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43화
8장 라면 가게 한다면서요? (6)
"암, 서울에서 내려온 놈들은 다 도둑놈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이 마을을 일구고 지켜왔는데, 슬그머니 땅이나 사서 눌러앉을 생각만 하고 말이야."
"맞습니다요. 최소한의 발전기금은 내는 게 도리죠. 어찌 공짜로 눌러 앉을 생각만 하는지. 다들."
"이런 아름다운 마을이 거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줄 아는 거죠. 죄다 도둑놈들이에요, 도둑놈들."
박충원은 일일이 버섯의 무게를 재어서 확인했다.
"98킬로그램이구먼."
"그럼 980만 원인가요?"
"그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여. 내일 농협에 가서 내다 팔아야겠어. 황금비단우산버섯은 전수 매입이니까 돈도 그 자리에서 받을 수 있을 거여."
"저번에 내다 팔고 850만 원을 받았으니까…"
"누구 셈 빨리 되는 친구 없나? 자네들, 그 정도도 셈 못 혀?"
박충원이 혀를 차며 바라보자 남자 한 명이 허둥지둥 전자계산기를 찾아 숫자를 두들겼다.
"1,830만 원입니다요, 이장 어르신."
"대충 한 번만 더 하면 철조망세는 걷었다 퉁칠 수 있겠어. 조금 넘기야 하겠지만…… 철조망세도 안 내려고 버텼으니까 그 정도는 산주가 감수해야지."
철조망세로 요구한 금액이 2,000만 원이니, 한 번만 더 하면 그 금액은 달성할 수 있다.
남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장 어르신, 그럼 다음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버섯 서리 안 하는 겁니까?"
"서리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이건 정당한 자력구제라네, 자력구제. 자력구제란 말 몰라?"
"죄송해요. 제가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모릅니다요."
박충원은 헛기침을 한 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자네들은 산주 할매가 괘씸하지 않나?"
"에이, 많이 괘씸하지요."
"언제부터 서락읍에서 자기 땅에 철조망을 치고 남이 못 들어오게 하고 그랬나요? 서락산이 최초지요, 최초."
"이번에 오랜만에 동생이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철조망 보더니 입을 떡벌리며 놀라더랍니다. 언제부터 서 락읍 인심이 이렇게 각박해진 거냐고 말입니다."
"서울 산주 할매가 아주 그냥 우리 서락읍 이미지를 죄다 망쳐놨어요, 망쳐놨어."
괘씸하지 않느냐는 말에 다섯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아 외치며 동조했다.
박충원은 다시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당연히 그런 괘씸한 양반이 반성할 때까지 우리가 자력구제를 해야 하지 않것나?"
"그렇네요."
"맞습니다. 그 생각을 못 했습니다."
"아, 산주 할매가 두 손 모아 싹싹빌고 용서를 빌 때까지 혼을 내주면 되는 거군요. 역시 이장 어르신의 말씀이 옳습니다요."
다섯 남자들의 찬사를 들으며, 박충원은 흐릿하게 웃었다.
'1,2주에 한 번 꼴로 버섯을 재배하고 있으니…….'
천만 원 가까운 거금을 1, 2주에 한 번씩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명목은 마을 발전기금이지만, 박충원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널리 알릴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마을 발전기금을 관리하는 것은 자신이기에, 들통이 날 일도 없다.
"자, 날 밝는 대로 얼른얼른 움직여야 하니 자네들도 어여 들어가서 눈 좀 붙여."
"예, 이장님."
"그리고 서락산 집 근처에 거름은 왜 갖다 놨나? 심보 고약한 산주할매도 없는데 말이야."
"제가 안사람 시켜서 했습니다. 그 문지기가 하는 짓이 영 마음에 안들어서요."
"갸도 알고 보면 불쌍한 친구여. 달에 80만 원 받아서 서울 왔다 갔다 하면서 저택 관리하면 남는 게 있겠나? 정말 밥만 겨우 먹고사는 친구여."
"그런가요? 그럼 거름은 ……."
