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79화
17장 새 친구를 찾아보자(4)
"저분이 아랍 에미리트 왕족이라고요?"
"네, 그래요. 제3 계승권자라서 아미르, 그러니까 국왕 자리에는 오르지 않겠지만요. 현 아부다비의 아미르이자 아랍 에미리트 대통령의 삼남이에요."
아랍 국왕의 삼남이라니.
전성렬은 새삼 안살린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삼남이 저 정도면 일남과 이남, 국왕은 대체 얼마나 많은 부를 갖고 있는 거죠?"
남자 가족들이 사이좋게 메이저리 그 구단 하나씩을 보유하고 있기라도 한 건가?
그 말에 정서희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님, 안살린 구단주님은 조금 특이한 케이스예요. 그분의 개인 재산이 아부다비 왕가가 가진 재산보다 더 많은 걸요?"
"네? 어떻게 그렇게 되죠?"
전성렬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왕이 설마 삼남에게 가문의 재산 과반을 물려줬을 리는 없을 텐데.
"국제자원투자회사라고 들어보셨어요?"
"부끄럽지만 처음 들어봤습니다."
"상장되지도 않았고, 주식이 거래되지도 않는 1인 기업이니까 그럴 수 있죠. 안살린 구단주님이 100%지분을 출자하고 소유하고 있는 기업인데, 초기 투자금은 100억 달러였죠."
"엄청나네요."
"현 아부다비 아미르이자 부친한테서 받은 새해 용돈으로 취미 삼아 세운 회사였대요. 아마 그때 구단주님 나이가 10대인가 그랬을걸요?"
"……."
10대한테 주는 새해 용돈이 100억달러라고?
이래서 오일 머니란 것들은!
"그 돈으로 세운 회사가 국제자원투자회사인데, 기업 가치가 4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4, 4조 달러라니……."
"우리 돈으로는 아마 4,000조원 쯤 되겠죠."
현금으로 4조 달러라는 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회사의 가치를 숫자로 나타낸 지표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저절로 아득해지는 숫자라 할 수 있었다.
"글로벌 기업 순위 1위라는 래플사는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비상장 회사라서 그래요. 자산이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기도 하고요."
"대체 뭐 하는 회사인데 그렇게 엄청난 가치가 있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거죠?"
"일반 대중을 상대로 영업하는 회사가 아니니까요. 비즈니스 자원 시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회사예요. 관심이 없으면 충분히 모를 수 있죠."
머릿속을 덮은 충격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자, 그제야 놓치고 있던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안살린 구단주님은 10대에 받은 새해 용돈을 가지고 400배 이상으로 불린 겁니까?"
"네, 그렇죠. 왕가의 도움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안살린 구단주님의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현 국왕께서도 그래서 삼남을 깊이 신임하고 있죠."
왕가의 도움이 컸다 해도 보통 사업 수완이 아니다.
안살린 본인이 가진 능력이 원체 뛰어났기에 가능했던 결과일 것이다.
"대단하군요. 어지간한 천재 사업가였나 봅니다."
"사실 사업 쪽 감각은 그다지 뛰어 나신 편은 아니에요. 적당히 현상유지는 하는 정도죠."
"네? 아니, 그럼 어떻게 400배 이상으로……."
정서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분, 지질학으로는 정말 엄청난 천재시거든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능과 운을 전부 가지셨죠."
"지질학? 그게 무슨……?"
의아해서 반문하던 전성렬은 불현듯 회사명에 '국제자원투자'라는 단어가 들어감을 기억해냈다.
여기에 지질학이라는 단어를 결합하면?
"지질학 연구한다고 여기저기 땅을 파실 때마다 석유, 천연가스, 희귀광물, 다이아몬드 같은 게 마구 쏟아져 나왔거든요."
"……."
"그분이 짚은 땅에는 뭔진 몰라도 뭔가 좋은 게 묻혀 있어요. 항상 그래왔죠."
"……마케미야 대표님이 왜 명단에 굳이 지질학자라고 표기했는지 알것 같습니다."
