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53화
11장 엄마가 왜 거기서 나와? (3)
"우리 모회사가 왜 갑자기 거기서 나와?"
박전보 전무는 황당해서 물었다.
서해식품, 엄밀히 말해서 태양심의 모회사다.
그러나 서해식품의 사장은 태양심의 사장보다 그룹 내에서 오히려 영향력이 떨어진다.
회장 오너 일가도 태양심의 힘을 더 실어주는 편이고.
서해식품은 말이 식품회사지, 식품제조 및 유통에는 손을 뗀 지 오래였다.
그보다는 투자나 연구개발 등, 태양심을 보조해 주기 위한 일에 집중하는 편이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서해 식품에서 황비버섯 100톤을 매입했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100톤이나 되는 물량을 대체 어디서 샀다고 해?"
"성렬유통이라는 곳이랍니다."
"성렬유통?"
박전보 전무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을 100톤이나 취급할 정도면 만만치 않은 유통업체일 텐데,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상호다.
"성렬인지 창렬인지 하여튼 빨리 알아봐!"
"예! 전무님!"
임직원들은 서둘러 흩어져 전화기와 컴퓨터를 붙잡고 성렬유통에 관해서 알아내기 위해 뛰었다.
어느 정도 정보가 모이자 부장급 한 명이 급히 보고서를 만들어 박전보 전무를 찾았다.
"전무님, 지시한 성렬유통 조사에 관한 보고입니다."
"나 지금 마음 급한 거 알지? 최대한 간결하고 중요한 것만 요약해서 설명해."
"예, 원래는 연 매출 90억 정도 되는, 농산물을 취급하는 작은 유통업체인데 상당히 오래됐다고 합니다. 30년 이상 된 소규모 업체라고 하네요."
"그 정도면 유통업에서는 나름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구먼."
개인사업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수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이나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것을 뜻하니까.
"최근에는 서해호텔과 백두호텔에도 납품하는 등 사업을 꽤 확장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뭐지? 빨리 말해."
"두 호텔에 제철이 아닌 송이버섯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송이버섯?"
느닷없이 송이버섯 이야기가 나오자 박전보 전무는 황당해서 눈을 치켜떴다.
"예, 원래 송이버섯 철이 아닌데도 국내산 송이를 대량으로 채취해서 납품을 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안정적인 공급을 하고 있고요, 얼마 전에는 일본의 모 기업에 송이 대량 발주를 받아서 처리하기도 했답니다."
"그 유통회사에 무슨 버섯 요정이라도 붙어 있는 거야?"
"그 성렬유통이 얼마 전 JM식품에서 내놓은 구공장을 40억 원에 인수했다고 합니다."
"잠깐, 그거 원래 라면공장 아니었어? 설마……."
"예,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바로 프라임컴퍼니입니다."
박전보 전무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그럼 성렬유통이 프라임컴퍼니의 전신이란 말이야?"
"그건 아니지만 같은 계열인 건 맞습니다. 별개의 법인으로 지금도 버젓이 영업을 합니다."
"좋았어! 어쨌든 성렬유통인지 뭔지 하는 것에 버섯 공장이 붙어 있다는 거 아니야? 더 조사해 봐. 서둘러!"
지시를 마친 박전보 전무의 머릿속에 불현듯 서해식품의 이름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우리 모회사는 대체 황비버섯을 100톤이나 사서 어디에 쓰려고 했던 거야?"
"그것도 알아보겠습니다."
"됐어, 그건 내가 서 사장님 만나서 따로 물어보지. 하여튼 이해할 수가 없네. 왜 갑자기 모회사 이름이 여기서 튀어나오는지, 황비버섯 100톤 매입은 또 뭐고."
* * *
박전보 전무는 서해식품 사장 서인모에게 연락을 취해 약속을 잡았다.
태양심 전무의 연락이었기에 서인모는 두말하지 않고 저녁 스케줄을 비워 주었다.
약속 장소에서 마주 보고 앉은 박전보는 대충 안부 인사를 끝내자마자 물었다.
"사장님, 얼마 전에 서해식품에서 황금비단우산버섯 100톤을 매입했다면서요?"
"맞네. 그건 왜 물어보나?"
"그 많은 물량을 어디에 쓰시려고 매입하신 겁니까?"
서해식품과 태양심의 관계는 묘하다.
분명 서해식품이 모회사는 맞다.
본래 서해식품의 라면 사업부였던 것이 독립, 분리해서 지금의 태양심이 된 것이기에.
하지만 실제로 수행하는 역할을 보면, 서해식품이 태양심의 일개 부서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룹 오너도 서해식품보다는 태양심을 훨씬 더 총애하기도 하고.
뭐니 뭐니 해도 계열사 중에서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갖추고 있는 회사이니까.
"그거야 쓸 데가 있어서 샀지. '서해마을' 프랜차이즈 프로모션에 쓸까 해서 말이야."
서해마을은 서해식품이 운영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요식업을 가리키는 브랜드였다.
1, 2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식업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번에 서해마을에서 신메뉴 몇 개를 개발했는데 거기에 쓰려고 산 걸세."
"100톤 사는 데 얼마 주셨죠?"
"글쎄, 100억 정도 준 거 같은데. 아마 맞을 거야."
"성렬유통이라는 곳에서 사셨죠?"
"아마 그랬던 거 같네."
서인모 사장은 보고서를 본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
100억 정도 되는 거래 내역을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었다.
박전보는 보이지 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장님, 이번에 황비버섯 때문에라면 시장이 난리 난 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당연하지. 우리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언제 저 회사가 무너지나 하고 말이야."
