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40화
8장 라면 가게 한다면서요? (3)
"신들만 먹을 수 있는 엄청 맛있는 신의 물고기 뭐 그런 건 줄 알았는 데, 그냥 신의 언어요?"
하수영은 심드렁하게 반응했고, 은하신목은 다시금 나뭇가지를 부르르떨었다.
-그래, 신의 언어! 신의 권능이 담긴 언어를 너에게 전수해 주마.
"제가 아직 인간의 몸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신의 언어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청담동 건물주가 되는 데는 별로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저거 잘못 배우면 자칫하다가 나중에 신선이라도 되는 거 아냐? 으, 끔찍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하지만 신어는 그 한계와 끝이 없는 주신의 절대고유권한, 영겁의 세월을 공부하고 수련한다 하여도 끝을 보지 못할 것이다.
"헐, 말만 들어도 현기증 나네요. 아버지, 제가 고졸이란 걸 잊지 말아주세요. 공부하기 싫어서 대학 진학도 포기한 몸인데 그런 어려운걸……."
-어렵지 않아. 끝이 없을 뿐이라고 했지.
"그게 그거 아닌가요?"
-아무튼 넌 오늘부터 신어를 배워야 한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배우고 갈고 닦고 해도 십 년 후에 차 한 잔이나 제대로 끓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니까. 알았느냐?
"그 정도로 어려워요? 와……."
-네놈이 밖에 쏘다니느라 잘 찾아 오지도 않으니까 내가 어쩔 수 없이 신어부터 가르치는 것 아니겠느냐.
"그게 무슨 상관이죠?"
-신어를 일정 부분 배우면 너와 내가 서로 떨어져 있어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제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 신어라는 걸 가르치시려는 거죠?"
하수영은 은하신목의 나뭇가지가 순간 경직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잔소리하려고 가르치시려는 거 맞네. 어휴, 아버지도 참."
하수영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어쩌겠는가. 효자답게 효도 한번 해야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성심을 다해 배울게요."
-흠흠, 쉽지 않은 길일 것이다. 신어라는 것은 말이다. 나중에 숙달되면 말 한 마디로 행성도 창조해낼 수 있단다. 신급 경지에 도달하면 그렇게 되지.
"그럼 주신급에 도달하면 어떻게 되나요?"
-당연히 말 한 마디로 은하도 창조할 수 있게 되지. 신급 경지와는 차원이 다르단다.
"그럼 우주를 창조하려면 어느 정도 경지가 되어야 하나요?"
"어, 설마 아버지 말 한 마디로 우주를 창조하지는 못하시는 건가요? 주신 아니었어요? 주신이잖아요? 설마 주신 위에 창조신이라던가 그런 윗단계가 따로 있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냐! 주신이야말로 가장 최고이자 유일하며, 근원인 신이다!
"역시 아버지도 주신이라는 단어가 입에 착착 감기시는 거 맞죠?"
-아니아니, 프랜차이즈 갓! 프랜차이즈 갓이야말로 최고이자 유일한 근원의 신이란 말이다! 그 이상은, 위는 없어!
"찔리세요? 왜 이리 흥분하세요, 아버지?"
-찔리다니! 흥분하다니! 그런 적없다, 없어!
"진정하세요, 아버지."
-내가 진정할 게 어디 있냐! 흥분한 적이 없다니까!
"네. 그러니까 고정하세요, 아버지."
나뭇가지가 파르르 떨린다.
어지간히 분함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하수영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난 효자니까 늙으신 아버지 건강생각해드려야지. 아, 근데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아바타잖아?'
그래도 아버지의 분신 같은 존재니까 아버지를 대하듯이 깍듯하게 대하는 게 맞다.
자고로 부모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부모가 아니라 스승이었나? 뭐, 아무튼…'
"아무튼 저는 효자니까 열과 성을 다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그 신어 학습은 뭐부터 시작하면 되나요?"
-어흠, 잘 듣거라. 신어란 말이다.