"사실 그분을 지질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구단주님 아니면 왕자님, 회장님, 다 그렇게 부르죠."
* * *
만찬은 성황리에 끝났다.
스케줄 문제로 첫날 바로 자리를 뜬 이도, 2박 3일정을 모두 마친 이도 좋은 감정을 안은 채 자리를 마무리했다.
"프라임유통컴퍼니라, 기억해 두겠습니다."
"놀랐습니다. 한국에도 골든 트러플이 자생하고 있었다니."
"오, 황금비단우산버섯이 듬뿍 들어간 그 라면이요? 나도 그 라면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파격적인 가격을 맞출 수 있었는지 신기했었는데…"
"정말 유익하고 즐거운 자리였어요."
최상류층 인물들을 대접한다는 것은, 사업을 하는 이에게 있어 영광되고 보람찬 경험이었다.
언론에서도 적당한 강도로 구름 위의 파티를 보도해 주었다.
서해그룹 계열인 서해호텔의 입김을 감히 무시할 수 있는 기자나 언론사는 없었다.
[서해호텔에서 열린 구름 위 파티!]
[재룟값만 근 2,000억 원! 오직 스무 명을 위한 신들의 만찬!]
[팀마 진, 스티브 스필드 감독, 전 미국 부통령, 영국 왕세손 등 국제적 유명 인사 대거 참여!]
[서해호텔과 황비버섯라면 제조사의 협업?]
황비버섯라면과 프라임컴퍼니의 이름을 은근히 흘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골든 트러플을 프라임컴퍼니 측에서 무상 제공했다는 말은 아예 뺐다.
'만찬 주최자인 마케미야투자의 의뢰를 받아 골든 트러플을 대량으로 조달했다.'
딱 이 정도로만 표기한 것이다.
만찬 참석자들은 마케미야가 친구들을 위해 파티를 연 것으로 알고 있으니. 굳이 마케미야 이름 앞에 프라임컴퍼니의 이름을 내세울 필요는 없었기에.
물론 이 정도 표기만으로도 충분했다.
태양심 등 식품업계 경쟁사들은 구름 위의 만찬 건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뭐야? 프라임컴퍼니에서 골든 트러플을 75㎏이나 조달했다고? 그 많은 물량을 대체 어디서 구해?"
따로 1㎏씩 포장해서 건넨 선물까지 포함하면, 도합 75kg.
가치로 따지면 최소 750억 원에서 최대 2,250억 원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돈이야 마케미야가 냈을 겁니다. 프라임컴퍼니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죠. 있다 해도 저런 자선사업을 할 이유도 전혀 없고요."
최상류층 인간들과 교류를 트자고 수천억 원을 들여서 파티를 연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친 짓이다.
그럴 돈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훨씬 확실하고, 보장되는 일이니까.
"돈은 당연히 마케미야가 냈겠지.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그런 말이 아니잖나!"
박전보 전무의 호통에 직원들은 일순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한껏 지은 채 죄지은 것처럼 침묵하는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골든 트러플이 어디 돈이 있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인가? 그것도 75kg을? 같은 무게의 금보다 몇 십 배나 비싼 식자재가 무슨 마트에서 파는 통조림처럼 쉽게 구할 수 있어?"
"……."
"좋아, 내가 지금 사장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서라도 1,000억 정도 만들어낼 테니까, 그 돈 가지고 골든 트러플 당장 구해올 수 있는 친구 있어? 있다면 지금 내 전무 자리를 주지."
아랍 왕족들이나 먹는 최상급 식자재다.
일반인은커녕, 웬만한 국내 재벌들도 감히 쳐다보기 어렵다.
일단 골든 트러플은 한국에 정식 유통망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골든 트러플을 안정적으로 소비할만한 '계층' 자체가 없다고 시장이 간주하고 있으니까.
"이 답답한 사람들아. 지금 뭐가 문제인지 몰라?"
"……."
