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81화
18장 미끼인 듯 미끼 아닌 미끼같은(2)
"라면 사업 제휴라고?"
"네, 저희 회사에는 값싼 황비버섯이 있고, JM식품에는 다양한 라면 들이 많이 있죠. 그 둘을 서로 결합하면 다른 회사들은 모두 라면 사업을 완전히 접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90%가 넘지 않았니?"
"저는 90%가 아닌 100%를 원해요. 그러기 위해서 JM식품의 힘이 필요한 거죠."
"……."
정재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딸의 주장에 모순은 없었다.
1+1은 2가 아니라 3, 4, 혹은 10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상승효과.
JM식품에 없고, 프라임컴퍼니에는 있는 것.
JM식품에 있고, 프라임컴퍼니에는 없는 것.
그 둘을 적절히 혼합하면, 90%의 점유율을 100%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못 만드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아시겠지만 우리 라면에서 버섯만 빼서 다른 요리에 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요. 물론 버섯만 빼서 '다른 라면'에 넣어서 먹는 사람들도 제법 있고요."
100%가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소비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황비버섯라면에서 면발과 스프 자체는 그다지 특출하지 않다는 것을.
-윤라면에 황비버섯만 빼서 넣으니 더 맛있는데?
-그걸 이제 알았냐. 난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시장에서 황비버섯 사서 윤라면에 넣는 것보다는, 황비버섯라면에서 버섯만 빼서 윤라면에 넣어 먹는 게 훨씬 낫지.
-윤라면 800원, 황비버섯라면 1,000원. 라면 한 그릇 먹는데 1,800원이 드는 셈이지만 한번 이렇게 먹어봐라. 분식집에서 파는 4,000원짜리 라면은 비교할 바도 못된다.
SNS에서 '황비버섯라면을 한층 더 맛있게 먹는 법'이라며 공공연히 떠도는 이야기였다.
물론 황비버섯라면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고스란히 회사의 매출과 이익으로 잡힌다. 때문에 프라임컴퍼니 입장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먹든 간에 손해 볼 것은 없다.
하지만…….
"버섯만 쏙 빼서 전골 같은 다른 국물 요리에 넣어 먹는 것은, 뭐 이해해요. 근데 윤라면에 버섯만 넣어서 먹고 정작 우리 라면 면발과 스프는 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라면 제조회사로서 자존심 상하잖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니, 회사를 경영하는 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그릇에 800원을 추가하는 것으로 라면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바로 황비버섯과 다른 라면을 조합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800원이 아까워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그런 '혼종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JM 식품과 제휴를 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 회사가 단독으로 새로운 라면 상품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내놓으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요."
프라임컴퍼니는 아직 충분한 연구개발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 연구개발부서를 막 갖추긴 했지만 당장 1, 2년 안에 신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힘들다.
정재민은 그런 상황을 대번에 이해 했다.
"시간을 사고 싶은 거구나."
"대신 JM식품은 이익을 살 수 있죠."
"내가 너라면 그렇게 안 한다. 차라리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시장을 장악하는 길을 택하지, 경쟁업체에 숨통을 틔워주는 일은 절대로."
"JM식품은 경쟁업체이기 이전에 아버지 회사잖아요."
"서진이가 물려받을 회사이기도 하지."
"나중에 라면 사업부 정도는 계열분리해서 저에게 주실 수도 있잖아요."
"……."
정재민도 그 말에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정서희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자기 할 말을 밀어붙였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라면 사업부는 희망이 없어요. 사업 정리, 시장 철수는 필연적이죠. 시간문제일 뿐, 결국 일어나게 될 일이에요."
"……틀린 말은 아니구나."
"그냥 없어지는 것보다는 나중에 저한테 준다 생각하시고 맡겨 주셔도 되잖아요. 저도 아버지 자식 아니에요?"
허술한 점이 전혀 없기에, 정재민은 고민에 사로잡혔다.
곧이어 그는 깨달았다.
이건 애초에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어차피 정리하게 될 라면 사업, 어차피 정서희도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 어차피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딸.
"제휴야 어렵지 않다. 아니, 우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 하지만 전성렬 사장, 그 사람을 설득할 자신은 있는 거니?"
"네, 있어요."
"잘못 제휴했다가는 나중에 라면 시장의 주도권이 우리한테 넘어올 수 있다고 염려하지 않을까? 어쨌든 너는 내 딸이고, 전성렬 사장하고는 무관하잖아. 그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경계할 수 있어."
"그분은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계시니까 그런 경계심은 품지 않을 거예요."
"널 단단히 믿는가 보구나. 하긴, 그러니 부사장직을 과감히 맡겼겠지."
"사장님은 당연히 절 믿으시죠."
정서희는 서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프라임컴퍼니에 100억 원이나 투자한 3대 주주니까요."
"100억 원이라고? 서희야, 너 설마……!"
"네, 청담동 빌딩 담보 잡고 돈 좀 빌렸어요."
"내, 내가 그 빌딩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담보 잡지 말라고 그리 신신당부를 했거늘…!"
정재민은 숨이 넘어갈 듯이 뒷목을 잡았다.
시가 600억 원에 달하는 청담동빌딩.
딸의 안락한 일생을 위해 현금을 탈탈 털어서 마련해 준 혼수 지참금이자, 종신연금이자, 보험이다.
그래서 절대로 그 빌딩만큼은 담보같은 걸 잡지 말라고 당부를 했는데.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담보잡고 빌린 거예요."
