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68화
15장 거짓말은 안 했어요(5)
차원준은 황당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스카이넷? 알파고? 인간로봇대전?
-넌 왜 연구를 안 하니?
-내가 연구를 안 하는 건 너무 똑똑해져서 세상을 멸망시켜 버릴까봐 걱정이 돼서 그래.
예전에 알던 괴짜 친구와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표현이 조금 다를 뿐, 대답의 취지는 동일하지 않는가?
물론 그 친구는 정말 그런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로봇보다는 숫자에 더 흥미와 재능이 있었고, 결국 월스트리트가로 진출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증권가가 되었다.
각설하고…….
"아무튼 제가 원하는 부품들을 쉽게 구매할 수 있어서 유익한 관람이 되었네요. 이 먼 일산까지 고생고생해서 차 끌고 왔는데, 허탕을 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하수영은 웃음을 머금은 채 손을 내밀었다.
"이런 좋은 부품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게 사용하겠습니다."
"……."
차원준은 이 젊은 관람객이 어떤 인물인지 도저히 파악이 되지 않았다.
"저어, 근데 이 로봇들은 어디에 쓰시게요? 취미라 해도 영역이 있을 것 아닙니까?"
이 돈 많은 괴짜 로봇 매니아는 무슨 목적으로 이 로봇들을 사려는 것일까?
"농기계로 개조가 가능할 것 같아서요."
"……."
차원준은 대화를 이어갈 자신감을 상실했다.
* * *
-내가 미처 몰랐구나. 우리 아들이 이렇게 손재주가 좋았다니.
"타고 난 겁니다. 아버지를 닮아서죠."
-내가 비록 양부이긴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우쭐한 기분이 드는구나.
"원래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잖아요. 주신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죠."
-프랜차이즈 갓!
"네네, 프랜차이즈 갓. 대체 그 요상한 네이밍은 어디서 가져오신 건지, 참……."
-어허.
하수영은 은하신목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로봇을 꺼내서 저택 안으로 운반했다.
커다란 차고 안에는 사전에 미리 주문했던 공구 설비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쌓여 있었다.
하수영은 휘파람을 불면서 설비들의 포장을 풀어 차근차근 세팅을 시작했다.
-아들아, 근데 왜 하필 차고 안이냐?
"아버지, 원래 위대한 발명은 전부 차고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성공 신화의 클리셰예요, 클리셰."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 것도 아니잖느냐?
"쓸 만한 농기계가 왜 위대한 발명품이 아니에요? 먹거리 산업은 인류의 존재 그 자체를 지탱해 온 위대한 산업입니다."
-그래도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반중력 엔진이라던가, 워프 항법 장치라던가, 아니면 불로불사의 약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니?
"위대한 프랜차이즈 갓께서 어찌 생명을 잉태, 성장, 생존시키는 먹거리가 아니라, 그런 세속적인 물품들을 높이 치시는 거죠? 불초소자는 이해가 안 됩니다."
-…….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왜 그렇게 촐싹 맞게 불러대는 거냐.
"말씀 없으셔서 전 또 잔소리 안테나가 고장이라도 난 줄 알았어요. 다행히 수신 감도 양호하네요."
-잔소리 안테나라니! 이놈의 자식이!
"잠시만요. 이제부터 중요한 작업입니다. 장비 초기 세팅이 얼마나 민감한데요."
은하신목은 입을 다물었고, 하수영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태도로 장비세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선반을 설치하고, 특수절삭기를 장착하고, 다양한 감지기를 부착하고, 메인컴퓨터를 연결하고…….
"휴, 다 됐습니다. 오랜만에 하려니까 감이 안 돌아와서 조금 헤맸네요. 겨우 이만한 설비 세팅하는 데 시간이 이리 걸리다니, 아무리 맨손으로 했다지만 저도 많이 죽었네요."
-네가 언제 이런 걸 세팅한 적이 있어?
