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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3화 (33/1,270)

프랜차이즈 갓 033화

7장 나와 계약하지 않을래? (2)

"난 이 기획 마음에 든다. 너 아닌 다른 친구가 가져왔어도 진지하게 투자를 고민했을 거야. 그만큼 시간과 정성, 공을 들인 기획이다.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고."

정서희가 뭐라고 반발하기 전에, 마케미야는 무심한 어조로 먼저 선수를 쳤다.

순서를 빼앗긴 그녀는 차마 말을 자르지는 못하고, 어디 들어나 보자는 표정으로 조용히 있었다.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마라. 난 적어도 이 투자 기획은 그 자체로 진지하게 대하고 있어. 미끼를 잡는 것도 아니고, 약점을 잡는 것도 아니다."

"그럼 그냥 투자해 주시면 되잖아요? 왜 그런 조건을 굳이 붙이셔야 해요?"

"그거야 내가 사업가니까 그렇지. 너도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거다."

사업가니까 그렇다.

정서희는 오히려 그 말에서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고 있었다.

"좋은 기획이야. 투자하고 싶을 만큼."

"그렇죠."

"하지만 굳이 내가 투자할 정도의 사이즈는 아니야. 이거 아니어도 난 돈 많다."

"그것도 그렇죠."

"너도 아쉽고, 나도 아쉬운 게 있고, 우리 서로 아쉬운 걸 하나씩 교환하는 게 어떨까?"

마케미야는 사업을 지원하고, 정서희는 그의 아들과 데이트를 하고.

겉으로만 보면 서로가 윈윈하는 그림처럼 보인다.

"근데 아저씨, 저 진짜 진석이랑은 뽀뽀를 못 할 것 같다니까요."

"누가 뽀뽀를 하라고 했니? 건전하게 데이트해, 데이트, 무슨 여자애가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가득 들어차있으면 이 예비 시아버지야 베리베리 땡큐지."

"데이트하라는 이유 자체가 결혼때문인 거잖아요. 그런데 전 시작을 해보기도 전에 이미 끝이 어떨지 보인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절대 키스못 할 것 같은 상대하고 어떻게 결혼하나요?"

"그 정도야?"

"네, 그 정도예요."

마케미야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깊숙이 묻었다. 목소리가 다소 냉정해졌다.

"그럼 할 수 없지. 알았다."

"투자 지원 안 해주실 거예요?"

"오는 게 없는데 가는 게 있겠니?"

"아저씨나 진석이가 애먼 시간 낭비 하게 만드는 걸 막아드리려고 그런 건데. 제 호의를 이런 식으로 거절하시네요. 알았어요. 할게요, 데이트."

정서희가 아무렇지 않게 승낙하자 마케미야는 대번에 기뻐서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진짜야? 진짜로 할 거지?"

"네, 그런데 20번 의무는 너무 과한 거 같아요."

"키스도 못 할 정도라며. 그 정도는 만나줘야 그래도 진석이 페널티가 줄어들지."

"알았어요, 알았어. 아저씨도 약속꼭 지켜야 해요."

"걱정 마라. 말만 해라, 뭐든 다 지원해 주마. 나도 재민이랑 척질 각오하고 하는 거라고."

"이 정도로 척질 정도로 우리 아빠속 좁지 않아요."

"그래도 딸이라고 지 애비 편 드네. 이래서 남자는 딸이 있어야 한다니까."

"제가 항상 딸처럼 살갑게 대해드리잖아요. 뭐가 더 부족하신 건가요?"

"앞으로는 딸 말고 며느리처럼 살갑게 대해주면 좋겠구나."

마케미야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라도 하러 가세요?"

"진석이한테 이 기쁜 소식을 알려 줘야지."

"다음에 해요, 다음에. 지금은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우리 진석이가 여간 순정파가 아니에요. 18년을 기다리게 했으면 됐지, 더 이상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실례다."

그때 VIP룸 문이 열리면서 한 청년이 성큼 들어섰다.

짙은 남색 세미 정장이 멋지게 빠진 핏을 훤칠하게 자랑하고, 희면서도 단정한 이목구미가 눈에 띄는 미청년이었다.

