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42화
8장 라면 가게 한다면서요? (5)
"아버지,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이러려고 저한테 신어 권능을 주입한 게 맞으시죠?"
-잔소리? 이놈아, 대체 애비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느냐.
"아버지가 뒤뜰에 맨날 혼자 서 계시려니까 많이 외로우신가 보다, 하고 이해할게요. 잔소리에 시달려야 하는 건 훌륭한 효자의 기본 소양이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다, 아들아!
"일단 지금 이 아들은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버섯 농장에 들러야 하거든요. 오늘도 부지런히 버섯을 재배해야지요."
하수영은 이른 아침 안개를 헤치고 산을 올랐다.
산 중턱에 다다른 하수영은 황금비단우산버섯 농장에 도착했다.
저번에 2차 수확을 마친 밭은 텅비어 있었다.
하수영은 밭 구석 끄트머리에 남겨 둔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찾았지만, 그곳도 텅 비어 있었다.
"역시."
-무슨 일이냐?
"제가 저번에 2차 수확 하면서 일부러 버섯을 아주 조금 남겨뒀었거든요. 가로세로 3미터 정도요. 그런데 지금 하나도 없네요."
-멧돼지들이 다 와서 먹었나?
"이 산에 멧돼지 없는 건 확인했어요. 확인해 보면 알겠죠."
하수영은 곧바로 농장을 비추는 고화질 CCTV 영상을 확인했다.
CCTV는 높은 곳에 잘 은폐돼 있어, 작정하고 찾아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였다.
컴퓨터에 저장된 영상을 재생한 하수영은 몇 명의 남자들이 황금비단 우산버섯을 열심히 캐서 가방에 쓸어 넣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도둑이 훔쳐갔어요. 예상대로예요."
-헐, 너 여기 산 아래에 펜스 치지 않았니?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거냐?
"공사야 다 끝났죠. 근데 일부러 쪽문 하나는 열어놨어요."
-아니, 왜?
"도둑의 얼굴을 확인하려면 도둑이 드나들기 쉬운 길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수영은 열어둔 쪽문 쪽에 있는 CCTV 영상도 확인했다.
그쪽은 더욱 선명하게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는 얼굴이네요."
-누구냐?
"마을 주민이에요. 못된 친구들이지만 사실 심성은 착한데 마을 규범 어기는 것은 절대 못 보는 사람들이 죠."
-못된 친구들인데 심성이 착하다는 건 대체 무슨 참신한 개소리냐?
"그게 이 마을 정서랍니다."
다행히 밭에 있는 작업장 컨테이너는 습격당하지 않았다. 워낙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 덕분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엘릭서는 컨테이너에 보관하지 않고, 양식 재배를 위한 황금비단우산버섯만 조금 남겨 놨다.
하수영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잘게 해체한 다음 가져온 엘릭서에 담갔다.
그리고 씨를 뿌리듯 4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밭에 잘게 쪼갠 황금비단 우산버섯을 부지런히 뿌렸다.
"어디 보자, 지금이 아침 7시니까…… 이따 오후에 인부들 불러서 채취하면 되겠네."
점심 이후에 버섯 포자를 뿌리면, 한밤중은 되어야 채취가 가능할 정도로 성장한다.
하지만 한밤중에 작업을 할 수는 없으니,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제 도둑들이 알아버렸으니 밤새도록 버섯을 방치하고 있을 순 없지."
하수영은 곧바로 전성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오후에 버섯 채취하게 사람이랑 차량 보내세요.]
[알았네.]
버섯 투사를 마친 하수영은 뿌듯한 마음으로 농장을 둘러보다가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박충원을 찾아갔다.
그는 마침 지인들과 함께 휴대용 가스버너로 전골 요리를 먹고 있었다.
"어, 서락산 문지기 총각 왔는가?"
박충원은 반갑게 하수영을 맞이했다.
하수영은 힐끔 전골 요리를 살폈다. 고기와 야채, 그리고 버섯이 가득한 산채 전골 요리였다.
"식사는 했나? 자네도 조금 들 텐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라면 세 봉지 끓여 먹어서 배가 너무 부르네요. 저는 괜찮습니다."
