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5화 (35/1,270)

프랜차이즈 갓 035화

7장 나와 계약하지 않을래? (4)

광고회사 팀장은 물론이고, 미팅에 참석한 다른 직원들의 표정도 멍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황비버섯을 듬뿍 넣은 라면이 천원이라니.

만 원은 더 붙여서 받고 팔아야 할 판 아닌가?

저렇게 가격을 책정해서야 라면이 하나가 팔릴 때마다 만 원씩 손해를 보는 구조 아닌가?

광고 팀장은 헛기침을 하며, 필사적으로 상식선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나중에 광고가 문제가 될 경우까지 미리 상상해서 컨설팅을 해야 했다.

그래야 클라이언트로부터 탈이 나지 않는다.

"저, 죄송합니다만, 혹시 초반에 덤핑과 물량 작전으로 시장을 장악한 뒤 나중에 가격을 올리실 생각이시라면 부디 말라고 싶습니다."

사업을 처음 해본 사람들이라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다.

초반에 남이 생각지도 않은 아이템을 가지고 손해와 출혈을 감수하면서 시장을 장악한 뒤, 나중에 가서 제 가격을 받겠다는.

발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현실성이 전혀 없다.

"천 원씩 받던 라면을 어느 날 갑자기 만 원 넘게 받는다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매몰차게 돌아설 겁니다. 가격을 꾸준히 서서히 올린다고 해도 어느 순간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지는 순간 외면할 거고요."

"맞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황금비단우산버섯이 맛이 없어서 라면에 안 넣어 먹는 게 아닙니다. 비싸서 선뜻 손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 이 친구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서도 가끔 큰마음 먹고 전골 요리 같은 거 할 때나 넣어서 먹지, 라면에 넣어 먹는 경우는 없습니다."

"로또 3등 당첨됐을 때 딱 한 번 라면에 듬뿍 넣어서 먹은 기억은 있네요, 하하."

광고회사 팀원들은 저마다 상식선에서 설명을 했다.

그들은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초반에 큰 손해를 감수하고 시장을 장악하고 나중에 제값을 받으려는 생각이다. 절대 저게 될 리가 없지.'

그렇지 않고서야 개당 천 원을 받겠다는 발상을 떠올릴 리가 없지 않은가.

"유익한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광고 기획 그 이상을 넘어서 사업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보인 조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괜히 귀사가 이 바닥에서 유명한 게 아니었네요."

그때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하수영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광고회사 팀장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전성렬의 직원인 줄 알았는데, 지금 나서는 태도는 마치 동업자인 듯한 포스가 느껴진다.

"저희는 그렇게 자본금이 탄탄한 회사가 아닙니다. 초기 자본금이라고 해봐야 165억밖에 없어요."

"초, 초기 자본금 165억이면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만……."

"그래 봐야 청담동 10층 빌딩 하나도 못 사는 돈이죠. 별거 안 되는 푼돈이에요."

광고회사 직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165억이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다니.

물론 대기업을 상대하다 보면 몇천억이 아무렇지 않게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도 듣게 되지만, 그래도 자본금 165억 원이면 객관적으로도 엄청난 돈이 아닌가.

"라면 하나 팔 때마다 만 원씩 손해 봐가면서 팔아야 한다면 순식간에 바닥나는 돈이에요. 100만 개를 팔기도 전에 전부 동나고 말 걸요? 겨우 라면 100만 개 팔고 무슨 시장을 장악하고 점유율을 차지해요?"

"저희도 그 정도 계산은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무튼 저희는 라면을 개당 천 원에 팔 거고, 나중에 가격을 올리지도 않을 겁니다. 아, 물가 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격 인상은 어쩔 수 없는 거지 만요."

하수영은 두 손으로 깍지를 낀 채, 미팅 참석자들을 한 명 한 명 둘러보았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최고로 좋은 광고를 만들어주세요. 광고를 보자마자 입에 군침이 흐르도록 말이에요. 아, 그리고 CF 모델은 무조건 예쁘고 잘생긴 배우로 해주세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원래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거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게 사람 본능인 걸요."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본질을 제대로 찌르는 말이다.

광고회사 팀장은 이 젊은 사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고 보니 저 나이 든 사장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문 채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이 젊은 사장이 더 우위에 있다고?'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얻은 눈썰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참고로 저는 장효주 씨가 좋아요."

"장효주 씨요? 그분을 섭외하려면 몸값이 상당할 텐데요……."

"그리고 그분은 식품 광고 같은 것은 안 찍으시는 걸로 유명합니다. 청순한 이미지에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장효주.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탑클래스 여배우다.

그녀는 주로 화장품, 귀금속 등의 고상한 CF에서 마스크를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한번 말이라도 해봐요. 전 그분이 CF 배우를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하 사장, 혹시 장효주 배우하고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

"그럴 리가요. 장효주 배우는 제가 누군지도 모를 겁니다. 그냥 열렬한 팬이에요."

"이런, 사심이 섞인 결정이군."

전성렬이 농담처럼 말하자 광고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소리 없는 웃음기가 흘렀다.

하수영의 솔직한 말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제 전 여자친구하고 좀 닮았어요. 얼굴도, 이름도."

"오, 전 여자친구분이 엄청난 미인 이셨나 봅니다."

"전 애인들 중에선 제일 예뻤죠."

"이런, 우리 하 사장이 아주 바람둥이 였구먼. 근데 왜 요즘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건가?"

"이제부터 비혼주의거든요. 아무튼 장효주 배우를 섭외했으면 좋겠지만 안 되면 할 수 없고요. 광고주가 젊고 잘생긴 열혈팬이라고 꼭 말해 봐요. 그럼 될 수도 있잖아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장담은 못 드립니다."

