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54화
12장 농장 주인과 40인의 도적(1)
"아니, 기껏 비싼 돈 들여서 공장인수한 게 얼마나 됐다고 새로 지어야 한다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서 그러지."
-좋은 현상 아닙니까? 비싼 돈 들여서 공장 샀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더 큰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건, 그만큼 장사가 잘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 그렇긴 하지."
-좋게 생각하십시오. 이사를 자주하는 건 절대로 나쁜 게 아닙니다. 집 크기를 더욱 불려서 하는 거라면요. 물론 그 반대라면 경영 위기 상황이겠네요.
"그럼 하 사장은 공장을 확장하는 새로 짓는 반대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아뇨,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제가 프라임컴퍼니 경영진인가요? 아니잖아요.
"……."
전성렬은 할 말이 없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정서희는 조용히 웃음을 흘렸으며, 공장장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시선을 자꾸 딴곳으로 돌렸다.
-버섯이나 식자재 구입 같은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하지만 회사 경영 판단 같은 것은, 음, 저는 외부인이니까 물어보지 말아주세요.
"언제부터 최대주주가 회사 외부인이 되었나?"
-아시잖아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 전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을 철저히 지킵니다.
전화를 끊은 전성렬은 어설프게 웃으며 정서희와 공장장을 돌아보았다.
"합시다. 공장을 확장하든, 새로 짓든. 정 부사장이 잘 정리해서 계획짜보고."
"네, 사장님."
"식품연구개발부서 설립은……."
"공장 확장이 더 급한 일이지만, 그것도 병행해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서희는 야무지게 대답했고, 전성렬은 그렇게 그녀가 든든할 수가 없었다.
* * *
정서진은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경기도의 한 야산에서 황금비단우산버섯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락산이라고요?"
"네, 아무래도 그 산에 황비버섯농장이 있는 거 같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트레일러들이 드나들며 버섯을 실어 나르는 걸 확인했습니다."
부하 직원은 수십 장의 사진을 내밀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보시다시피 산 아래에 높이 4미터 짜리 철조망이 빈틈없이 쳐져 있어 산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습니다."
"철통같군요."
"황비버섯은 아무래도 고급 식자재니까요. 소유주가 누구인지도 확인 했습니다. 하수영이라는 인물입니다."
"하수영?"
정서진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직원이 보충 설명했다.
"전성렬 사장의 동업자입니다."
"아! 들어본 거 같아요."
"프라임컴퍼니에도 지분이 소량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전성렬사장으로부터 (주)성렬유통을 완전히 넘겨받았습니다."
"성렬유통을 넘겨받아요?"
"네, 전성렬 사장이 라면회사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성렬유통은 믿음직한 동업자에게 넘긴 모양입니다. 대신 황비버섯을 독점적으로 공급받아라면 제조에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성렬유통이 프라임컴퍼니에 황비버섯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전성렬 사장이 생각보다 사업 감각이 있군요. 근데 하수영 그 친구는 조금 안타깝네요. 자기가 직접 프라임컴퍼니를 세워도 됐을 텐데."
"농사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는 걸 수도 있습니다."
직원은 등기부 서류를 보여주며 계속 말했다.
"여길 보십시오. 하수영 사장이 서락산을 매입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올해 일입니다."
"올해?"
"네, 매입하자마자 철조망을 치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이후 성렬유통이 우리 JM식품 구공장을 인수했습니다. 그다음에 프라임컴퍼니가 설립되었고, 지금의 라면 대첩이 벌어졌고요."
"라면 대첩이라니, 라면 학살이라고 해야죠."
정서진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직원은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으로 깍지를 낀 채 생각에 잠긴 정서진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황비버섯이 서락산에서 재배되고 있고, 그 산주는 하수영 사장이다, 이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거 하수영 사장이라는 사람이 황비버섯 재배 단가를 낮추는 데 성공한 건 분명한데……."
내로라하는 농업 전문가들도 성공하지 못한 걸 해내다니.
정서진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하수영 사장이라는 사람은 정확히 어떤 인물이죠? 어디 저명한 대학 교수라도 됩니까?"
정서진은 하수영이 농업 박사 같은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금비단우산버섯재배 단가 인하에 이렇게 성공했을 리가 없을 테니.
그런데 직원의 표정이 묘했다.
"그게…… 하수영 사장은 이제 스무 살입니다."
"네? 뭐라고요?"
"대학교수는커녕 고졸입니다."
"……."
정서진은 할 말을 잃었다.
* * *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고졸따위가 어떻게 황비버섯라면 재배단가를 낮출 수 있어! 그거 우리 모회사에서도 손댔다가 100억만 날려 먹은 프로젝트잖아!"
보고를 들은 태양심 사장, 이정훈은 불같이 화를 냈다.
박전보 전무는 자신보다 어린 40대 중반 젊은 사장의 불호령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입니다, 사장님, 재배 작업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수영이란 친구 혼자서 한다고 합니다. 인부들은 그저 채취해서 운송만 할 뿐입니다."
"혼자서 그 많은 양을 재배한다고? 박 전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물론 아주 혼자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성렬유통 직원들도 모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은밀히 재배 작업을 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박 전무가 직접 두 눈으로 봤어?"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운송하는 인부 외에 산 농장을 드나드는 사람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이로 치면 박전보 전무가 열 살 이상은 위다.
하지만 이정훈 사장은 자신이 연상이라도 되는 양 말을 함부로 해댔다.
그는 그래도 되는 인물이다.
비단 사장이라서가 아니라, 서해식품그룹 오너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혈통의 고귀함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법.
