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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63화 (63/1,270)

프랜차이즈 갓 063화

14장 적과의 동침(4)

정서진은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막냇동생에게 물었다.

"서희는?"

"누나 아직 안 들어왔어. 진석이 만나고 있나 봐."

정두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도 안 들어왔다고?"

"근데 진석이하고 누나가 정말 결혼하는 거야? 진석이가 매형 되면 난 좀 오글거릴 거 같은데."

정서진은 시계를 살폈다.

시간은 어느덧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데이트를 하고 있다고? 그렇게도 정진석을 질색하던 아이가?

'이상해.'

정서진은 기억을 가만히 더듬어 보았다.

정서희의 최근 귀가 패턴은 보통 두 가지였다.

저녁 8시 이전에 일찍 들어오거나, 혹은 밤늦게 아니면 새벽에 들어오거나.

그러고 보니 일찍 들어올 때가 별로 기분이 안 좋았던 것 같다. 딱 정진석과 데이트를 하고 난 직후의 표정에 알맞는.

'오늘은 데이트가 아니라 회사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

정서진은 자신의 추측이 맞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중에 귀가할 때 표정을 보면 알겠지.

"다녀왔습니다."

12시가 거의 다 돼서 정서희가 들어왔고, 모친은 반가운 태도로 맞이 했다.

"이제 온 거야? 진석이는?"

"몰라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좀 들어오라고 하지그래. 늦은 시간에 바래다주느라 걔도 피곤할 텐데."

"집에서 수시 준비나 하겠죠, 뭐."

정서희는 데이트를 하고 들어오더라도 정진석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모친은 정서희가 데이트를 하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여긴다. 모친뿐만 아니라 정두진도, 그리고 정서진 본인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다.

'다르다.'

그러나 이제는 정서희의 표정에서 다른 기색이 읽힌다.

얼굴이 피로함에 젖어 있지만, 저것은 싫은 남자와 데이트를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업무에 시달리느라고 기분 좋게 지친 기업가의 표정에 가깝다.

"서희야, 이제 들어오니?"

"응, 오빠. 피곤해서 먼저 잘게."

"내일은 뭐 해? 나한테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바빠. 새벽 일찍 나가야 해."

"하루 종일 진석이하고 같이 있었으면서 또 새벽 일찍 진석이 만나러 가는 거야?"

"아니거든!"

정서희는 발끈해서 외쳤다가, 곧바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지나쳤다.

"됐어, 내가 말해 뭐해. 먼저 들어갈게."

"……."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니, 모든 게 달라 보인다.

적어도 오늘 정진석을 만나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내일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확인이 필요했다.

[뭐하냐?']

[아, 형. 지금 수시 준비하고 있어요.]

[서희하고는 요즘 어때?]

[여전하죠, 뭐. 4일 넘게 안 봤더니 지금 보고 싶어서 좀이 쑤시네요. 모레 만나기로 일단 말은 했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어요. 서희 요즘 왜 그렇게 바빠요?]

[고생해라.]

[네, 형.]

용건을 충족했으니 대화는 칼같이 종료.

이것이 바로 남자들의 챗 스타일이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었군.'

정서희가 프라임컴퍼니 부사장이라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는 없다.

지금 정서진이 주목하는 것은 부친의 개입 여부였다.

-혹시 우리 대표님도 개인적으로 투자하신 건 아닌가 해서…… 정서희 양한테 다른 사업체를 물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구공장도 프라임컴퍼니에 겨우 40억 원에 팔았잖습니까.

-사실 그게 계륵이기는 했어도 40억 받고 팔 정도는 아니었다고 보는데요.

직원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정서진조차도 당장 반박거리가 떠오르지 않았으니.

'아버지가 왜 나한테까지 비밀로 하지?'

하지만 굳이 비밀로 할 이유가 있는지, 그 점이 정서진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부친의 서재를 찾았다.

"아버지, 안 주무세요?"

"이것만 처리하고 자야지."

노트북을 보니 밀려 있는 전자결재서류가 가득했다.

정서진은 한쪽에 가만히 앉으며 말을 꺼냈다.

"서희가 진석이하고 잘 되어가는지 모르겠어요."

"잘되어야 할 텐데. 그래야 나도한 시름 놓지. 사실 진석이만 한 사윗감이 어디 있냐? 성진이(마케미야)하고 제수씨 같은 시부모 만나는 것도 복이다, 복."

"아버지는 서희가 골치 아픈 사업가 길을 걷는 건 여전히 별로이신 거죠."

"스트레스 때문에 딸내미 얼굴 일찍 늙는 거 원치 않는다."

"아들은 상관없으신 거구요. 섭섭하네요."

"남자로 태어난 죄야, 인석아."

정서진은 가만히 부친의 표정을 살폈다.

태연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진심? 아니면 연기?'

어느 쪽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나저나 황비버섯라면 때문에 큰 일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이참에 그냥 라면 사업 정리할까?"

"아버지!"

"임원들하고 이야기해 봤는데 이대로는 답이 없어요. 프라임컴퍼니인가 그놈들, 손해 감수하고 파는 게 아닐 수도 있다면서?"

"……손해 감수하고 파는 거라면 이미 몇천억 원은 손해를 봤을 겁니다. 그 정도 재정은 안 되는 회사로 압니다."

"그러니까 아예 라면 시장은 빨리 손털어버리는 게 어떨까 하는 거다."

"진심이세요?"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야."

부친 정재민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정서진은 진심인지 고도의 연기인지, 몹시 헷갈렸다.

