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75화
16장 새 버섯을 찾아보자(6)
전성렬은 입을 떡 벌리며 놀랐다.
"하 사장, 서해호텔을 통째로 빌리자니…… 서해호텔 하루 매출이 얼만지 알기나 하나? 거기에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보전을 해줘야 겨우 할까 말까 할 텐데."
서해호텔은 숙박 서비스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뷔페, 중식당, 한식당, 일식당, 대형 연회장, 야외홀, 디너쇼, 면세점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있다.
그리고 숙박은 관심 없고 그저 식사나 면세점 쇼핑을 하기 위해 찾는 방문객들도 많다.
호텔 지하에는 부유층들을 위한 명품 가구 및 의류 쇼핑센터가 있어, 상위 0.1%들이 혼수 장만을 위해 즐겨 찾는다.
그 모든 매출까지 전부 커버를 해줘야 한다면, 대체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서울 서해호텔의 연 매출을 대충 편하게 3조 6,500억 원으로 잡으면 하루 매출이 100억 원 정도 되겠네요. 1박 2일로 치고 200억 준다고 하면 아마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뭐야, 그거밖에 안 돼?"
전성렬이 놀랍다는 듯이 반응하자 정서희가 기가 막혀서 그를 쏘아봤다.
"사장님, 그거 밖이라니요."
"아니, 일 평균 매출이 100억 원밖에 안 된다고 하잖아요. 지금 라면 하나만 파는 우리 회사보다 일 매출이 조금 더 나은 수준이잖습니까."
"우리는 라면을 전국에 팔지만, 서울 서해호텔은 건물 하나 가지고 하는 장사라는 걸 아셔야죠."
"그, 그래도 난 서울 서해호텔 정도면 연 매출이 20조 원은 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4조 원도 안 된다고 하니."
하수영이 끼어들었다.
"정확히 작년 매출이 3조 9,500억원 정도 될 겁니다. 제가 3.65조 원으로 한 건 그냥 최대한 숫자를 간단하게 알려드리고 싶어서고요."
"아무튼 도긴개긴이란 말이잖은가."
정서희는 퍼뜩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 전성렬 사장이 하수영 사장한테 물들어 가고 있는 건가?
"마케미야 대표님 자산이 수십조원이 넘죠. 그런 분이 딱 20명만 엄밀히 선정해서 초청한다고 했습니다. 개인 평균 자산을 20조 원으로 잡아도 400조 원어치가 한날 한자리에 모이는 겁니다."
정서희는 거듭 기가 막혔다. 왜 셈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거야?
"그렇군, 최소 400조 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데 이틀 대관료로 200억 원은 그리 비싼 게 아니지."
"서해호텔에서도 최고급 VIP만을 유치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아할 겁니다. 홍보를 통해 호텔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데도 더할 나위 없고, 매출에서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 그렇지."
"문제는 200억 원을 어디서 충당하느냐 하는 거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한 실탄이 있잖아요?"
"빚도 자산이지, 암."
얼마 전 S은행에서 2,000억 원을 0.19%라는 초저금리로 빌린 덕분에, 자금 사정은 여유가 넘쳤다.
"우리 크게 보자고요. 세계적인 대부호 수십 명을 초청해서 우리만의 만찬을 가졌어요. 태양심 같은 곳에서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저놈들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는군, 이렇게 생각하겠지."
"인맥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넓히진 못하더라도 넓어 보이는 것처럼 착시 효과는 줘야 합니다. 그래야 주변이 우리를 만만하게 못 봐요."
하수영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제공하는 최상급 골든 트러플 40kg…… 이거 돈으로 환산하면 1,200억 원은 돼요. 저 혼자서 그만한 돈을 내는 상황에 대관료 200억이 뭐 문제인가요?"
사실 이 말은 조금 궤변이었다.
1,200억 원을 내는 게 아니라, 채 취한 골든 트러플을 무상 제공하는 것뿐이니까.
물론 정식으로 유통하면 적어도 800억 원 이상의 돈을 만질 수 있을 테니, 미래의 이익을 내놓은 것은 사실이다.
정서희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듣고 보니 하수영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아니, 곱씹을수록 그렇게 하는 게 회사를 위해 가장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서해호텔을 통째로 빌리는 것으로 진행을 할게요."
"부대시설 방문자들이야 하루 호텔을 오픈 안 하면 그만이지만, 미리 숙박 예약을 잡은 사람들은 어떡합니까?"
"최대한 숙박 일정이 적은 날을 고르고, 정중히 예약 취소 요청을 해야겠죠. 그건 서해호텔에서 알아서할 일이니까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정서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마케미야 아저씨 덕분에 제가 호텔 사장하고 친분이 조금 있어요."
"역시 금수저와 함께하면 사업이 편하다니까요."
"마케미야 아저씨 이름을 팔아야 죠. 워낙 이런저런 고급 행사 많이 유치하시는 분이니까, 호텔에서 무조건 편의를 봐줄 거예요."
정서희는 재빠르게 협상에 나섰다.
서해호텔 오너는 이선주라는 40대 후반의 여성으로, 서해그룹 직계였다.
* * *
이선주는 정서희의 연락을 반갑게 받았다.
"어서 와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뭘요, 우리 호텔에 행사 의뢰하시는 건데 장사꾼 입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만나야죠. 듣기로는 꽤 규모가 커서 저하고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 면서요?"
"네, 마케미야 대표님이 주최하는 만찬이 있어서요. 일단 1박 2일로 진행될 예정이에요. 그보다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고요."
"마케미야 대표님은 안녕하시죠?"
