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34화
7장 나와 계약하지 않을래? (3)
"우리 회사가 내놓는 최초의 1호라면, 황금비단우산버섯이 아낌없이 듬뿍 들어간 혜자스러운 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가격! 당연히 라면에는 황금비단우산버섯의 이름이 들어가야 해요!"
하수영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열변을 토했다.
전성렬은 조금 전보다 진지하게 듣고 있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이름을 황비버섯라면으로 할 생각인가?"
"그럼요! 그 외에 다른 이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설마 2번째, 3번째 라면은 황비버섯라면 2호, 3호 이렇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절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처음이기 때문에 소비자들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려는 겁니다. 저 회사는 황비버섯을 라면에 듬뿍 넣는 회사야, 라는 이미지죠."
"……."
전성렬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듣다 보니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황비버섯라면이라……."
"직관적이어서 더 좋은 단어죠. 라면 1호기에 이 이상 적합한 이름은 없을 겁니다."
"좋아. 나도 찬성일세. 황비버섯라면, 황비버섯라면, 황비버섯라면, 자꾸 중얼거리다 보니 입에도 착 감기는군."
"자, 그럼 그런 방향으로 홍보를 준비해 보시죠. CF도 미리미리 찍어둬야 할 텐데요."
"CF까지 찍는다고?"
"그럼 CF 안 내보내실 겁니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무기는 전부 다 동원하자고 했잖아요?"
"난 신문 광고 정도만 생각했는데. CF는 너무 돈이 많이 들어."
"그렇게 크게 베풀어야 나중에 다 돌아옵니다. 작게 베풀어봤자 복불복이에요."
"그걸 또 이렇게 갖다 붙이는구먼. 알았네. CF도 찍고 TV 광고도 내보내고 그래야지."
대충 오늘 논의해야 할 사업 이야기는 정리되었다.
전성렬이 슬쩍 물었다.
"서락읍에서 지내기는 적당한가?"
"뭐, 괜찮습니다. 한번 미친 짓을 했더니 마을 주민들이 살금살금 피하는 눈치더라고요."
"전의 산주도 텃새를 못 견디고 결국 귀농을 정리했다던데. 그래도 너무 쉽게 안심하지는 말게. 그러다가 언제 또 본색을 드러내서 괴롭힐지 몰라."
"사장님은 제가 아니라 절 괴롭히는 주민들을 걱정하셔야 할 겁니다. 제가 그런 갑질 받아치기는 또 아주 잘해요. 갑질도 원래 해본 놈이 더 잘하는 겁니다."
"누가 들으면 어디서 한 수십 년쯤 살다가 온 줄 알겠어."
"상상 속에서는 누구나 다 영생자고 무한전생자고 그렇잖아요, 하하."
전성렬도 전 산주가 어떻게 해서 귀농을 포기했는지, 그리고 하수영이 주민들을 상대로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기겁을 하고 잔치를 떠난 부분에서는 그도 통쾌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거, 적당히 어울려 지내면 될 것을, 그저 외부인이라고 단합해서 뜯어먹을 생각밖에 안 하니……."
"규칙을 어기는 게 가장 큰 잘못이 죠. 삭은 거름 냄새에는 전 산주 할머니도 결국 못 버티고 도망가셨다나 봐요."
"아주 고약한 사람들일세. 참, 혹시 그럼 자네 산에 침투해서 우리 귀한 황비버섯을 훔쳐가지는 않겠지?"
"아직까지 산에 뭐가 있는 줄은 몰라요. 하지만 트럭들이 자꾸 드나들면 나중에는 의심을 하겠죠. 그 전에 산 아래에 펜스를 빈틈없이 쳐놔야죠."
하수영은 지금 산 아래에 철제 펜스를 치는 공사를 한창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너무 높은 거 아닌가? 4미터짜리 펜스라니…… 산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닌데 공사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오겠어."
"그 정도는 쳐놔야 침투할 엄두를 못 냅니다. 강원도에서 송이 철만 되면 송이 훔쳐가려는 도둑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아세요? 들어 보시면 4미터도 결코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실 겁니다."
