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30화
6장 얼마야? 얼마면 돼? (5)
"흐응……."
하수영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다가 문득 정색했다.
"사장님, 서해식품에서 아무래도 우리 송이가 어지간히 탐이 나나 봅니다."
"그러니까 30%나 불렀다가 15%로 깎은 거겠지."
"그쪽에서 아직 연락 없나요?"
"없어. 만약 연락 오면 이미 일 년 치까지 다 팔아버렸다고 어떻게 설명할까 난처했는데, 잘됐지, 뭐."
송이의 일본 수출을 놓고 서해식품과 이야기가 오가던 중, 마케미야 투자에 선금을 받고 일 년치 재배량 4.8톤을 모두 팔아버린 상황이다.
당연히 서해식품에 줄 것이 없는 처지.
전성렬은 서해식품에서 연락이 오면 적당히 포장해서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서해식품, 정확히 말하자면 송이버섯 수출을 이야기하던 수출부 이원재 과장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오히려 송이수출 계약과 상관없는 다른 부서에서 황금비단우산버섯 100톤을 매입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부서 간에 의사소통이 잘 안 되나?'
"그래요? 여태 연락이 안 왔단 말이죠?"
"어, 나야 어려운 이야기 할 필요가 없으니 잘됐지만."
"음, 일단 사장님이 알아두셔야 할게 있어요."
하수영은 자신이 이원재 과장으로부터 받은 제안, 그리고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서해식품이 자신에게 언급한 최종조건은 12%이며, 전성렬을 배제한 채 직거래를 한다면 10%까지 낮춰주겠다는 이야기.
다 듣고 난 전성렬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도 바보가 아닌지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한테는 분명 15%라고 했는 데…… 자네, 설마 날 의심하는 건 아니지?"
"물론 아닙니다. 몰래 3%를 따로 챙기실 분이었으면 51억 받을 것을 24억만 받겠다고 먼저 말씀하시지 않았을 테니까요."
마케미야투자에 일괄 판매했을 때, 전성렬의 정당한 몫은 51억이었다.
하지만 그는 24억만 받겠다고 했고, 하수영은 그의 진심을 깨닫고 30억을 챙기라고 권했다.
"서해식품에서 누가 우리 둘을 상대로 장난을 치나 봐요. 그게 이원재 차장인지, 아니면 그보다 상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내 이놈의 놈들을 그냥!"
"에이, 이미 다 끝난 일이니까 놔두세요. 나중에 송이버섯 이야기 나오면 잘 둘러댈 핑계나 만들어두시고요. 앞으로 업계에서 자주 부딪치게 될 공룡 기업인데, 굳이 척을 질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자네 말이 맞아. 다 끝난 일이긴 하지. 하지만…… 휴우."
전성렬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한참 심호흡을 했다.
"미안하네. 내가 이렇게 배신 때리고 뒤통수 치고 그러는 것은 아직도 적응이 안 돼서 말이야. 사업 수십년을 했는데도 사람한테 배반당하는 건 못 참겠더라고."
"멘탈만 잘 잡고 무너지지만 않으시면 되죠. 스트레스받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오늘 간만에 한잔하실래요?"
"간만에?"
전성렬은 그 말에 픽 웃어버렸다.
스트레스가 어느새 조금은 가라앉았다.
"우리가 언제 술을 먹었다고 간만인가? 난 자네와 함께 술 먹은 기억이 전혀 없네만?"
"아, 그랬나요?"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그래도 몇 달 동안 동업했고 이제 큰돈까지 각출해서 같이 탈 배까지 만들었는 데, 어떻게 술 한 잔 안 할 수가 있는가 말이야."
"그러면 말 나온 김에 오늘 술 한 잔하시죠."
"그러세."
어느 술집을 갈까 즐겁게 고민하던 전성렬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만약 내가 내 몫을 덜지 않았더라면…….'
하수영은 자신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서해식품에서 12%라고 제안을 받아놓고 본인에게는 3%를 숨겼다고 말이다.
그런 상상을 하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만약 나라면…….'
