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9화 (39/1,270)

프랜차이즈 갓 039화

8장 라면 가게 한다면서요? (2)

하수영은 원래 마케미야가 혹시라도 송이를 어디서 채취하냐고 물으면 서락산을 둘러댈 생각이었다.

어차피 마케미야가 등기부까지 떼어보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복이 되었다.

'역시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을 계속 낳는다니까.'

하수영은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음으로 정서희를 맞이했다.

"산주분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그럼요. 역시 사람은 도시에서 사는 게 최고라고, 요즘은 귀농은 생각도 안 하고 계세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매수인분 걱정도 좀 하시더라고요. 거기 사람들 텃새가 장난 아닌데 잘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렇다고 자기가 연락하기는 좀 뭐하다고 하시네요."

"전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 마시라고 전해드리세요."

자연스럽게 정서희가 하수영의 좌측에 앉는 구도가 되었다.

마케미야는 두 사람의 관계에 흥미를 보였다.

"어머니께서 귀농 실패하신 건 들었는데, 그 산을 하수영 사장이 샀다고?"

"네, 잔금 치를 때 제가 대리인으로 나갔어요."

"그때 이후로 서로 처음 보는 거고?"

"그럼요. 그래서 놀랐어요. 아저씨가 아시는 분인 줄은 몰랐네요."

하수영은 마케미야의 억양에 미묘한 염려가 실린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 이후 서로 처음이냐고? 뭐야, 이 아저씨. 설마 날 경계하나?'

왠지 경계하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하지만 불결한 마음은 아닌 거 같고, 아무래도 딸을 염려하는 부친의 마음인 듯하다.

사업에 큰 도움을 받을지 모르는 데, 나쁘게 보여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하수영은 쿨하게 대답했다.

"매도인과 매수인이 따로 연락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분은 대리인이었는데요."

"아하, 그렇군요."

마케미야는 더 이상 파고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혹시라도 아들의 존재를 위협하는적으로 자라나면 어쩌나 생각했는 데, 전혀 기우였던 모양이다.

'나도 주책이지, 참…….'

다시 바로잡힌 분위기 속에서 담소가 이어졌다.

마케미야가 자랑하듯이 둘을 소개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송이 알지? 그거 이분들이 유통하시는 거다."

"어머, 정말요?"

"네, 서해호텔 전 지점에도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식자재를 취급하고 있어서요."

전성렬이 미소를 띤 채 정서희에게 설명했다.

"가장 주력으로 삼는 상품이 바로 송이버섯과 황금비단우산버섯이죠."

"황비버섯도 취급하신다고요?"

"네, 둘 다 여기 우리 하 사장이 직접 채취하거나 길러서 유통하고 있습니다."

"아, 그럼 지금 서락산에서 황비버섯을 키우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원래 그러려고 매입한 거라서요."

"황비버섯 재배 환경이 꽤 까다로 울 텐데, 서락산에서 잘 자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알기로는 서락산은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닌데 말이에요."

그 말에 하수영은 조금 흠칫했다.

'아니, 이 여자가 어떻게 그걸?'

사실 하수영도 황금비단우산버섯재배 환경으로 서락산이 적합한지는 알지 못한다. 굳이 거기까지 조사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막말로 누가 버섯을 어떻게 키웠냐고 물어본들, 그냥 무시하면 그만 아닌가.

"생각보다 잘 자라던데요."

"그래요? 의외네요. 저도 농작물이라면 조금 아는데."

"우리 서희 집안이 식품제조업을 하고 있어서요. 그런 것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참, 그리고 우리 서희도 이번에 식품회사도 하나 만들까 준비 중이에요."

"아, 그렇습니까?"

전성렬은 그제야 마케미야가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만든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들은 농산물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고, 정서희는 곧 식품회사를 차린다고 한다.

그러니 우연히 마주친 김에 이왕 서로 인사를 시키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한 것이리라.

