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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7화 (37/1,270)

프랜차이즈 갓 037화

7장 나와 계약하지 않을래? (6)

"자네가 그 정도로 장효주 팬인 줄은 몰랐네."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가장 좋아했던 아… 전 여자친구와 닮았다니까요."

"그렇게 예뻤는데 왜 헤어졌나? 자네가 좀 잘 참고 결혼까지 가지 그랬어?"

"삶이 우리를 갈라놓았습니다."

"……."

전성렬은 또 할 말을 잃었다.

내용을 듣지 않고 표정만 봤으면 아마 농담이나 장난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을 할 친구는 아닌지라, 전성렬은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 여자친구들과 두 번이나 사별하다니…… 저 젊은 나이에 참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구만.'

왜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지, 뼈저리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었어도 두 번이나 애인과 사별을 했다면 사랑이나 결혼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왜 장효주 배우를 고집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럼 배우 계약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스케줄을 어떻게 할까요?

"장효주 배우가 몹시 바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도 광고주 일정에 맞춰야죠.

10억이 어디 적은 돈은 아니잖습니까.

"장효주 배우도 당연히 직접 나오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장소는 저희 측에서 적당히 선정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전성렬이 일부러 활기차게 말했다.

"아무튼 자네가 원하는 대로 계약이 돼서 다행이야. 큰돈을 쓰긴 했지만."

"장효주 정도면 큰돈도 아닙니다."

"그래도 1편 제작은 너무 아쉬워. 적어도 3, 4편 정도는 제작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장효주가 아쉬울 게 없다 이거죠. 그러니 사장님, 우리 라면 회사를 무럭무럭 키우셔야 합니다. 나중에 톱배우들이 제발 CF 한 번만 출연시켜달라고 습소를 할 정도로 말이죠."

"어깨가 몹시 무겁군."

너털웃음을 지은 전성렬은 아직도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적재 중인 화물차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서해식품은 느닷없이 황비버섯을 100톤이나 사서 어디에 쓰려는 거지?"

"새로운 식품 아이템을 준비한 게 있나 봅니다. 그 와중에 우리가 황비버섯 300톤 물량을 확보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걸 테고요."

황금비단우산버섯은 비싼 가격 탓에 생산량과 소비량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서해식품이라 해도 시 중에서 느닷없이 10톤, 20톤을 구매하는 것은 어렵다.

전성렬이 문득 진지하게 말했다.

"설마 그놈들도 우리처럼 황비버섯라면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랬으면 서해식품이 아니라 태양심에서 구매 요청을 넣었겠지요."

"아, 그렇군."

"네, 개당 만 원이 넘어가는 끔찍하게 비싼 황비버섯라면이 되겠네요."

태양심이 서해식품 자회사이지만, 라면 사업에서는 독자적인 경영판단 권을 발휘한다.

서해식품은 말이 식품회사이지, 식품을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히 자회사인 태양심의 영역이다.

"서해식품이 뭔가 새로운 식품을 하나 만들려는 모양이죠? 아니면 프랜차이즈 요식업? 저도 뭔지는 모르겠네요."

"한번 알아볼까?"

"놔두세요. 비싼 황비버섯 한꺼번에 사들여서 우리 라면 광고나 마음껏 찍으라는 배려 아닙니까."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 * *

장효주 배우 측과 계약 미팅 날짜를 잡았다.

장소 선정을 고민하다가 서해호텔한식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하수영은 서해호텔 이야기를 듣고 전성렬을 의미심장하게 주시했다.

"묘한 의도가 느껴지는 장소 선정인데요?"

"그런 거 없네. 김효산 총주방장솜씨가 워낙 좋아. 상류층 사이에서는 아주 자자하다고."

"그렇다고 하시니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진짜라니까, 이 사람아."

한때 서해호텔은 성렬유통에 대해서 압도적인 갑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성렬유통이 슈퍼을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전성렬은 슈퍼 을로서 갑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호텔을 찾는다.

