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70화
16장 새 버섯을 찾아보자(1)
정서진은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그러니까 정서희 부사장에 관해서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신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걸 알아야 그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서진이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하수영은 빈 커피 캔을 가볍게 쥔 채 흔들었다.
마치 노인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화투를 만지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질문하신 걸 보면 정 부사장님이 프라임 컴퍼니에 투자를 한 건 이미 알고 계신 것 같고, 그 밖에 또 뭘 알고 계시죠?"
"……회사 설립 당시 마케미야투자에서 100억 원이 정서희 부사장을 통해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동생이라고 하셔도 됩니다.
너무 딱딱하게 하실 필요는 없어요."
다르다.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다.
서글서글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깊이 투영하듯이 탐색하는 시선에, 정서진은 주변이 서늘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서희 부사장이 JM식품 딸인 걸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죠. 정 부사장님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오픈했거든요."
"……."
"상무님도 충분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자,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신 건가요?"
정서진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상대방이 자신에게 신뢰의 교환이라는 카드를 던졌음을.
이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테이블 앞에 더 이상 앉아 있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100%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프라임 컴퍼니가 정말 아버지와 아저씨가 서희를 위해 마련한 회사라면…….'
자신이 아는 바를 드러낼수록 불리해질 테니까.
"정서희 부사장, 아니, 제 여동생이 이 회사를 키워서 차후에는 JM 식품인수까지 고려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정서진은 덤덤하게 늘어놓았다.
"현재 황비버섯라면으로 무서운 성장세를 올리고 있고, 또 마케미야투자가 지원하고 있으니까요.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확인하러 오신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황비버섯 공급에는 애초에 큰 관심이 없으셨군요."
"여동생이 부사장으로 있는 한, 우리 JM식품에 황비버섯을 공급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저는 프라임 컴퍼니 소속이 아닌데요?"
"지금 성렬유통은 하수영 사장님 소유가 됐죠. 마케미야투자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고요. 생산되지도 않은 송이 1년 치를 판매하기로 하고, 선금 102억 원을 미리 받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보통 이상의 상호신뢰관계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제삼자가 웬만한 조건을 가지고는 감히 끼어들 수 없는.
"비상장 회사라서 아직 주주명부를 열람하진 못했지만, 하수영 사장님도 프라임 컴퍼니 지분을 쥐고 계신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수영이 시원스럽게 인정하자 정서진은 약간 맥이 빠졌다.
대답을 얻어내기 어려울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상대가 인정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익한 미팅이 된 것 같습니다."
정서진이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하자 하수영이 만류했다.
"벌써 일어나시게요?"
"어떤 조건을 내밀어도 계약이 체결되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았으니까요.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원래 조건이란 맞춰 나가면 되는 겁니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지레짐작하는 게 어디 있나요."
정서진은 의아해서 바라봤다. 하수영이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태양심과 육뚜기도 걷어차 버린 이 남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기에?
"조만간 태양심을 포함해서 프라임컴퍼니를 탐내는 대기업들이 더러운 작업을 개시할 겁니다. 사실 프라임컴퍼니 혼자 힘만으로 헤쳐 나가는 것은 어렵죠. 우군이 필요합니다."
"우리 JM식품에 백기사 역할을 원하시는 겁니까?"
"네,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어째서죠?"
"그야 정 부사장님과 상무님이 혈연이기 때문이죠. 원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잖습니까?"
정서진은 더욱 혼란스러웠고, 하수영은 말을 계속했다.
"실은 이미 작업이 들어왔습니다.
S은행에서 2,000억을 상환 기간 2년, 0.19%라는 초저금리로 빌려주더군요. 이게 뭘 뜻하는지 아시겠죠?"
이미 작업이 들어왔다는 설명까지 붙은 상황이다.
정서진은 하수영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차렸다.
"프라임 컴퍼니의 흑자 부도를 기획하는 곳이 있군요."
"네, 그럴 겁니다."
"태양심……."
"에이, 태양심이 자기들한테 그렇게 대출을 해달라고 해도 S은행이 거절할 겁니다. 태양심은 아니죠. 적어도 5대 재벌 기업은 되어야 그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정서진은 하수영의 눈빛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지금 마케미야투자가 뒤에 있긴 하지만, 우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저는 JM식품이 프라임 컴퍼니와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데요. 사실 JM식품이 매각한 구공장이 없었으면 프라임 컴퍼니가 이렇게 빨리 성장하기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안 그래요?"
"라면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한 경쟁자한테 협력 요청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하군요."
"에이, 어차피 JM식품은 요즘 라면시장에서 별로 재미도 보지 못하고 있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분이 나빠야 정상인데, 묘하게도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이상했다.
"제가 정 부사장님하고 자리 한 번 만들어볼까요?"
"……괜찮습니다."
"설마 프라임 컴퍼니와 친구가 될 마음이 없다는 뜻인가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혼란스럽군요. 만약 우리가 우군이 된다면…… 황비버섯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겁니까?"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으로써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죠."
"……."
"참고로 저는 태양심이나 육뚜기는 애초에 거래할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적당히 놀아주면서 이것들이 무슨 흑심을 품고 있나 살펴보는 데 집중했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하지만 상무님께는 솔직히 털어놓고 좋은 사이로 지내자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고요?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이죠."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정서진이 수행원을 데리고 돌아간 후, 하수영은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아, 깜짝 놀랐네. 정서희 친오빠가 여기서 갑자기 나올 줄은 몰랐어."