* * *
"그럼 서희야, 조심히 들어가. 오늘 즐거웠어."
정서희는 영혼이 빠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정문 앞까지 정서희를 안내해 준 정진석은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건넨뒤, 그녀의 어깨를 작게 토닥여 주었다.
낮고 날렵한 곡선을 자랑하는 2인 승 빨간 페라리가 경쾌한 엔진음을 흘리며 저 멀리 달려갔다.
정서희는 비틀거리며 정문을 열고, 정원을 거슬러 저택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통과해 구두를 벗으려는 데, 뭔가 응접실에 흐르는 기류가 묘했다.
"……?"
정서희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응접실을 살펴보았다.
부친은 헛기침을 흘리며 신문에 눈을 돌렸고, 모친은 의미 없이 TV 채널을 돌렸다.
심지어 이 시간에 회사에 있어야 할 친오빠 정서진, 그리고 자기 방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할 남동생 정두진까지 응접실에 나와 있었다.
"오빠가 이 시간에 왜 집에 있어?"
"어, 오늘은 야근이 없어서."
"언제는 없던 야근도 만들어서 하던 사람이 갑자기?"
"야, 나도 강철로 된 게 아닌데 쉴땐 쉬어야지."
친오빠 정서진은 살짝 더듬거리며 대답했고, 정서희는 한껏 가늘어진 눈을 남동생 정두진에게 돌렸다.
"두진이 너는 공부 안 해? 웬일로 이 시간에 응접실에 나와 있는 거야?"
"어, 엄마랑 같이 드라마 보려고."
"드라마? 드라마아? 네가 언제부터 드라마를 봤다고 그래? 스포츠 채널아니면 TV는 아예 관심도 없잖아?"
"오, 오늘 간만에 엄마랑 오붓하게 보고 싶어서……."
정서희는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한숨을 뱉었다.
네 가족들의 조심스러운, 그리고 궁금증에 젖은 시선이 자신을 훑어보는 게 느껴진다.
"내가 아주 그냥 못 살아요, 못 살아. 빨리 시집이나 가버려서 독립을 하든가 해야지, 원."
"시, 시집이라고?"
"설마 진석이랑 사귀기로 한 거냐!"
"누, 누나! 진짜야?"
가족들은 기겁을 해서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고, 정서희는 기다렸다는듯이 팔짱을 낀 채 가늘어진 눈으로 노려봤다.
그제야 낚시를 당한 걸 깨달은 가족들은 저마다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보니까 다들 이미 알고 계신 모양이네요? 내가 오늘 누구 만나고 오는 건지 말이죠."
"……."
"그럼 상처받고 피폐해진 나의 감성과 멘탈을 위로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돼요? 그래도 우리 가족이잖아요?"
"야, 말이 좀 그렇다. 진석이가 뭐가 어때서? 네가 그리 생각하는 거 알면 걔 상처받겠다."
"그럼 오빠가 진석이랑 결혼하던가."
"야, 나는 남자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치? 지금 내 심정이 딱 오빠심정이야. 그래도 남매 맞네."
말 한 마디에 보기 좋게 격침당한 정서진은 입을 다물었다.
구두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정서희는 한숨을 쉬며 2층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저녁은?"
"먹어야 돼요. 제가 차려서 먹을게요."
"진석이 형이 설마 밥도 안 사준 거야?"
"두진이 너라면 걔랑 같이 밥이나 제대로 넘어가겠니? 개 눈빛이 얼마나 느끼하고 징그러운데."
자기 방에 들어선 정서희는 겉옷을 벗을 생각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털썩 엎어졌다.
화장이 베개에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불을 꾹 쥔 채로,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짜증 나. 근데 배는 고프네."
얼마 동안 그러고 누워 있던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 옆에 마련된 간이 주방에서 물을 끓였다.
JM식품에서 생산한 라면 두 봉지 꺼내 끓는 물에 스프를 먼저 넣었다.
면발을 넣기 전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고 뒤졌다.