본래 세상과 법칙을 창조하기 위한 권능을 언어로 나타낸 것으로서, 근원력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전능함이자…… 중략… 은하, 별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을 말 한 마디로 창조할 수 있으며… 중략… 그럼 이제 시작하자꾸나. 그만 일어나거라.
"저 안 졸았습니다, 아버지."
-인석아, 입에 침이나 닦고 변명하거라. 됐으니까 어서 일어나서 준비나 해.
하수영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하신목의 모든 나뭇가지 끝이 일제히 파르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수영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본격적인 빛의 변화였다.
-긴장하지 말거라. 몸과 마음을 편하게 가지거라.
"긴장 안 했는데요?"
-그러니까 그렇게 너 자신을 속이려고 하지 말거라. 너무 긴장하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뭐가 잘못되기라도 하나요? 설마 죽거나 그런 건 아니죠?"
-죽을 수도 있다.
"아, 아버지!"
-내가 속이 터져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긴장 안 한 척 연기하지 말거라.
'정말 긴장 안 했는데'
하수영은 다소 가늘어진 눈으로 은하신목을 주시했다.
푸르스름한 광채는 어느덧 은하신 목 전체를 뒤덮고 있어, 신비한 휘광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백, 수천 가닥으로 뻗어 나온 빛의 선이 허공에 문양과 그림을 이루며 기하학적인 기호를 맺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빛의 마법진이었다.
아니, 마법 그 이상의 차원에 속하는 전능한 힘이었다.
빛의 문양이 그대로 하수영을 감싸듯이 덮쳤고, 시야가 하얗게 반전되었다.
몸을 꿰뚫었던 뜨거운 기운이 미약해지자 하수영은 천천히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의 경험이 꿈이었던 것처럼, 모든 풍경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버지, 끝난 겁니까?"
-그렇단다, 아들아. 영원한 힘을 접한 기분이 어떠냐?
"제 앞에…… 그냥 아버지 아바타만 보이는데요?"
-아무 느낌이 없어?
"네, 전혀요. 뭐 하시긴 한 거 맞죠? 그냥 불꽃쇼만 한 거 아니죠?"
-이상하네. 가장 기초적인 수준만 주입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통 이 자리에서 산 하나 정도는 말 한 마디로 뚝딱 빚어내는 게 정상인데.
"한번 해볼까요?"
하수영은 자세를 바로잡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담벼락 밖에 있는 빈 공터를 향해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솟아나라, 바위산!"
-…….
"솟아나라, 바위산! 바위산! 어서 솟아나라고!"
-뭐가 잘못된 거지? 이럴 리가 없는데.
"솟아나란 말이야, 바위산! 아니, 그냥 작은 바위라도 좋으니 빨리 생겨나라고! 어서!"
하수영은 몇 차례 시도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 후 지친 표정으로 은하신목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대로 하신 거 맞아요?"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은하신목이 다시금 광채에 휩싸였다.
빛은 동기화를 이루듯이 하수영의 온몸을 감싼 채 안을 향해 파고들었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며, 은하신목의 나뭇가지 끝이 갸우뚱거리 이리저리 흔들렸다.
-신어의 권능은 제대로 주입됐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확실히 들어갔어.
"그럼 왜 안 되는 거죠?"
-기다려 보거라. 주신, 아니, 프랜차이즈 갓 생활을 한 게 1조 년이 넘었지만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구나.
"와, 정말 오래도 사셨네요."
은하신목은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든 듯한 모습에, 하수영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음…… 짐작 가는 게 딱 하나 있구나.
"뭐죠?"
-소양 부족이다.
"…네?"
-너의 정신적 소양이 신어의 권능을 제어하기에 아직 너무나도 미흡하다.
"그럴 리가요. 다른 건 몰라도 정신적 소양이 부족할 리가 없을 텐데…"
하수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지만, 은하신목은 단호했다.