"어이구, 젊은 총각이 무슨 아침부터 라면이나 끓여먹고 다니나. 그래서 어디 힘을 쓰것어?"
"박봉이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껴가면서 살아야지요."
하수영은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녹음기를 켰다.
"박충원 이장님, 철조망세로 마을에 발전기금 2,000만 원을 낼 수 없다는 게 산주 뜻입니다."
"허어, 그 서울 할매는 정말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이로군. 아니, 그 나이 먹도록 어울려 사는 게 뭔지 배우지도 못했단 말인가?"
"아무튼 전 산주 뜻을 전했으니 이만 물러갈게요. 식사들 맛있게 하십셔."
하수영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중하게 그들 앞에 머리를 숙여 보인 뒤, 등을 돌렸다.
-아들아, 내가 봤는데 저거 황금비단우산버섯 아니냐? 전골에 잔뜩 넣어서 먹는 거 같던데.
"맞아요."
-그럼 저놈들이 도둑인 거 아니야? 시골 노인네들이 비싼 황금비단 우산버섯을 무슨 대파 넣듯이 넣어서 먹는대?
"CCTV에는 안 찍혔어요. 한패이거나 주동자일 수는 있겠네요."
-그런데 왜 그렇게 깍듯하게 구는 거냐?
"아버지, 응징에는 충분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숙성을 기다리며 인내심을 소비하는 대신 달콤한 상상을 만끽할 수 있죠."
-음, 그건 인정한다.
서락산 저택으로 돌아온 하수영은 정문을 들어서다가 불현듯 멈춰 섰다.
"어디서 묘한 냄새가 나네요. 이거 거름 냄새인가?"
하수영은 저택 옥상에 올라가서 주변을 살폈다.
"아, 저건가?"
저택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거름산이 제법 쌓여 있었다. 문제는 주변에 이렇다 할 텃밭 같은 것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의미 없이 거름을 쌓아둔 것이다.
"딱 풍향 받기 좋은 곳에 쌓아뒀네요."
-이게 요즘 핫하다는 그 시골 인심이라는 거구나.
"산주 할머니 여기 안 사는 거 뻔히 아는데, 저건 저더러 엿 먹으라고 해놓은 거네요. 저번에 술 먹고 깽판 부린 건 벌써 잊었나 봐요."
-어떻게 할 거냐?
"아버지, 자고로 응징에는 충분한 숙성을 거쳐야……."
-알았다, 알았어. 프랜차이즈 갓 애비 복장도 잘 터뜨리는 놈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하수영은 저택에서 낮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녔더니 아무래도 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후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자 하수영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하품을 하며 밖을 나서자, 저 멀리서 우렁찬 엔진음과 함께 트레일러들이 줄을 이어 달려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보낼 줄 알았는데, 전 성렬이 직접 왔다.
"바쁘신 분이 왜 이 먼 곳까지 직접 오셨어요?"
"어허, 이거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우리를 먹여 살릴 젖줄 아닌가, 젖줄."
라면식품업의 성공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의 공급에 달려 있으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단순 업무는 이제 다른 사람 좀 시키고 그러세요. 미래의 그룹 회장님이 이런 거까지 일일이 신경 쓰시면 어떡합니까."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군. 근데 자네가 안 하고 왜 내가?"
"전 대주주 겸 건물주를 하겠습니다."
전성렬은 피식거리며, 인부들을 지휘해서 황금비단우산버섯을 긁어모았다.
4만제곱미터 가량 되는 밭에 버섯들이 밀도 있게 뭉쳐 있기에, 채취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저번처럼 그때 거기에는 버섯그대로 남겨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수영이 저번과 동일한 지시를 내리자 전성렬이 물었다.
"또 미끼인가?"
"네, 그렇죠."
"저번에 남겨둔 미끼는 잘 물리던가?"
"아주 효과가 좋던데요? CCTV에도 생생하게 잡혔습니다."
"그래서 쪽문 하나는 일부러 개방해둔 거군."
"진입로를 열어두면 쉽게 증거를 확보할 수 있죠. 철조망 훼손도 막을 수 있고요."