자신이 하수영의 입장이었다면, 서해식품보다는 성렬유통을 의심했을 것이다.
원래 장사치라면 돈을 더 주겠다는 쪽의 말을 더 신뢰하게 마련이니까.
더군다나 서해식품은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부동의 1위 업체 아닌가?
전성렬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욕심 덜어놓은 게 나를 살렸구먼.'
사람의 마음에 한 번 심어진 불신을 빼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특히 돈에 얽힌 것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자신은 하수영과 인연을 맺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불신을 품기도 쉬웠으리라.
정직한 거래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아온 것이, 오늘처럼 다행스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은 내가 사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말만 하게."
"제주도 토종 숙성 흑우에다가 살짝 구운 송이버섯 곁들여서 먹고 싶은데요. 술은 레드 와인이나 위스키로 하고요."
"근데 지금 송이가 제철이 아닌데 어디서 구하지?"
"아, 좀. 그런 거 재미없다니까요, 사장님."
술은 전성렬의 집에서 마시기로 했다.
전성렬이 먼저 집에 연락을 한 뒤, 하수영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
"고기를 왜 이렇게 많이 사십니까?"
"우리 딸들이 먹성이 좋아서 말이야."
"우리 둘만 같이 먹는 거 아니었나요?"
"그렇긴 한데 분명히 야금야금 뺏길 거란 말이지. 그러니 미리 넉넉하게 사두는 게 좋을 거야. 겸사겸사 술 심부름도 좀 시키고."
술과 고기, 채소 등을 넉넉히 사서 전성렬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서울의 대표적인 잘 사는 동네 송초구의 신축 아파트였다.
"이야, 이 정도면 집값만 해도 상당하겠는데요? 전 사장님 정말 알부자셨구나."
"이 친구야. 내가 장사만 수십 년을 했는데 그럼 내 가족 몸 뉠 곳은 당연히 있어야지."
전성렬은 가족들을 불러다가 소개시켰다.
"인사하게. 이쪽은 내 안사람, 그리고 이쪽은 우리 말썽꾸러기들. 자네보다 어리니 말 편하게 하고."
"반가워요. 이 양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빠! 우리가 왜 말썽꾸러기야!"
"와, 고기다, 고기! 소고기다!"
"애들아, 이거 우리 하 사장하고 아빠가 먹을 거니까 너희는 손대면 안 돼."
"이렇게나 많은데?"
"그런 게 어딨어! 우리도 좀 줘!"
하수영은 티격태격하는 세 부녀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딸들 줄 고기도 사왔으면서 굳이 저렇게 힘을 빼다니.
'이분도 참 재미있게 사시네.'
결국 전성렬은 두 딸과 극적인 타결을 이뤄냈다.
"좋아. 대신 고기 굽는 것과 설거지는 너희가 해야 한다?"
"알았어. 우리가 할게."
여고생 두 딸은 신이 나서 고기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어느덧 거실 테이블에는 술상이 순식간에 세팅되었다.
"따님들하고 사이가 좋으시네요."
"자네도 잘 보고 배워. 자식은 이렇게 다루는 거네."
"압니다. 어려서부터 거래와 협상습관이 몸에 새겨지도록 교육하라는 거죠?"
"그리고 웬만하면 결혼은 하지 말고."
"왜요, 좋아 보이시는데?"
"재미있는 지옥보다는 심심한 천국이 더 좋을 수 있다네."
두 딸은 확실히 영특했다.
자기들끼리 주방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도 틈틈이 거실을 챙겼다.
하수영은 그런 소소한 점에서도 전 성렬이 장사꾼의 기질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기를 대가로 자식들에게 술상 세팅과 설거지를 얻어내다니.
애초에 그냥 줘도 되는 고기를 가지고 새로운 이익을 창출한 것 아닌가.
중간부터는 전성렬의 아내 하지희도 참가했다.
"아유, 직접 보니까 아주 훤칠하고 잘생기셨네요. 우리 하 사장님.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어요. 이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두 따님이 왜 이렇게 미인이신가 했더니 사모님을 닮아서 그런가 봐요."