"게임 안에선 이런 거 엄청 많이 했죠. 아, 잠시만요. 전화가 왔네요."
폰이 울리자 발신인을 확인했다.
바로 전성렬이었다.
하수영은 작업을 잠시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그냥 서락산에 한번 들러봤어.
"버섯 채취 같은 자잘한 일은 이제 사장님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우리 밥줄이니까 생각날때마다 한 번씩 들러서 보고 싶은 거지. 지금 거의 다 왔네.
"일단 저택으로 오세요. 그런데 제가 지금 뭐 하던 중인데."
-바쁜가 보군. 이거 미안한데, 그냥 갈까?
"아닙니다. 이왕 먼 길 오셨는데 잠깐 차도 한잔하시고 구경도 하고 가시죠."
어차피 설비 세팅은 다 끝난 셈이었다.
하수영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차고를 나왔다.
멀리서 자동차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서 확인해 보니, 전성렬의 차량이었다.
15년이 넘은 픽업트럭이 털털거리며 달려와서 정지했다.
"우리 회사 체면이 있지, 대표이사 차가 이게 뭡니까? 이제 슬슬 좀 바꾸던가 하세요."
"응? 나 벤츠 S클 있는데? 5년 전에 뽑았지."
"왜 한 번도 못 봤죠?"
"이건 비즈니스용 차량이지. 농산물유통회사 사장이 거래처 만날 때 벤츠 타고 다녀서 좋을 게 없어."
"근데 벤츠나 이거나 체면치레 안되는 건 똑같아요. 롤스로이스나 부가티로 바꾸시는 게 어때요?"
"에이, 그건 내 주제에 너무 과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차고로 안내했다.
넓은 차고 내부를 차지한 복잡한 설비들을 보고 전성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다 뭐하는 것들인가?"
"작업용 간편 공구들입니다."
"간편공구? 이게 어딜 봐서 간편인가?"
"차고잖아요. 원래 차고는 간단한 공구 설비 같은 것들을 두는 곳입니다."
"……."
전성렬은 차고 내부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긴 채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계설비를 잘 모르는 자신이 보기에도 하나같이 전문적인 고가장비들이었다.
보통 차고에는 목재를 가공하는 공구 정도를 두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이건 무슨 로봇 발명가 실험실 같은데?'
"근데 이것들은 다 어디에 쓰려고 그러나?"
"송이버섯 채취를 좀 더 효율적으로 채취해 보려고요."
"송이 채취? 그거하고 이것들이 무슨 상관이 있나? 내가 잘은 모르지만 이것들은 무슨 정밀한 기계 따위를 만들거나 개조하는 설비 같은데……."
"자동으로 송이를 채취하는 로봇을 만들어보려고요."
"로봇?"
전성렬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뭐 잘못 들은 것은 아니지?
"하 사장 자네, 로봇 만드는 지식도 있었어?"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시판하는 것들을 몇 개 사왔어요. 채취한 버섯 담을 통이나 수레따위를 용접하는 것 정도만 제가 하면 됩니다."
"아무리 봐도 겨우 용접이나 하려고 갖춘 설비가 아닌데?"
"겸사겸사 카메라도 달고, 송이 인식할 수 있게끔 코딩도 해야 하니까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전성렬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여튼 하 사장, 자네는 참 대단해. 대체 못 하는 게 뭔가?"
"글쎄요. 휴양?"
"휴양?"
"꼭 휴양 좀 하려고만 하면 뭐가 일이 터져서 수습하느라고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진짜 근래 들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허어. 그래서 경영은 안 한다고 그렇게 질색을 한 거구만."
"네, 그냥 청담동 건물주 돼서 1층에 제가 키운 농작물로 만든 음식 파는 가게들이나 내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수영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이번에는 잘돼야 할 텐데……."
"……."
무언가 형언하기 힘든 그늘을 느낀 전성렬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대체 그 짧은 인생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기에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지 싶었다.
* * *
황비버섯라면 광풍은 식을 줄을 몰랐다.