철조망 훼손을 막는다는 말에 전성렬은 소리 없이 웃었다.
"바로 움직이진 않고?"
"한두 번으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열 번 이상은 잡혀야 상습 절도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나는 건 미리미리 막아야지요."
"거기까지 생각해서 참는단 말인가? 하 사장 자네도 참 무서운 사람이야."
전성렬은 조용히 혀를 내둘렀다.
어느덧 채취 작업이 다 끝났다.
이번에도 가로세로 3미터 정도 되는 면적에 일부러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남겨놓았다.
"오늘 밤에 또 밤손님들이 오겠네요."
"트레일러가 들어왔으니까?"
"네, 마을에서도 봤을 겁니다."
하수영의 표정은 여간 즐거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자네, 꼭 도둑 잡는 걸 즐기는 거 같아. 보통은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말이야."
"원래 쥐새끼를 잡으려고 덫을 놓아둘 때가 가장 설레고 두근거리는 법입니다. 그런 걸 즐길 줄 알아야 해요. 스트레스받고 그러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죠."
전성렬은 트레일러와 인부들을 거느리고 다시 서락읍을 떠나 서울로 돌아갔다.
하수영은 정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저택으로 향했다.
오늘 밤 찾아올 도둑들은 일부러 열어놓은 쪽문을 깜빡한 것으로 알것이다.
기지개를 켠 하수영은 노트북을 켰다.
청담동 매물도 살펴봐야 하고, 라면제조를 위한 사업 공부도 해야 했다. 할 게 많았다.
-아들아.
"네, 아버지.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해요."
-오늘 엘릭서를 전혀 안 먹더구나.
"……아참."
-얼른 먹어야지?
하수영의 안색은 낭패감에 일그러졌다.
아버지가 잔소리를 하다 보니 이런 일까지 생겼다.
'부들부들거리고 싶은 기분이네."
하수영은 할 수 없이 엘릭서가 담긴 병을 꺼내서, 그 안에 담긴 엘릭서 한 방울을 삼켰다.
"끄아아아악!"
곧 온몸의 세포가 타오르는 듯한 작열감이 그를 덮쳤고, 하수영은 고통에 몸을 떨다가 기절했다.
하수영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기다렸다는 듯이 은하신목이 말을 걸었다.
-오늘따라 비명 소리가 아주 찰지 더구나. 엘릭서가 제대로 몸에 받는 모양이다.
"으…… 그러게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간만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욱신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킨 하수영은 창밖을 내다보다가 불현듯 어둠에 휩싸인 서락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희미한 불빛 몇 개가 산 위쪽을 향해 오르는 게 보였던 것이다.
"밤손님이 드디어 온 모양이군요."
* * *
"우와, 이게 다 얼마여, 얼마?"
산의 버섯농장에 오른 다섯 명의 남자들은 가로세로 3미터 가량 되는 곳에 자라난 버섯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이게 킬로당 10만 원은 너끈히할 걸?"
"내일도 포식하겠구먼."
"어서 싸게싸게 챙기자구.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여."
다섯 남자들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버섯을 긁어모아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부리나케 산을 내려왔다.
"문지기 친구도 참 바보로구먼. 비싼 돈 들여서 펜스 쳐놓으면 뭐하나. 이렇게 쪽문 하나를 열어놓으면 다 소용없지."
"달에 80만 원 받는대잖어. 제대로 관리할 마음이나 있겠어? 그냥 빈둥빈둥거리는 거지."
다섯 남자들은 히히덕거리며 도로를 걸어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마을 회관에는 이미 박충원이 불을 켜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잘들 다녀왔나?"
"예, 이장 어르신, 여기 모두 캐왔습니다."
다섯 남자들이 가방에 가득 담긴 버섯을 보여주자 박충원은 한껏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서울 할멈, 이러려고 서락산사서 눌러앉으려고 했던 거구만. 말년에 편히 자연 벗삼아 살겠다는 거, 전부 다 거짓말
"역시 서울 사업가들은 믿으면 안됩니다. 우리 마을에 빨대 꽂을 생각밖에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