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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77화 (77/1,270)

프랜차이즈 갓 077화

17장 새 친구를 찾아보자(2)

만찬회 날이 밝았다.

하수영은 아침부터 정서희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넉넉하게 2박 3일 일정으로 잡았어요. 하루 더 머무르고 싶다는 분이 나올 수도 있어서요.

"잘하셨네요."

-기자들 사이에도 소문 흘렸어요. 마케미야 대표님 주최 만찬, 서해호텔 전체 대관, 세계를 움직이는 19인의 친구들 초청, 별들끼리의 잔치, 그런 키워드로 기사가 쏟아질 거예요.

"태양심 뜨끔하게 만들기에는 좋겠군요."

-그건 장담 못 해요. 사실 프라임컴퍼니의 이름이 대놓고 나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업계 관계자들은 알 거 아닙니까."

-알겠죠.

"혹시 트러플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조달 가능하니까요."

-사실…… 우리 프라임 그룹 이름으로 초청객들 전원에게 1kg 이상씩 골든 트러플을 선물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물을 한다고요?"

하수영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반문했지만, 정서희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부담이 될까요?

"그럴 리가요. 그냥 땅에서 캐내기만 하면 그만인데, 뭐 부담될 게 있겠습니까."

-하지만 시장에 팔면 100억 이상은 받을 수 있잖아요.

"팔아야 돈이 되는 거지, 갖고 있다고 돈인 건 아니죠. 그리고 이번 이벤트 기획 취지를 생각하면 선물도 들려 보내는 게 훨씬 낫겠네요. 준비하겠습니다."

하수영이 선뜻 수락하자 정서희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져서 다시 물었다.

-근데 정말 만찬회에는 참석 안하실 건가요?

"프라임컴퍼니 경영진도 아닌데 제가 거기 가서 뭐 할 게 있습니까. 흙이나 만지는 농사꾼 왔다고 자리 격이나 떨어뜨리지 않으면 다행이죠."

-아무도 사장님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선물용 트러플 때문에라도 가긴 해야겠네요. 그것만 살짝 전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아, 포장용 상자는 호텔에서 미리 따로 준비를 해두세요."

-사실 벌써 준비해 뒀어요. 트러플만 채우면 돼요.

"제가 이래서 부사장님을 신뢰한다니까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척척 해치우는 모습이 믿음직스럽고 흡족하다.

하수영은 즐거운 기분으로 통화를 끊고, 미리 캐온 트러플을 조심스럽게 포장했다.

어차피 서해호텔에서 다시 한번 포장을 하겠지만, 이동하는 동안에 손상을 입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수십 배 이상 비싼, 먹을 수 있는 다이아몬드이니까.

하수영은 트럭을 타고 출발했다.

* * *

호텔에서 준비한 리무진이 차례차례 정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 행사를 위해 일부러 의전용 리무진 19대를 임대해서 준비를 해두었다.

리무진은 공항에 미리 도착해대기 했다가 입국하는 만찬회 초청객들을 태워 왔다.

[래플사 CEO 팀마 진, 김포공항입국! 비즈니스인가, 개인 용무인가?]

[스티브 스필드 감독, 김포공항에서 포착!]

[클라우드 미 전 부통령, 극비리에 방한! 목적은 친구 파티 참석?]

[윌리엄즈 영국 왕세손, 친구 만나러 한국을 찾다!]

"인터넷 기사는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네요. 반응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요."

"서해호텔에서도 보도 자료 돌리고기사 내보냈습니다. 오늘부터 2박 3일 동안 외부 행사 유치 때문에 일반 손님은 일절 받지 않는다고 공지도 올렸고요."

인터넷에서 심심찮은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 서해호텔의 3일 대관, 속속들이 방문하는 해외 귀빈, 그들을 태운 리무진이 향하는 목적지까지.

호텔 오너 이선주는 임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 과하게 진행하면 안 됩니다. 별들끼리 모여서 그들만의 황홀한 잔치를 즐기더라, 딱 이 정도까지만 퍼져 나가게끔 해야 합니다."

최상류층 인간들은 과시를 즐기는 게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치가 떨리도록 싫어한다.

대중의 적당한 관심과 호기심은 허락하지만, 자신들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구름 위에서 즐기는 그들만의 파티예요. 땅에서 우러러보며 찬양하는 것은 유쾌하게 허락하겠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까이 쫓아와서 구경하려는 것은 불쾌하게 여길 겁니다. 그 선을 잘 잡고 보도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보도 자료로 나가는 사진들은 미리 세팅한 연회장의 무대와 호텔의 각종 시설, 그리고 정문을 들어서는 리무진 차량 행렬을 멀리서 찍은 모습 정도가 될 것이다.

초청객들의 모습은 손끝 하나도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며, 보도되지도 않는다.

이름을 밝혀도 무관한, 오히려 그것을 기꺼워할 '팀마 진' 등의 인사들은 이름 정도는 보도된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이름이 나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선주는 호텔 주인으로서 직접 연회장 로비에 나가서 초청객들을 맞이했다.

고귀한 재벌 2세이지만 오늘만큼은 호텔의 총지배인 역할을 수행하고자 마음먹었다.

사실 오늘 초청객 중에서 그녀보다 못하다고 할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

* * *

전성렬은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연회장을 바라봤다.

평생 범접하지 못할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이 한꺼번에 서해호텔을 찾았다.

그것도 사실상 자신이 주관한 것이나 다름없는 파티였다.

마케미야는 능숙하게 만찬회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다.

그에게는 세련됨 그 이상을 넘어서는 아우라가 있었다. 영국 왕세손까지 포함된 저 무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 수 있는 품위가 있었다.

"……새삼 마케미야 대표님이 얼마나 높은 구름 위에 사는 분인지 느껴지는군요."