"서로 비슷하면서도 상호 시너지가 있을 사업을 하는 분들 아닙니까. 알아두면 두고두고 좋을 것 같아서요, 허허."

'아저씨가 제법 능구렁이인데?'

하수영은 속으로만 피식거렸다.

말이 상호 시너지이지, 정서희에게 좀 더 유리한 도움이 되는 관계 아닌가.

젊은 나이에 식품제조업을 새로 시작하려고 하면 이것저것 다양한 인맥을 알아두는 게 편하니, 이 자리를 만든 것이리라.

'뭐, 우리에게도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필요한 식자재 같은 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주문 넣어주세요."

"네, 그럴게요. 아차, 내 정신 좀 봐."

정서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서락산 잔금일 때 말로만 다음에 연락하자고 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하수영은 명함을 받아 꼼꼼히 내용을 확인한 뒤 지갑에 잘 챙겨 넣었다. 전성렬도 정성스럽게 챙겼다.

대화는 주로 마케미야가 이끌어 나갔다.

"그래서 송이라는 게…… 처음에는 정말 깜짝…… 내가 먹어본 송이 중에서 최고…… 일본 사업가 친구들도 먹어봤는데 다들 극찬……."

마케미야는 주로 송이 요리를 칭찬했고, 정서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다가 하수영과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싱긋 웃으며 복도 쪽을 눈짓했다. 그러면서 입 모양으로 말했다.

'먼저 나가 있을래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린 하수영은 조심스럽게 마케미야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그는 전성렬과 잡담을 나누는데 푹 빠져서, 정서희가 자신에게 보낸 사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아, 그렇게 해요."

마케미야는 보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전성렬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복도를 나와 넓은 로비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잠시 후 뒤에서 인기척이 다가왔다.

"우리 아저씨가 꽤 달변가시죠? 기분 좋으실 땐 보통 저러세요. 시간가는 줄 모르시죠."

"아닙니다. 젊게 사시는 것처럼 보여서 부러웠어요."

정서희는 미소를 지으며 옆에 나란히 섰다.

높은 힐을 신고 있어서인지 눈높이가 대충 비슷했다.

사실 굳이 힐이 아니어도 늘씬하고 큰 키였기에, 웬만한 남자는 지금 그녀의 옆에 서기를 꺼려 할 것이다.

'비주얼만 보면 배우가 될 상인데. 식품회사 사장이라…….'

집안에서 식품회사를 한다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물려받는 게 아니라 굳이 새로 창업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하수영은 불현듯 장효주와 정서희중 어느 쪽이 더 비주얼이 좋은가를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스스로도 웃긴다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지으며 벗어났다.

"전에 듣자니 라면 가게 하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것도 합니다. 아니, 이제 곧 하려고 준비한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하수영은 사교적인 웃음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정서희 사장님도 집안에서 라면 가게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그런데 아까는 식품제조업을 하신다.

고."

"맞는 말이죠. 라면 만들어서 파니까요."

"라면 가게라고 해서 저는 프랜차이즈 분식집 같은 걸 생각했죠. 제가 너무 과소평가했네요."

"라면이 주력 상품이니까 라면 판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하수영은 그녀가 왜 자기를 따로 불러냈는지 궁금해졌다.

느닷없이 호감이 생겼다는 것은 아닐 텐데.

아니면 아까 그 자리가 지루했나?

그래서 즐기는 잠깐의 일탈?

"가업을 물려받고 싶었는데, 여자라고 아버지께서 한사코 안 된다고 하시네요. 그래서 아저씨 도움을 몰래 받기로 했어요. 아시겠지만 아저씨가 돈이 좀 있으시거든요."

"좀 있는 정도가 아니죠. 일반적인 기준으론 말입니다."

"그럼 하 사장님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인가요?"

"저택 뒤뜰에 부담 없이 개인 활주로를 놓을 정도는 되어야 좀 있는 정도가 아닐까요?"

하수영은 진지하게 말했고, 정서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다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방금 농담 삼아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려면 사우디 왕자 정도는 되어야겠네요."