"네, 부탁합니다."

두 동업자는 미팅을 끝내고 나섰다.

큰 걸음을 하나 떼어놓은 후련함에, 전성렬은 가슴을 펴고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날씨가 참 좋군."

"비 올 거 같은데요."

"내 마음속 날씨가 그렇단 말이야."

"벌써 이러시면 안 되죠. 아직 갈길이 구만리인데."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일단은 국내 식품시장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되는 겁니다."

"식품시장? 가공 식품시장이 아니라?"

"가공 식품시장을 접수하면 그다음은 뭐겠어요? 비가공 식품시장에도 손을 뻗어야죠. 아무튼 국내 먹거리 시장의 최고가 되는 겁니다."

"그다음은?"

"당연히 해외로 진출해야죠. 국내시장을 제패하면 당연한 순서 아닙니까? 원래 야구도 K리그 씹어 먹은 다음에 메이저리그 씹어 먹으러 가고, 그런 순서로 진행되잖아요."

전성렬은 잠시 세계 식품 시장을 호령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자본금 165억 원에 아직 법인 설립인가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막연한 꿈이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즐거워진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농사도 직접 짓는다고 하겠어."

"그것도 계획에 두고 있습니다. 카길, 몬산토를 뛰어넘는 큰 기업으로 키워야지요. 아무튼 사람이 먹는 거라면 뭐든지 다 손댈 겁니다."

"꿈이 정말 크군."

"제 꿈이 아닌데요."

하수영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바라보자 전성렬은 조금 당황했다.

나름 감동하고 있었는데 초를 친 기분이다.

"자네 꿈이 아니라고?"

"앞으로 전 사장님께서 걸어가셨으면 하는 길을 말씀드린 건데요?"

"……뭐라고?"

"제 꿈은 변함없습니다. 청담동에서 제일가는 건물주가 돼서 평생 세나 받아먹으면서 유유자적하게 사는 겁니다. 골치 아픈 회사 경영 같은 건 이제 그만하려고요."

하수영은 '어림도 없지'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먹거리를 취급하는 거예요. 반도체나 에너지 산업 같은 건 잘못 건드리면 어엄청 귀찮아지거든요. 평생 머리 아프게 살아야 해요. 나중에는 발을 빼고 싶어도 발을 못빼요."

국내 먹거리 시장을 완전히 정복하고, 해외 시장마저 섭렵하여, 카길과 몬산토를 능가하는 거대 식품 그룹으로 거듭난다?

그게 하수영 본인의 꿈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이 친구야, 난 그런 그릇이 못 되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게 어딨습니까? 제가 뒤에서 충분한 서포트를 해드릴 테니까 초반부터 겁먹지 마세요. 막말로 우리한테는 송이버섯과 황비버섯이라는 무기가 있는 데, 뭐가 무서우신가요?"

버섯 이야기가 나오자 전성렬은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하긴, 생산단가를 비약적으로 떨어뜨린 황금비단우산버섯만 해도 식품업계의 강자 자리를 노려볼 만하다.

특히 황금비단우산버섯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인기가 많은 고급 재료였으니까.

"근데 아까 자네 말하는 걸 들어보면 반도체 산업 그런 것에도 관심이 있었나 봐?"

"원래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번 생에서 제가 관심 없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뭔가?"

전성렬은 이 기이한 청년의 입에서 무슨 대답이 나올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결혼이요."

"푸, 푸하하! 으하하하!"

전혀 상상하지 못한 뜻밖의 대답에 전성렬은 그만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하수영은 쉼 없이 웃는 그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가장 최근에 만난 여자한테 바가지를 너무 긁혔더니, 당분간 여자나 결혼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합니다."

"얼마나 바가지를 긁혔는데 그러나?"

스무 살밖에 안 됐는데 여자를 만나 봐야 몇 명이나 만나봤을 것이며, 바가지를 긁혀봐야 얼마나 긁혔겠는가.

"어휴, 말도 마세요. 돈 많이 벌어 오라고 얼마나 닦달을 해대는지, 덕분에 집에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어서 밖을 돌아다녀야 했다니까요."

"하 사장 나이에 어쩌다가 그런 여자를 만났지? 참 신기하군. 그래서 지금은 잘 헤어졌고?"

"죽었어요."

"괜찮습니다."

"……미안하네."

한 점의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다.

그래서 전성렬은 더욱 깊은 상실의 무게를 맛볼 수 있었다.

저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저렇게 초연해지려면 얼마나 마음을 깊게 다스려야 했을 것인가.

하수영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아무튼 청담동 제일가는 건물주가 돼서 편히 사는 게 제 꿈입니다. 식품사업을 하는 것도 부동산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예요. 제 꿈만 이루면 전 회사에 신경을 끌 겁니다."

"그래도 버섯은 꾸준히 공급해 줘야 하네."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농작물 키우는 건 아마 죽을 때까지 소일거리로 할 거예요. 그것도 제 꿈 중의 하나였거든요."

"나중에 우리 본사가 자네 건물에 입주하면 모양새가 아주 좋겠어."

"그래도 세는 칼같이 받을 겁니다. 할인 같은 거 없어요."

"그거야 당연하지. 비즈니스 아닌가."

하수영은 전성렬과 헤어져 서락읍으로 돌아왔다.

산기슭 아래에 높이 4미터짜리 펜스를 치는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대형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폭 6미터짜리의 본 출입구 1개, 그리고 사람을 위한 폭 1미터짜리 보조 출입구 10개를 설치했다.

"어이구. 저게 다 뭔고."

뒤에서 들린 탄성에 돌아보니, 이장 박충원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하수영은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아, 어르신."

"대체 무슨 공사를 저리 요란하게 하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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