"그 많은 골든 트러플을 구해왔다는 건 국제 식자재 유통망 쪽에 제대로 한 발을 걸치고 있다는 거야. 그런 유통능력이 있는 놈들이 천 원짜리 라면에 황비버섯을 80g이나 넣어서 팔고 있다고! 이게 뭘 뜻하는지 진짜 모르겠어?"
이미 국내 라면시장은 장악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황비버섯라면은 아마 내년에는 국내 매출에서 적어도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다.
"빨리빨리 대책을 마련해 오지 못하겠나!"
이어진 호통에 직원들은 헐레벌떡 회의실을 나섰다.
"한심한 것들 같으니……."
답답하다는 눈으로 빈 회의실을 훑어보던 박전보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밑의 임직원들을 실컷 갈궜으니, 이제는 자신이 사장한테 된통 깨질 차례였다.
* * *
태양심 사장 이정훈은 서해식품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서해그룹의 방계이기도 했다.
서해호텔의 오너인 이선주는 그에게 육촌 누나가 된다.
물론 말이 서해식품그룹이지, 서해 그룹 계열사들과는 무관하다. 서해 그룹 순환출자 고리에는 단 1주도 얽혀 있지 않다.
때문에, 이정훈은 이번에 서해호텔에서 열린 구름 위의 만찬에 관해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육촌 누나이긴 하지만 혈육의 정은 없으니.
"……해서, 아무래도 마케미야투자가 우리 생각 이상으로 프라임컴퍼니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정훈은 굽실거리는 박전보 전무를 무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평생을 이 회사에 바친 가신,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너무 한심해 보였다.
"박 전무."
"예, 사장님."
"내가 겨우 그런 이야기 듣자고 당신한테 비싼 월급을 주는 건 아닐 텐데?"
"죄송합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로열패밀리 사장이 아랫사람을 밟듯 거침없이 반말을 내뱉었지만, 박전보는 몸에 밴듯이 허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죄했다.
"죄송하자는 이야기 듣자는 거, 아닌 거 알잖아. 응?"
"네, 사장님."
"제대로 하자고, 제대로, 박 전무가 처음에 뭐라고 했어? '계약감사금'으로 200억 정도 준다고 하면 하수영이가 받아들일 거라고 했어, 안했어?"
"했습니다."
"내가 거기에 100억 더 얹어서 300억 전결 줬잖아. 근데 보기 좋게 퇴짜나 맞고, 그거 수습하기도 전에 이런 병신 같은 보고서를 들고 찾아와? 대체 무슨 낯짝이야? 회사 계속 다니고 싶은 맘이 있긴 한 거야?"
"죄송합니다."
"지금 장난쳐? 내가 죄송하자는 이야기 듣자는 게 아닌 거 알잖아."
이정훈은 타이르듯이 말했다.
연세 차이를 고려하면 충분히 자존심이 뒤집어질 만한 상황이지만, 박전보는 조금의 짜증도 품지 않았다.
오히려 어떡하면 로열패밀리 사장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했다.
"S은행에서 2,000억 0.19%에 대출해 준 거, 그것도 설마 마케미야투자가 뒤에서 입김을 분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S은행이 국내 다른 재벌이면 몰라도, 마케미야투자 같은 일본 기업의 말을 듣고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리는 없습니다."
"지금 황비버섯라면 시장 점유율이 어떻게 되지? 저번 주 점유율 말이야."
"……85%입니다. 그래도 조금 떨어졌……."
퍽!
말을 꺼내자마자 재떨이가 날아와서 박전보의 이마를 정확하게 맞췄다.
피가 흘렀지만 박전보는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85%라고?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 죄송하다는 말 지겹다고 했어, 안 했어!"
드디어 쩌렁쩌렁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박전보는 어느 정도 안도했다.
젊은 사장이 목청을 짜내듯이 고함을 지른다는 것은, 이제 화풀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간다는 뜻이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수영이 그놈 잡아서 우리 회사와 독점 계약 맺게 만들어! 그놈 잡아 오기 전까지는 내 얼굴 볼 생각도 하지 마!"
"예, 사장님."
박전보는 마지막으로 찐득한 욕을 실컷 얻어먹은 뒤 사장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