새벽이 밝았다.

잠을 설친 정서진은 일찍 눈을 떠서 방을 나섰다. 부모와 동생들은 아직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정원이나 거닐어 볼까 하는데, 불현듯 정서희 방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서희야?"

"오빠? 일찍 일어났네."

"너야말로 이런 이른 시간부터 어딜 가는 거야?"

정서희는 이미 화장까지 다 끝낸 정장 차림이었다.

"응, 약속이 있어서. 좀 바쁘거든."

"이런 꼭두새벽부터 진석이 만나러 가는 건 아닐 테고,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니?"

"알 거 없잖아."

정서희는 진짜 남매다운 대답으로 일축한 뒤 곧바로 정서진을 지나쳤다.

* * *

태양심 이상원 부장은 사흘이 멀다 하고 하수영에게 연락을 해왔다.

하수영은 의리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 계약 파기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이상원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정말 계약 파기에 대한 부분을 전적으로 책임져주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거야 기본으로 해드려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전에 말씀드린 내용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계약서 작성할 때 그 내용도 특별조항으로 넣을 수 있을까요?"

"아, 그건……."

이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고, 하수영은 의아한 표정을 한껏 지은 채 반문했다.

"설마 안 되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내용을 문서로 남겼다가 차후 대기업 갑질이라고 공정위 제재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고소 여지도 있고요. 그래서 책임은 보장하지만, 문서의 내용으로 남기기에는 곤란한 사정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사정이 바뀌기라도 하면 제가 전부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요."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문서화하지만 않을 뿐입니다."

"음…… 고민되네요."

"원하신다면 우리 회사에서 그만한 권한이 있는 분이 대표님 앞에서 직접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 확실하게 조항으로 남기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 하나만 부디 양해를 해주십시오."

하수영은 짐짓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을 슬쩍 돌렸다.

"그냥 제가 프라임컴퍼니와 독점공급만 합의를 하고, 태양심에도 공급을 하면 안 될까요?"

"두 곳에 모두 버섯을 공급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조건은 똑같이 하고요. 물량이든 가격이든. 어차피 물량은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상원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것은 태양심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태양심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완벽한 독점 그 자체.

태양심 경영진은 황금비단우산버섯독점수급권을 차지하게 되면, 라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할 수 있다고 잔뜩 벼르고 있는 중이었다.

"대표님, 그건 대표님께 이익이 안됩니다. 오히려 손해를 입지 않을까 싶은데요."

"손해요?"

"예, 만약 황금비단우산버섯이 태양심과 프라임컴퍼니, 양쪽으로 동시에 공급되면 저희로서는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제가 괜한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대기업 특성상 그렇습니다."

"음……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하수영이 수긍하듯이 끄덕이자, 이상원은 이야기가 더 쉬워지겠다고 생각했다.

"대표님을 믿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경쟁사를 망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망하게까지 한다고요?"

"경쟁이란 냉정한 것이니까요. 물론 합법적인 수단만 쓸 겁니다."

"만약 프라임컴퍼니가 망하게 되면……."

"판매 대금을 못 받으실 수도 있죠. 부도가 난 회사한테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판매대금은 즉시 지급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정산받는 식으로 하고 계시죠?"

"네."

"대표님께서 손해 보실 수도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 대표님의 이익을 위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절대로 대표님께 위협을 가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의 성향상, 그리고 경영진의 생리상 그렇게 나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상원은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하수영을 대할 때 철저히 굿캅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표님께만 살짝 드리는 말씀인데, 이미 벌써부터 견제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견제라고요?"

"지금 프라임컴퍼니는 라면 생산능력이 거의 한계에 달해 있단 걸 아시는지요?"

"잘 모르지만 대충 그렇다고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래서 공장을 아예 새로 지을 생각이라고 언뜻 말이 나온 거 같아요."

"제대로 된 설비투자를 하려면 적어도 500억 원 이상은 쏟아부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프라임컴퍼니에는 그만한 돈이 없죠. 결국 외부 조달을 해야 합니다."

"음, 그렇겠네요."

"주식 공개를 하거나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이거나… 하지만 경영진은 굳이 지분을 나눌 생각은 없을 겁니다. 회사 가치를 제3자에게 덜어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남은 것은 뭐가 있겠습니까?"

"대출? 그거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이상원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은행 대출밖에 없죠."

"혹시 이미 견제가 들어갔다는 말이, 그러니까……."

"우리 태양심은 시중 1금융권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죠. 주요 거래처 은행장들은 이미 우리 태양심이 대표님과 협상 중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프라임컴퍼니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확실히 불법은 아니네요."

"예, 기업 간의 경쟁 생태계는 냉혹하지만, 대기업일수록 법을 준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규모 경쟁사들이 저항하기 힘든 것이지요."

* * *

전성렬은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제대로 된 새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기본 자본금 외에 최소 수백억이상의 추가 자금이 필요했다.

자금 확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기업 대출을 받는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지점장이 환한 웃음으로 전성렬을 맞이했고, 미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현재 한국에서 황비버섯라면의 무서운 기세를 모르는 이가 없었기에, 전성렬은 미팅이 무난히 풀리리라 생각했다.

"귀사 같은 경우를 위한 최고의 상품이 있습니다."

"오, 뭔가요?"

"0.2%의 파격적인 금리 상품입니다."

전성렬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0.2%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저 금리 상품이 있다고?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대신 대출 기간은 2년짜리 단기 상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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