
하수영이 담담하자 말하자 매도인의 표정에 조금 당혹스러움이 어렸다.
"아, 매수인이셨구려. 난 그것도 모르고 그만 흉을 봤네."
"괜찮아요. 이 동네와 안 어울리는 차이긴 하죠. 근데 제가 차가 저거하나밖에 없어서."
"그 나이에 80억짜리 건물 산다는거 보면 돈도 좀 있으실 텐데, 왜 좋은 차를 안 타고 다녀요? 내가 소싯적에는 외제 차만 서너 대 이상을 끌고 다녔는데."
"제 눈에는 부가티나 제 애마나 고만고만해서요. 별 차이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어차피 가격도 비슷비슷하고요."
매도인은 그 말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내가 이거 오늘 귀인을 만났네. 젊으신 양반이 아주 사리분별이 있어. 우리 아들이 반의반만 닮았어도 오늘 이런 만남은 없었을 텐데."
"아드님이 사고 좀 치셨나 보네요. 빌딩을 팔면 안 되는 상황까지 생길 정도로."
"젊은 양반이 눈치가 아주 백 단이 네. 맞아요. 우리 아들 사고 친 거 수습하려면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해. 그래서 가격 흥정은 단 돈백도 못 해줘요."
"이미 계약하고 나서 무슨 가격 협상을 해요?"
"아, 그렇지. 내 정신 좀 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계약을 마쳤다.
"최수만 씨,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같이 좀 둘러보려고요."
"매물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넣었으면서 지금 와서 매물 보시려고?"
"주인 바뀐다고 임차인들에게 인사는 미리 해둬야 할 거 아닙니까. 이제부터 제 것이나 다름없는데요. 관리 들어가야죠."
"소유권 이전 전에는 아직 내 거라오."
"계약금 두 배 내놓고 파기하실 건 아니잖아요. 그럼 제 것이나 다름없죠."
"그건 그렇지. 좋아요, 갑시다."
하수영은 최수만과 함께 상가를 찾아서 영업을 오픈한 세입자들에게 일일이 인사했다.
새 건물주라는 말에 다들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어르신, 그럼 결국 건물 넘기기로 하신 거예요?"
"그렇지. 어쩔 수 없었어. 그놈 자식 사고 친 거 수습하려면……."
"너무 아쉬워요. 그래도 어르신이 많이 팔아주셨는데."
"멀리 이사 가는 건 아니니까 종종 들릴게. 새 주인이 너무 야박하게 굴면 나한테 말하고."
"건물 팔면 끝인데 어르신이 무슨 힘이 있다고요."
최수만은 세입자와 사이가 두루두루 좋아 보였다.
물론 그것은 사전에 이미 하수영의 정보망에 수집된 데이터였다.
'괜찮은 세입자들만 있는 80억짜리 상가면 당연히 나오자마자 거둬들여야지.'
계약을 마친 하수영은 기분 좋게 트럭에 올랐다.
귀가를 위해 대로로 빠져나오자 값비싼 고급 차량으로 정체된 교통체 증을 맞이했다.
"에휴, 이놈의 강남은 대체 명절빼고 차가 안 막히는 날이 없어요."
그래도 꿈을 위한 첫 주춧돌을 쌓아 올린 터라, 차가 막혀도 기분이 좋았다.
그때 정서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하수영입니다."
-부사장입니다. 오늘 분까지 해서 프라임유통 골든 트러플 재고량이 80kg이라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저희가 공문 발송하긴 했는데 아직 못 들으신 것 같아서요. 우리 회사 통해서 골든 트러플 300kg 발주주문이 들어왔어요.
"와우,300kg이나요?"
-네, 킬로당 150만 달러에 사겠다는 조건이에요. 덕분에 대표님은 지금 엄청 들떠 계시고요.
"골든 트러플 팔아봤자 이익 보는 건 저인데 왜 전 사장님이 들떠 계신 건가요?"
프라임컴퍼니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수준이다. 말그대로 운임비 정도밖에 안 되는.
-그래도 우리 프라임 그룹 이미지 전체가 같이 상승하는 건데, 이익을 안 보는 건 아니죠. 근데 지금 서울이 신가요? 차 소리가 엄청 시끄럽네요.
"청담동에 와 있어요."
-어머, 저도 지금 청담동인데. 몹시 '귀찮은 일'이 있어서 잠시 와 있어요. 사장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상가 매물 하나 나와서 계약하러 왔습니다. 계약 무사히 잘 마쳤고요, 지금 돌아가는 길이에요."
-상가 구매하신 거예요?
"네, 80억 2,000만 원짜리인데 보증금 안고 사는 거라 실제로는 55억 7,500만 원에 사는 거예요."
-그 정도야 사장님 능력에는 별거아니겠네요. 저기, 근데 우리 이번에 들어온 골든 트러플 발주 주문에서 뭔가 찜찜한 게 있어서요.
"찜찜한 거요?"
-네, 아무래도 프라임유통과 직접 연관이 있는 계약이니까 의논하는 게 나을 듯해서 전화 드렸어요.
신호가 바뀌자 하수영은 엑셀을 밟았다.
낡은 트럭은 털털거리며 전방을 향해 나아갔지만, 워낙 도로가 정체된 상황이다 보니 금방 또 신호에 걸려 멈췄다.
그때 옆에서 요란한 엔진음이 울렸다.
시선을 돌려 내려다보자, 도로에 엎드리듯이 달라붙은 빨간 오픈카가 마치 들으라는 듯이 엔진음을 울리고 있었다.
늘씬한 미인을 조수석에 태운, 짙은 선글라스는 낀 젊은 남자가 비웃듯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또 엄청 시끄럽네요.
"어떤 마세라티 차주가 제 애마가 부러운지 옆에서 엔진을 혹사하면서 자기를 제발 봐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네요. 그 소리예요."
-언제 차 새로 뽑으셨어요?
정서희는 하수영이 값비싼 수퍼카를 새로 뽑은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찜찜하다는 게 뭐죠?"
-발주업체가 팟디서플라이라는 글로벌 유통업체인데, 이 회사가 사실 세계에서 가장 큰 골든 트러플 자생지를 보유한 곳이기도 하거든요. 물량이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 굳이 우리 업체에 300kg이나 주문을 넣은 게 왠지…….
쾅!
-이게 무슨 소리죠? 사고 났어요?
"별거 아니에요. 가벼운 접촉 사고예요."
-설마 아까 그 마세라티?
"롤스로이스 같아요. 아,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