-아무튼 수련 부족이다! 오늘부터 부지런히 신어를 갈고 닦아서 하루 빨리 프랜차이즈 갓 후계자다운 모습을 갖추거라! 알았느냐, 아들아?
"저 앞에…… 그저 고생길만이 보이는군요."
***
준비를 맞추고 잠자기 전이었다.
정서희는 마케미야로부터 온 연락을 확인했다. 메시지를 겉으로 보고 한숨을 푹 쉰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아저씨. 연락하셨어요?"
-진석이하고 데이트는 잘 했어?
"네, 벌써 2번이나 만났네요. 이제 18번만 더 고생하면 해방되는 거겠지요?"
-아직도 가능성이 없는 거냐?
"그 가능성, 아저씨까지 이러시면 생기려다가도 없어질 거 같은데요."
-아차, 그러면 안 되지.
"좀 더 아저씨 아드님의 매력을 믿고 응원해 보세요."
-알았다, 알았어. 내가 너무 주책이었지? 미안하다.
"아니에요."
정서희는 나긋나긋하게 반응했다.
마케미야의 아들, 정진석을 남자로 보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0을 관통한다. +가 아니라 -라는 의미다.
하지만 큰 투자자가 되어줄 큰손한테 굳이 실망을 끼쳐드릴 필요가 있겠는가.
-진석이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고, 그건 겸사겸사 말한 거다.
"네, 알아요."
-성렬유통은 어때?
"괜찮은 분들 같더라고요. 그 젊은 동업자도 현실적이면서도 큰 비전을 갖고 있는 거 같았고, 그만한 능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구요."
-괜찮은 친구들이다. 알아두면 좋을 거야.
호텔에서 마케미야와 전성렬이 마주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케미야가 계획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었다.
김효산을 통해 전성렬의 예약을 들은 마케미야는 그날 바로 호텔을 찾았고, 화장실을 가는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그들과 마주쳤던 것이다.
의심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레스토랑이 아니라 라운지바에 자리를 잡은 것이고.
바로 정서희를 위한 인맥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식품업 할 거면 알아둬서 나쁠게 없는, 아니, 좋은 사람들이다.
"알죠. 봄여름가을 꾸준히 송이가 나는 산을 가진 분들이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황금비단우산버섯 알지? 서해식품에서 이번에 100톤인가 사들였다더라. 근데 그게 성렬유통에서 매입한 거라고 하더구나.
"그래요?"
-황비버섯처럼 까다로운 버섯까지 대량으로 재배할 정도면 기본적인 농업 기술자금력이 된다는 소리다.
"그럼 나중에 본격적인 기업농으로 전환할 수도 있겠네요."
-슬쩍 이야기해 보니까 전성렬 사장이 거기까지 비전을 갖고 있는 거 같더구나.
"더욱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나보다는 진석이를 더 챙겨주면 기쁘겠구나.
정서희는 잠시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쉰 뒤 말했다.
"알았어요, 18번 남은 거 19번으로 올려드릴게요."
-진짜지? 무르기 없기다.
"그럼요. 제가 원래 한 입 가지고 두 말은 안 하잖아요."
정서희는 나이트가운 차림으로 방을 나섰다.
2층 거실에는 친오빠인 정서진이 앉아 태블릿으로 전자문서를 읽고 있었다.
슬쩍 보니 회사 관련 보고서인 듯이 보였다.
"일?"
"어, 요즘 회사가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서."
"구공장도 팔았고 개편도 하고 그러니까 바쁘겠네."
"좀 바쁘긴 해."
"그러게 구공장을 나한테 넘겼으면 그렇게 정신이 없지 않았을 텐데, 그치?"
그 말에 정서진은 소리 없는 웃음을 짓기만 했다.
"근데 구공장을 누가 사갔어? 그거 기존 업체들 입장에서는 어지간히 계륵일 텐데."
"당연히 신생 업체가 사갔지. 성렬유통이었나?"
"성렬유통?"
정서희의 동공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