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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44화 (44/1,270)

프랜차이즈 갓 044화

8장 라면 가게 한다면서요? (7)

"라면 가게 한다고 했었잖아요?"

만나자마자 정서희가 대뜸 내뱉은 말이었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중에 수정했는데요. 라면 가게 곧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고 말입니다."

"라면 제조회사가 어떻게 라면 가게하고 같나요?"

"결국 라면 파는 가게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지요. 안 그래요, 정사장님?"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하수영을, 정서희는 잔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자신감이 엿보이는 눈동자에, 정서희는 자신이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껏 젊은 남자들 앞에서 한 번도 이런 경험을 겪어본 적은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려 했지만, 희미하게 동공이 흔들리는 것은 참지 못했다.

"겨우 40억 원에 인수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운이 좋아서 저렴하게 사들였죠."

"JM식품 구공장이 워낙에 계륵이었으니까요. 사실은 저도 노리고 있던 매물이에요."

"아, 그러셨어요?"

하수영은 이 말에는 조금 놀랐다.

"왜 연락을 하셨는지 이제야 알 거 같네요. 사실 전혀 짚이는 게 없어서 당황하던 참입니다."

"제가 자꾸 생각나서 전화했을 수도 있죠. 아니면 본인의 매력에 자신이 없으신가 봐요?"

"자신감이야 태평양이지만, 제 매력이 정 사장님 마음 깊숙이 침투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모자랐다고 생각했거든요."

진지한 얼굴로 받아치자 정서희는 조금 당황했다가, 그의 입가에 떠오른 짓궂은 미소를 보고 농담임을 깨달았다.

하수영이 얼른 덧붙였다.

"느끼해하시라고 한 말은 아닙니다. 그냥 조크였습니다."

"……알겠어요. 제가 먼저 시작했으니 할 말은 없네요."

"아! 알 것 같아요. 정 사장님이 그런 멘트 날리면 보통 남자들은 당황하고 멘탈 흔들리고 그랬겠네요.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원하는 대답을 쉽게 얻어내는 화술을… 이야, 천상 사업가이십니다."

"아, 아니거든요!"

"뭐지, 그럼 그냥 순수하게 상대의 반응을 즐기신 건가……."

하수영이 혼잣말처럼, 하지만 충분히 들릴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중얼거렸다.

정서희는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최대한 표정을 다잡았다.

"죄송해요. 사과드릴게요."

"네? 사과할 일을 하셨나요?"

"……."

정서희는 냉수컵을 들어 조용히 마셨다.

어떻게 된 게 서해호텔에서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는 자신감 넘치면서도 예의와 유머를 잃지 않는 젊은 사업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뭔가 달랐다.

"아무튼 구공장을 원래 노리고 계셨다고요?"

"네, 저도 라면 사업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JM식품 구공장을 인수하는 게 가장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길이었죠."

"그건 저희와 같은 생각을 하셨네요."

"제가 훨씬 더 먼저 협상 중이었는데 기회를 뺏기고 말았어요."

"저런, 조건이 서로 너무 맞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게요. JM식품이 저한테는 190억을 불러도 안 팔려고 하더라고요."

"190억이라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전성렬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아니, 눈앞에 이 처자에게 그런 큰 돈을 독단으로 쓸 만한 역량이 있었단 말인가?

'대체 어느 집안 딸인 거야?'

부잣집 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보통 부자가 아닌 모양이다.

하수영은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정 사장님께 그만한 사업 자금이 있으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어요."

"제가 증여받은 자산이 좀 있어서요. 사실 집이 좀 부유한 편이에요."

"JM식품 오너 집안이 좀 부유한 정도는 아니죠."

"……원래 알고 계셨어요?"

정서희는 조금 놀라서 반문했고, 전성렬은 이번에야말로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아니, 눈앞의 저 처자가 자신들에게 공장을 판 그 JM식품 사장 핏줄이라고?

"JM식품이 바보도 아니고, 190억에 팔 수 있는 걸 40억에 팔 리가 없겠죠. 190억을 줘도 안 팔겠다고 한 거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마침 JM식품 사장님하고 성도 같으시네요."

"판단이 빠르시네요. 190억에도 안팔았다는 말 한 마디에 그렇게 바로 짚어내실 줄은 몰랐어요."

"눈치가 빠른 거라고 해두죠."

하수영은 깍지 낀 손을 탁자에 올린 채, 살짝 기지개를 켜듯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런데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뭔가요? 설마 구공장을 정 사장님께 190억에 넘겨달라는 말씀을 하러 오신 거라면……."

"그건 무리한 요구라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찾아온 것은……."

"매우 땡큐인데요?"

"네?"

"40억에 산 걸 190억에 되팔아 150억의 차익을 남긴다면 좋은 거 아닙니까?"

정서희는 잠시 당황해하다가, 이내 가늘어진 눈웃음을 보고 그가 농담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왠지 밉지 않은 약 올림에 정서희는 저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하려던 말을 마저 이었다.

"그럼 190억을 제시하면 정말 넘기실 건가요?"

"저야 땡큐지만, 갈 길 바쁘신 우리 동업자께서는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네요."

하수영은 은근슬쩍 바통을 넘겼다.

눈치로 알아차린 전성렬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조만간 법인 허가가 나옵니다. 지금 저희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땅 물색해서 매입하고 공장 세우고 직원 모집하고 가르치고… 어느 세월에 그걸 다 합니까."

"저도 알아요. 사실 저도 같은 이유에서 구공장을 가지려 한 거고요."

"집안에서 반대가 심하신가 보군요."

하수영이 말하자 정서희는 가만히 끄덕였다.

