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57화
13장 농사지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1)
하수영은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산을 올랐다.
어제 황금비단우산버섯 채취를 마치고 난 이후 포자를 뿌려두었으니, 새벽쯤에는 버섯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40인의 도적들의 마음에도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나 있을 테고.
"채증이 가장 중요합니다. 증거주의 아시죠? 200% 확실한 증거도 재수 없으면 엎어지는 게 세상 법칙이에요."
이미 하수영은 넘쳐나는 증거물을 확보한 상태이지만, 마지막까지 증거 수집 과정에서 주의 기울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들 들키지 않게 조심해요."
하수영은 선두에 앞장을 선 채 경호원들을 안내했다.
경호대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수영의 움직임을 살폈다. 특수부대 출신인 자신이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수색 훈련을 받은 사람 같은데? 아니, 그 이상일지도…….'
하수영은 낙엽 밟는 소리,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 등이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또 적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은밀히 엄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보다 어떤 면에서는 낫다.
자세히 살펴보면 움직이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밀짚모자에 몸빼바지, 제초기 분무통을 등에 메고 장화를 신은 채 저런 기도비닉(조용히 안 들키고 움직이는 것)을 보이다니..
'이 사람, 고수다.'
경호대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왜 지난 며칠 동안은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한 거지?
마침내 산중턱에 있는 버섯 농장까지 도착했고, 하수영은 정지 신호를 보냈다.
"채증하세요."
하수영이 속삭이듯이 말했고, 경호대장은 끄덕이며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40인의 도적들이 버섯을 채취하는 모습을 충분히 영상에 담아낸 다음, 그들이 채취를 그만둘 때를 노려서 덮칠 예정이었다.
수레에 버섯이 가득 담긴 모습을 영상에 담아내야 더 생생한 증거물이 될 테니까.
장은 들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목소리를 낮춰 하수영에게 물었다.
"혹시 특전사 수색대 출신이십니까?"
"아뇨. 미필인데요."
"……예?"
"저 스무 살입니다. 군대 안 갔어요. 아, 그러고 보니 슬슬 영장 나올 때 됐나? 이거 어떻게든 처리해야겠네."
경호대장은 당황해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미필이라고? 곧 영장이 나온다고?
그 말인즉슨…….
'대충 스무 살이라고? 맙소사.'
얼굴을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큰 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점, 산 아래 호화로운 대저택을 짓고 사는 점, 그리고 도둑들을 잡는다고 이 많은 경호원들을 고용한 점을 보면, 일반적인 스무 살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 충분한 것 같습니다. 나갑시다."
도둑들이 채취 작업을 모두 마치고, 버섯을 실은 수레를 끌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장 검거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였다. 참고로 현행범은 경찰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라도 체포할 수 있다.
"꼼짝 마! 모두 정지해!"
경호대장은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가며 외쳤고, 도둑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악!"
"이, 이게 뭐야!"
"경찰? 경찰? 안 돼! 안 돼!"
50인에 달하는 건장한 경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도둑들은 수레와 배낭을 내던지고 혼비백산해서 흩어져 달아났다.
40인의 경호원들은 각자 한 명씩 맡아서 맹렬히 추적하기 시작했다.
도둑들은 젊어 봤자 40대였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2, 30대의 건장한 추격을 뿌리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경호원들도 혼란의 와중에 한 명씩 재빠르게 분담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어찌어찌 산 아래까지 내려가는 데 성공한 이들이 두어 명 있었다.
나름 대단한 결과였다.
늘 드나들던 쪽문을 향해 달린 그들은 있는 힘껏 쪽문을 밀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뭐야? 잠겼잖아?"
"오늘 서락산은 폐점입니다, 고객님들."
미리 내려와 있던 하수영이 히죽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이럴 줄 알고 도둑들이 한창 채취작업에 한창일 때 쪽문을 잠그고 산을 오른 것이다.
이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추격전이 시작되자마자 곧장 혼자서 여기로 내려온 것이고.
"자, 자네는!"
"서락산 문지기 아닌가? 자네가 왜 여기 있어?"
"여기가 서락산이니까 서락산 문지기가 당연히 여기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수영이 히죽 웃으며 다가오자, 두 중년 남자는 순간적으로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수영이 마을에 인사를 돌린답시고 수육과 막걸리, 소주를 잔뜩 준비하고 주민들을 초대했던 그 날.
술이 들어가자 미친놈처럼 날뛰며 깽판을 부리고, 몇 시간 동안 아무도 저택을 나가지 못하고 붙든 채 괴롭히던 그때의 기억을…….
젊은 놈이 그렇게 술을 먹고도 체력이 넘쳐나서 몇 시간이고 얼마나 주민들을 괴롭혔던가.
"무, 문지기 총각! 제발 이러지 말게!"
"문지기? 내 이름 문지기 아닌데요."
"서, 서울 총각!"
"나 서울 안 사는데."
"아, 아무튼! 제발 이러지 말게!
우리 다 같은 마을 주민이지 않은가? 사람이 정이라는 게 있는데 버섯 서리 조금 했다고 이렇게 매몰차게 굴어서야 되겠나?"
"아, 이거 참……."
머리를 긁적이던 하수영은 그때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경호원 두 명을 발견했다.
하수영은 표정을 싹 바꿔서,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외쳤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제가 마을 발전 기금 2천만 원을 내지 않아서 이러시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이 마을에서 숨을 쉬면서 산소세를 내지 않아서 이러시는 거예요?"
"무, 무슨 소린가?"
"우리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이 마을 이사 와서 마을 어르신들 대접한다고 천만 원 넘게 들여서 잔치까지 벌였는데, 삭힌 거름 놔서 냄새 때문에 매일 창문도 못 열고 살게 하시고, 이제는 제가 공들여 키운 버섯까지 훔쳐 가시는 건가요! 수십 명이 매일같이 몰래 들어와서 버섯을 훔쳐 가놓고는 그게 고작 서리라고 하시는 건가요오오!"
