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1화 (61/1,270)

프랜차이즈 갓 061화

14장 적과의 동침(2)

"뭐라고요?"

정서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직원이 뭔가를 잘못 말했거나, 자신이 잘못 들었거나 싶었다.

하지만 빤히 바라보는 직원의 표정을 보니, 그 어느 쪽도 아닌 게 확실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서희, 그러니까 제 여동생이 프라임컴퍼니 부사장이라고요?"

"네, 법인등기부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잖아요."

"이미 사람을 보내서 확인했습니다. 우리 회사 대리급 이상에서 정서희 양 얼굴 모르는 직원은 없잖아요."

정서진은 황당해서 직원을 빤히 바라봤다.

직원은 오히려 자신이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 생각으로는 프라임컴퍼니에 혹시 우리 대표님도 개인적으로 투자하신 건 아닌가 해서…… 정서희 양한테 다른 사업체를 물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럴 리가. 말도 안 됩니다."

"구공장도 프라임컴퍼니에 겨우 40억 원에 팔았잖습니까. 사실 그게 계륵이기는 했어도 40억 받고 팔정도는 아니었다고 보는데요."

"그럴 리가요. 서희가 190억 원에 자기가 산다고 할 때도 아버지, 아니 사장님은 매몰차게 거절하셨어요."

"그러시다면야……."

직원은 그쯤에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정서진의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직원 앞에서는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음속에서 조금씩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는 프라임컴퍼니의 등장과 급성장.

여기에 아버지의 개입이라는 퍼즐조각을 끼워 넣으면, 놀라우리만치 모든 게 말이 된다.

'서희한테 다른 사업체를 차려주시려고?'

계륵이긴 하지만 구공장을 굳이 40억에 처분한 것.

프라임컴퍼니 부사장에 정서희가 끼어 있는 것.

정서진은 마음이 다급해져서 다시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그거 말고 더 수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아무거나 좋으니 말해 보세요."

직원은 그제야 닫았던 입을 열었다.

"프라임컴퍼니 설립 자본금이 265억 원인데요. 그중 100억 원의 원출처가 마케미야투자인 것 같습니다."

"마케미야투자라고요?"

정서진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마케미야투자, 부친의 절친이자 자신에게는 삼촌이 되는 마케미야(정성진)의 투자회사다.

갑자기 여기서 그 이름이 왜 튀어 나온단 말인가?

"확실합니까? 자본금 중 100억이마케미야투자에서 나온 거라고요?"

"예, 거의 확실합니다. 그리고 성렬유통 말입니다."

"성렬유통이 또 왜요?"

그 이름이 다시 한번 언급되자 정서진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

제철이 아닌 시기에도 송이버섯을 유통하고, 황금비단우산버섯 재배단가 인하에 성공한 곳. 하수영이 있는 곳.

"마케미야투자와 각별한 관계 같습니다. 마케미야투자에서 후한 가격으로 1년 치 송이 물량 전부를 전 액 선금으로 지급하고 사들이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게 102억 원인데, 프라임컴퍼니 설립 때 기본 자본금으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그 이야기는 설마……."

"그 이상은 상무님께서 직접 판단하십시오."

직원은 더 이상 자기 입으로 말하기가 부담스러운지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판단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프라임컴퍼니의 자본금은 265억원.

그중 100억 원은 마케미야투자에서 직접적으로 나왔고, 102억 원은 송이 대량 구매 계약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서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정은 단 하나뿐이었다.

'프라임컴퍼니는 아저씨가 서희를 위해서 만들어준 회사였나?'

미래의 며느리를 위해서 그 정도 선물은 기꺼운 마음으로 해줄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모를 리가 없다.'

정서진은 주먹을 꾹 쥐었다.

부친은 서희가 사업에 뛰어드는 걸 늘 반대해 왔다.

하지만 마케미야가 예비 며느리 사업 시켜준다고 한다는 것까지 막지는 않을 것이다.