여심을 휘어잡는 선명한 비주얼을 가진 청년, 정진석이 테이블을 향해 다가왔다.

"서희야."

"누나라고 불러주련?"

"싫은데? 자꾸 애처럼 보는데 뭐하러."

정진석은 아무렇지 않게 눈웃음을 머금으며, 조금 전까지 마케미야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정서희는 마케미야를 조용히 쳐다봤고, 눈이 마주친 마케미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진석이가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늘부터 1일이다. 둘이 잘해 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식사 중에 인원 교체라니……."

정서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앞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고, 정진석은 턱을 괸 채 우수에 젖은 눈으로 바라봤다.

"역시 서희 너는 그렇게 앞머리 쓸어 올릴 때가 예뻐."

"이 누나는 지금처럼 네가 내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를 때가 제일 소름이 돋는단다."

"그럼 내 여자 해. 누나라고 꼬박 꼬박 불러줄게. 존댓말도 원하면 해줄게. 내 여자한테 뭔들 못 해주겠어?"

"아직 네 여자 아니거든. 앞으로도 아니거든. 자꾸 소름 돋게 하면 누나 일어선다?"

"아빠랑 약속한 거 그새 잊었어?"

정서희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랬다.

눈이 마주치자 정진석이 씩 하고 밝게 웃어 보인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근사한 미소였지만, 지금 정서희에게는 천진한 소년 시절을 잃어버린 징그러운 웃음일 뿐이었다.

그녀는 이마를 살짝 짚었다.

"진짜 '서희 누나 서희 누나' 거릴 때가 너무 그립다. 부디 그때의 너로 돌아가 줄 수는 없니?"

"미안, 서희야. 네가 알던 그 어린 소년은 사랑을 알게 됐고 이제 어른이 됐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

이미 마케미야는 사라져 버렸고, 정서희는 입맛을 잃은 듯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직 코스 몇 개랑 디저트 남았는데……."

"마저 먹어. 편히 기다릴게."

"너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맘 편히 밥이 들어가겠니?"

"어차피 해야 하는 데이트잖아. 그냥 즐기자, 우리."

고등학생치고 감미로운 목소리다.

이제 겨우 18세인데도 마성적인 매력이 풀풀 넘친다.

연하부터 동갑, 연상까지 여자들이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는 말이 결코 거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는 모습을 봐온 정서희에게는 징그러운 웃음이요, 징그러운 목소리였다.

"그래, 하자. 데이트, 까짓거 하자."

수저를 내려놓은 정서희는 결전에 들어가는 군인처럼 비장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어른 되고 나서 첫 데이트네. 뭐부터 할까?"

"네가 무슨 어른이야. 아직 고2면서. 너랑 나랑 몇 살 차이인지나 아니?"

"사랑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서희 넌 어른이면서 아직도 그걸 몰라?"

"됐고, 빨리 데이트나 하자. 영화 봐."

"영화?"

정진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서희가 영화를 고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저 스크린에 눈을 둔 채로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리면 되니까.

굳이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

"좋아, 그럼 영화 보자. 뭐 보고 싶은 거 있어?"

"거리 때려 부수는 내용이면 아무거나 뭐든지 괜찮아. 지금 내 마음이 딱 그렇거든."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때려 부수고 싶은 거구나."

"진짜 어쩜 그렇게 징그러워질 수 있니? 어디 학원에서 멘트라도 배우는 거야?"

* * *

하수영은 착실하게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 설립 절차는 전성렬에게 위임하고, 그는 인수가 확정된 공장으로 출근하다시피 드나들었다.

아직 인수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인수가 확정된 것이기에 구공장 직원들은 하수영을 신임 오너 대하듯이 대했다.

공장 직원은 약 150명.

그중 40명 정도는 사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JM식품의 품에 남기로 결정을 한 이들이었다. 주로 연륜과 경험, 기술을 가진 고급 근로자들이었다.

