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66화
15장 거짓말은 안 했어요(3)
전성렬은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 그러신가요? 도정을 수행하느라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모습에 평소 깊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게 봐주셨다니 기쁘…….
뚝.
전화를 끊어버린 전성렬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젠 별 같지도 않은 보이스 피싱까지 다 들어오네."
"장난 전화였어요?"
"네, 다짜고짜 자기가 경기도지사라는 말부터 꺼냅디다. 피싱을 할 거면 좀 그럴듯하게라도 하던가."
"자기가 경기도지사라는 말부터 했다고요?"
"전화 받자마자 '저 경기도지삽니다'그 말부터 툭 던지더군요. 웃기는 놈이죠?"
전성렬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지만, 정서희의 표정이 별안간 굳어졌다.
"그거 도지사 특유 언행인데요."
"네?"
"그런 걸로 유명해요, 그 사람. 권위적이고 남들이 자기 어떻게 보는지는 무관심하고요. 예전에 보육원에 전화 걸어서 대뜸 그런 식으로 말해서 구설수에도 올랐었는데요."
"……."
전성렬의 표정에 희미한 긴장감이 어렸고, 빤히 바라보던 정서희가 별안간 풋 웃음을 터뜨렸다.
"요즘 피싱 하는 애들 고증 철저하네요. 그런 것까지 다 조사해서 움직일 줄이야."
전성렬도 덩달아 긴장이 녹아내렸다.
"그렇죠? 진짜 도지사일 리가 없죠?"
"설마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아직도 그러고 다니겠어요? 피싱 애들이 너무 디테일을 신경 쓴 거 같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는데 말이죠."
"사장님 번호는 또 어떻게 알고 그런 피싱이 들어오는지 신기하네요.
혹시 은행에서 유출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전성렬은 경기도지사를 사칭한 보이스 피싱에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럼 안양 부지를 매입하는 것으로 최종 진행할까요?"
"그렇게 합시다. 안양이 가장 조건이 좋으니."
전성렬은 최종 결재서류에 서명을 했다.
이제 실무팀이 해당 부지 소유주와 매매 계약을 체결하기만 하면 된다.
안양시하고도 이야기는 거의 끝났고, 다른 후보지보다 조건이 월등히 좋은 것을 확인했다.
안양시보다 더 좋은 혜택을 제공한 지자체도 있었지만, 위치나 부지 매입가, 근무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안양시에 세우는 게 가장 좋다는 판단이 섰다.
다음 날.
전성렬은 느닷없는 방문자를 맞이 했다.
"안녕하십니까. 경기도의원 이정욱이라고 합니다."
도의원이라는 40대 남자가 예고도 없이 전성렬을 찾아왔다.
명함을 받아든 전성렬은 설마 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도의원이 왜 자신을 찾아와?
아니, 그 전에 이 사람이 정말 도의원이 맞기는 한 건가?
정서희가 이정욱의 시선을 피해 급히 검색을 한 후, 전성렬에게 신호를 보냈다.
'도의원 맞는 거 같아요.'
심지어 그는 수행원도 세 명 거느리고 있었다.
아주 닮은 사람을 데려다가 사기를 치려는 게 아닌 이상, 도의원이 맞기는 할 것이다.
"예, 제가 프라임컴퍼니 대표이사전성렬입니다. 그런데 저희 회사에는 무슨 일로……."
"하하, 얼마 전에 도지사님께서 전화 한 번 주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도지사님이요?"
전성렬의 안색이 희미하게 굳었다.
'그게 보이스 피싱이 아니었어?'
혹시 피싱인 줄 알고 전화를 끊어버려서, 그래서 불쾌함을 따지려고 도의원을 보낸 것인가?
"음, 자네들은 잠시 나가 있어."
"예, 의원님."
수행원들을 내보낸 이정욱은 사람 좋은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실은 제가 사적으로 도지사님의사촌 동생이 됩니다. 그러니 제 앞에서는 편히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저와 형님은 한 몸이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경기도지사라면 대단한 권력자다.
지금 그런 사람과 핏줄이라는 점을 과시하고 싶은 것인가?
"형님 전화를 끊어버리셨더라고요."
"아, 그건 장난 전화인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지사씩이나 되는 분이 저한테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제가 도지사님 목소리를 아는 것도 아니고."
"아이고, 도지사가 전화를 할 이유가 없다니요. 요즘 한창 핫한 황비버섯라면 회사의 오너 아니십니까."
전성렬은 어설프게 웃었다.
오너가 아니라 지분 10%짜리(가될 예정인) 사장일 뿐이지만, 굳이 오해를 바로잡아 주지는 않았다.
"그 점은 제가 사과드릴 테니 도지 사님께 정중히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통화로 사과를 전해도 되겠습니까?"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형님도 크게 개의치 않으시고요. 오해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렇게 여겨주시면 다행이고요."
일단 전화했던 양반이 도지사라고 하니, 전성렬은 최대한 몸을 사리기로 했다.
안양에 짓게 되는 공장은 결국 도지사의 행정력 아래 놓이게 되니,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최대한 잘 보여야 했다.
"도지사님은 황비버섯라면의 놀라운 성장을 지켜보면서 혀를 내두르셨습니다. 기존 빅3 라면 업체의 아성을 깨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에서 역동적인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크게 감탄하기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욱은 이런저런 칭찬을 남발하며 대화 분위기를 조금씩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전성렬은 그의 페이스에 맞춰주면서, 무슨 용건일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보았다.
지자체 소속이긴 하지만 명색이 정치인인데 이유 없이 먼저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안양도 경기도인데? 그냥 가만히 지켜보면 알아서 잘 굴러갈 텐데 뭐 때문에?'
