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9화 (69/1,270)

프랜차이즈 갓 069화

15장 거짓말은 안 했어요(6)

"200억이라……."

이정훈 사장은 가벼운 침음성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200억, 재벌 방계인 자신 입장에서도 적은 돈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감사금'이니만큼 차후에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와 계약을 해달라는, 접대비의 일종이나 다름없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하수영이 그 친구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뭐니 뭐니 해도 공돈만큼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만드는 게 없지 않겠습니까, 사장님."

"그건 그래."

"S은행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출을 해준 걸 보면 10대 재벌이 뒤에서 수를 쓴 게 분명합니다. 그쪽이 나서기 전에 우리가 서둘러 낚아채야 합니다. 이러다가 황금버섯을 낳는 거위를 놓치기라도 하면……."

"안 될 일이지."

마침내 이정훈은 결심을 굳혔다.

"300억 불러. 그렇게 진행해."

"300억이요?"

"하는 김에 확실하게 지르는 게 낫지. 기존에 내걸었던 조건들도 모두 업그레이드하고, 계약 감사금으로 300억 한 큐에 준다고 해. 도장 찍자마자 넘긴다고."

"알겠습니다, 사장님."

박전보 전무도 한결 마음을 놓았다.

사장이 300억으로 금액을 올린 것 이니만큼, 설사 이야기가 틀어지더라도 자신의 책임은 그만큼 덜어진다.

* * *

태양심 이상원 부장은 다시 하수영을 찾았다.

이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조건을 들고 찾은 만큼,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프라임 컴퍼니와 버섯 공급 계약 파기 시 태양심이 모든 책임을 짐. 80그램당 120원 이상의 납품가격보장(처음 조건보다 20원 상승). 윤라면의 수익지분 4% 보장(처음보다 1% 상승).]

여기에 300억 원의 계약감사금이 추가되었다. 그저 계약을 해주는 조건으로 지불하는 보너스 사례금이다.

이상원은 오늘 반드시 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사업을, 자영업을 할 자격이 없다.

그렇게 강한 확신을 품고 하수영을 찾았는데…….

"죄송합니다."

"예?"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역시 없던 거로 하는 게 좋겠어요. 프라임컴퍼니가 제게 섭섭하게 군 적도 없는데 제 쪽에서 먼저 계약을 파기하는 게 좀 그래요. 장사라는 게 원래 신용과 신뢰를 가지고 하는 거 아닙니까."

"대, 대표님!"

이상원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니, 이렇게 좋은 조건을 들고 왔는데 왜 받아먹지를 못하니!

"제 설명이 뭔가 부족한 것 같아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여기 300억원의 계약감사금은 저희가 차후에 회수하는 비용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저희와 계약을 해주시는 대가로 아무런 조건 없이 드리는 감사금입니다."

이상원은 얼굴이 빨개진 채 열변을 토했다.

"이 돈을 기반으로 농장도 확장하시고 설비투자도 하셔서 생산량을 늘리시면, 궁극적으로 저희 회사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그건 오해하지 마세요."

"그, 그럼 어째서……."

설마 300억 원이 부족해서?

그렇다면 이놈은 미쳤거나, 아니면 그만큼 탐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게, 프라임 컴퍼니가 보장했거든요. 내년에 제 자산이 적어도 1조원 이상 증가할 거라고요."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 매출은 2조원을 가볍게 찍겠고, 영업이익하고 현금 흐름 같은 걸 두루두루 따져보면 기업 가치는 1.8조 원은 돌파할 테고, 그럼 내 지분 85%의 가치는 1조 원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겠지?'

거짓말은 안 했다.

감춘 것은 있을지언정, 아무튼 사실에 기반해서 말했다.

"신용 없는 상인으로 비춰지는 것도 싫고, 자산을 1조 원 이상 늘려 준다는데 굳이 300억을 선택할 필요도 없을 거 같고, 아무튼 제 입장이 그렇습니다."

"대, 대표님! 1조 원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그 말을 정말 믿으시는 겁니까?"

이상원은 이 '바보 같은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황비버섯라면이 라면시장을 제패한다 한들, 하수영한테 일 년 안에 1조 원을 벌어다 주지는 못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이상원은 틀림없이 전성렬 그자가 꿀을 바른 혀로 하수영을 구슬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바보 같을 줄이야! 아니, 아니지. 1조 원이라는 말에 지금 눈이 돌아가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가?'

그래, 그럴 거야.

그게 아니고서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아무튼,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업계 1위'였던' 태양심에서 절 좋게 봐주신 것도 너무 기분 좋았고요."

'왜 과거형으로 말하는 거야! 왜! 왜!'

"대표님,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황비버섯라면이 아무리 잘 나 가도 1년 안에 대표님에게 1조 원을 벌어다줄 수는 없습니다."

이상원은 필사적으로 설득에 나섰다.

"작년 라면의 전체 매출이 2조 원이 약간 넘습니다. 올해 황비버섯라면 혼자서 2조 원을 찍는다 해도, 영업이익을 4%로 잡으면……."

"6%라고 하던데요?"

"……6%로 잡겠습니다. 그렇게 잡아도 떨어지는 게 1,200억 원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대표님 한 분에게만 1조 원 이상을 벌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하여튼 가능하다고 했어요."

난 몰라. 걔들이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 걔들을 믿어.

마치 유치원생 같은 화술에 이상원은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러다가 때릴 거 같아!'

진심이었다.

