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3화 (73/1,270)

프랜차이즈 갓 073화

16장 새 버섯을 찾아보자(4)

"이, 이걸로 요리를 말씀이신가요?"

"네, 아무래도 어려울까요? 손님이 직접 식자재를 가져와서 조리해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자존심 강한 고급 레스토랑에 식자재를 들고 가서 이것으로 요리 해달라고 말한다?

당연히 진상 고객 명부에 등재될만한 일이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가져왔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지게 마련이다.

정서희는 서해호텔 최고의 VVIP인 마케미야와 동반 고객이었고, 요리 해 달라고 권유받은 식자재는 최상급 골든 트러플.

트러플 1개의 무게가 300g 정도 되어 보이니, 가격으로 치면 10억쯤할 것이다.

정중하게 가장 큰 골든 트러플 한 개를 받아든 김효산은 그저 눈이 부셨다. 금방이라도 감격의 눈물이 아른거릴 것만 같았다.

'골든 트러플이라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취급해 본적 없는 식자재였다.

석유 왕족들이나 먹는 식자재이다.

보니, 서해호텔 같은 '구멍가게'에서는 다룰 일이 없었다.

그저 영광이었다.

오늘 자신의 손에서 한 끼에 10억짜리 요리가 탄생할 테니까.

정서희가 감격해하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분이 어렵게 구하신 식자재예요. 부디 신경 써서 다뤄주시길 바랄게요."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수영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조금 잘라서 맛을 보는 건 괜찮습니다."

"예? 그,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했으니 그렇게 하세요. 셰프가 시음을 해봐야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효산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이렇게나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고객이라니.

그러니 최상급 골든 트러플을 선뜻 가져와서 이걸로 요리해달라고 하는 것이겠지.

김효산은 골든 트러플을 소중히 챙겨 든 채 VIP룸을 나섰다.

일부 단골손님들이 잔뜩 상기된 그의 표정을 알아보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총셰프,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얼굴이 너무 밝으신데?"

"지금 VIP께서 어려운 미션을 주셔서요."

"어려운 미션을 받았는데 왜 얼굴이 그리 좋습니까?"

"한번 보시겠습니까?"

원래라면 안 그랬겠지만, 오늘따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김효산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정서희와 하수영도 분명,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다.

서해호텔 한식 레스토랑 역사상 골든 트러플을 요리하게 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니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을 걸었던 40대 단골 기업가 손님은 골든 트러플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찬란한 황금빛을 띤 트러플, 맛을 탐구했다는 사람 치고 그게 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 이건 설마?"

"최상급 골든 트러플입니다. VIP께서 이걸로 조리한 요리를 먹을 수 있겠느냐고 미션을 주셨지 뭡니까, 하하."

"아니, 잠깐? 최상급 골든 트러플이라고요? 그럼 가격이 대체…"

"이거 하나에 10억은 할 겁니다."

"와우."

단골손님은 혀를 내둘렀다.

그도 돈이라면 어디 가서 기죽을 일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 끼 식사를 위해 기꺼이 10억을 지불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오빠, 진짜 이게 10억이나 해?"

동석한 젊은 여자가 골든 트러플을 빤히 들여다보며 묻자 단골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거 엄청 비싼 거야. 우리 나라에서는 나지도 않아."

"와, 한 끼에 10억이면 재벌들도 못 먹는 그런 거 아니야?"

"보통은 석유 왕족들이 먹지."

"그럼 지금 이 레스토랑에 중동 왕족이 와 있는 거야?"

'어, 그러네?'

단골손님이 살짝 놀라서 바라보자 김효산은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슬쩍 저었다.

"다른 손님 이야기를 제가 할 수는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향이 정말 엄청 강하군요. 저도 트러플을 꽤 좋아하고 많이 먹어봤지만, 골든 트러플이라서 그런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살짝만 맡아도 어지러운 거 같애. 근데 나쁜 기분은 아니고 막 뭔가 이상한 느낌? 이렇게 향이 강한 버섯은 처음 봐."

김효산은 정중히 골든 트러플을 챙겨서 주방으로 향했다.

골든 트러플을 보여주자 주방에서도 단단히 난리가 났다.

다들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다 보니 골든 트러플의 가치를 누구보다 생생히 잘 알았다.

"진짜? 진짜 골든 트러플 들어왔어요?"

"세상에, 맙소사! 내가 살다 살다 골든 트러플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이게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는 하는 겁니까?"

"아주 소량만 들어온다고 하더라. 5대 재벌가에서나 가끔 먹을까 말까 하고, 또 해외 귀빈 대접하는 용도로 기업에서 찾기도 해서. 그거 아니고는 소비되는 곳이 없어."

"우리 레스토랑에 들어온 것도 이번이 처음 아니에요?"

"조금 비켜봐요. 나도 향 좀 보게. 으음…… 이게 바로 골든 트러플의 향이로구나."

다들 골든 트러플 주변에 몰려들어서 향을 음미하고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근데 이거 향이 좀 이상한데요?"

"뭐야, 네가 언제 골든 트러플 향을 맡아 봤다고?"

"아뇨, 예전에 외국 농장에서 트러플 채취일 잠깐 했던 적이 있었어요. 혹시 골든 트러플 한번 구경이나 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때 한번 향을 맡아볼 기회가 있었죠."

"아, 그래?"

해외 농장에서 트러플 채취 일을 했었다는 말에는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 내용까지 수긍하지는 않았다.

"향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쎄고 좋기만 하구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향이 제가 맡았던 것보다 더 진하고 선명해요.

그것도 꽤 상품이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최상품이라잖아. 일반적인 상품하고는 뭔가 다르겠지."