박전보 전무가 훨씬 이정훈 사장의 고압적인 반말에 아무런 반발심을 품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정훈 사장은 왔다 갔다 하면서 꼬인 속을 달랬다.
"박 전무, 확실한 거야?"
"네, 확실합니다."
"허참. 황비버섯 재배 단가 인하에 성공했으면 버섯 시장에서나 놀 것이지, 그걸 가지고 라면 시장에 감히 기어들어 와? 이놈들이 실성했나? 라면 하나 제대로 만들 줄 몰라서 특허 끝난 옛날 레시피나 가져 다 쓰는 주제에……."
이정훈은 평소 라면을 먹을 일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황비버섯라면에 왜 그리 환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박전보 전무도 이정훈에게 그 이유를 납득시키는 게 어려웠고.
라면 따위는 서민들이나 먹는 거라며 질색하는 이에게 무슨 말을 더한단 말인가.
'아예 틀린 말도 아니고.'
프라임컴퍼니는 라면 제조 능력이 형편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특허 끝난 옛날 레시피로 라면을 만들어 팔 리가 없을 테니까.
황금비단우산버섯만 빼면, 라면회사로서의 능력은 보잘것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황비버섯이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사실이지만.
"박 전무. 하수영이, 그 친구는 프라임컴퍼니와 어떻게 얽혀 있는 사이인데?"
"송이버섯 유통으로 얽히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성렬이와 만난 지는 몇 달 안 됐습니다."
"스무 살이라고 그랬지?"
"예, 사장님."
"그럼 하수영이 그놈이 전성렬 늙다리한테 교묘하게 이용당하고 있는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박전보 전무도 그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어떻게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버섯채취, 재배에 남다른 소질이 있는 20살 청년이 영세 유통업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청년의 능력을 알아본 능구렁이 사업가는 송이버섯 유통을 통해 사업자금을 확보하고, 라면회사를 세운다.
그리고 청년으로부터 황금비단우산버섯을 공급받아 라면 시장을 제패하고자 한다.
이것이 박전보와 이정훈이 머릿속에 그리는 전개였다.
왜냐하면…….
"프라임컴퍼니의 설립 자금은 마케미야투자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마케미야투자는 송이버섯 대량 공급 계약으로 전성렬이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죠."
"그림이 참 명쾌하구만."
젊은 하수영이 능구렁이 전성렬한테 이용당하고 있다.
그것이 사장과 전무의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아직 프라임컴퍼니의 지분 소유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법인등기부에 하수영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으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하수영이란 친구가 어찌어찌 황금비단우산버섯 재배 단가 인하에 성공했고, 그걸 전성렬이란 친구가 혼자 꿀꺽 낚아채서 한창 재미를 보고 있다는 뜻이지?"
"하수영이 그 친구는 프라임컴퍼니 지분 많아 봐야 10% 정도 갖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사업 수완은 없지만 좋은 아이템을 갖고 있는 스무 살 청년을 살살 구슬리는 건 일도 아니다.
이정훈은 비로소 후련하다는 듯이 하하 웃었다.
"뭐야, 박 전무. 그럼 간단한 거 아닌가? 하수영이 그 친구 만나서 버섯 거래 우리 쪽으로 돌려. 우리도 윤라면에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듬뿍 넣어서 팔자고."
소비자들의 사랑을 뜨겁게 받는 윤라면.
특허 보호 기간도 한참 지난 레시피로 만든 잡탕라면.
똑같이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넣어 비슷한 가격으로 판다면, 누가 이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전성렬이도 바보는 아니니, 독점판매 조항 정도는 넣었을 겁니다."
"까짓거 위약금 우리가 대신 물어주면 그만 아닌가. 박 전무가 잘 처리해 봐."
"예, 사장님."
박전보는 허리를 깍듯이 숙여 보였다.
* * *
"서희야, 조심히 들어가. 연락할게."
잘생긴 남자가 해맑게 웃는 얼굴이 이리 징그러울 수도 있다는 걸, 정서희는 오늘도 뼈저리게 느끼며 차에서 내렸다.
"너도 운전 조심해."
"걱정 마. 난 항상 안전 운전이야."
"네 인생 운전 조심하란 뜻인데. 너 지금 차선 완전히 잘못 들어온건 알고 있니?"
"지금 난 완벽한 차선에 들어와 있지. 바로 정서희라는 차선 말이야."
"응, 그 차선, 잘못된 차선. 뒤에서 차들이 빨리 비키라고 빵빵거리는거 안 들려?"
"누가 내 뒤에서 그러고 있는데?"
해맑던 정진석의 표정이 조금 싸늘해진다.
정서희를 향한 게 아니다. 자신의 뒤에서 비키라며 경적을 울리는 얼굴 모를 남자들을 향한 것이다.
물론 정서희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알잖아. 난 남자에 흥미 없어."
"다행이야. 놀랐잖아."
"하지만 우리 징그러운 귀염둥이 진석이한테는 더더욱 흥미가 없지."
"걱정 마. 우리 데이트가 다 끝나면 생기게 될 거야."
"지금 흐름으로서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 같은데. 아무튼 난 들어간다."
정서희는 저택에 들어섰다.
응접실에서 수군거리던 가족들이 후다닥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정서희는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진석이도 잠깐 들어와서 인사나 하고 가라고 하지."
"늦었어요. 걔도 내일 학교 가야 돼요. 수시 준비 부지런히 해야죠."
정서희는 일부러 '수시'라는 단어에 강조를 실었고, 정재민은 헛기침을 흘렸다.
부친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서희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아빠, 요즘 라면 매출 사정이 많이 안 좋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