"비행기 너무 띄우지 마요. 떨어지면 아퍼."
술이 적당히 오르자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전성렬은 술이 센 편이었고, 술버릇도 얌전했다. 특별한 주사도 없었다.
"근데 어떻게 송이 인공재배에 성공한 거예요? 말만 들어도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별거 없습니다. 그냥 솔잎을 뭉쳐서 잘 깔고 그 위에서 송이 포자를 뿌리면 돼요. 참 쉽죠?"
기분 좋게 떠들며 마시다 보니 하수영도 어느덧 술이 상당히 올라왔다. 말이 조금씩 꼬이고 눈에 초점도 흐릿해진다.
"제가 이래 봬도 상당히 오래 살았어요. 정확히 몇 살인지는 천 살 넘어가고부터는 안 세기 시작한 듯?
별별 짓 다 해봤죠. 영웅에, 학살자에, 독재자에, 학자에, 과학자에, 테러리스트에, 화가에, 목수에……."
"우리 하 사장, 많이 취했구먼. 말도 꼬이고 있어."
"아무튼! 제 버킷리스트 중에서 유일하게 못 한 걸 이번 생에는 꼭 해볼 겁니다!"
"그게 뭔가요?"
"가장 비싼 내 빌딩을 올린 다음 1층에 제 가게를 내는 거요. 저번 생에는 말년에 은퇴하면 레스토랑이나 차려서 평화롭게 살려고 기껏 요리까지 열심히 배웠는데, 하필 반란이 일어나서 그거 수습하느라 남은 시간 다 까먹은 …… 으으으!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분해요."
"우리 하 사장이 낮술은 아직 내공이 딸리구만, 벌써부터 꿈꾸는 건 아니지?"
"꿈…… 제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요?"
하수영은 눈이 완전히 풀린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빈 술잔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전성렬은 불현듯 가슴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용히 술잔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설명하기 힘든 처연함이 묻어났다.
어느덧 하수영은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전성렬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일어났다.
"이 친구가 술이 약하구만."
"……여보? 이 병들은 좀 보고 말하죠?"
"우와, 아빠 술친구 중 역대 최고야!"
"세상에. 우리 아빠와 이렇게까지 대작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아내는 산더미처럼 쌓인 빈 병을 가리키며 눈을 흘겼고, 두 딸은 하수영의 저력에 경의를 표했다.
"떽, 고기 먹었으면 상이나 치워. 그거 아주 비싼 고기야, 인석들아."
"알았어요, 알았어."
전성렬은 손님방에서 이불을 가져와 하수영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자 하수영은 귀신처럼 일어났다.
눈빛은 또렷했고 술기운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전성렬은 그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자네, 간이 강철로 되어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많이 먹었으면서 몇 시간 자고 멀쩡히 술이 다 깬다고?"
"사장님, 설마 저 넉다운되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혼술 하셨던 건가요?"
하수영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혹시 이 사람, 아버지가 자기 몰래 키우는 프랜차이즈 갓 후보자? 형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형?
"나야 원래 애주가니까. 자네 쓰러지고 심심해서 혼자 술 한잔하면서 영화나 보고 있었지."
"걱정 하나는 덜었네요. 어디 비즈니스 술자리에서 술기운에 구두 계약 잘못하실 일은 없겠습니다."
"나는 걱정 하나가 늘었는데. 하사장 자네, 술 들어가니까 별 희한한 소리를 다 하더만."
"여보, 이만하면 엄청 대단한 거죠. 보통은 하 사장님 주량 절반도 못채우고 인사불성 된다고요."
어쨌거나 전성렬은 하수영과 개인적으로 좀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에 만족했다.
'근데 주량은 좀 더 키울 필요가 있겠는데.'
지금까지 그와 대작하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들었다가는 기가 찰만한 소리였다.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고, 알림을 확인한 전성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왜 그러시죠?"
"……서해호텔 총주방장 연락이야. 오랜만이군."