"골든 트러플이 품질에 따라서 향이 크게 갈리지는 않는 것으로 아는데요. 향 자체는 다 비슷비슷한 걸로……."

김효산은 손을 내저으며 요리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자자, 다들 구경 그만하고 이제 일에 집중하자. 나도 요리해야 하니까 다들 비키고, 수원이, 창식이. 너희는 지금부터 날 보조한다."

"예써, 셰프!"

김효산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요리를 구상했다.

골든 트러플을 받아드는 순간, 어떤 요리를 내놓을지 이미 대략적인 구상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이제부터 그 구상을 현실로 끄집어 낼 시간이다.

요리할 때 가장 즐겁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

하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중동 왕족들이나 먹는다는, 10억짜리 식사재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 * *

애피타이저는 골든 트러플을 끼얹어 졸인 야채고기 수프였다.

직접 요리를 서빙한 김효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둘의 반응을 살폈다.

"와, 그냥 봐도 엄청 맛있어 보이 는데요? 향이 엄청 강하네요."

접시 덮개를 열기도 전부터 이미 강렬하게 풍기는 그윽한 향이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10억짜리 트러플로 만든 요리 맛이 어떨지……."

정서희는 기대에 찬 얼굴로 수저를 들어 수프를 한 입 떠먹어 보았다.

수저가 입에 들어간 순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어머?"

"맛은 괜찮으십니까?"

김효산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묻고 말았다.

원래라면 이런 상황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질문이다. 식사를 방해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10억짜리 식자재가 들어갔다고! 10억!

"와, 장난 아닌데요?"

정서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진심으로 감탄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짓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진심그 자체였다.

"저 이렇게 맛있고 향이 강한 수프는 처음 먹어 봐요. 와, 지금까지 제가 먹었던 수프들은 전부 수프가 아니었구나 싶어요."

"그 정도입니까?"

김효산은 반가워하며 물었다.

비록 자신의 솜씨가 아니라 식자재가 워낙 좋아서이지만, 어쨌든 자신이 만든 요리에 그런 칭찬이 붙으니 기분이 좋았다.

"네, 엄청 맛있어요. 장난 아니에요. 사장님도 어서 드셔보세요."

"네, 그러죠."

하수영은 끄덕이고는 수저를 들어 수프를 한입 떠 넣었다. 그리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조용히 말했다.

"괜찮군요."

"……."

"……그게 전부예요?"

"괜찮은 맛입니다. 확실히 비싼 이유가 있네요."

하수영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김효산은 소리 없이 어설프게 웃었다.

정서희가 물었다.

"혹시 트러플 향이 별로이신 것은…"

"아뇨, 좋은 향입니다. 그냥 제가 입맛이 조금 까다로워서 그래요."

김효산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아니, 왕족들이나 겨우 먹는 식자재를 가지고도 저런 시큰둥한 반응이라니.

그러고 보니 골든 트러플을 가져온게 바로 저 사람이었지?

젊은 나이에 VVIP 마케미야와 친한 사업 파트너인 데다가, 송이버섯과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유통한다고도 했었고,

'과연…….'

그렇게 생각하니, 저런 시큰둥한 반응이 납득이 가기도 했다.

어쩌면 저 사람에게 골든 트러플은 특별히 유별날 게 없는 식자재인지도 모른다.

김효산은 계속해서 요리를 내왔다.

골든 트러플을 곁들인 랍스터, 안심구이, 야채무침, 전복찜, 닭고기구이…….

정서희는 한 입 한 입을 맛볼 때마다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감탄을 거듭했다.

'저분이 저렇게 요리에 감동하는 것은 처음 본다.'

그녀가 마케미야와 종종 식사를 하면서, 요리 자체에 저렇게 진심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실로 미인을 홀리는 악마의 요리라 할 수 있겠다.

하긴, 한 끼에 10억짜리 밥을 사주면 같은 남자라도 넘어가지 않을까?

"만족스러우신 모양이네요."

"네! 정말 만족했어요! 덕분에 좋은 경험 했어요! 감사합니다!"

"뭘요, 이제 그거 가지고 장사해야 하니 미리 시식하시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 그런 거예요? 그럼 저 너무 비싼 거 얻어먹었다고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되는 거죠?"

"그래도 고마운 마음은 느끼셨으면 좋겠는데."

"그거야 너무 당연한 거죠. 진짜 감사합니다."

정서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머리까지 살짝 숙여 보였다.

현대인 중 99.99%가 평생 먹어보기는커녕 접근할 기회조차 없는 귀한 음식을 먹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정서희가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아, 마케미야 대표님께도 한번 대접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분도 트러플을 좋아하시나요? 매번 송이만 드시는 것 같던데."

"트러플도 당연히 좋아하세요. 하지만 송이를 조금 더 좋아하세요. 아무래도 구워서 먹는 그 식감 때문에 그런가 봐요. 골든 트러플을 즐겨 드시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드셔본 경험은 아마 있으실 거예요."

사적으로는 삼촌이 되지만, 공적인 자리이다 보니 정서희는 마케미야의 직함을 불렀다.

"좋습니다. 그럼 자리 한번 만들어 주세요. 그분 주변 지인들을 잔뜩 초대해도 괜찮아요. 트러플은 얼마든지 제공하겠습니다."

마케미야와 어울리는 지인들이라면 사회적으로도 대단한 거물일 것이다. 인맥 투자는 아낌없이.

"오, 자신 있으세요? 마케미야 대표님 인맥이 장난 아닌데, 골든 트러플이라고 하면 엄청 몰려들 거예요."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내다 팔 것도 아니고 그날 다 먹어버릴 건데,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끄떡없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