"호텔 예약은 그럼 제가 해요? 아니면 사장님이?"

"이런 건 내가 하게 해주게."

"그러려고 했습니다."

전성렬은 헛기침을 한 뒤, 김효산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쁜 모양이야."

"지금 한창 중식 타임이니까요. 원래 주방은 전쟁터죠. 조금 있다가 한가해지면 연락 올 겁니다."

하수영의 말대로 점심시간이 끝나갈 즈음 김효산으로부터 귀신같이 연락이 왔다.

-네, 사장님. 김효산입니다. 연락주셨더라고요.

"아, 총주방장님. 반갑습니다. 바쁘신데 제가 폐를 끼쳐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네요."

-아닙니다. 전 사장님 연락이라면 언제나 프리패스죠.

김효산의 목소리는 깍듯하기 그지 없었다.

전성렬은 잠시 하수영과 웃는 얼굴로 눈이 마주쳤고, 하수영은 피식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 다름이 아니라,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만."

-말씀하시죠.

"제가 서해호텔 한식 레스토랑을 방문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런 곳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아, 저희 레스토랑 예약이요?

김효산의 목소리에 은은한 당황기가 묻어났다.

그런 걸 왜 주방장인 자신에게 연락을 하는지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다.

주방장인 자신이 직접 예약을 받는 것은 보통 마케미야 급 정도 되는 VVIP 인사들뿐이니까.

물론 전성렬도 김효산이 왜 당황해 하고 있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반응을 의도한 것이니까.

"네, 혹시 도움을 주실 수 있나 해서요."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음, 홀 매니저한테 사장님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홀 매니저가 하나부터 끝까지 다 알아서 진행을 해드릴 겁니다.

"네, 잘 부탁합니다. 장효주 배우와 미팅이 있어서요."

-네? 장효주 배우라고요? 미국 드라마 '프라임'에 출연했던 그 톱스타 장효주 배우 말씀하시는 거죠?

"그 장효주 배우 맞습니다."

-아, 음. 사장님, 혹시 언제쯤 방문하실 예정이신지요?

"날짜는 아마도……."

김효산은 180도 태도가 바뀌어서 세세하게 질문했다.

몇 명인지, 어떤 분위기의 미팅인지, 다들 입맛이 어떻게 되며 특별히 요구하는 취향은 있는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캐물었다.

전성렬은 책상 위에 다리까지 올린채 느긋하게 김효산의 질문을 모두 받아주었다.

-그럼 그 날짜, 그 시간에 제가 모든 걸 맞춰서 준비해 놓겠습니다. 사장님께서는 그저 편하게 연락만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총주방장님이 하는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제가 호텔 쪽은 잘 몰라서요. 식자재 납품이나 하는 영세 자영업자 아닙니까, 하하."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케미야 같은 손님을 대할 때, 김효산의 태도가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전성렬은 즐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고, 하수영은 그 마음 알겠다는듯이 피식거렸다.

"갑질인 듯 갑질 아닌 갑질 같은 우아함을 아시는군요."

"이게 뭐가 갑질인가. 을질이지. 난 어디까지나 을일세."

"저쪽이 꼼짝 못 하는 슈퍼 을이 죠. 그나저나 방금 그 사람, 그렇게 요리를 잘해요?"

"마케미야 사장이 그러던데 요리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고, 아마 국내한식 요리사 중에서는 탑일 거라고 하던데."

"흠, 우리 효주보다 잘하려나……."

"효주? 아, 자네 전 여자친구……."

"네, 요리를 정말 잘했거든요. 특히 송이버섯을 듬뿍 넣은 해물전골이 일품이었죠."

"……."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전성렬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얼마간 주저하던 전성렬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가 겪은 그런 아픔은 느껴본 적 없지만, 그래도 자네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잖나."

"그렇다고 치죠."

"원래 사랑으로 인한 아픔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 법이라네."