이미 시장 점유율은 80%를 돌파한 상황이었다. 하루에 팔리는 라면 중 10개는 황비버섯라면이라는 소리다.
빅3 라면업체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묵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약 2조 원이 넘는 국내 라면시장을 한 업체에 고스란히 내주게 생겼다.
"문제는 국내 시장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황비라면이 해외에 진출하게 되면 수출까지 타격을 입게 됩니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은 송이와는 달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식자재였다.
국물 요리의 깊은 맛을 살려준다는 장점 때문에 오히려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았다.
황비버섯라면이 해외에 진출하게 되면, 국내에서 벌어진 시장 침탈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게 뻔했다.
태양심, 박전보 전무가 이상원 부장에게 물었다.
"S은행 대출 건은 어떻게 됐어?"
"그게…… 우리가 몰래 부탁한 대로 S은행이 거액의 저금리 단기 대출을 해주긴 했습니다."
"그럼 된 거 아니야? 해주긴 했다는 게 무슨 의미야?"
"문제는 우리가 요구한 조건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으로 대출을 해줬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보니까 프라임컴퍼니가 S은행에서 2,000억 원을 0.19%에 2년 약정으로 대출받았다고 합니다."
박전보 전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0 하나가 더 붙은 거 아니지? 금액이든 금리는 간에."
"아닙니다."
"그게 말이 돼?"
박전보 전무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내둘렀다.
2,000억 원에 0.19%라니.
이건 숫제 은행에서 이자를 대신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건 아닌가?
"S은행에서 우리 편의를 봐준다고 그런 파격적인 조건으로 대출을 해준 건가? 아니야, 그게 더 말이 안돼. 우리한테도 그런 대출은 안 해줄 텐데."
S은행도 바보는 아니다.
오랜 거래처인 태양심이 경쟁업체한테 거액의 대출을 좋은 조건으로, 대신 기간은 짧게 해달라는 요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자금 유동 상황에 동맥경화를 일으켜서 회사를 훌러덩 집어삼키겠다는 빌드업이다.
S은행도 그런 의도를 잘 알고 발을 맞춰 주었다.
그런데 2,000억에 0.19%는 너무 과했다. 태양심의 요구를 아득히 벗어난 수준이다.
막말로, 태양심이 자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요구해도 절대 이 조건에는 안 해준다.
"이거 혹시 우리 말고 다른 곳에서도 작전 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10대 재벌 중에서 나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놈들은 반도체, 철강, 자동차, 정유 사업에나 몰두할 것이지, 무슨 골목시장까지 침투해서 쏙쏙 빼먹으려 하고 있어?"
박전보 전무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럴 때가 아니야. 하루빨리 하수영이, 그 친구를 설득해서 계약서에 도장 찍게 만들어야 해."
"아직 전화가 안 오는 걸 보니 망설임이 큰 것 같습니다. 좀 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게 어떨까요?"
"그래야겠어."
박전보 전무는 즉시 태양심 사장 이정훈을 찾았다.
현재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하루빨리 하수영을 포섭해야 함을 주장했다.
"10대 재벌에서 약을 친 것 같다는 말이지?"
"네, S은행에서 너무 파격적인 조건으로 대출을 해줬습니다. 제가 은행장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빌어도 그런 조건에 대출을 해주지는 않을 겁니다."
"확실히 그 정도 조건이라면 10대 재벌이 나서야 가능하겠어. 은행장도 자기 보신 준비해야 하고, 또 회수 불능 상황을 대비한 보증도 약속받아야 할 테니."
"그래서 저희도 하수영이 그 친구한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으합니다. 어쩌면 이미 다른 곳에서 물밑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파격적인 조건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을 생각하나?"
"순수한 '계약감사금'으로 200억원을 추가로 더하면 어떨까 합니다."
"계약감사금?"
"네, 말 그대로 우리와 계약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그냥 주는 보너스로 200억을 제시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