마케미야가 지원하고, 아버지는 묵인하고, 그렇게 해서 프라임컴퍼니가 탄생한 것인가?

* * *

태양심 본사.

"이 정도면 그 애송이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박전보 전무의 말에 이상원 부장은 얼른 맞장구를 쳤다.

"물론입니다, 전무님. 아주 혹해서 바로 우리 태양심에 넘어올 겁니다."

"전성렬 그 친구도 참 안됐어. 사업 키우는 눈이 없어서 기껏 좋은 아이템 발견하고도 지키질 못하니 말이야."

박전보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만족스러웠다.

하수영이 프라임컴퍼니와 맺은 버섯 납품 계약을 파기할 때 위약금등 일체의 책임을 태양심이 대신 물어준다.

또한 납품가는 프라임컴퍼니보다 무조건 15% 올려준다.

여기에 태양심과 모회사인 서해식품이 추진하는 모든 식품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겨우 라면 공장 하나밖에 없는 프라임컴퍼니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대단한 조건인 셈이다.

"좋아. 이 부장, 자네가 책임지고 그 친구 빼 내와 봐."

"예, 전무님."

"그 친구만 빼내오면 프라임컴퍼니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니지."

별거 없는 라면 하나에 황금비단우산버섯을 80g 넣었다고 매출이 폭등했다.

그렇다면 장차 출시될 황비버섯 '윤' 라면은 얼마나 큰 파급력을 보일까?

박전보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겠다.

* * *

-허나, 오랜 세월이 흐르자 우주신 연합은 타락하여 각 지점장, 아니 지역신들은 별과 생명을 돌보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권역과 영향력 확대에 더 치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우주의 질서가 흐트러지자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난 당시 주신은 격노하여…… 아들아? 지금 조니?

"아, 안 졸았습니다! 아버지!"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프랜차이즈 갓의 지위를 승계하는 이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부분이야. 프랜차이즈 갓이 탄생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가 담긴 역사이니까.

"제가 과연 10조 분의 1의 확률을 뚫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마다. 인간의 관점에서 10조 분의 1은 0과 다를 바 없는 확률이겠으나, 영원을 누리는 프랜차이즈 갓의 입장에서 10조 분의 1은, 10조 분의 9,999,999,999,999과 별 차이가 없단다.

"그냥 차라리 100%라고 하세요. 숫자 듣다가 제가 숨이 넘어가겠어요."

엘릭서 섭취는 고통스러우며, 역사수업은 지루하고, 신어의 잔소리는 매우 귀찮다.

'꾹 참자. 청담동 건물주가 되기 위해서 이 정도는 참을 줄 알아야지.'

-신어의 권능은 좀 어떠냐? 발전이 되는 것 같으냐?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정신 수양을 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은 풀 한 포기 흔들기도 힘드네요. 아! 대신 아버지 잔소리는 날이 갈수록 또렷해지는 거 같아요."

-잔소리라니! 사랑이 담긴 아비의 조언을 그렇게 깎아내리는 게 어디 있느냐!

"잠시만요, 아버지. 전화가 왔어요."

모르는 번호였다.

하수영은 목청을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혹시 하수영 대표님 핸드폰 번호 되십니까? 저는 태양심 영업1부장 이상원이라고 합니다.

'태양심?'

하수영은 안색을 가볍게 찌푸렸다.

'올 것이 왔네. 기어이… 이 인간들도 별로 양반은 못 되는구나.'

"태양심? 혹시 윤라면 만드는 그 태양심 말씀하시는 건가요?"

-잘 아시는군요. 예, 그 윤라면이 맞습니다.

"태양심에서 제게는 무슨 볼일인지…… 저는 태양심에 아무런 인연이 없는데요."

-하하, 설마 전혀 짐작도 못 하신다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하수영이 키운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넣은 프라임컴퍼니의 라면이 시장을 휩쓸고 있다.

전통 라면 강자인 태양심이 연락을 취하는 게 그리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이상원 부장은 그걸 짚는 것이다.