"안 무너집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린가? 저렇게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팔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본 손해가 3, 4천억 원은 족히 됐을 겁니다. 사장님, 그 정도 손해를 감수하면서 시장 장악하려는 신생업체가 있을까요?"
"……."
그제야 서인모는 흠칫했다.
아무래도 라면 시장과는 직접 연관이 없다 보니, 자세히 파헤치지 않은 듯했다.
"그놈들, 지금 손해 보면서 파는거 아닙니다. 조금이지만 분명히 이익 보면서 팔고 있어요."
"말도 안 되네. 황비버섯 단가가 얼마인데."
"아무래도 성렬유통에서 황비버섯을 싸게 구매하는 루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렬유통?"
느닷없이 성렬유통 이야기가 나오자 서인모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전후 사정을 깨달았다.
"황비버섯라면이 성렬유통과도 연관이 있었던 건가?"
"정확히는 프라임컴퍼니와 성렬유통이 한 식구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죠. 우리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그제야 서인모는 박전보가 왜 급히 자신을 만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낭패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프랜차이즈 요식업 프로모션을 위해 황비버섯 100톤을 구매한 것이, 태양심한테는 간접적인 손해를 끼친 상황이니까.
"지금 상황이 이렇습니다. 그러니 사장님, 아시는 대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잠시 기다리게. 지금 바로 홍 부장을 부르지."
서인모는 곧바로 연락을 넣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진우 부장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박 전무한테 아는 대로 자세히 설명 좀 해줘."
"네, 사장님."
홍진우 부장은 박전보에게 자신이 아는 대로 남김없이 설명했다. 끝까지 듣고 난 박전보의 소감은 간결했다.
'알맹이가 전혀 없어.'
미팅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서 사장님, 지금 라면 시장이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윤라면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성렬유통에 80억이나 주고 황비버섯을 구매하셨으니… 회장님이 이거 아시면 난리 납니다."
그룹 오너가 거론되자 서인모의 표정도 싸해졌다.
서해식품과 태양심이 서로 책임 전가를 시작하면, 오너는 태양심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서해식품도 우리 태양심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명색이 모회사 아닙니까, 모회사."
"알았네. 나도 온 힘을 다해 알아보지."
"잘 부탁합니다."
* * *
황비버섯라면의 기세는 멈추지 않고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느 편의점은 아예 라면 코너의 90% 이상을 황비버섯라면으로 채워 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비버섯라면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라면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면에 든 버섯이 목적인 사람들로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평소 값비싼 황비버섯을 마음껏 쓰지 못한 주부들은 이참에 한을 풀기라도 하듯, 라면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서 안에 든 버섯을 꺼내 저녁요리에 썼다.
"거창한 요리까진 필요 없어. 그냥 된장찌개, 김치찌개에 넣기만 해도 국물 맛과 향이 전혀 달라지는걸."
"우리 아이들도 엄청 좋아하더라고, 평소에 비싸서 거의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버섯 빼놓고 나중에 따로 라면만 끓여 먹어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거 같아. 맛이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이 가격에 이만큼의 버섯이 들어 있으면 정말 혜자지."
"근데 이 회사는 이렇게 팔아도 남기는 하는 거야?"
"남는 게 있으니까 이 가격에 파는 게 아닐까? 세상에 밑지고 파는 장사꾼이 어디 있어?"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야."
오히려 이런 점에서 소비자들은 빅 3 라면업체보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밑지고 파는 상인은 없다.
의심할 필요 없이, 너무 간결한 진리 아닌가.
* * *
"회사를 확장해야 해요."
정서희가 회의 중에 선언하듯 말했다.
전성렬은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스러워서 반문했다.
"너무 이른 거 아닐까?"
"이르긴요, 지금도 충분히 늦었어요. 회사 매출 올라가는 거 한번 보세요. 지금부터 확장 준비하지 않으면 내후년 장사 대비 못 해요."
"맞습니다, 사장님. 공장이 1년 만에 뚝딱 하고 지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공장만큼은 지금부터 확장해야 합니다."
경영회의에 참석한 공장장은 어느 때보다 강한 태도로 공장 확대를 주장했다.
"지금도 3교대 24시간 근무로 계우 생산량 맞추…… 아니, 맞추는 게 아니라 견디고 있습니다."
"지금 물량으로는 안 돼요. 여기저기서 제품 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어요. 일단은 공장부터 확대해야 해요.
지금 식품개발연구부서 설립이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정 부사장, 우리가 지금 여유 자금이 얼마나 있지?"
"초기 자본금 중에서 아직 200억원이 남아 있어요. 황비버섯라면을 팔아서 얻은 마진도 40억 정도 되고요."
라면 팔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40억이라니.
전성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격세지감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사옥 설립은 제쳐 두더라도 일단 제2공장은 지금부터 바로 알아봐야 할 거 같아요. 황비버섯라면이 우리 예상 이상으로 너무 대박이 터졌어요."
"공장은 꼭 새로 지어야 합니다. 지금 공장으로는 절대, 절대로 안됩니다."
"유통 창고에 재고가 쌓여 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오죽하면 유통업체에서는 우리가 홍보를 위해서 일부러 물량을 적게 푸는 줄 오해하고 있다니까요?"
"다들 잠시만 기다리게."
다들이라고 해봤자 정서희와 공장장뿐이다.
경영회의 멤버가 전성렬을 포함해서 겨우 셋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장장은 공장의 현황을 설명하기 위해 정서희가 이번에 특별히 호출한 것이고, 전성렬은 하수영에게 연락했다.
"하 사장, 아무래도 공장을 확장하든지 아니면 새로 짓든지 해야 할 거 같은데……."
-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