"무, 문지기 총각! 그게 무슨!"
하수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절규하다시피 외쳤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땅에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고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절박하고 처량해 보였는지, 도주한 도둑 둘을 잡으려고 내려온 경호원들마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칫할 정도였다.
"애지중지 키운 내 버섯들! 전 그저 땀 흘려 밭 갈고 작물 키워서 지역사회 경제에 도움이 되려 했을 뿐인데! 그걸 이렇게 약탈해 가다니! 사람을 괴롭히다니! 으허헝! 이 럴 줄 알았으면 귀농 따위 하는 게 아니었어! 그냥 아버지 유산 가지고 청담동에 건물이나 사서 편히 사는 건데!"
"사, 사장님. 진정하십시오."
"일어나세요, 사장님."
보다 못한 경호원들이 얼른 나서서 하수영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더니 여기저기 흙투성이가 되었다. 밀짚모자는 어느덧 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흙과 낙엽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수영은 꼭꼭 울면서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그는 경호원들이 장착한, 채증용 액션캠에 잡히지 않도록 손짓을 했다. 카메라를 끄라는 것이었다.
그의 눈물 때문에 당황해 있던 경호원들은 황당해서 바라봤고, 하수영은 다시 한번 조용히 재촉했다.
그제야 경호원들은 허둥지둥 카메라를 끈 채 떼어내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 이제 됐습니다. 사장님."
"잘 찍혔겠죠? 내 연기가 어색하지 않았으려나 모르겠네."
언제 그렇게 대성통곡을 했느냐는 듯 하수영은 멀쩡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경호원은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아니, 방금 그게 연기였다고?
하수영은 손가락으로 두 도둑을 가리키며 태연히 말했다.
"뭐하세요? 얼른 잡으세요."
* * *
쪽문까지 도달한 이들 외에도, 3명 정도가 추격을 뿌리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독 안에 든 쥐였다.
운이 좋아 용케 달아났다 해도, 서락산은 전체가 높이 4미터짜리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도주로를 찾던 3명은 할 수 없이 철조망을 넘어가려고 시도하다가, 절반도 오르지 못한 상황에서 추적 해온 경호원들한테 제압당했다.
"검거 완료했습니다. 채증도 빈틈없이 했습니다."
"좋아요, 이제 경찰에 넘기죠."
도둑이자 마을 주민들은 서슬 퍼런 경호원들의 기세에 눌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신고를 하자 다수의 경찰과 인근관할 산림과에서 사람이 나와서 현장을 확인했다.
하수영은 그들에게 지금까지 촬영한 CCTV 영상을 모조리 보여주었고, 산림과 직원은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면 아주 상습적인데요. 피해 규모가 대충 얼마나 됩니까?"
"글쎄요, 몇십억은 되지 않을까요? 자세한 건 박충원 이장의 계좌를 뒤져보면 알 겁니다. 아참, 산림조합원직원이 제대로 진술하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알고 보니까 박충원 이장과 친한 것 같더라고요."
"알겠습니다."
현행범의 수가 마흔이 다 되다 보니, 그만큼 경찰 및 경찰차도 다수가 필요했다.
"아이고, 아이고."
"사람 사는 정이라는 게 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문지기 총각! 내 잘못했으이, 제발 한 번만 봐주시게! 다시는 이 산에 얼씬도 하지 않겠네!"
하수영은 그들이 통곡을 하든 악을 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경호대장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스무 살 맞아?'
아까 부하 경호원들의 설명은 더욱 가관이었다.
채증을 위해서 울며불며 서러운 피해자 역할을 하고, 그 장면을 남김없이 카메라에 담았다니.
"사유지 무단 침입에, 상습적 임산물 절취에, 1년 이상 10년 이하의 형에 처해지겠네요. 집단을 이뤄 절취했는데 그건 가중처벌 조항이 없나? 조금 아쉽네."
"……."
"근데 고령이고 또 시골 노인네들이고 하니 왠지 집행유예로 끝날 것 같은 느낌? 그렇지 않아요?"
"그, 그건 제가 법을 잘 몰라서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쨌든 마을 전체가 한바탕 들썩이겠네요."
하수영은 하품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경호대장, 마동식은 그가 참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 저희 임무는 이제 다 끝난 겁니까?"
"아니요. 마지막 임무가 아직 남으셨습니다."
"그게 뭐죠?"
마동식은 의아했다.
범인들을 전부 검거했으니 이제 다 끝난 거 아닌가? 뭐 더 할 게 남아 있나?
하수영이 씩 웃었다.
"포함외교, 아니, 무력시위요. 그게 바로 화룡점정 아닙니까?"
"……?"
* * *
마동식은 하수영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하수영은 50명에 달하는 경호원들을 거느린 채, 일일이 마을의 모든 가옥을 방문했다.
100명이 채 안 되는 마을에서 40인이 검거되었다는 것은, 모든 집이 이 범행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미다.
직접 범행을 저지르진 않았어도 가족 중 한 명 이상은 반드시 참여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박철순 아저씨가 서락산에서 임산물을 상습적으로 채취하다가 오늘 현행범으로 붙잡혀서 경찰에 잡혀갔지 뭡니까. 그거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칠복 할아버지께서 세상에 글쎄, 제가 애지중지 기르는 버섯을 훔치다가 현행범으로 잡혔지 뭐예요?"
"상습성 인정돼서 이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에요, 징역!"
하수영은 건장한 경호원 50인을 뒤에 거느린 채, 가옥을 일일이 돌며 친절한 미소로 검거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의 전원의 이름과 가족관계, 주소를 숙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