혹시 라면 공장 유치에 뭔가 추가 혜택이라도 주려고 그러나?
전성렬은 그런 기대감에 물들었지만, 시간을 한참 소모한 끝에 이정욱이 한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안양 말고 다른 곳에 짓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면 용수시 같은 곳 말입니다."
"용수시요?"
이정욱이 돌아간 뒤에도 전성렬은 황당함을 지울 수 없었다.
용수시도 후보지로 적극 검토했던 지역이었다. 종합적인 조건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안양시가 조금 더 유리했기에 용수시 대신 안양시에 짓기로 결정을 했을 뿐이었다.
이정욱은 대화하는 내내 은근히 용수시에 공장을 유치할 것을 권유했다.
강압적인 분위기는 전혀 없었지만, 그것이 도의회와 도정부의 바람이라는 점을 최대한 어필했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네요. 안양에 공장을 짓기로 하자마자 도지사가 전화를 하더니, 이번에는 도의원 사촌 동생이 직접 찾아와서 용수시로 변경하라니."
"간단해요. 용수시가 이수문 도지 사 일족 텃밭이거든요."
"아, 정말입니까?"
정서희의 설명에 전성렬은 그제야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투표는 꼬박꼬박 해왔지만, 타지역 지방정치인들의 영역까지 세세히 꿰뚫고 있지는 않았다.
"네, 그리고 안양시장은 이수문 도지사와 소속 당이 달라요. 야당 소속이거든요. 도지사는 여당이고요."
"이거 조금 난감하게 됐네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난감하게 된 거죠. 벌써부터 줄타기가 시작됐으니까요."
전성렬은 하수영이 왜 진작부터 경영에서 발을 뺐는지, 이제야 그 심정을 이해했다.
무슨 공장 하나 새로 짓는데 도지 사가 직접 사람을 보내서 회유를 한단 말인가.
"용수에 지어도 크게 나쁠 것은 없어요. 안양 조건이 조금 나은 정도였으니. 용수에 지으면 도정부 혜택도 더 크게 받을 수 있을 테고요."
"그럼 용수로 옮길까요?"
"대신 만약 다음에 정권 교체라도 일어나면 난감하겠죠. 적어도 안양시장은 우리를 줄곧 기억할 테니까요."
"……."
"베스트 시나리오는 용수시에 공장을 짓고,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거죠. 아니면 안양시장의 배포가 생각보다 크던가요."
"안양시장 성격은 어떻죠?"
"군자인 척하는 소인배라고 아주 유명하죠. 은혜도 원수도 절대 잊지 않는데요."
"……."
전성렬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안양과 용수에 공장을 나눠서 각각 지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경영요소가 되죠. 한쪽에만 찍힐 거, 양쪽에 찍히게 될 수도 있고요."
"아니, 자기들 지역에 공장을 지어줬는데도 아니꼽게 본단 말입니까?"
"이미 내 손에 들어온 건 당연한 거고, 상대 손에 넘어간 것만 더 잘 보이잖아요. 원래 정치인들이란 게 그래요."
정서희의 말을 들으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단 제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미인계가 잘 먹혀야 할 텐데요."
"권력을 욕망하는 사람치고 여자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 미인계하고는 별도지만요."
정서희는 일정을 잡고, 이정욱을 만나러 갔다.
* * *
저녁이 돼서 회사로 복귀한 정서희의 표정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전성렬은 손수 차를 내오면서 미팅 결과를 확인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안양과 용수에 반반 나누는 건 일단 없는 전개라고 생각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요?"
"긍정적인 분위기를 슬쩍 흘려봤어요. 그러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 가동 중인 제1공장까지도 용수시에 이전하라고 은근히 권유하더라고요."
"……허어."
JM식품에서 매입한 낡은 공장까지도 탐을 내고 있다니.
전성렬은 앞뒤가 완전히 막혔음을 절실히 느꼈다.
"하수영 사장님에게도 이야기해야겠어요."
"하 사장이 경영 문제로 자꾸 자기 콜하지 말라고 했는데…"
"경영 위기잖아요. 오너로서 이런 큰일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지요."
전성렬은 하수영의 반응이 어떨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거 보세요. 라면 공장 하나 짓는 거 가지고 정치인들이 벌써 그러는데, 나중에는 얼마나 많은 음해가 우리 회사를 덮치겠어요? 그러니 두분이 잘하셔야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하수영의 반응은 그의 상상을 넘어섰다.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쾌활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해 주었던 것이다.
"하 사장님, 이 회사는 하 사장님 지분이 제일 많은데요?"
-저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그러다가 회사가 정말 힘들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두 분의 능력을 믿습니다. 이 정도 풍파는 어렵지 않게 통과하실 거라고요.
"…허."
전성렬은 탄식을 흘렸고, 정서희도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경기도지사의 야욕에 머리가 아픈게 아니라, 하수영의 반응에 골치가지끈거렸던 것이다.
-굳이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전성렬은 휘청거릴 뻔했다.
지금 무슨 실연당한 친구 위로하는 거야?
-황비버섯은 뺏기고 싶어도 절대로 뺏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가 오더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사장님이 도지사 전화를 처음 받아 보셔서 지금 너무 크게 걱정을 하시는 거 같은데요.
"나만 걱정하는 게 아니야. 우리 정 부사장도 지금 크게 걱정하고 있어."
-네? 부사장님이요?
"당연하……."
뭔가 이상한 느낌에 전성렬은 정서희를 돌아봤다.
그녀는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까지는 안 했어요. 그냥 이런 걸로 발목 잡히는 게 조금 짜증이 난 정도?"
"……이봐요, 정 부사장."
-거봐요. 지금 우리 사장님만 회사라도 뺏길 것처럼 혼자서 걱정하고 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