이상원은 열심히 설득했지만, 하수영은 절대로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아무래도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게 틀림없었다.

'안 되겠어. 이 사람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해 봤자 소용이 없다.'

전성렬 사장, 참으로 대단해.

이렇게 사람을 단단히 세뇌시켜 놓을 줄이야.

결국, 이상원은 포기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고, 하수영은 힘없는 그의 어깨를 뒤에서 바라보며 조용히 사과했다.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한데, 그게 다 직장 생활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거짓말은 안 했어요."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다음 일정을 확인했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육뚜기 미팅인가."

라면시장의 빅2 업체인 육뚜기.

"그나마 양심적으로 경영하는 기업이라고 소문은 좋군."

다른 대기업들의 횡포가 너무나 만연한 터라, 상대적으로 좋은 기업이라고 소문이 난 것이 반전 포인트이지만.

약속 시간이 되자 육뚜기 직원이 미팅을 위해 찾아왔다.

그 역시 태양심 못지않게 좋은 조건을 쥐고 있었다.

"태양심에서는 계약감사금이라고 300억 원을 그냥 준다고 했었는 데……."

"예? 계약감사금이요?"

"네, 그냥 계약을 해주기만 하면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주겠다고 했습니다. 직접 회수든 간접 회수든 그런 거 일절 없대요. 제가 배가 불러야지 자기들하고 더 잘해볼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고, 뭐 그렇게 말을 하던데요?"

"그, 그렇습니까?"

"그런데 뭔가 맞지 않는 조건이 몇 개 있어서 제가 태양심하고는 안 한다고 했어요."

육뚜기 직원은 허둥지둥한 반응을 보였다.

계약감사금 300억 원에서부터 이미 자신들이 가져온 조건은 아웃된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수영은 재미있다는 듯이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육뚜기는 계약감사금 같은 뭐 그런 건 없나요?"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자리를 벗어난 육뚜기 직원은 급히 본사에 걸어서 길게 통화를 가졌다.

하지만 수백억 원의 거래 조건 변경이 현장 실무진의 전화 한 통으로 이뤄질 리가 없었다.

"이틀, 아니, 내일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얼마든지 기다려드릴 수 있지만, 시간은 육뚜기를 기다려 주지 않을 거 같네요."

결국, 육뚜기 직원은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고 발등에 불이 붙은 듯이 서둘러 떠났다.

"어디 보자, 이제 JM식품하고 미팅인가……."

JM식품 차례가 되자 공교로운 기분이 들었다.

오너 딸인 정서희가 경쟁업체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걸, JM식품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약속 시간이 되자 JM식품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혼자서 찾아온 태양심, 육뚜기와는 달리 두 명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JM식품 상무 정서진이라고 합니다."

20대 후반으로 되어 보이는, 무척 젊은 남자가 공손히 명함을 내밀었다. 동행한 30대 중반의 남자도 명함을 내밀었다.

"과장 임현구라고 합니다."

"하수영입니다."

하수영은 두 사람의 명함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정서진에게 눈을 돌렸다.

"젊으신 것 같은데 벌써 상무라니, 상당히 걸출한 능력을 보유하신 것 같습니다."

정서진은 묘한 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사장님께서 제 부친 되십니다."

"에이, 혈통을 잘 타고 나는 것도 능력이죠. 선천적으로 이미 유능한 분이셨네요."

반면 하수영의 반응은 정서진의 예상을 벗어났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벼운 조크로 받아넘기는 모습에, 정서진은 왠지 오늘 협상이 쉽지 않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태양심하고 육뚜기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다녀갔습니다."

"그렇습니까."

정서진은 생각했다. 그 정도면 이미 황비버섯의 비밀은 업계에 소문이 다 퍼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고.

"황비버섯 재배단가 인하에 성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귀사의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조금 어렵긴 했는데, 뭐 생각보다는 별거 아니었어요."

"특허 등록을 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없습니다. 대기업만 좋을 텐데, 뭐하러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다가 재배 비밀이 유출되기라도 한다면 나중에 난감해지실 텐데요."

"유출될 리도 없고, 유출이 된다 해도 따라 하지도 못합니다. 전 그렇게 자신합니다. 그러니 걱정 놓으세요."

자신만만한 하수영의 표정에 정서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재배원가가 어느 정도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제가 도매가로 그램당 90원에 넘겨도 손해는 보지 않을 정도입니다."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니 프라임 컴퍼니에서 그렇게 파격적인 가격으로 황비버섯라면을 팔아넘기는 것이리라.

지금까지 라면 업체들은 프라임 컴퍼니가 적자를 보고 망하기를 기다리면서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매출을 1,200억 원이나 올렸으니, 마진을 4%로만 잡아도 이미 영업이익이 48억 원…….'

그 짧은 시간에 라면 하나로 올린 실적이라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수치다.

이대로는 프라임 컴퍼니를 제외한 모든 식품회사는 라면시장에서 철수해야만 할 것이다.

"황비버섯을 공급받으려고 오셨나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태양심은 계약감사금 300억 원을 제시하고도 제가 지금 보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서진이 입을 열었다.

"정서희 부사장은 프라임 컴퍼니에 얼마만큼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까?"

"……."

하수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서진은 그 변화를 보고 자신이 제대로 의표를 찔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수영은 천천히 실내를 거닐다가, 조용히 캔커피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캔커피 한 잔을 단숨에 원샷해 버린 하수영은 다시금 정서진의 앞에 앉았다.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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