"대파 썬 거, 고춧가루, 계란, 그리고… 역시 황금비단우산버섯이지."
그녀는 즐거워하며 라면에 넣을 것들을 전부 꺼냈다.
적당히 썰어서 얼려놓은 대파를 뿌리고, 고춧가루를 좀 더 뿌렸다. 그리고 큼직한 황금비단우산버섯 2개를 각각 3등분 해서 라면에 넣은 뒤, 마지막으로 계란으로 마무리했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좋은 건 먹을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라면을 완성한 뒤 냄새를 음미한 그녀는 면발을 젓가락으로 듬뿍 집어 입에 넣었다.
버섯의 쫄깃한 식감과 한층 깊어진 국물이 배어난 맛이 미각에 황홀한 자극을 주었다.
"진짜 정말 맛있다. 이렇게만 라면 만들어서 팔면 대박 날 텐데. 너도 나도 다 사먹으려고 할 텐데."
라면 2개를 순식간에 다 비운 그녀는 마지막으로 남은 면발을 장난치듯이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채 중얼거렸다.
"근데 이렇게 해서 팔려면 적어도 개당 1만 3천 원은 받아야겠지? 꿈이네, 꿈…"
40g가량 하는 황비버섯 한 개의 시중 가격이 오천 원가량 하는 편이다.
버섯을 2개만 넣어도 만 원이 훌쩍 넘는다.
서민 식품인 라면에 시도할 수 있는 마케팅이 아니다.
"이거 넣어서 먹으면 진짜 맛있는데. 왜 이 버섯은 가격 하락이 안이뤄지는 거야? 양식이 그렇게 어려울까?"
* * *
전성렬은 외주 광고를 맡아서 진행할 광고회사를 구하고, 미팅 일정을 잡았다.
하수영은 당연히 미팅에 참석했다.
광고회사는 식품 CF에서 알아주는 인지도를 가진 베테랑 기업이었다.
밝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미팅에는 곧이어 당황함이 듬뿍 끼얹어졌다.
"라면 1봉지에 황금비단우산버섯을 80g씩 넣어서 판매하실 생각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 부분이 부각될 수 있도록 광고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광고 만드는 거야 저희가 전문가이니 어려울 것 없겠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남는 게 있습니까? 아, 괜히 나선 거라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죠. 오히려 식품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을 확인하니 더욱 마음이 놓이는군요. 우리 광고를 더 잘 만들어 주실 것 아닙니까."
다양한 식품 홍보 광고를 만든 경험이 있다 보니, 미팅에 참가한 팀장은 전성렬이 하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이라는 것을 대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라면 1봉지 값이 1만 원이 넘어갈 텐데, 누가 그걸 사먹어? 라면은 애초에 서민들 음식이라고!'
설마 돈 많은 사람들을 타케팅으로 잡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한 거라면 진심을 다해 말리고 싶었다.
"저희야 돈 받고 광고만 제작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혹시 사업 포인트를 잘못 잡으신 게 아닌가 해서 우려가 됩니다."
"음, 원래 오늘 미팅과는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경청하겠습니다."
전성렬이 의외로 정중하게 나오자 광고회사 팀장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직 법인 등록도 안 나온 신생업체라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그래도 귀는 열려 있는 모양이다.
"황금비단우산버섯 80g이면 대충 생버섯 2개를 통으로 썰어서 넣는다는 이야기군요."
"맞습니다."
"그럼 버섯 가격만 1만 원입니다. 라면 하나에 1만 원이 넘어갈 텐데 과연 누가 사먹을 수 있겠어요? 돈많은 사람들이 신기해서 사먹을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럴 만한 소비 능력을 가진 이들은 1%도 안될 겁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서 필히 강조해 주실 게 있습니다. 어차피 황비버섯잔뜩 넣은 라면 맛있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 전부가 다 알아요."
"네? 뭘 강조하란 말씀이시죠?"
"라면 가격은 천 원으로 책정될 예정이라서요. 물론 봉지 라면 기준입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