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48화
9장 답답해서 내가 뛰어? (3)
황비버섯라면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마트에 물량이 들어서는 순간, 정말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고 있었다.
전국의 각 마트, 편의점 등은 물량을 비축할 여유 자체가 없었다. 말그대로 진열하기 무섭게 팔려 나가고 있었으니까.
편의점 같은 곳에서는 직원이나 사장이 자기 돈으로 결제해서 물량을 사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만큼 시중에서 물량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프라임컴퍼니 라면 생산공장(구 JM식품 공장)은 눈코 뜰 새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장님, 1번 라인에 문제 생겼어요."
"뭐? 아니, 왜 하필 문제가 생겨도 이럴 때 생기는 거야? 다들 바빠 죽겠는 거 안 보여?"
"제, 제가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닙니다."
"알아. 1번 라인한테 하는 말이야."
생산 라인이 마치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며, 공장장은 짜증을 참았다.
지금 공장은 전 라인이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밤에도 쉬지 않고, 24시간 모든 라인이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돌려도 물량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공장장님, 이거 잘 팔려서 기분이 좋긴 한데, 파는 족족 우리 회사가 손해 보는 거 아닙니까? 황비버섯라면이 지금 시중에서 천 원에 팔리고 있잖아요."
"버섯값만 만 원 가까이 될 텐데, 이렇게 팔아서 정말 어떻게 손해를 메우려는 걸까요?"
"사장님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공장장도 생산직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비버섯이 얼마나 비싼 녀석인지 잘 알고 있기에, 만들어지는 라면을 볼 때마다 심경이 복잡했다.
'설마 시장부터 장악하고 나중에 가격 올리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소비자가 바보도 아니고, 제 가격을 받기 시작하는 순간 제품을 외면할 것이다.
다른 라면회사들이 바보라서 여태 그런 전략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우리는 그저 공장 생산 라인이 멈추지 않고 잘 돌아가게만 유지하면 돼."
"그렇긴 하지만…… 이러다가 회사가 일 년도 안 돼서 망해 버릴까봐 걱정돼서 그렇죠."
"우리 회사가 초기 자본금 빵빵한건 알고 있지만, 설마 그거 믿고 무모하게 돈 날려가면서 사업하려는 건 아니겠죠?"
"사장님들이 라면 시장에 경험이 전혀 없으니 혹시 그럴지도 몰라."
"그럼 안 되는데. JM식품에 넘어가려다가 연봉 인상 때문에 여기 남은 건데, 이렇게 일자리가 사라지면……."
"이거 정말 큰일이네. 대출도 아직 많이 남았고 우리 큰애가 이번에 대학 들어가는데……."
황비버섯라면이 광풍을 일으킬수록, 공장 직원들의 근심도 깊어져만 갔다.
* * *
"저 가격에 팔면 대체 개당 얼마나 손해를 보는 거야?"
"어디 보자. 예상 영업이익을 따져보면…… 대충 한 개 팔 때마다 60원씩 남는다고 보면 되겠네요."
정서희가 재무 차트를 정리해서 보여주며 설명했고, 전성렬은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하수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정서희의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마치 박물관에 견학 온 유치원생처럼 무관심해 보였다.
"지금까지 몇 개나 팔았죠?"
"지난 2주 동안 약 2,400만 개 이상 팔았습니다."
"그럼 대충 2,500만 개로 잡으면 우리한테 남는 이익이……."
"15억 원 정도 되겠네요."
"정 부사장, 그게 공장 운영비랑 영업비랑 판촉비, 인건비, 이것저것 다 제한 게 맞는 거죠?"
"네, 사장님. 맞습니다."
"겨우 2주 만에 15억 원의 이익이 남다니…"
이대로라면 한 달에 30억, 일 년이면 360억의 영업이익을 가져가게 된다.
정서희도 살짝 흥분해서 말했다.
"지금 기세가 제대로 불이 붙었어요. 이대로 가면 연간 영업이익 500억 원을 돌파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어디 보자. 연간 영업이익 500억원이면 매출이……."
"약 8,333억 원이죠."
"와, 조금만 더 하면 1조 찍겠는데?"
"올해는 이미 상당히 지나서 무리지만 내년에는 반드시 1조 원을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황비버섯라면 하나로 말이죠."
단일 품목의 라면 하나로 보자면 놀라운 수치였다.
기존 라면 시장의 강자인 태양심의 윤라면조차 단일 품목으로 연 매출 5,000억을 달성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매출 1조 원 가지고 되겠습니까?"
잠자코 듣고 있던 하수영이 마침내 입을 열었고, 두 사장과 부사장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정 부사장님."
"예, 사장님."
현재 정서희는 프라임컴퍼니에서 부사장직을 맡고 있기에, 하수영은 이제 부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리나라 작년 라면 시장 총매출이 얼마였죠?"
"2조 1, 474억 원입니다. 국내에서 팔린 모든 라면 매출을 집계한 거죠."
"1조 찍어봤자 시장 점유율 50%도 안 되는 거네요. 그렇지 않나요?"
"그렇죠."
"전 우리 황비버섯라면이 국내 시장의 95% 이상을 휩쓸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황비버섯라면 말고 다른 라면은 사람들이 손이 안 가는 그런 시장을 형성하고 싶어요. 두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혹시 너무 허황됐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전성렬은 선뜻 긍정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그래도 시장의 90%를 장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이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식품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기호가 있다 보니, 다양성의 측면에서 무리가 아닐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정서희가 바로 수긍하고 나서자 전 성렬은 조금 당황해서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여기서 나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시장에서 사려면 만 원을 줘야 하는 버섯을 넣어서 파는 라면이에요.