"네, 맞아요. 아버지께서 제가 사업에 뛰어드는 걸 아주 질색하시죠."

"이유를 여쭤도 될지?"

"그냥 제가 돈 많고 인품 좋은 남자 만나서 쇼핑이나 하면서 맘 편하게 살기를 바라신대요. 이유가 좀 우습죠?"

"딸 가진 아버지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겁니다. 저도 그랬던…… 아니, 그랬을 거 같네요."

"괜찮으시면 저도 귀사의 투자경영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덤덤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투자경영 참여라고 하셨나요?"

"네."

정서희는 간결하게 끄덕였다.

전성렬은 재빠르게 계산기를 돌렸다. 190억의 초기 자금이 수혈되면 사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지분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누가 봐도 황비버섯라면은 대성공을 이룰 게 뻔했으니까.

버섯의 재배단가를 1/50 이하로 낮춘 것만 해도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놀라운 경쟁력이었으니.

"저희 자본금이 165억 원입니다.

제가 65억, 여기 전성렬 사장님이 100억 원을 투자하셨죠. 지분 구조는 제가 51입니다."

하수영은 덤덤히 말을 꺼냈고, 정서희는 집중해서 들었다.

"누적 순이익 10억 원마다 전 사장님이 제게 지분 1%를 양도해서, 최종적으로는 90 대 10에서 멈추는 식으로 지분 협의가 되어 있어요."

"네?"

정서희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도무지 지금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돈을 훨씬 많이 투자한 전성렬이 49%에서 시작해서 최종적으로는 10%로 조정되는 조건이라니.

"혹시 하 사장님께서 파격적인 아이템 같은 걸 갖고 계신 건가요? 돈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게 뭔지는 말씀 못 드립니다. 일단 지금은 경쟁 관계 아닙니까. JM식품에 정보가 들어가서 좋을 게 없죠."

"……."

"100억 원을 투자하신다면 제 지분에서 5%를 보장해드릴 순 있습니다."

"그러시다면 그 파격적인 아이템이 뭔지 알려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곤란합니다. 솔직히 정 사장님 투자를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해서요."

"……."

정서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수영은 경직된 표정을 지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지어 보였다.

"충분히 생각해 보세요."

"그냥 콜하지, 왜 그랬나? 초기 자금 100억 원이면 절대 작은 게 아니야."

"저도 알죠. 근데 덥석 받기는 좀 아깝잖아요."

"지분 나누기가 아까워서?"

"상대가 정서희 사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뭐니 뭐니 해도 JM식품딸이자 마케미야 사장님이 아끼는 조카 아닙니까."

다른 인물이 100억을 들이밀면서 투자참여를 제안했다면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황비버섯라면을 성공할 수밖에 없으니까. 굳이 지분을 나눌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정서희는 라면식품사업, 그리고 앞으로 벌일 다른 사업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

"그래도 몇 번은 조심스럽게 튕겨줘야 더욱 몸이 달아서 진득하게 달라붙기 마련입니다."

"아, 그걸 노린 거군."

"부디 정서희 사장이 미끼를 잘 물었으면 좋겠는데요."

"워낙 야무져 보여서 쉽지는 않을 거 같네만."

"야무지니까 오히려 잘 물 겁니다. 고수라서 제가 뭘 바라는지, 어떻게 해야 서로 윈윈일지 잘 알아들을 거 고요."

"고수인가?"

"네, 눈치 고수 같던데요."

* * *

'100억에 5%라고?'

최종적으로는 65억을 투자한 하수영이 85%, 각각 100억을 투자한 전 성렬과 자신이 10%, 5%를 나눠 갖는 모양새가 된다.

하수영이 어지간히 특별한 아이템을 적용하지 않은 이상 말도 안 되는 조건이다.

정서희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하수영에 대한 것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철에 무관하게 송이버섯이 나는 산을 갖고 있고, 서락산에서는 황비버섯을 재배하고 있고, 그리고…… 잠깐? 황비버섯?'

정서희는 부랴부랴 여기저기 연락을 취해서 성렬유통에 관한 것을 조사했다.

"뭐? 성렬유통이 서해식품에 황비버섯 100톤을 팔았다고? 그만한 물량이 있단 말이야?"

정서희는 멍한 표정으로 통화를 끊었다.

무언가 잡힐 듯 말 듯 간질거리는 느낌이 눈앞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불현듯 하수영을 호텔에서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맞아. 그날 서해호텔에서 장효주와 미팅이 있었다고 했지?'

CF 계약 성사 미팅이라고 들었다.

정서희는 다시 재빨리 연락을 돌려, CF를 제작하기로 한 회사를 알아냈다.

이번에는 한결 쉬웠다. 그 회사에 마침 지인이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서희는 얼른 지인한테 전화를 걸어 자세한 사정을 캐물었다.

-장효주? 무슨 라면 광고를 찍는다고 했어. 잠시만 기다려 봐. 내가…… (저기, 박 대리. 장효주 씨가 찍는다는 그 광고 있잖아……중 략… ) 아, 서희야. 지금 물어봤는데 황비버섯라면 광고래.

"황비버섯라면?"

-응, 그렇다던데?

정서희는 등줄기에 전기가 찌르르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도 라면을 끓일 때 무조건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넣는다.

그러면 평범한 인스턴트라면도 극상의 맛을 지닌 진미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하지만 황비버섯라면을 인스턴트라면 상품으로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제품을 만들려면 한 봉지당 1만 원 이상은 받아야 할 테니까.

'서해식품에 100톤을 한 번에 팔았다고…….'

무수한 생각과 추측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 순간 그녀는 하수영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네, 하수영입니다.

"할게요,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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