"그래도 일단은 놔둬. 그 친구도 우리 서락읍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아야 산주 할매한테 애걸을 하든 뭘 하든 해서 움직이게 할 게 아닌가."
"아, 그렇군요! 그건 생각 못 했습니다."
"일단은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는 놔두게. 그렇다고 추가로 더 뭘 하지는 말고, 그 친구도 불쌍하니까."
"알겠습니다, 이장님."
늦은 밤, 다섯 남자들은 버섯을 그대로 마을 회관에 놔둔 채 각자 집으로 자러 갔다.
그들은 하수영이 서락산에서부터 뒤따르며 몰래 촬영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수영은 영상이 제대로 기록된 걸 확인하며 산기슭 저택으로 돌아왔다.
"역시 숙성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단 말이지."
끝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이 오히려 커지는 법.
하수영은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예 한 일 년 정도 푹 숙성을 시켜볼까? 아니야, 그러다가 돌발 변수가 생기기라도 하면 곤란해. 초장에 제대로 잡아놔야 두고두고 편할테니…"
그날 하수영은 박충원 일당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는 꿈을 꿨다.
물론 꿈에서 그는 단호하게 몽둥이로 내려쳤다.
* * *
어쩌다 보니 여태 회사 이름도 짓지 않았다.
회사를 차리기 위해 공장 인수 계약을 하고, 사옥으로 쓸 건물도 알아보고, 사원도 모집하면서, 정작 법인 등록 신청은 미뤄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회사명을 정하기로 했다.
회사명을 짓는 것은 당연히 전성렬과 하수영의 공동 권한이었다.
하지만 전성렬은 하수영에게 적극적으로 양보했다.
"어차피 최종적으로 내 지분은 10% 밖에 안 될 텐데, 자네가 짓는 게 낫지."
"어차피 저는 회사 경영에는 발을 안 들이밀 건데, 사장님이 지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평생 무슨무슨 기업 전성렬 사장, 무슨무슨 그룹전성렬 회장, 이렇게 달고 사실 텐데요?"
"음……."
"제가 어디 가서 무슨무슨 기업 대주주 하수영이라고 저를 소개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장님께서 지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솔직히 전성렬은 조금 솔깃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욕망을 꾹 눌러 참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었던 것이다.
"아니야. 그래봐야 월급쟁이 사장 노릇이나 할 텐데 주인이 원하는 이름을 지어야지."
"사장님도 주인이십니다. 49%만큼 주인이시죠."
"결국 나중에는 10%로 떨어질 거 아닌가."
"그래도 10%도 주인은 주인 맞죠."
"됐어. 난 정말 괜찮으니까 자네가 원하는 이름을 짓게. 너무 이상한 이름만 아니면 난 뭐든지 수용하겠네."
하수영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작명 자체가 골치 아파서는 아니었다.
"갑자기 웬 한숨인가?"
"사실 미리 생각해 둔 이름이 있긴 합니다."
"그래? 자네 마음에는 별로 안 드는 건가?"
"아뇨, 마음에 아주 쏙 듭니다. 오죽하면 제가 하는 온라인 게임 길드이름으로 지었겠어요."
"온라인 게임 길드? 하 사장 자네 게임도 하나?"
"그럼요. 제가 길드장이기도 한 걸요. 아, 지금은 접은 지 좀 됐어요."
"난 아무래도 상관없네만, 그래서 그 이름이 뭔데?"
"프라임입니다. 프라임컴퍼니로 하고 싶네요."
"나쁘지 않은데? 근데 왜 그렇게 뜸을 들인 건가?"
"사실 길드원들 사이에서 트러블이 한 번 크게 있어서 해체했거든요.
그래서 그 이름을 써도 되나 하고 조금 망설인 거죠. 괜히 부정 탈까봐서요."
전성렬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상관없을 거 같은데?"
"그래요?"
"일단 어감이 좋아. 그리고 게임길드명이라며? 회사 이름하고는 무관하지. 그리고 한 번 해체했었다면 오히려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갈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럼 정말 그 이름으로 할까요?"
"그렇게 하세. 프라임컴퍼니, 프라임 그룹, 난 왠지 마음에 들어. 그럼 나중에 그룹 체제가 되면 프라임홀딩스가 되는 건가?"