하수영은 그들을 설득하느라고 애썼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바뀐 환경과 미래를 불안해하는지는 알겠습니다. 신생회사보다는 아무래도 빅3인 JM 식품에 남는 걸 더 원하시겠죠. JM 식품이 받아주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도 충분한 비전이 있습니다. 이 점은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여러분들, 회사 옮기시면 아마 나중에 후회하실 겁니다."

"그럼 그 증거를 보여주시죠. 저희도 뭔가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지금 못 보여드리죠. JM식품은 어쨌거나 우리 경쟁사인데 유출 위험이 있으니 안 됩니다. 그 대신 연봉을 기존보다 15% 더 올려 드리겠습니다."

"……15%."

"이런 구공장을 인수하면서 전 직원 연봉을 일괄적으로 올려주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수영과 전성렬은 직원들을 열심히 설득했지만, 끝내 30명이 떠나가는 것은 붙잡지 못했다.

이것으로 공장 직원은 120명을 확보한 셈이다.

"30명이나 놓쳤네요. 아쉬워라."

"뭐, 원래는 JM식품으로 전원 옮겨가려고 했었잖아. 그걸 생각하면 다행이지."

애초에 JM식품이 내놓은 것은 공장부지와 설비 일체이지, 직원들은 아니었다.

JM식품은 당연한 듯이 직원들을 데려가려고 했고, 인수 협상을 할 때도 그 이야기가 나왔다.

'신생회사가 이 많은 직원들을 전부 커버할 수나 있겠어? 필수 인원만 남기고 정리하겠지.'

그런 생각 때문에 데려가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하수영 측에서 고용을 승계하려고 했다.

JM식품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어서 그러라고 했다.

대신 JM식품으로 오길 희망하는 직원은 회사 차원에서 받아주기로한 것이다.

"이런 거 보면 정재민 회장이 참 마음이 좋다니까. 공장 팔아버리고나 몰라라 해버려도 될 텐데, 직원들까지 전부 다 받아주다니 말이야. 지금 JM식품도 경영 사정이 그리 썩 좋지는 않을 텐데."

"인덕을 크게 쌓으면 나중에 그 덕은 반드시 돌아오거든요. 작게 쌓으면 복불복이지만."

"인덕을 작게 쌓으면 복불복, 크게 쌓으면 반드시 돌아 온다라… 뭔가 마음에 와 닿는데?"

"제가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얻은 진리입니다. 정재민 회장이 뭔가 세상 사는 법을 좀 아네요. 근데 정말 회장 맞아요? 사장 아니에요?"

"사장인가 회장인가. 나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JM식품에서 1년 동안 공장 운영 관리도 지원해 주고, 직원들도 120명이나 남겠으니 창업 절차만 완료되면 바로 시작할 수 있겠네요."

"일이 빨리빨리 진행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군. 송이 채취는 잘 되고 있나?"

"물론이지요."

"황비버섯은?"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이제 라면 1호 이름을 정해야 할 때가 됐어요."

라면 레시피는 특허 보호 기간이 지난 것을 가져다가 쓰기로 했다.

하지만 제품 이름이나 디자인만큼은 전부 새로 해야 한다.

또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해야 하고, 유통망도 확보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홍보와 유통인데 말이죠."

"그렇지. 하 사장, 라면 이름 생각해 둔 거 있나?"

"황금비단우산버섯라면, 황비버섯라면, 황비라면, 이런 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이겠죠?"

"우리가 라면 하나에만 황비버섯을 넣을 게 아니잖나. 마케팅에는 황비버섯 이름을 질리도록 넣더라도, 라면 이름에는 넣어선 안 되지."

앞으로 내놓을 모든 라면 제품에 황비버섯을 넣을 건데, 1호 라면에 황비버섯 이름을 넣는 것은 좀 아니라고 보았다. 전성렬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수영은 조금 달랐다.

"아니에요. 우리가 저 적빛 가득한 오션에 출격시킬 1호기이니만큼, 가진 모든 무기를 다 몰아줘야 합니다. 나중에 나올 다른 라면들 이름에는 황비버섯을 못 넣더라도, 1호기 라면만큼은 반드시 넣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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