"그것도 맞겠죠."

"그러니 너무 마음을 닫아두지만 말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열어가게.

어딘가에 자네의 그런 상처를 모두 씻어줄 수 있는 참한 처자가 있을 게야."

"그럴까요?"

"그럼, 그렇고말고."

"그럼 장효주는 어때요?"

"자네가 청담동 단지주가 된다면야 가능하지 않을까? 근데 장효주가 자네보다 연상 아니었나?"

"연상이면 어떻고 연하면 어떻습니까."

"이쁘면 전부다?"

하수영은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사람을 강하게 흡입하는 듯한 묘한 마력이 담긴 미소에, 전성렬은 잠시 넋을 잃고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차피 이번 생은 사랑 안 할 거 거든요."

***

장효주 배우 측과의 미팅이 잡혔다.

장효주 측에서는 실장 매니저가 대동했다.

광고회사에서는 프로젝트 팀장이 직원 한 명을 대동했고, 하수영은 전성렬과 함께 미팅에 참석했다.

총 6명의 인원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이미 계약서 내용도 확정되었고, 도장을 찍는 요식 행위만 남아 있었다.

"환영합니다. 제가 오늘 요리를 책임지게 될 총주방장입니다."

김효산이 밝은 비즈니스 미소를 머금은 채 나섰다.

톱배우 장효주가 찾은 것 덕분에 홀은 지금 분위기가 제법 들썩거리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물론이고 일반 손님들까지 VIP룸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제가 아니라 저분들께 먼저 주문을 받으셔야 할 거 같은데요."

장효주는 옅은 미소로 대답했고, 김효산의 시선이 그제야 하수영 측으로 돌아갔다.

"광고주이시거든요."

"아, 실례했습니다."

김효산은 속으로 내심 놀랐다.

전성렬이 장효주와 약속이 있다기에 무슨 일인가 했는데, 광고주라고?

아무래도 송이버섯을 팔아서 돈 좀 만진 모양이다.

'하긴, 마케미야 사장님이 1년 치채취량을 미리 선구매하고 선금까지 지불하셨다고 하니까…….'

새삼 전성렬이 달라 보인다.

김효산이 다가가자 하수영이 슬쩍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저는 가리는 거 없으니까 제일 자신 있는 걸로 내주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송이버섯을 넣은 해물전골도 코스에 넣어줄 수 있나요?"

"예, 알겠습니다."

이어진 전성렬, 광고회사까지 별로 까다롭지 않은 주문이 이어졌다. 실장 매니저도 메뉴판에 있는 것 중 적당한 코스를 골라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장효주 차례가 되었다.

"저는 최대한 칼로리 낮게 해주세요. 그거면 돼요."

"예."

주문이 끝나고 김효산이 물러갔다.

장효주가 상체를 살짝 앞으로 내밀며, 하수영과 시선을 부딪쳐왔다.

"제가 듣기로는 젊은 광고주님께서 제 팬이시라고 하던데요, 맞아요?"

"맞습니다. 열렬한 팬입니다."

"신기하네요. 그런데 사인 요청은 왜 안 하세요?"

"종이에 남는 서명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지금 이 순간 장효주씨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에 모든 게 담겨 있지요."

장효주는 그 말에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웃자 조금은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애피타이저가 나오며 식사가 시작되었다.

대화는 주로 장효주와 하수영이 리드하고 있었다.

광고주와 여배우의 만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저보다 어리신 분 같은데, 아주 큰 사업을 하시나 봐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존경스러워요."

"마음은 장효주 씨보다 훨씬 늙었을 겁니다."

"에이, 아닌데. 전혀 안 그렇게 보이는데요."

가벼운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뒤 장효주가 물었다.

"그런데 어떤 작품으로 제 팬이 되신 거예요?"

"작품 때문은 아니고요……."

"그럼 CF?"

"사실 장효주 씨가 제 전 여자친구와 너무 닮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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