"뭐, 그럼 이름은 그렇게 가죠. 사실 이름 가지고 부정 타니 마니 하는 건 다 미신이죠."
"맞네. 미신이지."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프라임 사장님."
"어이구.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프라임 대주주님."
그렇게 사명은 프라임컴퍼니로 간단하게 결정되었다.
"유일한 회사라…… 그나저나 라면 회사 이름치고는 너무 거창한데."
"겨우 라면회사가 아니죠. 장차 전 세계 식품업계를 장악할 먹거리 기업이 될 건데, 사명에 이 정도 포부는 담아야죠."
"다른 기반 절차는 다 마쳤으니, 이제 법인 등록 신청만 하면 끝이군, 공장 소유권 이전 작업도 법인 이 나오면 그때 마무리 진행하면 될 거 같고."
"수고하셨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고 힘 좀 많이 쓰셨겠어요."
"아니야. 결국 날 위해서인데 뭘. 하 사장 자네도 버섯 재배하느라고 고생 많았잖나."
오히려 전성렬은 하수영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많은 버섯 물량을 혼자 재배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배 과정이 얼마나 간단하게 이뤄지는지 알면 억울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CF가 아주 제대로 잘 나왔던데."
"그래요? 전 아직 못 봤습니다."
"자네한테 메일 안 왔어?"
"확인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다른 것도 체크해야 할 게 많았거든요."
"뭐 때문에 그리 바빴나? 광고주가 CF 결과물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할 정도였나?"
"네, 청담동 매물 시세 체크 좀 하느라고요."
"……."
전성렬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풀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 사장, 자네는 참 좋겠어. 벌써부터 꿈을 꾸며 두근거리고 있으니 말이야."
"에이, 사장님도 이제 본격적으로 꾸고 계시면서 뭘 그러십니까."
"좋아, 우리 사이좋게 꿈을 이뤄보자고."
"네. 사장님은 세계 최대의 식품그룹회사를 차리고, 저는 청담도 최고의 건물주가 되어보자고요."
"왜 청담동에만 안주하려고 하나? 세계 최고의 건물주는 자신이 없는 건가?"
"스케일이 일정 이상 커지면 피곤해지더라고요.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전자산업이나 방산산업, 에너지산업같은 것은 쳐다도 보지 않는 게 속편히 사는 거라고요."
"흐음."
"그거랑 같은 맥락입니다."
전성렬은 대강 납득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으니.
하수영이 품은 꿈의 색깔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물론 규모는 전혀 소박하지 않다.
본격적인 회사 설립을 앞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별안간 하수영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하수영이 난감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이런……."
"누군데 그러나?"
"정서희 사장 아시죠? 저번에 마케미야 사장님하고 같이 봤었던."
"아, 그 아가씨. 정말 대단한 미인이었지. 근데 그 아가씨한테서 전화가 오면 안 되나?"
"전화가 올 일이 없거든요."
"그게 왜 문제가 되나? 올 일이 없어도 올 수가 있는 거지."
"충분히 문제가 되죠. 저의 통상적인 경험으로 이럴 때는 저한테 뭔가 바라는 게 생긴 거거든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외모 좋고 몸매 좋고 집안 좋고 머리 좋고, 그런 남부러울 것 없는 미인이 갑자기 전화를 걸었다면, 그만한 뭔가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절대로 작진 않겠죠."
"듣고 보니 그렇군. 그럼 안 받을 건가?"
"받아야지요. 그래도 우리 가장 큰 해외 고객님께서 아끼시는 조카딸인데요."
하수영은 전화를 받았다.
벨이 제법 울린 뒤에 받은 터라 일단 예의를 차렸다.
"네, 하수영입니다. 늦게 받아서 죄송합니다. 핸드폰이 좀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실례지만 하수영 사장님, 잠깐 뭘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인수하신 JM식품 구공장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잠시만요."
하수영은 마이크 부분을 막은 채 전성렬을 돌아봤다.
"라면공장 인수한 것 때문에 할 말이 있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