JM식품 오너 일가가 직접 올 줄이야. 아무래도 정서희의 존재를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다.
하수영은 전성렬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대로 말했다.
-정말인가? 정 부사장 친오빠가 찾아왔다고?
"네, 대충 다 알고 찾아왔더라고요.
회사에서 정 부사장이 얼마나 입지가 있는지 한번 떠보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걸 떠봐서 뭐하려고?
"좋은 집안에 시집이나 갈 줄 알았던 여동생이 떡하니 경쟁업체 경영진이 됐잖아요. 후계자 수업 한창이던 황태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안하겠죠. 업종이라도 다르면 모를까, 하필 동일 업종인 데다가 시장을 독식하고 있으니……."
-아, 그럴 수 있겠군. 그래서 어떻게 했나?
"일단 다독여는 놨어요. 정 부사장한테도 귀띔해 주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조만간 아버지 호출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요."
-알았네. 그건 내가 전달하지. 그 나저나 하 사장 자네가 경영 외적으로 고충이 많군.
"버섯 농사만 짓고 있는데도 벌써 이렇습니다. 근데 여기서 경영 감투까지 맡으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어요."
-내가 좀 더 분발하겠네. 자네가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말이야.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박수 쳐 드리고 싶네요."
가벼운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한 뒤 전화를 끊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수영은 배낭을 챙겨 들고 서락산 저택을 나섰다.
* * *
펜스에 난 출입문 잠금장치를 열고 산에 오른 그는 송이버섯 농장을 찾았다.
송이농장은 황비버섯 농장 반대편에 있어, 채취하러 온 인력들이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자, 그럼 시동 테스트를 한 번 해볼까."
송이농장에도 작업용 컨테이너를 가져다 두었다.
황비버섯농장과 마찬가지로 태양전지판, 작업 로봇이 대기하는 간이 격납고 등도 설치해 두었다.
오늘은 첫 기동 시험을 하는 날이다.
하수영은 스마트폰의 어플을 실행해서 송이농장 중앙시스템에 접속했다.
[No.2 농장]
[신원 확인 작업 진행 중…… 신원확인되었습니다. '청담동 마스터'님의 접속을 환영합니다.]
[제어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원하는 주문을 명령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송이 재배 및 채취 작업을 시작한다. 완전 자동화 모드."
[송이 재배 및 채취 작업 시작. 완전 자동화 모드.]
간이 격납고 문이 열리며 드론이 천천히 나왔다.
물탱크의 개폐 장치가 열리자, 드론은 송이포자가 섞인 물을 준 후 농장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지면에서 1.5미터 고도로 상승한 채, 드론은 송이포자를 농장에 천천히 살포하기 시작했다.
모든 작업을 마친 드론은 물탱크를 완전히 비운 채 충전을 위해 다시 간이 격납고로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오류가 없군. 이거 코딩을 너무 오랜만에 잡았더니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긴장되네."
원래 송이를 키우는 데 1주일이 걸렸다.
그때는 엘릭서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극도로 효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릭서가 넉넉한 지금, 제일 추구해야 하는 효율은 바로 시간 절약이었다.
때문에 엘릭서 농도를 재조정해서, 한나절 만에 송이가 자라날 수 있게 만들었다.
"한숨 자고 나면 자라나 있겠지."
하수영은 그늘진 곳에서 얼굴을 밀짚모자로 덮고 잠을 청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과연 송이가 가득 자라나 있었다.
"이제 시작이군."
하수영은 다소 긴장해서 농장과 스마트폰 어플 화면을 번갈아 가며 주시했다.
화면에 알림이 떴다.
[송이 성장 상태 확인 실시.]
[채취하기에 99% 최적화된 상태임을 확인.']
[전자 노예 1호에서 5호, 작업 실시.]
또 다른 격납고가 열리며, 그 안에서 다섯 기의 로봇이 튀어나왔다.
세 개의 다리와 두 개의 팔이 달린 로봇이었다. 중심 동체의 크기는 데스크톱 본체 3개를 합친 정도의 크기였다.
로봇들은 동체 뒷부분에 커다란 바구니를 매단 채, 빽빽하게 자라난 송이를 두 팔로 채취하기 시작했다.
"음, 좋아. 송이 성장 상태 인식 기능도 문제없고, 로봇들 채취 움직임도 매끄럽네.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
만약 한국대학교 로봇공학 차원준 교수가 이 광경을 봤다면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본래 저 로봇들의 제조 스펙상 절대로 낼 수 없는 유기적이고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까.
하수영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조 작업을 거치면서 로봇들은 진화나 다름없는 성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전자 노예 녀석들, 그래도 돈값은 하는구나. 50억을 들인 보람이 있어."
5기의 로봇들은 빠르게 송이버섯을 채취해서, 포장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서 한쪽에 쌓아놓았다.
채취 작업을 모두 마친 뒤 로봇들은 충전을 위해 다시 간이 격납고로 차례차례 들어갔다.
[자동화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대기 모드로 들어갑니다.]
하수영은 팔짱을 낀 채 끄덕거렸다.
"훌륭해. 역시 나야. 코딩 실력도 아직 안 죽었군."
만약 자신 혼자서 일일이 채취했더라면, 채취 시간이 50배는 더 걸렸을 것이다.
"처음 세팅하는 게 어렵지, 역시 오토 돌리는 게 두고두고 꿀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