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062화
14장 적과의 동침(3)
"아니요. 잘 몰라요."
하수영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이상원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박전보 전무의 예상이 맞았다.
마케미야투자를 등에 업은 전성렬이 하수영한테 제대로 올가미를 쓰운 것이다.
아직 나이가 어린 하수영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의 재배단가 인하가 얼마나 막대한 파급력을 낳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전성렬한테 빨대가 꽂혀서 제대로 착취당하고 있는 하수영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오늘 반드시, 기필코 내가……!'
그 빨대를 태양심 것으로 교체하고 말리라.
이상원은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침착하고 자세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저런, 대표님께서 소중히 기른 버섯이 들어간 제품인데 매출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시다니요."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고, 이런 산에 혼자 처박혀서 지내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기도 하고, 뭐 그래요."
"놀라지 마십시오. 얼마 전에 1억을 돌파했습니다."
"누적 매출이 1억이라는 건 아닐 테고…… 혹시 순이익 1억인가요? 아니면 평균 일 매출 1억?"
설계한 대로의 반응이다.
이상원은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속으로 혼자 웃었다.
"라면이 1억 개가 넘게 팔렸다는 뜻입니다."
"네? 라면 팔린 게 1억이라고요?"
"네, 라면 한 봉지에 1천 원이니, 누적 매출이 1,000억 원을 돌파한 셈이지요."
"우와, 천억이라니…… 엄청나네요."
하수영은 일부러 얼굴 가득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판 버섯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다니! 뭔가 나만 억울한 기분이야!
라는 느낌이 담기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상원은 그런 표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하수영의 부러운 감정을 한껏 부채질하기로 했다.
"대표님이 생산하신 황금비단우산버섯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뤄내지 못했을 성과입니다."
"에이, 겨우 버섯 하나 가지고 어떻게 그런 초대박을 터트려요. 말도안 됩니다."
하수영은 일부러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면서, 얼굴 한편에는 희미한 기대감을 실어두었다.
이상원이 딱 오해하기 좋을 만큼.
"아닙니다. 대표님은 본인이 생산하신 버섯의 영향력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 듯합니다. 황비버섯이 아니었다면 프라임컴퍼니는 절대로 이런 결과를 못 냈습니다. 라면시장 빅3의 철저한 견제를 뚫어내지 못하고, 적자만 보다가 자본금 다 까먹고 방 망했을 겁니다."
"설마요."
"정말입니다. 이걸 한 번 보시죠."
이상원은 미리 준비해온 판매량 분석 자료를 하수영 앞에 늘어놓았다.
온갖 그래프와 숫자로 범벅이 된 화려한 그래프는,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 전문적인데?'라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쇼는 원래 화려할수록 좋은 법.
"현재 황비버섯라면의 시장 점유율은 무려 60% 이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약 4,000만 개의 라면이 팔리는데, 이 수치대로라면 황비버섯라면은 2,800만 개씩 팔린다는 의미가 됩니다."
"엄청나네요."
"부끄럽지만 우리 태양심의 윤라면은 한때 라면시장의 최강자였습니다. 하지만 황비버섯라면에 밀려 이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저런."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상원은 보고서의 이곳저곳을 짚어나가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저번 주 라면 판매량을 보시면 4,000만 개가 아니라 5,000만 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황비버섯라면이 일주일 동안 3,000만 개가 팔렸다는 뜻인가요?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라고 했으니까요."
"3,000만 개가 아니라 3,400만 개가 팔렸습니다. 이 수치 변화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하수영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심에 찬 표정을 보이다가 다시 물었다.
"라면 판매량이 갑자기 폭증했네요. 원래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라면을 많이 찾나요?"
"그게 아닙니다. 평소에 라면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도 황비버섯라면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이상원은 눈을 빛내며 열변을 토했다.
"라면에 든 황비버섯을 꺼내어 다른 국물 요리에 사용하는 가정주부들의 수가 폭증했습니다. 그 덕분에라면 자체의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 전체 라면 시장의 파이도 커지고 있습니다."
"네? 버섯을 꺼내서 다른 요리에 쓴다고요?"
"그렇습니다! 라면은 라면대로 먹고, 버섯은 버섯대로 찌개나 전골등 저녁식사 요리에 쓰는 가정주부들이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황비버섯라면의 판매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겁니다."
"와, 그렇게도 응용할 수가 있군요. 역시 소비자들이란……."
하수영은 질린 듯이 혀를 내둘렀고, 이상원은 대화가 잘 풀리는 느낌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황비버섯라면의 선전에 프라임컴퍼니가 특별히 한 것은 없습니다. 여배우 장효주를 CF에 쓰긴 했지만, 그 정도 발상은 신입 홍보직원이라고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 CF가 잘 뽑히긴 했어요."
"황비버섯의 파격적인 가격 인하가 결국 지금의 판을 만든 셈입니다."
"그래도 전성렬 사장님이 사업 수완도 좋으시고, 이 바닥에서 잔뼈도 굵으시고……."
"솔직히 전성렬 사장님이 전문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으신 적은 없죠. 수십 년 동안 사업체를 굴리긴 했지만 주먹가게 수준의 농산물 유통회사일 뿐입니다."
하수영의 표정에 떠오른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이상원은 그런 변화를 철저히 체크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 황비버섯을 우리 태양심에 제공해주신다면, 지금보다 더 놀라운 결과를 빚어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태양심이요?"
"아시겠지만 우리 태양심은 서해식품그룹의 기둥입니다. 서해그룹과도 혈연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그 기량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초거대기업입니다."
"태양심이 대기업인 건 누구나 다 알죠. 마트 가면 태양심 브랜드로 범벅이 되어 있는 걸요."