"네, 그 정도는 되어야 돈 좀 있다고 할 수 있죠."

"킥…… 아무튼 식자재 취급하시는 분이고 아저씨가 직접 인사까지 시켜주실 정도면 앞으로 자주 얽히겠네요. 종종 연락하고 사업 의논도 같이 해요, 우리."

"네, 그럽시다."

굳이 이야기를 오래 나누지 않아도, 그녀가 따로 보자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케미야가 없는 곳에서 부드러운 우호 관계를 다져놓고 싶었던 것이다.

'천생 사업가네, 사업가.'

중간중간 틈틈이 자신이 처한 난처한 상황을 슬쩍 흘리며, 여자로서의 매력까지 적극 활용한다.

계산해서 그러는 것이면 치밀한 것이고, 무의식중에 그러는 것이면 타고난 것이다.

'둘 다 같아 보이지만.'

나쁠 것 없는 인연인지라 하수영도 맞장구를 쳤다.

"천천히 들어가 보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

"네? 그냥 일어나시는 겁니까?"

"아저씨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요. 그냥 다른 약속 있어서 간다고 하고 나왔어요."

"네, 편히 들어가세요."

정서희는 눈웃음으로 인사를 한 뒤, 그대로 등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하수영은 테이블로 돌아왔다. 마케미야는 어느덧 상당히 취기가 올라 있었다.

어찌나 분위기가 좋았는지, 자신이 돌아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좀 늦었습니다. 통화가 길어졌네요."

"아, 하 사장님. 어서 와요. 한잔합시다."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는 재벌 사업가군. 친해 두면 두고두고 편하겠어.'

하수영은 정중히 술잔을 받았다.

장효주와 계약도 잘됐고, 마케미야 와의 친분도 다졌다.

여러모로 좋은 날이었다.

'정서희…… 그 여자는 잘 모르겠지만.'

청담동 제일가는 건물주가 되는데, 과연 그 여자는 앞으로 도움이 될까?

하수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술잔을 입에 댔다.

* * *

-아들아, 요즘 뜸하구나.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이것저것 밀어붙이고 있는 게 워낙 많아서요. 그래도 틈틈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엘릭서를 복용하는 것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암, 그래야 하고말고,

어쩐지 오늘따라 은하신목의 음색에 힘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오랜 진통 끝에 우주 신연합이 창설되었지만, 권력에 눈이 먼 신들은 주신의 위엄을 무시한 채 자기들끼리 영역 다툼을 벌이는데 몰두하기 시작했고, 이에 화가 난 주신은…….

하수영은 오늘도 청담동 건물 생각만 했다.

저번에 잠깐 나온 그 매물 좋았는데, 설마 팔린 건 아니겠지? 그냥 건물주가 다시 매물 거둬들인 거겠지?'

하수영은 은하신목의 강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것을 느꼈는지, 은하신목도 어느 순간 수업을 멈췄다.

-아들아, 지금 네 머릿속에는 잡념이 가득하구나.

"아닙니다, 아버지.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듣느라고 집중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보였던 겁니다."

-그럼 내가 방금 한 내용을 요약해서 말해보거라.

기다렸다는 듯이 하수영은 들은 내용을 줄줄이 읊었고, 은하신목은 나뭇가지를 부르르 떨었다. 마치 분하다는 듯이.

하수영은 의기양양해져서 말했다.

"제가 겉으로는 학습 성의가 없어 보여도 아버지 말씀에 얼마나 집중하는데요. 저는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시는 거라면 어떤 것이든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분하지만 합격이다.

"합격인데 왜 분하세요? 불초 소자는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튼! 오늘은 새로운 권능을 전수해 주겠다.

기습 쪽지 시험을 잘 치른 보람이 있다!

하수영은 신이 나서 물었다.

"뭔데요?"

-어흠, 바로 신어이니라.

"God fish……?"

-무슨! 신의 언어란 뜻이다. 이놈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