마케미야는 서해호텔의 VVIP 고객 중에서 매출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개인 자격으로 따지면 1, 2위를 다 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요, 아주 정정하세요."
"언제 한 번 제가 뵙고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그분이 원체 바쁘시다 보니…"
안부를 곁들인 가벼운 담소를 나눈 후에, 정서희가 본론을 꺼냈다.
"마케미야 대표님이 아주 특별한 지인을 스무 명 정도만 불러서 만찬을 가지려고 해요. 그래서 다른 고객이나 투숙객은 일체 받지 말고, 호텔 전체를 대관했으면 하는데요."
호텔 전체 대관이라는 말에 이선주는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이내 평정을 찾고 말했다.
"비용 문제만 충족된다면 어렵진 않아요. 장기 투숙, 예약 투숙객들이 있겠지만 그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고요."
"비용은 어느 정도면 될까요?"
"잠시만요."
이선주는 곧 호텔 총지배인을 호출해서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약 10분 정도 대화를 나눈 후 그녀는 다시금 정서희한테 시선을 돌렸다.
"전체 대관료로 하루 100억 원은 받아야 하지만, 이건 단순히 매출만을 따졌을 때 이야기이고요. 스무명 정도의 VVIP만 받는 행사라면 우리가 특별히 비용 나갈 게 없으니, 거기에 마케미야 대표님과의 관계도 생각하면… 하루 80억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생각보다 낮춰진 가격에 정서희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금 더 협상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이미 마케미야의 이름을 판이상, 가격 흥정에는 나서지 않기로 했다.
이 만찬 행사에는 마케미야의 콧대를 세워준다는 목적도 포함돼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1박 2일? 아니면 2박 3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까요?"
"그건 내일까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도 마케미야 대표님에게 자세한 의향을 여쭤봐야 해서요. 순전히 그분의 기분에 달린 일이다 보니
"그래요, 연락 줘요."
이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고, 정서희는 정중히 악수에 응했다.
"그나저나 서희 양은 가면 갈수록 예뻐지는 거 같아요. 아무리 봐도 영화배우를 해야 할 비주얼인데."
"빈말이라도 감사해요."
"빈말이라니, 진심이에요. 우리 아들이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어도 맺어주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정서희는 어색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알기로 이선주의 아들은 아직 중학생이기 때문이다.
'난 왜 미성년자 연하들만 꼬이는 거야?'
* * *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자, 하수영은 눈을 떴다.
사방이 캄캄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뭐지? 분명히 서락산 집에서 청담동 매물 보다가 잠든 것 같았는데."
주변을 더듬거려 보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마치 영혼이 어둠의 나락에 떨어진 것만 같다.
'뭐야, 설마 죽은 거야? 지진? 아니면 LPG 가스라도 터졌나?
하…… 이번 생은 좀 편히 살다가 가는가 싶었더니…….'
그 순간 어둠이 걷히며, 막혀 있던 감각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시야가 열리고, 소리가 뚫리며, 살갖을 두드리는 바람의 촉감까지 선명하게 내리꽂힌다.
"공격대장님! 어서 피하세요!"
비명에 젖은 동료 대원의 외침이 울린다.
하수영은 그제야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익숙한 복장이 눈에 들어온다. 너덜너덜해진 전투복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제야 하수영은 어떤 상황인지 알수 있었다.
'내 두 번째 삶…… 꿈으로 보는 건 참 오랜만이구나.'
순간 하수영은 심하게 두근거렸다.
기억의 흐름에서 까마득한 옛날에 존재하는 시절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행복했으며, 소중했던 시간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타임라인.
그 소중한 추억을 지금 오랜만에 꿈으로 다시 만났다.
-캬오오오!
"괴수가 너무 강력해! 레드 등급이 맞긴 한 거야?"
"지원 요청을 해! 미군 공중 지원은 대체 오는 거야!"
"공격대장님! 철수해야 합니다!"
"메인 탱커! 메인 탱커!"
메인 탱커.
그 말에 하수영은 등줄기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인류가 괴수의 위협에 시달리며 공존하는 시대.
그는 최강의 괴수 사냥 공격대를 운영하는 오너였으며, 선두에서 맞서는 메인 탱커는 그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효……!'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드는 이의 모습이 보인다.
시선이 뿌연 탓에 여자라는 것만 간신히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효주야!"
뜨거운 감촉이 볼을 타고 흐른다.
"……."
***
하수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얼굴을 돌린 채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하던 그는 느리게 한숨을 뱉었다.
"먹먹하네. 이런 기분도 참 오랜만이야."
그는 곧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양치를 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 편안한 복장을 갖추고, 잠시 TV 앞에 앉았다.
전원을 켜자 마침 익숙한 CF 송이 흘러나왔다.
황비버섯라면 홍보를 위해 큰돈을 들여 제작한 CF였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이 아낌없이 듬뿍 들어가 아주 쫄깃해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톱스타 여배우, 장효주가 화사하게 웃으며 맛있게 라면을 먹는 모습이 나온다.
"닮긴 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수영은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그게 다지만."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 하수영은 산을 올랐다.
지난밤부터 로봇들이 부지런히 작업을 한 결과물이 보인다.
황비버섯과 송이버섯이 포장된 박스들이 종류별로 나누어진 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뒤편의 송이농장을 찾은 그는 어젯밤에 심어둔 골든 트러플을 찾아서 조심스럽게 캤다.
하룻밤 동안 큼지막하게 자라난 골는 트러플을 모두 캐내어 무게를 재자 55kg이 나왔다.
그는 환한 웃음을 지은 채 골든 트러플을 쓰다듬다가 정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러플은 전부 준비됐습니다."
-서해호텔도 준비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