맛이나 구성면에서 다른 라면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아요. 이런 걸 놔두고 다른 라면을 굳이 사 먹는 소비자는 거의 없을 거예요."
"가끔 옛날에 먹던 라면 맛이 그리워서 어쩌다가 한 개 정도 사 먹을 순 있겠지만요."
"네, 그리고 우리 라면만 먹다가 그렇게 한번 다른 거 사 먹어 보면, 우리 라면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다른 회사 제품들은 우리 황비버섯라면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주는 계기만 되겠죠."
"우리가 국내 라면 시장계의 인텔이 됩시다. 윤라면은 그래도 전통이 있으니 AMD로 남겨두지요."
"근데 요즘은 AMD가 더 잘나갈 텐데요."
"아, 그래요? 언제 또 그렇게 바뀌었대."
"갓사 수 언니께서 대활약을 펼치고 계시는 중이거든요."
"뭐, 인텔이면 어떻고 AMD면 어떻습니까. 아무튼, 우리가 라면 시장계의 유일무이한 공룡이 되어봅시다."
하수영과 정서희는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고, 전성렬은 그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허우적거렸다.
"황비버섯라면 성공이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니, 이제 신제품연구개발팀도 본격적으로 꾸려봐야겠어요."
"그건 부사장님이 알아서 진행해 주세요. 저번에 보니까 식품 그쪽으로 인맥이 상당하시던데."
"네, 안 그래도 모셔오려고 제가 벼르고 있는 분들도 몇몇 있고, 구색은 금방 갖출 수 있을 거예요."
"아시겠지만 저희 라면만 만들어서 팔 거 아닙니다. 종합먹거리 기업으로 거듭나는 게 비전이에요. 그거까지 염두에 두시고 연구개발인력 꾸리셔야 합니다."
"네, 알고 있어요."
정서희는 야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성렬은 듣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조금 염려하던 마음이 없지는 않았는데, 회사가 예상 이상으로 순탄하게 잘 굴러가고 있지 않은가.
"다른 회사 라면들은 매출이 아무래도 줄었겠죠?"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윤라면 같은 경우에는 40% 이상 매출에 빠졌다고 하던데요."
"오, 윤라면이 그 정도면 다른 라면들은 볼 것도 없겠네요."
태양심의 윤라면은 국내 라면 시장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출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위의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는 절대 강자였다.
그런 윤라면의 매출이 40% 이상 떨어졌다면, 다른 라면들은 더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럼 우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겠네요."
"네, 맞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불안해하거나 대책 마련에 호들갑을 떨고 있지는 않은 분위기더라고요."
"아니, 왜요?"
하수영은 황당해서 반문했다.
지금 황비버섯라면이라는 절대 강자가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는데, 기존 기득권 경쟁자들이 손을 놓고 있다고?
정서희는 그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다들 우리가 밑지고 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밑지고 팔…… 뭐라고요? 아니, 세상에 밑지고 파는 장사꾼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사실인 걸요."
정서희는 웃음을 머금은 채 자신이 알아낸 경쟁 회사들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태양심은 물론이고 빅3 라면 회사들이 지금 크게 다르지 않아요. 우리가 신생업체다 보니 시장 장악을 위해 초반에 엄청 무리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초반 무리?"
"네, 출혈을 감수하면서 라면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인지도를 쌓은 다음에 가격을 다시 올릴 거라고 예측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다시 돌아설 테니, 결국 우리는 손해만 잔뜩 보고 망할 거라 여기는 거죠."
"헐."
하수영은 진심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그래도 매출이 몇천억 이상 찍는 회사들의 사고방식이 그것밖에 안 된다고요? 이해할 수가 없네요."
"우리가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봐요."
"얼마나 우리를 바보로 봤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전략을 쓸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신생업체니까 방심하는 거죠. JM 식품 구공장 인수한 것도 알고 있거든요. 그것도 불필요한 투자였다고 생각하나 봐요."
빅3 입장에서 JM식품 구공장 같은 매물은 처분이나 관리하기 난감한 계륵이었다.
그런 공장을 인수한 것부터가 그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우린 그냥 하루라도 빨리 사업을 시작하려고 인수한 것뿐인데, 그걸 또 그렇게 해석하네."
"원래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봐요. 특히 성공한 대기업들은 그런 경향이 더 심해요. JM식품도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정서희는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정재민 사장님은 경쟁 회사 경영진이 자기 회사를 훤히 염탐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어요. 그것도 매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요."
"그게 무슨…… 아!"
의아해하던 전성렬은 정재민이 JM 식품 오너이자 정서희의 부친이라는 걸 떠올리고 크게 웃었다.
하수영이 실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리를 무슨 산수도 못하는 돈 계산 바보로 보는 것 같아서 어이가 없고 조금 자존심도 상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좋은 점은 하나 있네요."
"좋은 점? 그게 뭔가?"
"당장 견제가 들어오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지금 우리는 파는 족족손해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많이 팔아치울수록 경쟁 회사들은 더욱 좋아할 겁니다. 자기들 매출이 줄어들어도 말이에요."
"아, 그렇군."
"원래 내가 잘되는 것보다 경쟁자가 거꾸러지는 거 보는 게 더 재밌거든요.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