"그렇죠? 저도 실없는 모습 뵐 때마다 사실 깜빡깜빡 잊곤 해요."

정서희가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고, 전성렬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거야 부사장님도 같은 급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요?"

"같은 급이라니요. 저희 집안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요. 중간 회사 몇 개 겨우 가지고 있는 정도인 걸요."

"그래도 어엿한 재벌가잖습니까."

"재계에서 식품 재벌은 재벌가로 쳐주지도 않아요. 그냥 구멍가게 수준으로 보죠."

정서희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금 연회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귀빈들은 골든 트러플이 듬뿍 들어간 음식을 즐기며 감탄하고 있었다.

전성렬이 다시 말했다.

"돈은 좀 썼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네요. 마케미야 대표님에게 그간 신세도 많이 졌는데, 어느 정도 갚을 수 있게 돼서 마음도 편합니다."

"사실 진짜 이득 보는 건 아저씨가 아니라 바로 우리 회사가 될 거예요."

"마케미야 대표님께 또 신세를 지는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골든 트러플을 55㎏이나 제공했잖아요. 그 정도는 당당하게 받아도 돼요."

마케미야는 골든 트러플을 프라임그룹에서 선물 받은 것이라고 지인들 사이에서 넌지시 흘릴 것이다.

골든 트러플의 가치를 아는 이들이 니만큼, 55kg이나 되는 양을 선뜻 내놓았다는 것에 놀라워할 게 분명하다.

저 대단한 이들에게 회사 이름을 각인시킨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무형의 이익을 줄것이다.

* * *

서해호텔에 도착한 하수영은 정문은커녕 언덕 초입에서부터 가드들에게 제지를 당했다.

"죄송하지만 오늘 저희 호텔은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차를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일반인이 아니고 행사 관계 자입니다. 행사에 필요한 중요한 물품을 가져왔어요."

"차를 돌려주십시오."

가드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완강하게 하수영에게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아니, 안에 연락을 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하면 어떡합니까?"

"차를 돌려주십시오."

"안에 연락을 해보라니까요. 아니다, 됐어요. 제가 지금 전화를 해보죠."

"차를 돌려주십시오."

하수영이 전화를 하려고 하자 가드들은 차창 안으로 손을 뻗어 전화를 막으려고 했다.

실랑이를 벌이기 싫었던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따져 물었다.

"대체 왜 이래요? 행사 관계자라니까요. 안에 연락을 넣든, 아니면 제가 연락을 하게 하든 해줘요."

"오늘 당신처럼 거짓말로 작정하고 숨어들어오려던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결국, 가드가 으르렁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하수영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레기들이 누울 자리, 누우면 안 되는 자리 구분 못하는 건 여전하구나. 덕분에 나 같은 선량한 사람도 이런 피해를 입고…… 어휴."

하수영은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트럭 뒤로 돌아갔다.

"제가 잠입 기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죠. 자, 이리 와보세요."

"뭡니까?"

"이거 보시면 압니다. 오늘 행사에 필요한 물품이라고요."

하수영은 포장 상자 하나를 열어서 안에 담긴 골든 트러플을 보여주었다. 가드가 보고 말했다.

"혹시 이거 바보 금 아닙니까?"

"뭐라고요!"

바보 금.

황철석처럼 금과 비슷한 색을 띠고 있어 사람들이 종종 금으로 착각하고 횡재했다고 좋아하게 만드는 광물을 일컫는 말이다.

하수영은 발끈해서 반박했다.

"이게 어딜 봐서 바보 금입니까?"

"바보 금이 아니면 진짜 금이라도 됩니까?"

"금이라는 건 아니고 골든 트러플이라는 건데. 같은 무게의 금보다 수십 배 이상 비싼 거라고요."

"금보다 수십 배 이상? 그래서 이 뭔데요? 무슨 광물입니까?"

"광물은 아니고 버섯입니다. 식용 버섯."

"……식용 버섯이요?"

"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식자재요.

오늘 초청받은 귀빈들에게 선물로 드릴 물품입니다."

"……."

가드들은 잠시 서로를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하다가 입을 열었다.

"조용히 끌고 가서 경찰 불러야겠어."

"아니? 이봐요들!"

가벼운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결국 내부와 연락이 되어 하수영은 시간을 크게 낭비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골든 트러플이 뭔지 몰랐던 가드들은 민망한 얼굴로 하수영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죄송했습니다. 그렇게 비싼 식자재인 줄도 모르고……."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게 전화 한 통만 하게 놔두든가 아니면 직접 연락을 하시든가, 아니, 됐습니다. 잠입하려고 난리 친 기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니까 그럴 수도 있죠. 수고하세요."

하수영은 쿨하게 넘어가 줬다.

호텔 정문을 돌아서 후문에 진입하자, 호텔 직원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직원들은 포장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안으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다들 조심해. 이거 박스 하나당 30억씩 하는 거라고."

30억이라는 말에 직원들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미 주의를 들어 알고 있지만, 막상 손으로 만져 보니 중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하수영은 트럭에 등을 기댄 채 직원들이 호텔 안으로 버섯 상자를 운반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트러플 향이 아주 진동을 하네."

하수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국적으로 생긴, 키가 크고 잘생긴 청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감색 정장의 늘씬한 핏이 아주 잘 어울리는, 고귀한 귀공자 느낌의 남자였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쯤 되었을까?

선명하고 또렷한 이목구비 사이에 자리 잡은 강인한 눈동자가 똑바로 쳐다보며 웃는다.

"향이 너무 강해서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정말 트러플이었어. 이거 당신이 가져왔어요? 당신이 골든 트러플 파머(farmer)? 오늘 만찬의 숨은 주인인가?"

"누구시죠?"

"나? 지질학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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