"대표님이 저희와 함께 하신다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약속드립니다.
버섯 매입 단가도 15% 이상 올려 드릴 겁니다. 혹시 지금은 버섯을 얼마나 납품하고 계신가요?"
"80그램당 80원 정도에 납품하고 있어요."
"저런!"
이상원은 혀를 내두르며 놀라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쯤은 리액션이기는 했지만, 절반은 또 진심이었다.
'이거 가격이 1/100이잖아? 이러니까 경쟁 자체가 안 되지.'
단순히 생각하면 버섯의 가격을 1% 이하로 낮춘 것이다.
모회사인 서해식품에서도 100억을 쏟아 붓고 실패한 걸 이 청년이 어떻게 성공했을까?
'반드시 끌어들여야 해."
"80그램당 100원 이상의 납품가를 보장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태양심은 라면만 만들지 않습니다. 도시락, 인스턴트 컵밥 등 다양한 종류의 식품들도 만들고 있으며, 모회사에서는 프랜차이즈 요식업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서해식품에서 얼마 전에 100톤을 사가기는 했어요."
"그때는 킬로당 8만 원 정도를 받지 않으셨나요?"
"그랬죠. 한 번에 큰돈이 들어와서 좋긴 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프라임컴퍼니에는 1/100 수준의 가격을 받고 넘기시는 겁니까?"
"그거야 라면이 한 봉지에 1만 원이상 넘어가면 안 되니까, 그래서 생버섯 시장에는 더 이상 진출을 안하는 것도 있고요. 전성렬 사장님과 그렇게 협의를 봤거든요. 일단 라면 시장부터 장악하고 나서 나중 일을 생각하자고요."
"저런."
이번에는 이상원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디까지나 계산된 반응이었다.
당신은 지금 전성렬한테 이용당하고 있다, 호구 잡힌 거다.
그런 느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연기력이 썩 나쁘지는 않았는지, 하수영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욱 굳어졌다.
"제가 손해를 보고 있는 걸까요?"
"제가 그 부분에 관해서 뭐라고 더 말씀드리기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태양심은 더 좋은 가격에, 더 많은 양의 버섯을 매입해드릴 수 있습니다. 또 라면 판매에 따른 이익을 일정량 쉐어할 수도 있습니다."
"수익 쉐어까지?"
"예, 만약 윤라면에 황비버섯을 넣어 팔게 될 경우, 영업 이익의 최대 3% 이내에서 수익을 쉐어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3%라……."
하수영이 고민에 찬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자, 이상원은 더욱 몸이 달았다.
이제 거의 넘어왔구나 싶었다.
여기서 더 밀어붙일 수도 있지만, 이상원은 오늘 미팅은 여백의 미를 남기는 것으로 종료하기로 했다.
"이것이 저희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조건입니다. 깊이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태양심 직원하고 미팅했어요.」
저녁 메뉴를 말하듯 아무렇지 않은 어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가벼운 게 아니었다.
한창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던 전 성렬은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태양심이? 혹시 드디어 견제가 들어오는 건가?"
대기업의 견제와 압박.
수십 년 동안 유통업을 하면서 온갖 갑질과 설움을 겪어본 전성렬은 벌써부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견제이기는 한데, 애들이 볼을 엉뚱한 곳으로 차네요. 똥볼도 이런 똥볼이 없어요.]
"무슨 뜻인가?"
「저더러 프라임컴퍼니와 거래 끊으래요. 태양심에 버섯 공급 해달라고, 그럼 매입가도 올려주고 영업이익도 쉐어하겠다고, 최대 3%까지 줄 수 있다네요?」
처음 전성렬은 이게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바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그놈들, 자네가 최대주주인 걸 아직 모르는 거야?"
「상장을 안 했으니 모를 수도 있죠. 본사까지 찾아와서 주주명부를 열람하지는 않았잖아요.」
"자네를 얼마나 쉽게 봤으면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는 거지?"
「보아하니까 능구렁이 같은 전성렬 사장이 농사 밖에 모르는 어수룩한 스무 살 하수영을 꼬셔서 빨대 꽂고 착취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서 조금 민망하네."
「완전히 틀린 말이죠. 그 정반대 인데요.」
"……?"
전성렬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헷갈렸다.
정반대라면, 하수영이 자신한테 빨대를 꽂고 착취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차라리 잘 됐어요. 태양심이 회사보다는 저한테 집중하고 있으니, 적당히 협의하는 척 하면서 시간을 끌면 될 겁니다. 그 동안에 대비를 하시고요.」
"대비라고?"
「협상이 결렬되거나 아니면 제가 회사 최대주주라는 걸 알게 되거나, 결국 시간문제입니다. 그럼 태양심이 어떻게 나올 것 같으세요?」
"으음……."
「옛날에 잘 나가던 경쟁회사 거꾸러뜨리려고 신문사에 돈 줘서 가짜기사 내보냈던 놈들이잖아요. 경쟁회사가 흔들리는 사이에 시장 점유율 1위 탈환했고, 그게 이어져서 지금의 입자를 만들었고요.」
"그건 소문일 뿐이야. 확실하진 않아."
「연기라는 게 불도 안 됐는데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저는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전성렬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느 정도 하수영의 의견에 공감하고 있었다.
'하여튼 대기업들이란.'
정정당당한 경쟁 따위를 모른다.
순탄하게 성장할 줄 알았는데, 첫 시련이 조만간 찾아오겠다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부사장이랑 의논해서 잘 대비하겠네."
「벌써부터 피곤하게 되셨네요. 제가 이래서 농사에만 집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