"확신? 무슨 확신? 프라임컴퍼니가 결과적으로 대박이 터져서 잘된 거지, 만약 쫄딱 망하기라도 했으면 너 100억이나 되는 빚을 무슨 재주로 갚으려고 그랬니?"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얼마나 싸게 생산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라면 사업에 어렵게 끼어든 거구요."
"……."
정재민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원래 전성렬 사장님은 절 끼워주실 마음이 없었어요. 자본금도 충분했고, 또 제품에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용케 끼워줬구나. 주식까지 나눠줘 가면서."
"제가 JM식품 집안 딸이라는 것 덕분이죠."
정재민의 표정에 의아한 감정이 조금 어렸다.
"사업 노하우를 전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JM식품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저를 끼워주신 거예요."
"그래?"
"만약 제가 돈만 좀 있는 집안 딸이었으면 절대로 끼워주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구나."
결과적으로 잘 풀렸고, 또 투자하기 전에 이미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알고 있었으니, 정재민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미안, 아빠. 사실 대출은 안 받았어요.'
청담동 빌딩의 등기부는 깨끗하다.
대출 이야기는 그냥 딸이 회사 일을 못 하도록 꾸준히 차단해 온 부친에 대한 작은 심술이었다.
"그래도 임원들과 의논은 해봐야 해. 알지?"
"그럼요. 아무리 오너라 해도 이런 큰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죠. 놓치신 점이 있는지 체크도 하셔야 할 테고요."
"이해해 주니 고맙구나. 조만간 긍정적인 답변을 해줄게. 임원들도 그리 반대하지는 않을 거야."
"이걸 반대한다면 임원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거죠."
* * *
정재민은 당장 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택으로 호출했다.
전화로 미리 이야기를 들은 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제휴를 받아들이자고 찬성했다.
"어차피 우리가 황비버섯라면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같은 가격에 버섯을 공급받을 수만 있다면, 라면 시장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태양심, 육뚜기를 건너뛰고 우리 하고만 제휴를 맺겠다고요?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 이견도 있었으나, 정서희가 프라임컴퍼니 부사장이라는 말에는 대번 납득했다.
"사장님 따님께서 프라임컴퍼니 창업주였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 거라면 저희에게도 미리 귀띔을 주셨으면 어느 정도 대비를 했을 텐데요."
"역시 사장님의 사업 혜안이 대단하십니다. 최근 라면 사업이 부진했는데 아군도 모르게 그런 준비를 하고 계셨을 줄이야."
"……."
임원들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프라임컴퍼니 설립 자체에 정재민이 사전에 은밀히 관여한 것은 아닌가 하고.
정재민은 멋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굳이 사실을 바로 잡아주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오해하는 것은 자신, 그리고 정서희의 존재감 향상에 도움이 되니까.
'역시 그랬어.'
정서진은 다소 어두운 얼굴로 부친을 조용히 주시했다.
'아버지는 결국 서희가 회사 밖에 나가서 식품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도우셨던 거야.'
마케미야, 정서희, 그리고 부친.
그 세 가지 고리를 끼워 맞추면 그런 결론이 나온다.
* * *
정서희는 전성렬을 찾아 구두로 제휴 계약을 했음을 알렸다.
전성렬이 다소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부사장이 나중에 괜찮겠어요?"
"제가 뭘요?"
"이거 친아버지를 속이고 하는 일이잖아요. 나중에 부친께서 크게 실망하시지 않을지……."
"기업 경영이란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먹어치우면서 크는 거요."
"이 경우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먹어치우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그럼 '잘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바꾸죠. 어때요, 어감이 괜찮지 않아요?"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
킬러 아이템도 있고, 새 공장들이 곧 올라갈 예정이며, 자금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자본금도 부족함이 없다.
부족한 것은 단 하나, 세월의 축적이 쌓아 올린 연륜과 경험.
정서희는 그것을 인수합병이라는 카드로 해결하려고 했고, JM식품을 그 목표로 삼았다.
"JM식품에는 다양한 식품 특허와 풍부한 기술, 연구인력이 있어요. JM식품을 삼킬 수 있다면 우리 프라임컴퍼니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어요."
"그거야 우리야 좋지만, 나중에 시집갈 때 아버지가 손도 안 잡아줄까봐 걱정돼서 그러지."
"아버지가 사업에 조금 사심을 섞는 분이라 걱정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JM식품과 프라임컴퍼니의 라면 사업 제휴.
겉으로 보기에는 양자가 서로 윈윈하는 구조다. 특히 JM식품이 더 큰 이익을 얻는 형태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겉모습일 뿐이다.
정서희는 JM식품이라는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업 제휴라는 구멍을 낸 것이다.
JM식품은 구멍에서 물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댐 전체로 균열이 퍼지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해봐야 알죠. 느긋하게 가면 5년 이상은 걸릴 수 있겠지만…… 전 2년 안에 결과를 내려고 해요. 이런건 최대한 빨리 마무리할수록 좋은 거니까요."
"꾸준히 자체 기술과 인력을 쌓아 나가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인수합병이 틀어질 경우도 생각해야지요. JM 식품이 여간 튼튼한 회사가 아니니."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연구개발부서는 이미 모양새를 갖췄고, 자기 들끼리 알아서 굴러가고 있어요. 이제부터는 돈과 시간, 그리고 믿음을 주면 돼요."
"맞다. 드디어 골든 트러플 첫 주문이 들어왔어요."
"그래요? 얼마나 들어왔대요?"
"놀라지 말아요. 300kg이나, 그것도 한 곳에서 주문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