"아뇨, 정말 전혀 모르겠는데요. 저한테 무슨 용건 때문에 연락을 하신 건가요?"

-에이, 왜 그러십니까. 프라임컴퍼니에 지금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납품하고 계시지 않나요?

"그건 맞아요. 근데 그게 태양심에서 저한테 연락을 하는 이유가 되나요?"

이쯤 되면 이상원도 슬슬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저어, 혹시 프라임컴퍼니에 납품하는 황금비단우산버섯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그걸로 무슨 인스턴트식품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하지만 자세히는 몰라요."

-대표님이 납품하시는 황금비단우산버섯이 들어간 라면이 지금 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모르실 리가 없을 텐데요…….

"그래요? 저는 농장에서 거의 떠나질 않아서요. TV 같은 것도 잘 안보고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네요."

하수영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태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이상원 부장의 목소리 톤이 대번에 달라졌다.

-혹시 직접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뵙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흠, 제가 농사짓느라 엄청 바쁜데…"

-잠깐만 시간을 내주시면 됩니다.

장소와 시간만 알려주시면 언제든지 찾아가겠습니다. 백두산 백록담이라해도 곧바로 달려가겠습니다.

"백록담은 한라산 아닌가요?"

-하하, 세상에 없는 곳이라 해도기꺼이 달려가겠다는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아, 아재요…… 그건 너무 나갔어요.'

"그럼 위치 알려드릴게요. 여기가 경기도에 있는 서락산이라는 곳인데, 주소가……."

-아! 서락산! 저도 알고 있습니다!

참 명산이지요. 예전에 한 번 가본적이 있어요.

"아, 그래요?"

'뻥을 쳐도 정도껏 쳐야지. 서락산이 무슨 명산이야. 그냥 납작한 야산인데.'

-예, 그 근처로 찾아가면 될까요?

"예, 서락읍에서 서락산으로 가는 진입로에 보면 눈에 띄는 큰 집이 하나 있어요. 전 거기에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언제가 좋을까요?

"제가 오늘 오후는 좀 널널하긴 한데…… 아무래도 바로 당장은 무리 이실 것 같으니……."

-바로 가겠습니다!!

하수영이 전화를 끊자, 은하신목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변수가 하나 생겼습니다."

-변수?

"네, 제가 청담동 건물주가 되는 날을 앞당겨주거나 혹은 지연시킬 수 있는 변수가 생겼네요. 이걸 어떻게 요리한다……."

-프랜차이즈 갓이 되면 그깟 청담동 수천경 개는 만들 수 있을 게다.

아무튼 하수영은 태양심 관계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미 이런 상황도 머릿속에 그려두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급적 번거로운 일이 최대한 없기를 바랬는데, 이렇게 또 금방 터져 주시네. 겨우 라면 1억 개 팔았다고 벌써부터 이러면 나중에는, 후 아…"

약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상원으로부터 거의 도착했다는 문자 연락이 왔다.

태양심 본사와 서락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이미 서락읍 근처에와 있다가 연락을 한 게 틀림없다.

내비게이션을 보면 거의 2시간은 걸릴 거리이니까.

소리를 꺼놓은 거실 월패드가 반짝거리며, 정문 밖에 방문자가 와 있음을 알렸다.

하수영은 정문을 열어주고, 현관문을 나섰다.

멀리서 보니 이상원은 생각보다 으리으리한 정원 규모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한결 낫네.'

조금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제가 하수영입니다."

"이 부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이상원은 하수영에게 공손히 머리를 내밀었다.

나이뻘로 보면 막내아들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손끝까지 공손함이 묻어났다.

집이 참 크고 멋지다, 외모가 훤칠하다, 등등 입에 발린 소리를 한참이나 늘어놓은 후, 이상원은 본론을 꺼냈다.

"프라임컴퍼니가 황비버섯 덕분에 매출을 얼마나 찍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